킴 투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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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 붐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루>의 작가 킴 투이는 베트남 전쟁 생존자다.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재는 호치민)에서 태어난 작가는 10살 때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나 난민으로 지내다 1979년 말 캐나다에 정착했다. 이후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번역학, 법학 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일하다 현재는 '루 드 남'이라는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며 작가로 활동 중이다. 


킴 투이의 첫 책 <루>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킴 투이가 아니라 '응우옌 안 띤'이지만, 작가와 안 띤 모두 베트남의 상류층 출신이고, 전쟁을 피해 보트피플로서 캐나다에 왔고, 정착에 성공해 변호사가 되었고 음식점을 차렸다. 심지어 작가의 둘째 아들도 안 띤의 둘째 아들 앙리처럼 자폐아라고 하니 이 소설의 어디까지가 작가의 실제 경험이고 허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안 띤이 변호사가 되어 베트남을 다시 찾은 후에 겪은 일들이다.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안 띤을 베트남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안 띤이 피해서 달아난 전쟁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비록 부모의 뜻이었지만, 안 띤이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났을 때, 안 띤은 더 이상 베트남 사람들과 '한 배'를 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떠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때는 같았으므로 언젠가 다시 만나면 비슷해질 수도 있지만 영원히 예전처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열 살 때부터 난민 신분으로 망망대해를 떠돌아야 했던 안 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엾지만, 안 띤을 그렇게 만든 안 띤의 부모가 가진 재산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정부에 부역해 축적한 것임을 생각하면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로 바꿔 말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부역해 만든 재산을 들고 외국으로 간 친일파의 자손이 외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안 띤이 겪은 고생과 고통을 폄하할 건 아니지만,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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