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최승자 시집을 읽으면 온통 없음과 빔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꽉 차 있다고 생각하지만, 곧 텅 비게 된다. 우리 삶은 충만함과 텅빔이 공존하고 있다.


  비우지 못하면 채우지 못하고, 채우지 못하면 비우지 못한다. 둘이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이다,.


  그렇게 이 시집에서는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사라짐이 있으면 나타남이 있다.


  그게 인생이다.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쪽에 자신을 두다가, 어느 순간 하나만이 아니라 둘이 또는 그 이상이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최승자의 이 시처럼.


  이 세상 속에


이 세상 속에

이 세상과 저 세상

두 세상이 있다

겹쳐 있으면서 서로 다르다

그 홀연한 다름이 신비이다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 2016년. 30쪽.


더 말이 필요없다. 수다스러워지면 안 된다. 그냥 이렇게 시를 감상하자. 다른 시를 보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 2016년.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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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우리가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한다. 우리 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시는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을 별것이게 한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참 별것들이 많다. 별것이라는 말이 그렇다면 특별한 것들 투성이다. 아니 존재한다는 자체가 바로 특별이다. 모두가 특별하다. 그런 특별함을 때로는 외면하면서 지내오다가 시를 읽으며 특별함을 다시 발견한다. 


  양정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일상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 일들을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을 갈 때 무심히 지나쳤던 제주 역사를 시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했고.


  산에 가서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슥 지나갔던 꽃들, 나무들,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시인은 '우리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의미한 일상이 바로 시가 될 수는 없을까에 오랫도안 천착하다 보니, 시들 자체도 매일의 일상처럼 지리멸렬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시인의 말에서)고 했지만 아니다. 시는 그렇게 우리가 의미를 찾지 않고 보냈던 수많은 일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많은 시들 가운데, 특별히 '숲 속 세 개의 길'을 인용한다.


  숲 속 세 개의 길


녹음이 우거진 우리 동네 아름다운 숲에 원래

자연스런 하나의 흙길이 있었네

키 작은 잡풀과 풀꽃들이 어우러진 푸른 숲 바닥에

오래도록 사람들이 지나다녀 또렷이 다져진

숲과 어우러진 수수하고 자연스런 흙길, 어느 날 구청 사람들이

그 흙길 위에 네모 반듯반듯한 시멘트 블록을 깔았네


깔끔하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생경해 보이는 그 시멘트 블록 길

그 단정한 시멘트 길로만 얌전히 다녀

더 이상 숲속을 망치지 말라는 듯이 그러나

그 단정한 시멘트 길로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네


사람들은 그 시멘트 길을 비웃듯 피해 다녀

그 시멘트 길 바로 옆

위로 아래로 두 개의 흙길이 새로 더 생겼네


숲을 보호한답시고 깐 시멘트 블록 길 때문에

두 개의 새로운 흙길이 더 생겼다네


이런 것이 바로 현실 인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라는 것이겠지


양정자, 꽃들의 전략. 천년의 시작. 2018년.  64-65쪽.


이런 일이 많지 않은가. 가로수 정비라는 명목으로 싹둑싹둑 잘라버려, 가지치기가 아니라 몸통치기가 되어버려 나무들이 그냥 일자로 무슨 전봇대 마냥 서 있는 도시의 나무들.


길 양 옆으로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 터널을 만들어주는 나무들을 정비한다고 가지를 뭉텅잘라내어 터널을 없애버리는 나무 가지치기.


아파트 건물을 보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가지를 잘라내 흉물스럽게 변한 나무들. 


그럼에도 나무들은 다시 가지를 내고, 잎을 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등산로를 정비한답시고, 등산로에 시멘트를 깔아놓으면 그 길보다는 그 길 옆으로, 흙을 밟으며 가곤 한다. 그래서 길이 더 넓어진다.


자연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 인공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 별것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이렇듯 양정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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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네팔어로 시를 쓴 것을 번역한 시집인데... 번역이 시의 맛을 정확히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집에서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이주노동자.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많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기도 한데...


