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외투, 행인"
며칠 전 기사, 보셨으려나요? 얇은 수면바지 차림에 추워서 얼굴 피부도 검붉어진 노숙인에게 한 행인이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는 장면을 사진 기자가 포착했습니다. 눈발 속의 훈훈한 그 풍경, 뭉클하게 하는 그 풍경.
꼬마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좋아합니다. 동화속에서 보아온 장면이니까요.
하지만, 어른의 못된 현실적인 의심이 치솟아 꼬마의 기쁨을 망쳐버렸습니다.
"근데, 저거 연출일지도 몰라."
그랬더니 꼬마 표정이 바로 슬퍼지면서,
"그래도 저 사람 진짜였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찌들고 찌든 어른의 렌즈가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꼬마에게 미안했고요. 오늘 후속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사진기자분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 포착하셨다 하십니다.
훈훈한 이야기 꼬마에게 다시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9965.html
이 사진 공유는 문제소지가 있긴 합니다만....혹 문제가 되면 사진 내리겠습니다.
또, 눈이 내립니다.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는 벌써 말끔하게 치워져 시멘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눈이 내리자마자 관리실, 경비실 분들이 움직이셨을 겁니다. 눈 치우시는 두 분이나 보았습니다. 뭐라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윙, 윙' 거리는 제설 기계 소리가 하도 커서 어차피 안들리실 테니, 마음으로만 고마워하며 지나갑니다.
단지 정문 바깥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위 그 '눈 관리' 주체가 모호합니다. 상가 건물 앞이야 상가에서 처리한다하지만, 아파트 단지 밖 일반 통행로 눈은 누가 치울까요?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 된 아파트 내부와 외부의 눈 사정이 확 다릅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자기 키보다 큰 싸리비를 들고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치운다기 보다는 '빗자루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큰 붓으로 어설프게 물감 칠하는 느낌입니다. 나는 그 소년이 신기해서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 방향 저 방향에서 사진찍어 기록 남기는 것으로 보아, 아이가 '자발적 선행' 하는 구나 싶었습니다. 조용히 아이 옆에 가서, "봉사하는구나?"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답합니다. (하긴, 제가 선택한 "봉사"라는 단어도 "쩌든 언어"입니다. '무보수 노동'이라는 개념을 함축하였으니)
"정말 대단하다!"라고 저도 아이에게 칭찬을 보냅니다.
거의 모든 것을 가치화시키려는 자본주의 시스템,
이제 눈 온 풍경을 즐기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눈 치우는 것은 의무화하되 게이트 안과 밖이 달라지는 냉정함.
눈 치우던 소년, 그 친구 커서도 이 폭설 오던 날의 싸리비 생각 오래 날 것 같습니다.
창 밖으로, 눈 치우시는 어른을 봅니다. 눈을 모아서, 도로에 계속 던지시네요. 더 빨리 녹을거라 생각해서 하는 일이겠지만, 녹은 눈이 많아지면 결국 차에 혹은 행인의 외투에 더러운 눈이 튈텐데, 굳이 도로 쪽으로 눈을 치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합니다. 생각이 많으면, 눈이 와도 참 피곤하게 사나봅니다. 생각 그만, 차라리 눈이나 치우러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