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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계단 -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6년 12월
평점 :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예전에는 여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요즘은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때로는 아무 소용없다고 느껴지거나, 여러 가지를 포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다시 처음의 물음표로 되돌아오기 일쑤였고 한동안은 답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 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 그들이 구한 답이 곧 나의 답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절대적인 답, 하나의 답이란 건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계속 답을 찾는 이유는 이제는 마음의 중심에 명확한 무언가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고단한 삶의 순간순간을 종종 ‘그냥’ 살아가고 ‘그냥’ 버티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를 ‘그냥’이라는 단어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저 뒤로 물러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열한 계단』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불편한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세계는 해체되고 더 높은 단계에서 개인의 세계가 재구성될 것이라고.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각 시기에 읽었던 책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 계단을 올라가는 토대가 되어줌과 동시에 저자를 성장시키고 지혜가 되어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계단은 문학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우연히 읽게 되는데 이 우연한 만남이 저자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한다. 문학은 그에게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것. 이후 저자는 기독교와 불교, 철학과 과학,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거쳐 ‘나’ 그리고 초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과 사색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내면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전들은 어찌 보면 어렵고 섣불리 읽기 힘든 책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나가는데 특히 책 속의 인물과 직접 질의응답하는 구성이 무척 흥미로웠다.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도와 대화하는가 하면, 과학에서는 우주를 불러 철학적 고찰을 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위한 안내서인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파드마 삼바바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런 대화 형식은 글의 분위기를 좀 더 친근하게 만들고 딱딱한 내용도 한결 부드럽게 풀어내는 기능을 했다. 덕분에 독자는 본문의 내용에 한결 편하게 다가설 수 있음이다.
각 계단마다 크게 다루고 있는 주제가 있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와 더불어 ‘현재, 지금, 나 자신’이란 요소가 이곳저곳에서 자주 등장함을 발견해본다. 붓다에 관한 책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내면’에 주목하게 했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우리에게 구체적 현실로 돌아오라 제안한다. 아르헨티나와 남아메리카 민중의 삶을 노래했던 메르세데스 소사는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일 줄 알고 묵묵히 걸어가야 함을 일러준다.
소사 : 네 맞아요. 당신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걸 잘 알아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이 미운 거죠. 그래서 더 세속적인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거고요.
하지만 당신은 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가는 중이에요. 그렇지만 반쪽짜리 삶이었지요. 굳이 이상을 저 멀리 내팽개칠 필요는 없었어요. 지금처럼 현실을 묵묵히 걸어가세요. 동시에 언젠가 필요할 때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이상도 함께 품고 가세요. 아무도 당신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p.315)
《베다》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우파니샤드》는 또 어떠한가. 궁극적인 지향점 범아일여 사상에서 당신이 바로 그것이라며 우리가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었음을 말해준다.
즉 범아일여란 우주의 원리와 개인의 본질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우파니샤드》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범아일여의 깨달음이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는 이렇게 기록한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
자신이 바로 그것, 즉 아트만이고 또한 브라흐만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나는 세상에 던져진 그저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우주의 근원과 이어진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자아와 우주 그리고 이들의 상호관계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철학서다. (p.378)
이와 같은 글을 읽고 누군가는 큰 위로와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내용을 한 번 읽어봤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자신의 것으로 흡수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인생에 대한 막연함이나 두려움, 불안감도 깨끗하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보다 그것의 무게를 덜어 준다면 그 나름대로 괜찮은 것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부디 각자 저마다의 계단을 한 단계, 한 단계 잘 오를 수 있기를. 그리고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다.
파드마 삼바바 : 허망해하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해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만들지 마라.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를 심판하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