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생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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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나이를 먹어가며 다양한 사람을 겪을수록 사람에 대해 전체적으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연을 두고 다 안다고 단정 지어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건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 또한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오래 알고 지냈고 두터운 사이일지라도 무슨 이유에서건 관계가 멀어지는가 하면, 반대로 알고 지낸지 얼마 안 되었더라도 그 누구보다 잘 통하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사람의 삶이란 언제 어떻게 흘러갈지, 어디서 누구를 만날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포구에서 노숙을 하던 박호구가 남장 차림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최윤서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은 박호구의 현재와 어린 시절을 오가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어린 시절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가족은 소중하고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핀다고 여기겠지만 사실 꼭 그런 가족, 그런 부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름꾼인 아버지와 무당에 빠져 있는 어머니. 어린 박호구에게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아닌 괄시와 폭행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괴롭힘과 따돌림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변을 원망하지 않았는데, 불평 대신 자신만의 교훈을 터득하며 생활하는 그 모습이 보통의 아이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 그런지 오히려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아이들의 그런 냉소적 대우를 참아내는 일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과거의 고통과 씨름하지 말라는 교훈을 터득하게 만들었다. (p.35)

 


  가출 후 버스터미널에서의 생활, 예술 곡예단, 거기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단심이네, 경찰에게 운동권이라 오해받고 강제 입대한 후 나중에 터미널 풀빵장사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매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소소한 것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만족을 했던 주인공. 그리고 그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새삼 소설을 통해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동안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더불어 우리는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오늘 하루는 시간을 내어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것은, 유흥가에 우쭐거리는 불빛처럼 휘황찬란한 인생 메달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웃는 얼굴로 얘기하며 작은 재미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280)


"여길 떠나도 그리고 당나귀를 찾아도 우리 함께해요. 나는 아저씨 따뜻한 손을 잡고 잠들 수 있다면 그걸 최상의 행복으로 생각할게요. 손이면 됐어요. 더 바란다면 과분한 일이지요. 아저씨도 말했잖아요. 분수 모르는 과욕이 재앙을 부른다고. (...중략...) 나한테는 오래 걸어도 지칠 줄 모르는 다리가 있고, 아저씨에게는 남들은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잖아요."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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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부자들 - 무일푼에서 100억 원대 회사 만든 61인의 현재 진행형 성공기
이신영 지음 / 메이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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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특히 젊은 사람들의 사업 성공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젊은 나이에도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활약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자신 역시 그러한 도전을 꿈꿀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마음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전해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젊은 부자들』에 나온 61인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책을 읽어 보니 그들은 스펙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형편이 좋아 자금에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한국의 젊은 부자들. 책을 읽다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해본다. 우선 그들은 상품이든 아이디어든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함으로써 경쟁자들과 확연하게 다른 차별점을 갖고 있었다. 더불어 사업을 잘 운영해나가는 관리 능력과 상품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자세도 잊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그들만의 강점이 되었고 어려운 환경과 시기 속에서도 성공을 불러오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잘 읽는 것도 중요하다. 닷(DOT)대표 김주윤 씨는 '시각장애인은 왜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할까'란 제목의 《포브스》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워치인 '닷워치'를 개발하게 된다. 부자들은 돈을 부르는 아이디어를 늘 주변에서 찾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갔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도 그냥 무시할 게 아니라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는데 이러한 것들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는 요소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재테크로 부자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주식으로 400억 원 자산가 된 '청년 버핏' 박철상 씨의 이야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시중에 재테크, 투자 관련 책이 해마다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책에 나온 것처럼 성공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박철상 씨는 한 번도 재테크 관련 책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역사책과 위인전, 사회과학과 정치 관련 책들을 읽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독서법이다.

