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최승자 시집을 읽으면 온통 없음과 빔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꽉 차 있다고 생각하지만, 곧 텅 비게 된다. 우리 삶은 충만함과 텅빔이 공존하고 있다.


  비우지 못하면 채우지 못하고, 채우지 못하면 비우지 못한다. 둘이 함께 존재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이다,.


  그렇게 이 시집에서는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사라짐이 있으면 나타남이 있다.


  그게 인생이다. 죽음이 있으면 삶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느 하나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쪽에 자신을 두다가, 어느 순간 하나만이 아니라 둘이 또는 그 이상이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최승자의 이 시처럼.


  이 세상 속에


이 세상 속에

이 세상과 저 세상

두 세상이 있다

겹쳐 있으면서 서로 다르다

그 홀연한 다름이 신비이다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 2016년. 30쪽.


더 말이 필요없다. 수다스러워지면 안 된다. 그냥 이렇게 시를 감상하자. 다른 시를 보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사. 2016년.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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