  이 지구상에 유독 사람들에게 국경이 강력하게 작동을 해서, 사람들을 편 가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고, 우리는 모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이럴 때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감정을 담은 시를 읽는 것도 좋다. 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외국에서 만난 동생'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되려면 낯선 나라에 가야 하는구나 / 자신을 알려면 또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려면 / 낯선 나라에 가야 하는구나 /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려면 / 나라를 떠나봐야 하는구나

(씨꾼 아수, '외국에서 만난 동생' 부분. 47쪽)


낯선 나라에서 고생을 하면서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 이것이 긍정적이면 좋겠지만, 조국보다도 더 열악한 현실에서 자신을 깨닫게 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슈퍼 기계의 반란'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이 이토록 어려운 시기가 도래해서 / 이제는 당신 기계의 족쇄를 차고 / 슈퍼 기계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어요 / 그럼에도 / 땀을 흘린 대가로 / 왜 무시를 당해야 하나요? / 내 자존심에 / 왜 상처를 받아야 하나요?

(니르거라즈 라이, '슈퍼 기계의 한탄' 부분. 73쪽)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노동자들 없이 어떻게 산업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노동 없이 우리 삶이 유지될 수 없는데, 우리는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를 무시하고 있으니, 이러면 안되는 거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을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이 우리 산업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이런 시를 비롯하여 네팔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시들, 그리고 이주노동자로서의 신산한 삶이 나타난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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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5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두 편만 읽었어도 정서가 확 느껴지네요. 출판, 기획의도가 궁금해지는 시집입니다.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kinye91 2021-03-05 09:39   좋아요 1 | URL
이주노동자의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에요. 읽으면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생각나기도 했고요.

붕붕툐툐 2021-03-05 2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박! 이 책 기획한 사람 상주고 싶네요~ 넘넘 읽고 싶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kinye91 2021-03-06 08:50   좋아요 2 | URL
맞아요. 좋은 기획이에요. 번역한 사람도 고생했고요.

감은빛 2021-03-06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삶창에서 삶창 다운 책을 냈군요. 삶창이 오래 책을 낼 수 있는 첫 기반을 만든 게 바로 이주노동자와 이주 여성 이야기를 다룬 [말해요, 찬드라] 였죠. 이 책이 없었다면, 잡지사 <삶이 보이는 창>이 지금과 같은 출판사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예요. [아빠, 제발 잡히지마] 도 다시 읽어보고 이 시집도 읽어봐야겠어요.

kinye91 2021-03-06 08:51   좋아요 2 | URL
감은빛 님 글을 보니,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마]를 읽었을 때 감정이 되살아나네요. 삶창이 꾸준히 좋은 책을 내면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얄라알라 2021-03-06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 분, 찬드라 말씀하시는 건가봐요. 꼭 찾아봐야겠어요^^

감은빛 2021-03-06 09:02   좋아요 2 | URL
네, 북사랑님. 아마 박찬욱 감독이 그 책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고 영화를 찍었겠죠. 책에는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많아요. 반성해야 할 아픈 현실들입니다. ㅠㅠ

얄라알라 2021-03-06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창.....이름도 아름다운 출판사네요. 여기저기 도서구입 신청 많이하는데 삶창 책들을!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스미다'란 낱말을 떠올렸다. 한번에 확 변하지 않고 시나브로 다가와 어느 순간 전체가 바뀌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스며들다. 스미다. 그의 시집을 읽으며 무언가 촉촉한 기운이, 물기가 내 맘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스미다'란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듯이.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병률 '스미다' 중 일부분)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그렇게 그의 시가 내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이병률 시의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에 스며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 대문이 아닐까? 우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는 것.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을 표현한 것이 이병률의 이번 시집 제목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어딘가로 가려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렇게 어딘가로 가려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빚'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 그런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곳으로. 빚을 다 갚았을 때 우리가 있을 곳은 단 한 곳.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일테니.