 


"... 과거의 의사결정 방식을 알면, 그들의 미래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변수와 불확실성에 대해 사전에 대처하는 제 방법이었습니다. 주식시장은 국제 정세, 사회 문화, 정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니까요. ..." (p.63)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의 상품을 대중들이 널리 알 수 있게 광고를 효과적으로 하는 것도 대박을 부르는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돼지코팩’을 마케팅한 이창혁 씨가 그러했고, 부모님의 고구마를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린 강보람 씨가 바로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좋아하는 일, 취미를 살려 사업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업이든 거기에는 나름의 준비와 계획이 필요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꼭 그렇지 않은 젊은 부자들도 나오는데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소수의 사례였다. 게다가 그들의 성공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 매출 60억 원의 팥빵집 사장님 박준현 씨의 조언도 잘 기억해두면 좋을 듯하다.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성공 사례를 공부하지 말고 실패 사례를 더 공부하라고 말한다. 성공 사례는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처음과 끝만 등장하기 때문에 환상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트렌드를 쫓지 말라고 말한다.
  혹시 지금 남들이 성공하니까 자신도 성공할 것 같다며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부디 명심하기를 바란다.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막연한 열정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관련 공부도 해야 한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에 몰입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부자들, 그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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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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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계절』. 이 책에는 자연이 그러하듯 사계절이 등장한다. 해당하는 계절마다 여러 편의 단편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계절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듯한 묘사력으로 계절마다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그동안 접했던 소설들과는 조금은 다름을 느껴본다.
 

 

  대개의 소설은 인물을 중심으로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어떤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매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갈등이 점차 해소되거나 깊어지면서 완급이 조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이 책의 경우 등장인물들은 좀 더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서도 주변에 대해서도, 화자는 주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서술하는 관찰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봄 나무의 말》에서는 회화나무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자신이 지켜본 마을 일꾼 닷근이, 꽃서방, 새악시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한다. 《여름은 지나간다》에서는 집안의 ‘하’가 나무의자를 끌어다 창가에 놓고 한낮의 밖을 바라본다. 밭에 가는 ‘파’, 무언가를 두드리러 숲으로 가는 소년, 새를 잡는 사내에 대해 우리는 잠시 ‘하’의 시선을 빌리게 된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아닐 수 없다. 화자는 분명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어떤 중심에서 한 발자국 뚝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느낌을 받는지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단편들을 읽으며 그 이유가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고방식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를 좋아하는가. 온갖 추측과 편견이 난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속의 화자들은 상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서술하되 모르는 것, 의심스러운 것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는 편이다. 심지어 이상한 일이 생겨도 그냥 그뿐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평소 자주 마주쳤던 누군가가 어느 날부터 사라져 안 보여도 잠깐 의문이 생기고 궁금증이 생기긴 하나 화자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시킨다.

 


  《세한도》에서 ‘여자’는 한겨울에 슬리퍼 차림 그대로 나가 텅 빈 동네를 누빈다. 비즈 공예용 전기인두로 팔뚝에다가 글자를 새기는 선짓국집 남자, 노파, 그리고 동네에 점점 늘어나는 낙서들.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여자는 상관없다고 느낀다. 분명한 것은 추위뿐이다.
  이런 패턴은 다른 단편들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2월 12일-이상에게》에 등장하는 ‘이응’은 오래된 필름카메라로 매번 같은 걸 찍어 필름을 장독에 넣어두는 남자다. 강씨, 일곱 번째 집의 아이, 길과 시장통의 모습 등등 스스로도 소용없는 것들을 찍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왜 찍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의 둥근 구멍을 통해 바라보고 셔터를 누를 뿐이다.
  그 와중에 《바다, 夏日》에서 ‘미음’이 목격한 일이라든가 그로 인해 조성되는 긴장감, 마지막 장면, 《Fall to the sky》의 마지막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자신이든 타인에 대해서든 전후 사정을 몰라도 대해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는 화자들. 그들은 주변에 불명확 것들이 늘어나더라도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 했다. 아니, 잠시나마 생각을 해보려 해도 계절의 존재가 압도적으로 모든 것을 제압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화자들이 느끼는 것은 오로지 계절,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캡슐 안은 생생해서 미칠 듯한 더위가 전부였다. 여자의 존재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주는 것은 선명한 더위 말고는 일말의 것도 없었다. 정점에서 더위 아닌 모든 것들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관람차에 오르면서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 모두. 어디어디부터 어디어디까지의 것 모두.
  찌고 숨 막히는 듯하다가 더위는 고스란히 살을 에는 통증이 되었다. 어떤 느낌도 여자에게 이토록 명징했던 적이 없었다. 혹독했으며 처음이며 마지막일 것 같았다. 정점을 지나면 다시는 겪지 못할. (p.165, 《하이눈, August》)

