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우리가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한다. 우리 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시는 별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을 별것이게 한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참 별것들이 많다. 별것이라는 말이 그렇다면 특별한 것들 투성이다. 아니 존재한다는 자체가 바로 특별이다. 모두가 특별하다. 그런 특별함을 때로는 외면하면서 지내오다가 시를 읽으며 특별함을 다시 발견한다. 


  양정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일상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 일들을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을 갈 때 무심히 지나쳤던 제주 역사를 시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했고.


  산에 가서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슥 지나갔던 꽃들, 나무들,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시인은 '우리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의미한 일상이 바로 시가 될 수는 없을까에 오랫도안 천착하다 보니, 시들 자체도 매일의 일상처럼 지리멸렬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시인의 말에서)고 했지만 아니다. 시는 그렇게 우리가 의미를 찾지 않고 보냈던 수많은 일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많은 시들 가운데, 특별히 '숲 속 세 개의 길'을 인용한다.


  숲 속 세 개의 길


녹음이 우거진 우리 동네 아름다운 숲에 원래

자연스런 하나의 흙길이 있었네

키 작은 잡풀과 풀꽃들이 어우러진 푸른 숲 바닥에

오래도록 사람들이 지나다녀 또렷이 다져진

숲과 어우러진 수수하고 자연스런 흙길, 어느 날 구청 사람들이

그 흙길 위에 네모 반듯반듯한 시멘트 블록을 깔았네


깔끔하지만 어쩐지 어색하고 생경해 보이는 그 시멘트 블록 길

그 단정한 시멘트 길로만 얌전히 다녀

더 이상 숲속을 망치지 말라는 듯이 그러나

그 단정한 시멘트 길로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네


사람들은 그 시멘트 길을 비웃듯 피해 다녀

그 시멘트 길 바로 옆

위로 아래로 두 개의 흙길이 새로 더 생겼네


숲을 보호한답시고 깐 시멘트 블록 길 때문에

두 개의 새로운 흙길이 더 생겼다네


이런 것이 바로 현실 인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라는 것이겠지


양정자, 꽃들의 전략. 천년의 시작. 2018년.  64-65쪽.


이런 일이 많지 않은가. 가로수 정비라는 명목으로 싹둑싹둑 잘라버려, 가지치기가 아니라 몸통치기가 되어버려 나무들이 그냥 일자로 무슨 전봇대 마냥 서 있는 도시의 나무들.


길 양 옆으로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 터널을 만들어주는 나무들을 정비한다고 가지를 뭉텅잘라내어 터널을 없애버리는 나무 가지치기.


아파트 건물을 보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가지를 잘라내 흉물스럽게 변한 나무들. 


그럼에도 나무들은 다시 가지를 내고, 잎을 낸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등산로를 정비한답시고, 등산로에 시멘트를 깔아놓으면 그 길보다는 그 길 옆으로, 흙을 밟으며 가곤 한다. 그래서 길이 더 넓어진다.


자연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 인공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 별것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이렇듯 양정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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