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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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이름은 빨강』1권에서는 술탄의 명으로 비밀리에 『축제의 서』를 작업하는 화공, 나비, 올리브, 황새, 그리고 엘레강스를 소개했었다. 당시에는 책을 만든다는 것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선을 긋고 금박을 입히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세밀화가들의 손을 거쳐야 완성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금박 작업을 하는 화공 엘레강스가 살해를 당하게 되고, 1권의 끝에 이르러서는 엘레강스를 죽인 그 살인자가 에니시테까지 죽이며 작업하고 있던 책의 마지막 그림을 훔쳐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직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또 살인이 일어나니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고 불안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내 이름은 빨강』2권에서는 카라와 궁정화원장 오스만이 술탄의 명을 받아 살인자를 색출하고, 사라진 마지막 그림을 찾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비, 올리브, 황새. 범인은 이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1권에서도 살인자는 그랬다. 어디 한번 자신을 찾아보라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어조임을 알 수 있었다. 2권에서도 살인자는 여전히 자신감에 넘쳐 있다. 말(馬)을 그려보라는 시험에서도 그것이 사실은 그림을 그리게 하려는 게 아니고, 범인을 찾으려 한다는 진짜 목적을 간파하며 자신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카라와 오스만이 아니다. 이야기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점점 속도감을 더하며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살인자가 누구인지 추리를 해가면서,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하며 독특한 서술을 보여주었던 『내 이름은 빨강』.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적으로 터키의 역사와 이슬람의 문화를 작가의 문장을 통해 섬세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감각적이었던 오르한 파묵의 글. 그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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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7-12-0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으로는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은 소설. 여기 서평을 읽고나서야 흥미가 새기네요!

데미안 2017-12-0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기네요—>생기네요!
 
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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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끝, 마무리라 여긴다. 그러나 『내 이름은 빨강』은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는 ‘나’. 그는 이 책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화자로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화가들 사이에서 ‘엘레강스’라고 불리는 이 남자, 과연 그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보일 듯 말 듯하면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살인자의 정체, 그리고 치밀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의 구성! 소설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오르한 파묵. 그는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그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나름의 색채를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터키라는 나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있으며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데, 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이러한 부분과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담아내었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추리소설 『내 이름은 빨강』.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인상 깊게 다가왔다.
  우선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터키가 가진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었던 동서양의 영향, 대비되는 모습들이다.
술탄은 에니시테에게 헤지라 천 년이 되는 해에 베네치아 총독에게 선물할 책을 완성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 책은 서양의 화풍을 사용해 만들도록 했기에 제작 자체가 비밀이었고, 따라서 에니시테는 실력이 뛰어난 세밀화가들, 나비, 올리브, 황새 그리고 엘레강스를 동원해 자신의 집에서 작업을 착수토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박 세공사 엘레강스가 살해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전통적인 화풍과 새로운 화풍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가들의 모습, 나아가 종교적인 것과 순수성, 예술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민과 문제를 다룬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은 누구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이다. 나비, 올리브, 황새는 물론 12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온 카라, 카라가 여전히 사랑하는 여인 셰큐레와 그녀의 아들들인 오르한과 셰브켓, 셰큐레의 아버지인 에니시테, 카라와 셰큐레 사이에서 편지를 전해주던 방물장수 에스테르 등등. 심지어 한 그루의 나무라든가 금화도 화자로 등장해 자신이 겪은 일들을 풀어놓는데 이러한 서술은 신선하면서도 각자의 감정과 시선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 이름은 빨강』 또한 1권의 소제목으로 등장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도 한다.

