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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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0일,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법한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끔찍한 사건이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총격전이 벌어진 것. 게다가 대학살의 범인은 바로 그 학교를 다니고 있던 두 소년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도대체 그들은 왜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가서 또래 친구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은 살인자들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 언론인과 조사관들의 공식문서, 생존자들의 기억과 대화를 통해 당시 그날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이 책에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료 출처를 이야기하며 ‘멋대로 지어낸 문장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실제의 대화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해 그 인물의 말투와 특성을 살려냄으로써 그날의 충격적인 순간순간을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콜럼바인 사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보고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
두 아이가 살상극을 준비해온 것은 적어도 1년 반 전부터였다. 에릭은 틈틈이 폭탄을 만들고 총기를 마련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계획의 꼼꼼함에 고개를 내저으며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과연 십 대 남자아이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의 계획은 단순히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에 가 보이는 대로 모두를 쏜다, 정도가 아니었다. 에릭에게는 각 단계별로 이루어진 폭탄 폭발 계획이 있었는데 우선 집 근처 공원에 미끼용 폭탄을 설치해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킬 생각이었다. 에릭은 특히 이 단계를 망설이고 있는 딜런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유도 작업으로 꼭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딜런도 완전히 전념할 것이다(64p)'라는 그의 생각 자체가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려 어쩐지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에릭의 치밀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관찰을 통해 학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각과 장소는 11시 17분 학생식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학생식당에도 폭탄을 두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총격을 위한 그들의 공격 시점이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살상과 피해를 위해서 고른 시간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그의 무자비한 사고방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러나 다행히 폭탄은 불발되어 그들의 계획은 차질을 빚는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장소로 가 보이는 사람을 다 쏘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들은 이들이 총을 쏘는 모습을 보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거나 선배들이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해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딜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에릭은 계단 위에서 총을 쏘고 깔깔 웃고 파이프폭탄을 던지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p.91)’
  학생식당 안과 밖, 날개건물 2층, 3번 과학실, 도서관. 에릭과 딜런의 총격에 학교는 빠른 속도로 대혼란에 빠졌고 학생들은 공포에 떨었다. 경찰과 방송국 기자들, 특수기동대와 FBI, 소방관, 의료대원들이 사건 현장으로 몰려들었지만 총격자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언론매체들은 추측 보도를 했고 당연히 그러한 보도들은 사건의 혼란만 가중시킬 따름이었다. 공격 개시 49분 후인 12시 8분, 두 아이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발견된 것은 특수기동대가 건물 수색을 한지 세 시간 후의 일이었다.
  경찰과 형사들은 에릭과 딜런의 집에서 여러 증거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FBI 퓨질리어 부서장은 에릭과 딜런이 남긴 테이프와 일지를 통해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살해 동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개의 기자들, 목격자들, 대중들은 에릭과 딜런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거나, 아니면 운동선수들의 괴롭힘이 있어 보복을 위한 행위로 무차별적인 총격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모르고 하늘 말이었고 총격자들이 사회 부적응자일 거라는 생각 자체는 엄청난 편견에 해당했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머리도 좋았다. 수학도 잘했고 기기도 잘 다뤘으며 집안 형편도 좋았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종종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고는 했다. 단지 그 둘의 성향이 다를 뿐이었는데 에릭은 침착하고 빈틈없는 성격에 말을 잘하는 데다가 남이 원하는 대로 반응할 줄 알아서 곤란한 상황을 쉽게 빠져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하길 원하는 리더 유형이었고 친구도 많았으며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반면 딜런은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불같아 가끔 화를 벌컥 냈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면 그것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와 달리 에릭은 인류 멸종의 공상에 빠져있었고, 웹사이트와 일지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인간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보며 자신을 우월화했는데 콜럼바인 사태는 인류 멸종은 불가능해도 고등학교 하나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다는 일종의 실행이자 자기우월화의 증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에릭은 타인의 고통받는 모습을 즐겼는데 퓨질리어는 분석을 통해 그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게 된다. 딜런의 경우 많이 외로워했고 우울해했으며 심한 자살 충동을 빠지고는 했다. 그런 딜런은 에릭에게 설득당하고 조종당해 1년 반 동안 서서히 살상극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책은 총격자들이 죽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되고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학교는 살육의 난장판이 되었고 총에 맞은 학생들은 죽었거나 혹은 생사를 오가는 중이다. 생존자들 역시 여전히 공포와 고통, 혼란과 슬픔의 연장선에 있었다. 따라서 책의 후반부는 콜럼바인 사태 이후의 그들의 모습 또한 흐름 있게 잘 담아냈는데 더불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 조사 과정 역시 많은 고난으로 순탄치 않았음을 책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10년에 걸친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는 아마도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그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들은 소문이나 추측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생존자들은 저마다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렀어도 사람들의 삶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사건은 쉽게 아물지 않는 법이다. 앞으로는 부디 콜럼바인 사태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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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 곤 이야기 2
가게야마 나오미 글.그림, 김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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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가게야마 나오미.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시바견 곤과 테쓰!
곤이 이해심 많고 의젓한 형이라면, 아직 어린 테쓰는 살짝 거친 성격에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개라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번 책은 곤과 테쓰가 함께 하는 일상을 더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4컷 만화 외에도 사건수첩을 들여다보듯 ‘모월 모일’의 기록 형식이라든가 곤과 테쓰와 함께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짧은 글 에세이가 있어 구성면에서 다양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2권 나름의 개성, 정성으로 다가와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페이지 하단, 숫자를 표시하는 부분에는 개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금씩 그림이 달라져 종이책을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그림이 된다. 그래서 개가 멍멍 짖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고나 할까.
참고로 1권의 움직이는 그림은 곤이 달리는 모습이다.