 

이응은 어둠 속에 서서 작은 글씨를 오래오래 읽었다.
동네는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이유도 없이 언제까지나 오글거렸다.
바람이 불고 추웠다. 몹시 추웠다. 세상에 분명한 건 그것뿐이었다.(p.70,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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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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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쳐. 어디까지나 이야기는 소설 속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호수-다른 사람>를 읽으며 화자인 진영에게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점점 조여 오는 긴장감과 마치 몸 전체를 휘감듯 엄습해오는 불안감, 소설은 어쩐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화자의 친구 민영은 호숫가에서 쓰러져 발견되었고 현재 의식불명 상태다. 그리고 민영의 남자 친구는 호수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며 진영에게 그곳으로 와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영은 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하고 어딘가 의심스럽다. 남들의 눈에 그는 민영을 잘 챙기는 멋진 남자친구일지 모르겠으나 진영에게는 그렇게 안 보였던 것, 주위 사람은 민영을 부러워했지만 진영은 정작 민영이 별로 웃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사건 전날, 민영은 무섭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혹은 누가) 무서웠던 것일까. 이것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민영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는 가운데 진영은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는 오로지 화자의 시선과 생각으로 서술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어쩌면 독자는 편견에 빠지거나, 괜한 생각으로 상대를 오해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화자에게 도망치라고,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라고 하고 싶다. 그가 범인이 아닐지라도 그가 보여준 행동이나 질문의 내용만 봐도 그는 여전히 위험하게 느껴지고 전혀 신뢰감이 가지 않는 남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을 자아내고 불편함 혹은 기이함,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그만두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제대로 된 판단보다는 그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목표 삼아 나아갈 뿐이다. 

 


  <니꼴라 유치원-귀한 사람>을 들여다보자. 니꼴라 유치원은 졸업하면 출세한다는 소문이 난 곳이다. 지난 이 년 동안 화자의 아들은 선착순 정원 모집에서 모두 떨어졌기에 화자에게는 그곳의 입학이 너무 간절하기만 하다. 그리고 드디어 입학 서류에 서명하게 되면서 화자는 아들은 물론 자신까지 귀한 사람이 되리라 행복해하며 이야기는 마무리 짓는다. 자신의 아이에게만큼은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 때문에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린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원장에 대한 괴소문, 유치원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들, 그리고 원장실 문을 쾅쾅 두드리고 나타난 여자 등등. 분명 미심쩍은 요소들이 계속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아이가 니꼴라 유치원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당신을 닮은 노래>에서 화자의 엄마는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가곡 강습을 받는 중이다. 어느새 엄마에게 노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게 되었고, 강사의 칭찬과 지적도 엄마를 좌우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백화점 문이 닫혔고 수업은 휴강되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무조건 강사를 만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를 원한다. 오늘은 목소리가 잘 나오는 날이라 마치 그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누군가의 칭찬이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가까워지지 않는 한 무엇이든 좀처럼 멈추기 어려운 법이니까.

 


  그래서 <방>도 무척 안타까웠다. 수연과 재인은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폭발한 도시를 정비하는 일에 지원한다. 건강은 나빠지고 몸에 이상이 왔지만 그들은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대신 돈을 모으기 위해 폐허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좀 더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조금만 더 버티고자 했던 일. 그러나 결말은 바람과 달리 흐른다.

 

 


나머지 단편들은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기괴한 상황 속에서 ‘관계’라는 점이 더욱 부각된 것 같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상대방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면 하는가. 이것은 우리들도 늘 고민하는 문제다.
형이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봐 불안한 기채 <눈사람>.
굴 말리크와 타니 칸, 그리고 그와 그녀. 두 연인의 이야기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예연의 하숙집, 누군가 한 명이 이 집에서 나가줘야 한다고 했을 때 희진이 아닌 자신을 선택해주길 바라는 수지 <벌레들>.