 

  당신들이 던지는 질문을 들었다. 색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 수천 년 동안 책에서 책으로, 물건에서 물건으로 바람처럼 옮겨 다니며 영혼의 말소리를 들은 나는, 내가 스쳐 지나간 모양이 천사들의 스침과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들의 눈에 말을 걸고 있다. 이것이 나의 신중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동시에 나는 공중에서 당신의 시선을 통해 날아오른다. 이것이 나의 가벼움이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내 이름은 빨강』1권, 31.<내 이름은 빨강> 中에서)

 


  범인은 살인자의 기척을 숨기며 다른 사람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에 우리는 더더욱 그의 정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서가 나오고, 카라는 조금씩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 금박 세공사 엘레강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카라와 셰큐레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게다가 술탄이 비밀리에 명한 밀서는 어떻게 마무리가 될 것인가.
  역시 오르한 파묵, 이 책은 마지막까지도 무엇 하나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작가의 개성, 그리고 문장의 매력이 충분히 돋보이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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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동물원을 탈출한 펭귄 기탄 집중력 UP 찾아라
기탄출판 책나무팀 지음 / 기탄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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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그림책을 참 좋아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반면, 그림은 단순히 보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알록달록한 색감이며 귀엽고 예쁜 그림은 또 어떠한가.

어느새 그림책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힐링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특히 요즘에는 숨은 그림 찾기에 푹 빠져있는데, 찾아라 시리즈 중 <동물원을 탈출한 펭귄>을

구매해봤다.

 

 

귀여운 펭귄 가족들!!

사람이나 물건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이렇게 동물들이 숨은 그림 찾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는 한다. 

 

 

 

설정부터가 흥미진진하다.

동물원에서 사는 건 너무나 따분한 나머지 탈출했다는 펭귄 가족들.

다른 동물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10리의 펭귄을 찾는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여기저기 피하기 바쁜 가운데, 펭귄들은 진짜 신이 난 표정이다.

 

 

이 책은 꽤 많은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쇼핑몰, 가장무도회, 유령의 집, 호숫가, 카트 경주, 축제 행렬 등등!!

바다나 우주까지 참 많은 곳을 다닌 펭귄 가족들.

다양한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펭귄들과 함께 여행 혹은 모험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맨 뒷부분은 펭귄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동그라미 표시를 해주는 정답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펭귄 가족은 마침내 고향인 남극에 도착했다는 것으로 모험은 마무리!

볼거리가 가득해서 만족스러운 책이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아껴서 보고 싶은 그런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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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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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우리는 그것을 뼈아픈 치욕의 역사로 배웠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삼배고구두례(三拜九敲頭禮 : 세 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를 하며 굴욕적인 항복을 했는데, 땅바닥에 머리를 9번 찧은 인조의 이마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조정이 청의 대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들었던 1636년 병자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47일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어찌 이와 같은 몇 마디로 짧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겠는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항전의 시간이었다. 김훈 작가는 『남한산성』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치열하게 오갔던 말들과 고통스럽고 참담했던 견딤의 시간들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여진의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해 약화된 명을 압박했다. 조선은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며 후금을 자극했는데 그 결과 인조 5년,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는 정묘호란이 발생하고, 이는 두 나라가 형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후금은 세력을 계속 확장하여 국호를 청으로 변경 후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조선에서는 주화론과 주전론(척화론)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대세가 주전론으로 기울면서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청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하게 된다. 이것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이다.

 


  청병은 산성 밖에 있었다. 그러나 백성과 군병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했다. 소설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고단한지를 잘 보여준다.
  남한산성은 제법 단단했다. 주변 지형 또한 강의 물살이 사납고 산줄기가 가팔라 적이 쉽게 다가올 수 없는 요건들을 갖춘 곳이었다. 그러나 길이 한번 막히면 갇혀서 뚫고 나가기 어렵다는 점, 따라서 웅크리고 견딜 수는 있으나 나아가 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 계절은 겨울이다.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겨울 추위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매서웠는데, 성첩을 지키는 군병들은 밤새 젖고 얼어야만 했다.
  더 큰 문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이기에 남한산성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포함해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몸을 녹이고 밥을 짓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한데 그마저도 부족해 급한 대로 말먹이 풀로 불을 때우지만, 말먹이 풀이 부족하니 이번에는 말들이 굶어 죽어 나갔다. 어쩌겠는가. 백성들의 초가지붕을 헐어 말먹이로 쓰이고 기둥과 서까래를 뽑아 쓰는 수밖에.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한다.

