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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으로 난 길 - 동아시아 쪽빛을 찾아 떠난 예술 기행
신상웅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계절이 바뀌자 하늘이 높아졌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하늘은 점점 더 깊은 색으로 짙어지는 듯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하늘을 보면 자꾸 욕심이 난다.
하얀 천을 가지고 그대로 물들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종종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제목과 표지가 더욱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쪽빛으로 난 길』. 이 책은 쪽빛의 푸른색과 전통 화포를 찾아 떠나는 어느 염색가의 여행기다.

흰 무명에 처음 푸른색이 스며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색도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올과 올 사이를 밀물처럼 파고들던 색의 움직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올과 색소의 결합은 마치 흰색과 푸른색의 강렬한 소용돌이처럼 짜릿했다. (p.6)
글쓴이는 푸른색에서 울림 혹은 떨림, 짜릿함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쪽이라는 식물에서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흰 꽃무늬 화포. 화포는 쉽게 말해 물을 들이지 않는 부분이라 보면 된다.
우선 녹인 밀랍 용액으로 천에 무늬를 그린 뒤, 푸른색으로 물들인다.
물들이는 과정을 반복 한 다음 끓는 물에 천을 넣으면 밀랍이 녹아내린다.
그럼 푸른색 위에 하얀 꽃송이가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화포다.
글쓴이는 구이저우 성 오지의 먀오족 마을에서 진하게 쪽물을 들인 푸른색 천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는 문헌을 읽고 바사 마을을 찾는다.
거기서 바사 민속관의 주인 '조강'을 만나게 되고, 조강의 고향인 샤오황으로 가 화포와
마주하게 된다.

흐름이 느린 물길이 마을 가운데를 지났다. 물길 옆으로 좁고 긴 골목이 있었고 골목이
끝나는 지점인 여기도 푸른 천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푸른색이 이토록 흔한 것이었다니
반갑기도 했지만 낯선 것도 사실이었다. 중략 마을 전체가 푸른색의 계절이었다.
나무통 속에서는 쪽물이 익어갔다. (p.42)
그리고 펑황고성에서는 화포를 물들이는 장인 유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먀오족이 밀랍으로 화포 무늬를 그렸다면, 유 노인은 밀랍 대신 석회와 콩가루를 섞은
방염제로 무늬를 만들었다. 나중에는 몽족의 화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먀오족이 화포를 녹인 밀랍을 찍어 그리는 방식이라면 몽족은 규격화된 나무틀을 이용해
동일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전에서는 깃발처럼 나부끼는 푸른 화포를 만나게 된다.
지붕보다 높은 장대에 걸린 희고 푸른 화포가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고 하니 그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잠시나마 저 사이를 지나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어쩐지 손끝으로 푸른색이 잡힐 것만 같은 기분이다.
글쓴이의 발걸음은 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일본으로 이어진다.
책 속 중간중간 사진도 좋았지만 글쓴이의 문장은 더 좋았던 책.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색이 주는 울림과 무늬가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개구리 장식에 관한 의미라든가 축제, 설을 앞둔 시장의 풍경, 최부의 『표해록』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라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푸른색과 화포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으니, 앞으로는 쪽빛을 만나면 기분 좋은 설렘으로 두근거리지 않을까 싶다.
유 노인이 화포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무슨 일일까 따라 나가는 나를 돌아보고는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고는 하시는 말씀이 화포는 멀리서 봐야 좋단다.
나는 전시장 입구에 서고 그는 마당 가운데 선다. 두 손을 들어 화포를 펼친다.
노인은 화포 뒤로 사라지고 나는 푸르고 흰 빛에 눈이 시리다. 푸른 쪽빛은 햇살 아래
가장 선명하고 푸르다는 것을 나도 경험으로 안다. 저렇게 색과 공기와 햇볕이 만날 때
색은 두께를 가진다.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