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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소문이란 게 참 무섭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것도 시대가 바뀌니 방법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온라인상의 공유, 퍼가기, 댓글 등.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하지 않아도 이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원인, 하다못해 의심할 무언가라도 있으니 그에 관련된 말이 나오는 거 아니겠냐며 너도 나도 그 흐름에 탑승해버린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 그러한지 확인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인지 아닌지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인다. 우선은 무조건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 마냥, 동조하기 바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사실이고 진실이라 여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건 따로 있다. 그 말과 그 믿음이 없는 실체도 만들어낸다는 점, 그래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기까지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도 있지만, 글쎄, 이제는 아닌 땐 굴뚝에도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칼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거나 악의적인 댓글들은 넘쳐나는 세상이다. 결국 그 댓글들이 모여 예리한 날을 세우니, 누군가는 거기에 깊숙하게 찔릴 수도 있음이다.
『댓글부대』에 등장하는 ‘팀-알렙’은 인터넷 여론조작 업체이다.
팀-알렙의 멤버로는 삼궁, 01査10, 찻탓캇이 있다. 이들은 실시간 검색 순위 조작, 업체를 상대로 상품평이나 구매 후기를 가짜로 작성해주는 일, 청부 사이버 공격 같은 일을 하며 돈을 벌었는데 업체, 학원 강사, 기업, 정치인이 이들의 고객이었다.
그러던 중 W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죽고, 그것을 다룬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서 합포회라는 조직이 팀-알렙에게 어떤 의뢰를 맡기게 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국기기관, 경제단체, 수수께끼 민간인들. 그리고 이철수라는 사람과 회장님으로 불리는 노인의 등장.
소설은 팀-알렙이 어떻게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무력화시키는가와 찻탓캇이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는 내용이 맞물리며 점점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큰 반전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책은 소설이다. 그러나 더없이 현실을 넘나드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소설 속 커뮤니티 회원들 간의 싸움은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다. 실제로도 온라인상에서도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처럼 누군가 커뮤니티를 와해시킬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그런 일들은 의외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그 생생한 묘사에 깜짝 놀랐을 정도다. 그리고 가짜 상품평 후기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어디 그뿐이랴. 가짜 블로그며 맥락 없는 게시글과 댓글은 실제로도 존재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 책, 『댓글 부대』는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에는 정치적 암흑세력과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여론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댓글부대들이 등장한다. 물론 작가는 이 소설이 전적으로 허구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다 믿을 수는 없다고. 그만큼 이야기는 현실감이 있었고 진행되는 호흡은 마지막까지도 늘어짐 없이 잘 연결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힘을 가진 세력도 세력이지만, 팀-알렙의 세 명의 멤버가 좀 더 무서운 존재라고 느껴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커뮤니티를 무너뜨렸던 것은 댓글 부대가 아닌, 바로 이 세 명이었던 것이다.
물론 팀-알렙 멤버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해외가상사설망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것들이 주어지긴 했다. 하지만 꼭 그런 조건만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댓글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을 교묘히 건드리는 그런 댓글 말이다.
어떤 말이 상대를 분노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킬 것인가. 삼궁, 01査10, 찻탓캇은 이런 것들에 빠삭했고 끝내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몰아갔다. 이들이 불씨를 만들고 뒤로 빠지면 그 후는 늘 똑같다. 저들끼리 물고 뜯으며 맹렬히 싸우는 온라인 이용자들. 팀-알렙은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그저 재미있게 관람할 따름이다.
-논리야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그만이죠…… 타이밍이 중요해요 (p.77)
-어디 스트레스 풀 데 없나 하고 인터넷을 헤매던 하이에나들이, 배운 여자 코스프레를
해보고 싶었던 상어 새끼들이, 저리 가라고 해도 알아서 몰려듭니다.(p.78)
-저희가 두 가지 점에서는 초등학생보다는 뛰어났죠. 가슴 후벼 파는 거, 그리고 집요한 거.
그거 두 개면 다 됩니다. (p.81)
삼궁, 01査10, 찻탓캇을 보니 머릿속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럿이 말하면 참말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다.
부디 현실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를. 더불어 자신도 모르게 그 삼인성호 중 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 또한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