 


  묵직하고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진다. 싸움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청의 군사력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모두가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남한산성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임금은 군사들을 호궤했다(음식과 술을 나누어 주며 위로함). 그리고 격서를 내보내 구원병을 부르고자 했는데 길은 적에게 막혀있어 격서를 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다면 바로 말[言]과 말의 부딪침이 아닐까 싶다. 임금은 신료들에게 성안의 실태에 대해서, 혹은 대립과 화친에 대해서 의견을 묻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예조판서 김상헌은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였고, 이조판서 최명길은 일단 싸움을 멈추고 청과 협상하여 나라를 지키고 보자는 주화파의 입장이었다.
  신료들의 말은 임금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저마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따라서 말과 말은 추운 겨울 공중 속에서도 뜨겁고 격렬하게 부딪쳤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신료들의 모습이 그들이 닥친 남한산성의 상황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하나마나한 말로 무의미한 언쟁을 할 때가 많았고 조선을 생각한다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는 아니면 본인들을 위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였다. 그들은 직접 나서야 할 순간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몸을 사렸다. 결국 입으로만 떠드는 말에 불과했나 싶어 입맛이 썼다. 차라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서날쇠가 그들보다 나았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는 자였다.

 


  한편, 말[言]은 삶을 이어가기 위한 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점점 청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던 가운데 칸의 문서가 도착했다. 주화파와 척화파가 삶과 죽음을 두고 대립하였으나 임금은 살고자 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후세에 이어질 치욕과 오명 때문인지 누구도 문장 쓰기를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최명길이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한다며 스스로 앞장서기를 청하였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청의 황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춰 삼배고구두를 한다. 이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삼전도의 굴욕이다. 그 뒤는 널리 알려졌듯, 두 왕자와 척화론자들(홍익한, 윤집, 오달제), 많은 포로가 청의 인질로 잡혀간다.
  다시금 돌아봐도 모욕적이고 곤욕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조는 국제 정세를 잘 읽지 못했고 외교와 군사에 대한 감각도 부족했다. 침입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하더라도 일이 발생한 후 대처라도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미흡해 고통은 오롯이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왕은 그만큼 책임과 의무가 막중한 존재이건만 인조도, 신하들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치욕스러운 역사일수록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더 잘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본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병자호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안과 밖을 두루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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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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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면 계절의 흐름에 한발 늦게 반응할 때가 있다. 봄이구나 싶었는데 바깥은 어느새 여름이고,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기로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여름도 언젠가는 지나간 시간에 해당되고 만다. 가끔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인식과 현재 진행 중인 계절 사이에서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그에 따른 온도차를 함께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또한 그와 같은 느낌을 잘 담아낸 책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의 단편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존재와의 이별, 영원한 헤어짐, 상실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겪은 일 앞에서 어떤 온도 차이를 느끼게 됨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제야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계절의 변화일 수도 있고 또는 다양한 감정에서 기인한 마음의 온도, 아니면 그 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발견한 어떠한 사실일 수도 있다.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 <입동>,
소년은 휴게소에서 버려진 개를 데려와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만, 개가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두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이수와 도화, 연인의 이별을 담아낸 <건너편>
남편이 죽은 뒤, 사촌 언니의 집이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잠시 지내게 되는 ‘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그 외에 <풍경의 쓸모>라든가 <가리는 손>은 등장인물이 직접적으로 죽음이나 헤어짐을 겪는 건 아니지만 이 단편들 역시 어느 시점을 전후로 화자의 심리상태가 전과 같지 않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도 온도 차이는 존재한다.
  <풍경의 쓸모>에서 ‘정우’는 교외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여자가 있어 오래전에 어머니와 헤어지셨고 가끔 선물을 보내오실 뿐 별다른 왕래 없이 지내고 있다. 1월, 정우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태국에서 패키지여행을 하는 중이다. 한국은 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다. 하지만 그는 교수 임용에 관한 면접 결과 소식을 기다리느라 여행에 집중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해보지만 원하는 소식은 없고 대신 바쁘냐고, 연락을 달라는 아버지의 문자만이 있을 뿐이다. 잠시 뒤, 그는 모교 최 선생님의 전화를 통해 자신이 왜 면접에서 떨어졌는지 일의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문자를 받게 되는데 모두에게 보내는 단체 문자라 정우에게도 덩달아 온듯하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여자의 부고였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p.182, <풍경의 쓸모>중에서)

