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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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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섭.

재작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나니 '김승섭'은 지인도 아니건만 문득 안녕이 궁금하고 그 존재만으로 감사한 이름이 되어 있다. 역시나 김승섭 교수도 이름모를 독자들,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준다. 2018년 출간한 『우리 몸이 세계라면: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면지에 새겨진 그의 서명과 덕담이 왜 이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지. 또 고맙다. 모르긴 몰라도 최근 타계하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못지 않게 살인적인 스케줄로 하루를 48조각으로 쪼개쓸 분이신데 이처럼 또 책을 안겨주니, 이 얼마나 머리 숙여 인사하고픈 고마움인지......

김승섭 교수는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3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2016, 2017, 2018년 3년 연속 고려대학교에서 최우수 강의상과 연구상을 받았다. 지금은 한국의 Paul Farmer처럼 보이지만, 지금처럼 헌신적이고 소신 세운 학자로서 십년만 활동한다면 그의 이름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알게 되리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교수, 학자들 과반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오는 현실에서 학문유행의 큰 물줄기에도 '본토(?)' 수입산 어류들이 헤엄치는 것은 당연하다.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불평등에 주목한 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김승섭 교수가 이 물줄기에서 변별되는 이유는, 그가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총대를 매고 앞장 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구가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고, 한국의 연구가 한국사회를 고민하지 않는 현실 이면의 배경을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연구자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당연히 권력가 정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미국의 학회를 중심으로, 영어로 쓰이고 유통되는 지식 시장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321쪽

대학이 지금과 같은 지식 생태계를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연구자와 어떤 연구가 배제당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 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더욱 도드라집니다.

같은 책, 327쪽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일하며,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할지 매 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연구주제를 정하고 논문을 쓰고 그 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나은 선택인지 판단하는 일이 제게는 항상 어렵습니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주목하는 오늘날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몸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환영받지못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같은 책, 328쪽

전작, 『아픔이 길이 된다면』에서 그는 성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같이 비라도 맞겠다"는 표현으로 소신 세운 의료역학자로서의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그는 한결같다. "계속 해보겠습니다"라는 그의 두 마디에 나는 이처럼 부끄럽고 작아만지니, 어떤 속죄가 필요할까? 행동이다.




덧붙여서....

소위 공부 할 줄 아는 사람, 공부를 업삼는 이들은 다 그렇지만 '질문 한 방'을 제대로 날린다. 혹은 좋은 질문을 알아본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는 그 한 방의 좋은 질문들이 연타를 해대니, 행복하게 자극 받아 뺨이 얼얼하다. 예를 들어, "일제 시대 조선인들은 더 건강해졌는가?" "Titanic호 승선자의 사망률을 살펴보면?" "2005 카트리나 홍수 때, 사망자의 지형도는?"

무엇보다, 어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은 '인종주의' 과학에 대한 자료를 늘 (이미 주어진) 서양 역사에서 찾았는데 한국의 학자들이 이미 좋은 성과물을 쌓아가고 있음을 재발견. 더 찾아 읽고 공부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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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은 책이었어요. 저자의 다짐을 보면서 저도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
 
