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오직 두 사람>.
  이 소설은 아빠와 딸에 관한 이야기다. 삼 남매 중 둘째인 현주를 유독 예뻐하는 아빠는, 둘이서 여행도 가고, 영화나 전시를 보고 브런치를 먹으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은 부녀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봤었다. 그러나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아빠와 딸이 잘 지내는 것은 좋으나 부모의 애정이나 기대가 너무 크면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을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느끼며 곧잘 실망하고는 한다. 그래서 결말은 늘 누군가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다시 아빠와의 관계로 돌아간다. 아빠의 기분을 살피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었던 그녀. 이런 패턴의 반복의 결과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빠와의 관계뿐이다. 그녀라고 답답한 순간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벗어나지도 끊지도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 아빠는, 만약 전 세계에서 희귀 언어, 그러니까 그 모국어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관계란 게 그렇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시간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그 관계는 무 자르듯 단번에 쳐낼 수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관계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고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도 그러한데 그것이 가족이라면 어떻겠는가. 타인이라면 어쩌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거나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을 꺼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사람을 위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솔직히 터놓고 말해보자. 그런 말 역시 당사자가 아니니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문제든 정작 자신이 그 중심에 있게 된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여길 수 있을까. 물론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며, 무엇이든 본인의 문제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순적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가, 그 인생을 살아가고 감내하는 것 또한 자신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관계에 굴곡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
아빠가 돌아가신 후, 화자는 허전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삶을 묵묵히 나아가고자 한다.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p.41, <오직 두 사람>)

 

 
  그 외의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은 읽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인생은 ‘누군가와의 만남, 혹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그 일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뉠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때로 자신의 삶에 있어 기점 혹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주말의 혼잡한 대형마트에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11년 만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부부 <아이를 찾습니다>.
-초등학생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인아.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자신이 돌아갈 곳, 인생의 원점이라고 생각하는 서진 <인생의 원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미친 듯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소설가 <옥수수와 나>.
-만나본 적 없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뉴욕으로 간 지훈. 하지만 자신 외에 다른 남자도 탐정의 연락을 받아 그곳에 도착하고, 누가 진짜 아들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남겨진 건 유골함과 슈트 몇 벌인 상황 <슈트>.
-미혼인데 곧 출산을 한다며 애를 낳고도 회사를 다닐 수 있는지 묻는 직원 최은지와 그 일을 암 병동에 있는 친구 박인수에게 의견을 묻는 화자. 최은지의 비밀을 지켜주다가 오히려 다른 직원들과 아내한테 괜한 오해만 사게 되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 사원들이 거치는 연수의 한 과정인 줄로만 알았던 방 탈출 게임. 하지만 핸드폰도 맡기고 들어왔고, 인터폰은 먹통인 상태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에서 점점 불안과 초조를 느끼는 사람들 <신의 장난>.

 


  일이 안 좋게 흘러간 경우 사람들은,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가는 이런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위트와 적절히 버무려 독자들에게 펼쳐 낸다. 그리하여 소설 속 인물들은 눈앞의 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나름의 합리화를 하거나 혹은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며.
  희망은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지만, 그들은 살아간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응급실을 나온 그는 의료기기 샘플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소독약 냄새가 진득하게 깔린 병실의 복도를 지나 구매 담당자의 사무실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인생의 새로운 원점이라고 생각하면서. (p.109, <인생의 원점>)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p.265, <신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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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3-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더니 되려 할 말을 찾지 못하게 된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서평을 이렇게 써주시다니... 기억이 새록새록햐집니다!

연두빛책갈피 2018-03-09 22:44   좋아요 0 | URL
저도 술술 읽히더라고요. 김영하님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히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