 


  주인공이 유리 볼을 빗대어 다른 사람에게나 해당되듯 시차를 말하기는 했지만,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정우의 마음 상태를 표현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나 기대했던 면접의 탈락, 그리고 알고 보니 내막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 바깥은 여름이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겨울일 것이다. 다른 여행자들은 즐겁고 떠들썩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복잡한 감정으로 도저히 거기에 섞일 수가 없으리라.
  한편 <가리는 손>은 다문화 가족의 아이가 받는 편견을 얘기하는 동시에 엄마와 아이 사이를 그려낸 단편이다. 중학생들과 노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노인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인터넷상에서는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중이다. 그 동영상에서 ‘재이’는 저 멀리 목격자로 등장한다. 물론 엄마인 ‘나’는 재이가 그 일에 관련 없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런데 재이가 조사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 어딘가 찜찜하고, 아이와 대화하다 보게 된 미소 어린 표정에서 어떤 묘한 기시감을 받게 된다. 재이의 생일을 맞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좋았던 분위기지만, 어쩐지 ‘나’의 마음은 아이의 미소를 본 뒤로는 무언가 계속 석연치 않을 따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침묵의 미래>이다. 여기에는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이 모여 사는 ‘소수언어박물관’이 등장한다. 천여 개의 전시실에서 각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마지막 화자들이 하루 내내 관광객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을 보러 오는 방문객은 얼마 되지 않아 박물관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마지막 화자들 역시 누군가와 말할 사람이 없어 점점 침묵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일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이 단편에서 ‘나’는 언어다. 사실 언어는 가슴이나 눈빛을 통해서도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지만 어쨌든 말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직접 소리로 주고받는 작업이 필요하다. 누군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말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고, 결국 언어 역시 사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는 ‘나’가 자신의 마지막 화자를 관찰하듯 살펴보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언어가 하나의 존재가 되어 사람을 살펴보는 모습이 각별하게 다가와 오랜 여운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이 사실은 무척 대단하고 소중한 것임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내 마지막 화자, 검은 피부에 우아한 속눈썹을 가진 노인은 누군가 자기 말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춰준 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하는 건 몹시 오랜만'인데다 '너무 평범하고 친근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모국어로 뭐라 대꾸해주길 바랐다. '응'이나 '그래'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그뿐이라도. (p.127, <침묵의 미래>중에서)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었다. (...중략...)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다. 내 몸은 점점 붇고 이름 또한 길어져, 긴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무엇이 됐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 쓸모 있는 죽음, 단지 그뿐인 채로 사라진다. (p.145, <침묵의 미래>중에서)

 


『바깥은 여름』. 소설을 읽고 보니 어쩌면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을 겪고 있거나 그 안에 머무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아픔의 계절일 수도 있고 좋았던 순간의 계절일 수도 있다. 저마다의 다른 계절 흐름이 있음을 깨달으며, 오늘은 누군가와 함께 말을 주고받고 싶다고 여겨본다. 노인이 그토록 원했던 ‘응’이나 ‘그래’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그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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