    가슴을 쓸다


빚을 갚지 않은 인연이 있어

나무에 대고 비는 일이 많아졌다

빚을 빚으로 손에 쥐어주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 녹지 않는 사람 있어

들에도 빌다 물에도 빌고 뿌리에도 빈다

흔들리는 긴 머리의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빌고

초겨울 밭에 다 익어 떨어졌겠지 싶은 

열매에게도 고개 수그린다

빌어 갚아지는 것이 빚이 아님에도 빌고

빌고 쌓아야 하는 것이 공덕이 아님에도 빈다

스스로 조아리지 않더라도

멀리 날던 새가 몸을 낚아 비탈에 끌어다 벌주기도 하고

하다못해 식탁 옆에 떨어져 밟힌 쌀알에도 놀라

양손을 모으다 통곡하게 한다

빚으로 야위어 세월의 중심에 눈길 주지 못하는 이

이자도 갚지 않아 길에 나돌아댕기지 못하고

마음만으로 미쳤다 소용돌이치는 값이 있다

저녁 그림자는 달에 닿은 지 오래건만

진종일 물가를 다 돌고도 모아지지 아니하는 생빚이 있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2013년 2판 10쇄. 14-15쪽.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빚으로 여겨도 좋지만, 이 시에서 빚은 우리가 금전적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석할 때 더 큰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태어났다는 자체가 빚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다 갚아질 수 없는 빚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는.


하지만 그 빚으로 인해 우리는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빚이란 신세고, 신세란 함께 함이니,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빚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손에 만져지든 만져지지 않든,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이런 빚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막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빚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늘 변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이 '빚'이라는 존재가 어느덧 내게 '스며들'었음을 느끼게 된 이병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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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삶이라는 직업이라니... 우리 삶이 직업인가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직업이 바로 우리들 삶을 지탱해 주니까.


  직업을 일이라고 한다면,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 라고 하며 이 단어가 합쳐진 뜻. 일과 삶의 조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삶이라는 직업'이라고 말한 시인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삶이라는 직업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직업이다. 버릴 수 없는 직업. 이 직업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또 자신을 갉아먹는 삶을 살지, 반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의 삶도 윤택해지는 삶을 살지 선택해야 한다.


삶이라는 직업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삶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삶이라는 직업에서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듣는가?


소리 없이 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리가 심하면 더 살기 힘들다. 요즘 층간 소음 문제로 심각한 갈등 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소음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부정의 뜻이 담겨 있으니.


그런데 소음 가운데서도 긍정의 의미를 지닌 소음이 있다. 바로 '백색소음'이다. 이런 백색소음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시인의 이 시집을 읽다가 백색소음을 만났다. 빛의 삼원색은 섞이면 흰색이 된다고 하는데, 많은 소리들이 섞여 백색소음이 되면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시를 보자.


세상 모든 원소들의 백색소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세상을 가져온다


  바나나가 그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열어 음악을 들으면 눈밭 위에 앉아 짹짹거리는 작은 새들의 소리처럼 그리운 소음


  소음이 그리운 날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빠져나와 하루 종일 닉 케이브를 듣는다


  닉 케이브라는 소음의 천사를 나는 예전에 알았다


  그가 전직 천사였다는 것을 안다


  너무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타락 천사가 된 그를 나는 인간적으로 듣는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소음 속에서 침묵을 추구한다


  한없이 떠들어야만 더욱더 견고한 고독이 완성되므로 여전히 사랑에 빠져 노래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왜 그가 타락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준다


  사실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의 비극을 감싸 안으므로 우리는 장엄하게 아름다운 비극이다


  여기까지다,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주는 일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순간 누군가 안쓰럽게

  이 시를 읽고 있을 것이다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거나

  아마도

  당신이 음악이었거나


박정대, 삶이라는 직업, 문학과지성사. 2015년 초판 7쇄. 87-89쪽.


그렇게 이 시를 끝까지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도 천사나 음악이 된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시 다시 읽자. 천사가 되고 싶다면.


'시인이 할 일은 세상 모든 원소들을 백색소음에 데려다주는 일 // 그 다음은 이 세계의 일, 모든 소리의 가청 주파수대를 의미하는 백색소음 속에서 시인은 침묵과 고독이라는 물질로 새로운 시의 원소를 만드는 연금술사 // 여기까지다, 여기까지가 침묵의 음악이고 그 이후는 침묵을 또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시를 우리에게 삶과 일을 합쳐 백색소음을 만든다. 그렇게 시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하나로 만든다. 그런 시를 읽는 우리는 백색소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어찌 천사가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니 가끔은, 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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