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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 이름은 앨리스 메리 러브. 앨리스라는 이름이 기억상실이라는 소재와 만났다. 어쩐지 그 자체만으로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낯선 세상에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일 것 같다. 앨리스는 남편 닉과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이었고 임신을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태명은 ‘건포도’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자신은 체육관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고, 스물아홉이 살이 아니라 곧 마흔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왠지 ‘이랬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것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10년의 기억을 잃은 채, 갑자기 타임 슬립하듯 깨어나고 싶지는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기간이면 개인과 주변 인간관계를 포함,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만 해도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지 않던가. 그런데 오로지 자신만이 아무것도 모른다면? 아마 그 답답함과 압박감은 상상 그 이상이리라.
10년을 통째로 잃어버린 앨리스에게는 역시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문제는, 행복하고 즐겁고 좋았던 나날들이 눈을 떠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자신은 첫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출산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미 아이가 셋이라고 한다. 앨리스는 자신이 아이 엄마인데도 아이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에 무척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디 그뿐이랴. 그렇게나 돈독했던 엘리자베스 언니와의 사이는 어느새 소원해져 있고, 닉과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으며 이혼 중이고, 양육권 분쟁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신은 새 남자친구가 있으며 데이트를 하는 사이고, 엄마와 시아버지는 5년 전에 결혼하셨다고 하니 놀라움의 연속인 상황.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무 이유 없이 ‘지나’라는 이름이 계속 맴돌게 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10년 동안의 앨리스, 즉 ‘새 앨리스’는 꽤 놀라웠다. 예전에 비해 날씬했고, 큰 차를 운전할 줄 알며, 화장법에 대해서도 잘 안다. 레시피를 안 보고도 요리가 가능하며, 운동도 챙긴다. 그녀의 기억과 달리 몸은 그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기억해냈던 것이다.
물론 앨리스 입장에서 ‘새 앨리스’의 모든 면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닉을 사랑하기에 ‘새 앨리스’의 남자친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새 앨리스’가 했던 말이나 행동이 때때로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반성해보며, 이제는 조금씩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이제 앨리스는 두 가지 렌즈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 같았다.
어리고 순진하고 단순한 앨리스와, 나이 들고 현명하고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앨리스의 시각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본문 중에서)
현재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다시 한 번 일상과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앨리스. 그리고 닉과의 사랑도 10년 전의 모습으로 똑같이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은 발전된 형태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나 잊기 쉬운, 그러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이기에 꽤 인상 깊게 느껴졌다. 결혼생활에서의 사랑은 연인들과의 사랑과 같을 수가 없다. 완전히 다른 형태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연장선에 있되, 다양한 알파가 플러스된다는 점이다. 연애 감정을 가지는 건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연애와는 또 다른 이야기이자 현실임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부부는 서로의 이런저런 면을 다 보게 되고 때로는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는 것. 그러니 서로 간에는 그 사랑 또한 좀 더 성숙할 수 있도록, 깊이와 폭을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