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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평점 :
독일 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쟁, 나치, 히틀러가 아닐까 싶다. 전쟁은 특히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남긴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도.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할지라도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중심에 있던 독일은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이 책은 저자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도이치 제국의 성립부터 제국 해체까지를 포함해 도이치 제국의 80년 역사를 요약한 책이다. 우선 도이치 제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열악했다.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영국, 남쪽과 남동쪽에는 당시 아직 강대국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국가, 동쪽에는 강력한 러시아 제국으로 그야말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형태였다. 따라서 80년의 역사 동안 얼마나 많은 대립과 화해, 동맹, 긴장 상태, 협상이 오고 갔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도이치 제국은 대對덴마크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전쟁 제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으며, 프로이센이 도이칠란트의 지배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인물이었다. 총리가 되고 나서 보수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지만 정권은 그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의 건설과 동시에 창설된 두 개의 새로운 정당, 중앙당과 사회민주당과의 싸움은 그를 힘들게 했다. 게다가 비스마르크는 통치 기간에 경제 침체기라는 불운도 감당해야 했다.
외교적으로는, 사이가 안 좋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있고, 그 사이에서 난감해하는 도이치를 상상하면 될 것 같다. 한때는 세 나라가 [도이치-오스트리아-러시아]의 삼제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이 동맹은 오래가지 못한다. 비스마르크는 양쪽과 각각 친밀하게 지내보려 하지만 어쨌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갈등을 겪고, 이것은 훗날 1차 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도이치 또한 강대국 프랑스와의 갈등이 있었는데, 비스마르크가 물러난 다음 황제 시대에는 영국과의 갈등도 불러오게 된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다. 책에서는 일목요연하게 전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1차 대전은 그 시작점이 된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어떠한 결실도 없으면서 피로만 쌓이는 소모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어도 질 수 없기에,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면 승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계속 싸워야 했다는 점. 하지만 그 대가로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죽는 상황이기에 전쟁은 역시 끔찍할 따름이다.
도이칠란트는 내부적으로도 약해져 있었다. 해병 폭동이 일어났고, 이것은 제국 대부분 지역으로 혁명의 형태로 번져갔으며 황제 퇴위를 요구했다. 황제는 네덜란드로 도망쳤고 막스 왕자는 통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도이치에는 군주제 대신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1차 대전 후, 도이치는 엄청난 전쟁배상금 지불 때문에 힘들어하고,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그대로 두거나 의도적인 디플레이션 정책을 통해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국가적으로는 전쟁배상금을 떨쳐냈다지만, 정작 가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학살과 독재자로 악명 높은 히틀러가 처음에 어떻게 독일에서 급부상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한 부분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차 대전 때 자원병으로 도이치 군대에 입대한 인물이다. 전쟁이 끝나는 시점에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히틀러의 민족주의-사회주의[=나치] 정당은 점차 2정당에서 1정당으로, 히틀러는 마침내 총리에 되기에 이른다. 저자는 민족주의-사회주의 정당이 강력하게 된 이유로 세 가지(가난, 다시 깨어난 민족주의, 히틀러라는 인물이 힘)를 들었는데 국민들은 가난을 해결해줄 지도자가 필요했고, 히틀러는 자신이 가난을 해결하겠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당시에만 해도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전후戰後 여러 해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이 지도자를 갈구했다. 가혹하면서도 영리하고, 질서를 만들어내고 민족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당 체제를 종결시키면서 스스로 단독 지배권을 차지하고 그것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인물을. 그것도 특히 외교적이고도 전투적인 사람이어야 했다. 중략 그리고 히틀러는 이런 이미지에 잘 들어맞는 듯이 보였다. (...중략...) 그는 무시무시한 웅변 능력, 잔인함, 가혹함, 단호함,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능력, 어려운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탈출구를 찾아내는 재능 등을 지녔다. (p.211)
히틀러는 제국 총리로 임명되고, 짧은 시간 안에 전권을 장악, '획일화'[=관제화] 과정을 추진한다. 그의 통치수단은 선전과 테러였다. 히틀러 시대 동안에는 완전고용, 군대 재무장, 저항적인 외교정책 승리와 같은 긍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과 그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도이치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 후 도이치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의 점령 아래에 놓이게 되며 동쪽과 서쪽으로 분리, 1961년 베를린 장벽에 가로막힌다.
1990년 10월 3일.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날이다. 그러나 저자는 통일은 아직 전혀 완성되지 않았다 말한다. 물론 하나로 통일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한 번에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은 저자가 죽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만약 저자가 살아있고, 지금의 독일을 바라본다면, 그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국가가 존재하고 역사가 흐르는 한 크고 작은 갈등은 늘 존재하는 만큼, 어쩌면 저자는 21세기 ‘도이치 문제’를 새롭게 제시하며 또 한 번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