 

 
그럴 때가 있다. 바쁘고 급하면 누구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때.
이 책의 작가 역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빨래를 널어놨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정신없이 빨래를 걷으며 이 순간 집에 있는 개들이 빨래 정도는 좀 걷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개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반가워하며 쪼르르 따라다니기만 할 뿐.

 


부부는 난폭하기만 했던 테쓰가 살짝 몸을 기대오면 기쁜 마음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리가 저려도 꾹 참는다. 여행을 떠나도 집에 있는 반려견을 떠올리며 곤과 테쓰의 선물을 사고, 다른 일은 미뤄도 곤과 테쓰에 관련된 일이라면 우선으로 해결한다. 
물론 곤과 테쓰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말썽도 부리지만 가게야마 부부는 곤과 테쓰를 애정으로 대한다.
콧등으로 방충망을 열고, 작가가 욕실에 있으면 들어오고 싶은 듯 앞발로 문을 득득 긁어대는 테쓰.
자꾸만 맡게 되는 곤의 고소한 발바닥 냄새.
이 책은 귀엽고 쓰담쓰담 하고 싶어지는 그림들이 한가득이다.
1권에 이어 2권 역시 치명적인 귀여움과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주는 『시바견 곤 이야기』.
앞으로도 곤과 테쓰가 건강하게 잘 지내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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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견 곤 이야기 1
가게야마 나오미 글.그림, 김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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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에는 다양한 반려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 그럼에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을 꼽자면 개나 고양이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역시 작가가 키우고 있는 시바견 두 마리, 곤과 테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대부분 4컷 만화 형식의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어 보기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더운 날 얼음을 주었더니 리드미컬하게 할짝할짝 핥는 모습,
잘 마른 방석 위에는 금방 앉지만 잘 마른 빨래에는 앉을까 말까 살짝 망설이는 모습,
신문 위에 앉았을 때, 산책했을 때, 꼬리를 흔들거나 ‘손!’하고 외쳤을 때 앞발을 내미는 모습 등등.
어쩜 이리도 그 순간순간 곤의 행동과 표정을 잘 그려냈는지,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고 작가의 멘트도 재미있어 보는 내내 힐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곤은 참 똑똑한 것 같다.
전기장판 스위치 켜는 소리를 기억하는데다가 스위치를 킨 후 바로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 개집에서 나오는 건 시간이 조금 지나서라고.
게다가 전기장판을 이용할 때 따뜻해지기 위해 좀 더 몸을 납작하게 밀착시킨 후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어쩐지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면, 가끔은 뻔뻔할 때도 있었는데 야단맞을 상황에서는 안 들리는 척하기, 심지어 자신이 방귀를 뀌어놓고는 자기는 모르쇠 주인 얼굴을 쳐다본다고 하니 곤의 이러한 모습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곤이 입가를 불룩거리며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으면 무심코 양손으로 늘이고 싶어진다고 한다.
쫑긋한 귀와 살짝 찢어진 눈, 동글동글한 뺨과 북슬북슬한 엉덩이 털을 가진 시바견.
이 책 덕분에 시바견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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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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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콱 막혀왔다. 소설 속 주인공 김지영 씨가 살아온 나날들이 왠지 남일 같지 않아서.
그녀에게는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책 제목이 말해주듯 그녀는 82년생이다. 즉, 김지영 씨는 아들을 중시하는 시대에 태어났는데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녀의 할머니가 손자를 얼마나 아꼈을지, 그래서 김지영 씨와 그녀의 언니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리라.
  아니나 다를까 없는 살림에도 멀쩡한 것, 좋은 것은 항상 막내 차지였다. 언니와 김지영 씨는 누나라는 이유로 늘 막내에게 양보해야 했는데 누가 봐도 그건 막내라서가 아닌, ‘아들’이기 때문에 하는 차별이었다. 만약 그 집에 장남이 있고 막내가 여자아이였어도 과연 막내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오히려 이번에는 연장자를 챙겨야 한다며 오빠, 장남에게 양보하라는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우선시 되는 건 ‘아들’이기 때문이다.
 

