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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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최고의 언어 마법사’라고 불리는 존 밴빌. 『바다』는 부드럽고 유려한 문장, 살아 숨 쉬는듯한 풍경 묘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처연한 슬픔을 자신만의 문체로 아름답고도 섬세하게 그려내는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존 밴빌의 특유한 분위기, 감각적인 언어에 푹 빠지게 되는 느낌이다.


  주인공 맥스는 아내 애너를 병으로 잃은 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여름휴가를 보냈던 바닷가 휴양지를 찾는다. 무려 50여 년 만이지만, 그레이스 가족(칼로 그레이스와 그의 부인, 쌍둥이 남매 클로이와 마일스. 보모인 젊은 여자 로즈)과 처음 만났던 그 집, 시더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다. 현재 그곳은 바버수어 양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되어 있었으며 맥스는 시더스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어렸을 적 만났던 그레이스 씨네 가족과 보낸 여름,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 그리고 현재. 이야기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생생한 시선으로 한데 잘 어우러진다.

 


  주인공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와 해변의 바스락거리는 모래가 나의 여름은 어땠느냐고 물음표를 던져오는 것 같다. 그런데 쉽게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는다. 하다못해 바로 일주일 전, 아니 엊그제라도 어떤 일이 있었나 되짚어보지만 가물가물한 느낌만이 머릿속을 맴도는 걸 보니 기억은 그새를 못 참고 공기 중으로 휘발되었나 보다. 어쩌겠는가 그저 어깨를 으쓱하는 수밖에.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렸을 때의 어떤 기억들’은 꽤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마치 다시 눈앞에 재생되는 것처럼.


  그날의 온도, 하늘의 색감, 손끝에 닿았던 물건들의 질감,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나 웃음소리 등등. 어찌 보면 평범하고 소박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햇빛에 반짝반짝하는 나뭇잎처럼 특별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 맥스도 그해 여름 바다에서 보냈던 시간이 그렇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맥스는 이내 깨닫는다. 바닷가 마을은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더 이상 예전의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더스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세세히 보면 많은 것들이 변했으며 자신 역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 집의 모형이 원본에 적응을 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계속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약간씩 균형을 잃었고, 모든 각도가 약간씩 어긋나 있었다. (...중략...) 현실, 지독하게도 자족적인 현실이 내가 기억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휘어잡은 뒤 마구 흔들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맞추자 나는 거의 공황 상태에 이를 뻔했다. 뭔가 귀중한 것이 해체되면서 내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빠져나가도록 방기해버렸다. 과거, 그러니까 진짜 과거보다는 우리가 내세우는 과거가 더 중요하다. <『바다』中에서>

 

 

  그래도 바다는 맥스에게 쌍둥이(클로이, 마일스)와 함께 매일같이 시간을 보냈던, 어렸을 적 추억의 장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곳은 주인공에게 있어 두 아이가 바다로 걸어 들어 간 뒤 보이지 않게 된 곳이기도 하기에, 아내의 죽음과 더불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 소설은 왠지 크고 작은 파도가 계속 이어지다가 잔잔하게 수그러들며 차분하게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기분을 자아낸다. 순수함이 사라졌든, 아니면 어른의 눈으로 진짜 현실을 보게 된 것이든 어렸을 적 즐거웠고, 호기심에 가득 찼고, 좋았고, 재밌었던 것들이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안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다. 어쨌든 너무 과거에만 매여 살아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도움 안 되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과거에서 위안과 위로를 얻지 않던가. 아이러니하지만 현재의 아픔이나 상실감을 다독여주는 것은 과거의 추억일 때가 많다. 아마도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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