 

물건들이 버려지는 이유는 더는 쓸모가 없어서다. 아니면 해가 되거나.
나는 형이 나를 버리고 떠날까봐 불안했다. 내가 조금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면 형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한심하고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p.202, <눈사람>중에서)

 

나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늘 신경이 쓰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이 빈약하고 허름한 트랙에서조차 떨어져나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불안은 순식간에 번지는 곰팡이와 같아서 쉽게 눈에 띄었고, 그러면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p.88, <괜찮은 사람>중에서)

 


  그래서 <괜찮은 사람>에서의 나(민주)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서 몸이 안 좋았음에도 그 집에 가보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면 그는 어떤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계단에서 그가 그녀를 밀친 것은 분명 정전으로 인해 앞이 안 보인 실수였기에 납득이 된다. 그렇다고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웃어넘기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것만으로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태도 등 여러 가지를 보았을 때 그를 괜찮은 사람으로 보아도 될까. 그런데 이건 또 묘하게 어딘가 껄끄럽다는 거다. 조수석 서랍의 알 수없는 상자들, 창문과 시트 사이의 골판지, 고장 난 내비게이션, 폐업한 지 오래된 도축장에서 고기 썩는 냄새를 풍기며 수레를 끌고 다가오는 남자. 이런 것들에 대해 화자는 남자에게 질문하지만 남자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답을 들었어도 명쾌해지는 것은 없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엉덩이는 아프고, 날씨는 흐리고, 도축장 때문에 좋지 않은 냄새에 화자는 잔뜩 예민해져 있다. 거기에 하나 마나 한 남자의 대답은 여자의 신경을 더욱 긁는다. 그쯤에서 그만 돌아갔으면 좋았겠지만, 여자는 끝까지 그 집에 가보겠다 말한다. 이상한 일의 연속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찾아오지만 화자는 멈추지 않는다. 뭔가 석연치 않은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어쩐지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현실에서의 우리도 가끔은 멈추기보다 끝까지 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게 최선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를 아무리 지켜보아도 답을 구할 수 없었듯,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늘 나의 최선이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만으로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p.106, <괜찮은 사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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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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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은 대개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방식에 근거해 타인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춰 사람을 가려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러한 분류와 경계는 잠시 내려놓아도 좋으리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유고 모음집이다. 그의 삶은 크게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그리고 감옥 이후 20년으로 나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같이 징역 살았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동창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20년간 옥살이를 일명 ‘나의 대학 시절’이라 일컬었다. 출소 후,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결국 그에게는 세 개의 기간 하나하나가 모두 ‘대학’이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옥에서의 그렇게 긴 세월이라니, 누구보다도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힘들고 고통스럽던 징역살이를 토로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의식과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이 겪었던 사회의 실상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꽤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글은 잘 몰라도 무식이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노인의 한마디.
집을 그릴 때 집을 짓는 순서처럼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한 옛날 목수.
그리고 교과서가 아닌 당사자들의 삶에서 바로 듣는 생생한 역사의 순간 등등.
  신영복 선생은 수많은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그 죄의 질과 양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충격과 경이의 연속이었노라 언급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겸손한 마음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시선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발견할 줄 아는, 자신의 언어는 뒤로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교감할 줄 아는 분이셨던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처음 만났어도 잠깐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재소자들을 만나면 편견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본인들의 넘치는 자신감과 달리, 죄가 있든 없든 그냥 눈앞의 사람조차도 제대로 바라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는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37)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사실보다는 진실에 주목하고 그 사람과 그 처지를 함께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방금 이야기한 '관계'의 문제입니다. 대상을 대상으로 저만치 떼어 놓고 인식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부정확하고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p.38)


  

이 책은 그 외에도 자본주의의 환상과 열등의식, 존재론적 패러다임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관계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가치에 대한 이야기,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단조로웠던 고등학교 시절이라든가 붓글씨와의 인연처럼 살아생전의 추억들, 손글씨를 직접 볼 수 있는 미발표 유고까지 실려 있어 그의 삶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담백하고도 소탈한 문체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시냇물’이라는 그 동요처럼 모두가 시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다 함께 단단히 뿌리내리고 밑동을 키워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해본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은 마디나 옹이로 먼저 밑둥을 튼튼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일상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새 학교를 시작하든, 묵은 학원을 다시 시작하든, 새직장을 시작하든, 어제의 일터에 오늘 다시 불을 지피든,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입니다.(p.203, <죽순의 시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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