 

  남녀 차별이 유년시절에만 있는 일시적 현상 같은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소설 속 김지영 씨도 그렇고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수많은 김지영 씨도 덜 힘들고 덜 피곤하고 덜 좌절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녀 차별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으며, 일단 한번 생기면 잘 사라지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 이 소설 역시 김지영 씨의 유년기를 넘어 학창시절, 취업, 결혼,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던 여러 성차별적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 작가는 각종 통계수치와 기사를 바탕으로 김지영 씨의 이야기에 보다 확실한 구체성과 사실성을 불어넣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말 자체가 남자들이 쉽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쟁 사회에서는 누구나가 힘들고 어려운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성차별적인 부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고 인식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삶 곳곳에서는 남녀차별이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회식자리에서 달라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외모평가 하는 것도 그렇다. 업무배정과 임금격차는 여전하며 살림과 육아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여자가 해야 한다고 인식되는 가운데 남자는 ‘돕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큰일을 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 좀 크면 잠깐씩 도우미도 부르고, 어린이집도 보내자. 너는 그동안 공부도 하고, 다른 일도 알아보고 그래.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많이 도울게."
정대현 씨는 진심이었고, 그런 남편의 뜻을 잘 알면서도 김지영 씨는 불쑥 화가 났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집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p.143~144)


  이쯤에서 누군가는 안 그런 회사도 있고 안 그런 남자도 있다며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안 그런 사람 보다 그런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성차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머리로만 알뿐 실질적으로는 늘 하던 대로 문제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거다.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p.148~149)

 

