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간의 잠 - 에곤 실레
임순만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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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 그림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만큼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에곤 실레의 그림이라며 명화집을 보여주었는데 드로잉이 무척 인상 깊었던 것이다. 그 거칠고 강렬했던 선의 잔상은 아직도 뇌리 속에 남아 가끔씩 불쑥 떠오르곤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에곤 실레에 대해, 그가 살았던 삶과 사회,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예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에곤은 비엔나 북서부 작은 도시 툴른의 기차역 관저 2층 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스케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아돌프, 어머니 마레, 누나 멜라니, 여동생 게르티가 있는데 에곤이 열넷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다. 에곤은 그림 그리는 것만을 좋아할 뿐, 규격화된 생활을 강요하는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다. 고모부이자 후견인인 치하체크는 에곤에게 기술을 배워야지 그림을 공부하면 뭐하냐며 그를 무시하지만 에곤이 16세의 나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입학 허가를 받자 아카데미를 마칠 때까지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실레는 3학년에 올라가자 역사 화가인 그리펜케를 교수와 갈등을 빚게 된다. 실레는 선이 빠른 편이었는데 그리펜케를은 고전을 강조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인체습작을 하길 원했던 것이다. 게다가 교수는 학생들에게 분리파 미술에 대한 접근을 금지했다. 분리파는 미술 아카데미로부터 이탈하여 관영화된 전람회와는 별도로 자기들의 전람회를 스스로 기획하고 조직하기 위해 창립된 새로운 예술가 집단이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분리파 초대 회장으로 초대되었으며 당시 사회에서 연일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리펜케를과 클림트 사이에서 고민하던 실레는 학교에 제시한 아카데미 개혁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졸업 1년을 남겨두고 동료들과 함께 학교를 자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실레는 무명 화가였고, 가난한 화가였다. 추위와 굶주림의 어려운 생활이 지속된다. 게다가 그의 그림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투박하고 거친, 난해하고 기괴한 면이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친분을 맺고 초기에는 그의 영향을 맺기는 하지만, 실레는 장식적인 구석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그의 자화상 역시 불편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전기고문을 당한 듯 위로 삐친 머리카락, 기괴하게 번쩍거리는 눈빛, 놀란 듯 반쯤 뒤로 돌린 시선, 불안과 고뇌로 가득 찬 얼굴표정, 수술용 메스로 살을 발라낸 듯 야위고 각진 어깨뼈. 화가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레는 그런 몰골로 참회의 기도를 올리듯 한쪽 손은 올리고, 반대편의 한쪽 무릎은 꿇고 있다. 여기에 화가는 갈색과 녹색을 덧칠해 칙칙한 육체가 부패하는 듯한 느낌을 불어넣었다. 이전의 어떤 화가가 시도했던 역사적 관련성이나 사회성도 찾기 어려운 자화상이다. (p.143)


  클림트는 실레에게 모델을 보내준다. 발레리에 노이칠(발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수모를 겪더라도 실레를 위해 누드모델로서 모든 포즈를 다 취해주고, 심부름도 하며 그의 곁을 지켰지만, 실레는 결국 에디트와 결혼하며 발리를 버렸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초기에 사이가 좋지 못했다. 에디트가 실레의 모델을 해보지만 표현력이 부족했고, 실레는 1차세계대전 때문에 프라하로 징집되어 군대생활을 해야 했다. 남편의 욕구를 받아들이는데 고통스러워하는 에디트였지만 나중에는 남편도, 남편의 그림도 다 받아들이게 된다. 실레 역시 여러 곳으로 전출되다가 육군병참 부대에서 여러 특혜를 제공받게 되면서 생활도 나아지고, 그림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불안하고 불편하던 표정과 포즈 대신 편안함, 신뢰와 확신의 이미지가 많이 담기게 된다. 그러나 1918년, 아내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고, 실레 또한 아내에게 감염되어 세상을 뜨게 된다. 28년 4개월의 삶. 서른을 채우지도 못한 젊은 화가의 이른 죽음이다.


  얼마 안 있으면 에곤 실레 사후 100주년이 된다. 날이 갈수록 재평가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에곤 실레. 그가 어려운 삶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 덕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 년 후에 부는  바람, 에곤 실레의 예술관 그리고 그의 순수성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던 시간이었다.

 

  실레 붐의 근원은 화가가 인간의 고통과 성과 죽음에 대해 집요하게 탐색했고, 그의 그림이 지속적으로 화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화가의 순수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인간적 순수함이 후세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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