  김지영 씨가 출산 후 아기 돌보랴 집안일 하랴 손목이 아파서 집 앞 정형외과를 갔는데 그곳의 할아버지 의사는 그녀에게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드냐며 타박을 한다. 뭘 모르는 소리다. 세탁기가 있고 청소기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집안일이라는 건 누군가의 노동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따라서 직접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해봤다면 저런 소리는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예전에 방망이를 썼든, 불을 때서 일을 했든 그마저도 의사 본인은 전혀 하지 않았을 일 아닌가.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결혼 후에는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여전히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남자들. 그들은 집안이 깔끔하고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청나게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족을 위한 수고는 엄연히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부분이 어디 오롯하게 남자로 인한, 남자만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같은 여성이지만 어느 정도는 어머니들의 교육방식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자신도 여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 그렇게나 차별을 받았음에도 결국에는 그들의 아들에게 똑같이 집안일이든 뭐든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시는 분들이 많다. 자식 고생시키기 싫어서, 그리고 집안일이 서툴러 그냥 자신이 하고 말지,라는 이유를 대시지만 정작 딸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차별을 그대로 대물림하니 이 또한 남녀 차별이 되풀이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어찌 되었든 오늘도 현실의 김지영 씨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잘 버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가끔은 부당한 대우에 속상하기도 하고 마땅히 해결 방법이 없어 많이 답답할 그녀들. 대신 뭔가 해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녀들에게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는 식의 말은 하지 말도록 하자. 그런 말은 스스로 자신에게 다독이면 모를까 충분히 답답하고 힘든 가운데 남이 그런 식으로 하는 말은 마치 뭘 그리 유난스럽게 구느냐,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들려 오히려 당사자의 마음을 후벼 파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격려와 지지, 이해와 배려가 좀 더 필요하며 그녀들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애쓰고 있고 노력하고 있는,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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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가 예뻐지는 단백질 듬뿍 다이어트 요리 - 몸매가 예뻐진다! 든든하다! 요요가 없다! 더 라이트 건강 요리책 시리즈
김지영(니모) 지음, 더 라이트 편집부 영양분석 / 레시피팩토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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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계속 반복하며 평생의 숙제로 삼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 이름하여 다이어트!!
사실 다이어트는 방법이 간단하다. 적게 먹고 운동하면 된다.
그러나 누가 이것을 모르겠는가. 문제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평소 먹을 것에 그리 큰 관심이 없거나 운동이 취미라면 모를까 대개의 사람은 배부르게 먹기를 원하며 운동은 귀찮고 하기 싫다고 여긴다. 게다가 세상에 맛있는 음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하필 이런 것들은 칼로리마저 엄청 높아 다이어터들에게는 늘 참기 힘든 유혹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 것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다. 다이어트는 늘 내일부터라는 말과 함께.
그만큼 다이어트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쉽고 건강한 다이어트,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before diet> 에서는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초보 다이어터를 위한 정보들이 나와 있다.
스스로 다이어트에 대한 이론은 충분하다고 느낀다면, 바로 단백질 레시피가 있는 페이지로 건너뛰어도 상관없을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잠깐의 시간을 내어 한 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다이어트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고(그렇다면 책을 읽으며 잘못된 부분은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이미 알고 있어도 다시 한 번 읽으며 다이어트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이 『몸매가 예뻐지는 단백질 듬뿍 다이어트 요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단백질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영양소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이어트를 위해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섭취 비율을 줄이되 이왕이면 양질의 탄수화물과 지방을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렇다. 다이어트라고 해서 무조건 안 먹고 참고 극단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참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요요도 막고 면역력도 챙길 수 있다.
예를 들면 탄수화물은 흰쌀밥이나 밀가루 식품보다는 당 지수(Glycogen Index, GI지수)가 낮은 통밀빵, 현미, 보리, 통곡물 등을 섭취하면 좋다. 저자는 밖에서 먹는 끼니에 대해 ‘칼로리가 높을지라도 양질의 단백질이 포함된 메뉴를 선택해야 하며, 나트륨 함량이 많은 국물 요리나 찌개 메뉴는 피하는 게 상책(p.20)'이라고 조언한다.
끼니 외에 먹을 간식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도록 하자.

 

아침, 점심, 저녁 각 평균 400kcal 이하의 식사를 하고 있다면 간식은 200kcal가 넘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 당류는 15g 이하, 불포화지방산, 식이섬유, 단백질 등이 고루 포함된 것을 고르면 좋다. 특히 당 함량이 높은 것은 칼로리가 낮더라도 피해야 한다. 갑자기 혈당이 올라가면 식욕이 왕성해지기 때문. 간식을 선택할 때는 무가당 두유 1개나 아몬드(또는 캐슈너트) 10개,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 통곡물 함량이 높은 빵, 떠먹는 플레인 요구르트 등을 선택하도록 한다. (p.23)

 

 


<닭가슴살>
본격적으로 단백질 다이어트 요리 레시피가 시작되는데 첫타자는 닭가슴살을 이용한 요리들이다.
고단백 완전식품 닭가슴살. 닭가슴살 속 지방 함유량은 겨우 1% 남짓이라고 한다.
그런데 닭가슴살이라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할 게 아니었다. 다이어트를 위한다면 꼭 염분을 따져볼 것!!
닭가슴살 제품들을 선택할 때는 염분 수치가 100g당 120mg 이하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더운 여름에는 ‘닭가슴살 파프리카냉채’나 ‘닭가슴살 미역샐러드’, ‘닭가슴살 사과 깻잎쌈’이 딱일 것 같다. 그리고 평소 분식류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이라면, ‘닭가슴살소시지 떡볶음’을 추천해본다. 그럼에도 이 요리는 381kcal밖에 되지 않으니 칼로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요리들은 하나같이 참 기특하다. 단백질 재료와 채소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점, 그리고 염분을 줄이고 양념을 좀 더 가볍게 함으로써 칼로리는 칼로리대로 줄이고, 맛은 맛대로 챙기니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이어트 요리가 맛없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했음을 제대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달걀>
달걀말이, 볶음밥 외에도 곡물 식빵과 함께 토스트나 샌드위치로 먹어도 좋고 책에 나온 대로 알록달록 채소를 채썰어 ‘또띠아 오코노미야키’를 해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특히 달걀을 풀어서 통밀가루를 넣어 만든 ‘달걀지단 파스타’는 아이디어가 너무나 신선했다. 밀가루가 땡길 때 대체할 수 있는 면 요리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요리는 칼로리도 278kcal로 300이 채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착한 단백질 요리로 인정한다.

 


 


<콩&두부>
밭에서 나는 쇠고기. 콩을 말할 때 한번쯤 들어봤을 수식어다.
책에는 다양한 콩 종류에 대해 각각의 특징 역시 설명하고 있었는데 워낙 좋은 정보라 따로 요약해봤다. 
과잉 수분으로 지방이 쉽게 축적되는 체질을 갖고 있다면 삶은 물을, 병아리콩은 콜레스테롤 저하에 가장 큰 효과가 알려져 있으며, 흰 강낭콩은 탄수화물이 체내로 흡수되는 속도를 낮추는 역할을 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렌틸콩은 고단백 저열량에다가 식이섬유 함량 또한 많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대두는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등의 예방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콩은 반찬이나 밥에 섞어 먹는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의 레시피를 보니 그 활용도에 무척 놀랐다. 샐러드나 스튜, 수프는 물론 밥 대신 두부를 넣어 ‘두부 나물비빔볼’을 해먹어도 좋다는 사실! 하나같이 든든한 한 끼로 충분한 요리들이었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서 더욱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생선살>
생선 역시 좋은 단백질 급원이고 그 외에도 좋은 영양소들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생선의 비린맛과 비린내에 민감한 편이라 평소 잘 먹지 않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그런데 대구는 비린내가 없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대구살 샌드위치’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참치, 어묵, 황태를 이용한 요리들도 나와 있으니 먹을 수 있는 것들로 하나둘 만들어봐야겠다.

 


 


<Plus recipe>에는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하나같이 다 맛있어 보이는데 칼로리는 낮은 편에 속해서 깜짝 놀랐다.
이처럼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스무디, 컵샐러드, 단백질 재료를 활용한 빵과 쿠키 같은 간식을 즐길 수 있다니 나름 맛있는 걸 챙겨 먹으면서도 충분히 다이어트가 가능하구나 싶어 반가운 기분이다. 또한 다이어트가 마냥 힘들 것이란 부담감도 살짝 줄어들고 말이다.
 


 


<After diet>
당연한 얘기겠지만, 식이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그게 끝이 아니다.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홈트 제품 구입부터 운동 계획까지 여러 가지 꿀팁들을 제공한다.
이 책은 다이어트를 위한 레시피도 레시피지만 그 외에도 그녀의 마음가짐 또한 배워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개 다이어트를 하면 그 기간 동안에는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받기 마련인데 그녀는 치팅데이라든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요법’을 통해 스스로에게 심리적 보상을 해주고 자신을 충분히 다독이고 있었다. 식이도 운동도 꾸준히 하는 게 참 어려운데 그녀의 마음가짐을 읽어 보니 덩달아 기운이 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
이번에는 단백질 듬뿍 다이어트 요리로 요요 없는 다이어트를 꼭 성공하길 바라며 힘차게 도전~!!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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