세계화의 풍경들 - 그림의 창으로 조망하는 세계 경제 2천 년 비주얼 경제사 2
송병건 지음 / 아트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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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에 읽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에는 총 54개의 명화가 등장합니다. 어제 오전,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가 두 시간 만에 읽어낸 『세계화의 풍경들』에도 많은 그림이 소개되지요.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경제사와 연계해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자료라는 목적성이 강해서 굳이 명화가 아니더라도 만평, 캐리커처, 광고 포스터, 설계도면 등을 두루 등장시킨다는 점이지요. 두 책 모두 비주얼 자료들 덕분에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높여준다는 점은 공통되지만요. 하루마에 700페이지 넘게 읽은 셈이라, 등에 통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군요. 그래도 잊지 않게 정리를 해야겠죠?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글을 다듬어서 『세계화의 풍경들』를 펴낸 송병건 교수는 경제학과 학부 소속이었다지만 전공책보다 역사책을 더 즐겨 읽었다네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산업혁명 시기 영국 경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케임브리지 대학에 적을 두고 생활하는 가운데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다녔나 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맙게도, 송병건 교수가 미술관에서 느꼈던 지적 흥분감을 전문지식에 녹여내 말랑말랑하게 전해주니 '경제사'라지만 소화하기가 쉽습니다. 『비주얼 경제사』를 읽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비주얼 경제사2』를 '세계화'라는 키워드 아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려 34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합니다. 1부는 '고대에서 중세' 2부는 '대항해시대와 중상주의 시대' 3부는 '산업혁명의 시대' 4부는 '제국주의 시대' 5부' 세계대전과 자본주의의 황금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5부는 다시 24개의 에세이 형식 경제사 쪽글로 이뤄지는데, "비주얼 자료 하나 + 자료에서 뽑아낸 흥미유발 질문들"로 첫 노크를 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이 뭐이더냐, 비주얼 독해력은 더더욱 웬말이냐'하는 무심한 이라도 그림을 보면 흥미가 생기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는 요런저런 답들을 상상하게 될 터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제와 고대 로마의 몰락" 챕터에서 저자는 찰스 바틀릿(Charles Bartlett, 1860~1940)의 1888년 작품을 소개하며 "이 아이들은 누구일까? 왜 표정에 거부와 불신, 슬픔이 보일까?"를 묻습니다.



이 기골이 장대하지만 수수한 차림의 젊은이는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그 대단한(Great)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네요. 이처럼 떡밥이 맛있게 생겼으니, 경제사 문외한 독자 그 누구라도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얻어가는 게 참 많군요. 저는 이 책 덕분에 'Bull baiting'이라는 잔혹한 동물학대에서 'Bulldog'이 어떻게 쓰였는지, 나아가 산업혁명기 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을 이끌었음을 배웠네요.



송병건 교수는 서문에서 "'세계화'는 지구 곳곳이 인간의 교역과 교류를 통해 점차 가까게 연결되는 과정이다. 간단히 말해 세계가 좁아지는 움직임이다.(8쪽)"이라고 정의하는데요. '낭세녕'이라는 청나라식 이름도 가졌던 이태리 밀라노 출신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건륭제'를 보니 그 연결과 문화적 버무림의 양상을 직관적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조우'라 하든, '정복'이라 하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스스로 인지하던 집단끼리의 만남은 필연 배제, 차별, 구별짓기의 과정을 수반할 텐데요. 저자는 세계화 과정에 수반되었던 이 충돌과 갈등의 모습을 인상적인 비주얼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강렬하게 기억시킵니다. 아래 일러스트레이션은 1904년 영국의 신문에 실렸다고 하는데, 자바 섬에서 실제 있었던 호랑이 사냥을 영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그려졌겠지요? 다시 말해, 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피지배자에 대비하여 강인한 제국, 지배자의 모습을 대비시켜 각인시키려는 목적일 것입니다.



작년에 읽은 역사책 중에는 『코르셋과 고래뼈』, 『소비의 역사』가 『비주얼 경제사』에는 못미치더라도 많은 비주얼 자료를 소개하고 있네요. 그 많은 논문들 섭렵하랴, 학술활동하랴, 그 와중에 미술관 및 박물관과 친해서 조금 더 참신하고도 흥미유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대중에게 전하는 이분 학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플러스, 존경의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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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 18권의 철학·문화·사회·경제 고전을 54점의 그림으로 읽는다
박홍순 지음 / 비아북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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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다시 꺼내 읽는데, 수십 페이지를 넘기도록 책 내용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초판인쇄일로 따져보니 40여개월 만에 펼쳐들었는데? 나, 설마 기억력 천재?!' 그럴리가! 실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교양이 답하다』의 집필방식 덕분에 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저자 박홍순은 '서가명당' 명강사도, 논문이 인용되는 학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화가의 꿈을 키우며 미술을 공부했던 경험을 십분 살려서 고전을 '명화'와 엮어 해석하는 방식을 특화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고전이 갖는 한계를 미술 작품이 보완해준다. 대부분의 고전은 문학작품이 아닌 이상 다루는 내용과 논리적인 형식 덕에 지극히 이성적이다...(중략)...미술 작품을 고전 이해의 동반자로 삼음으로써 우리의 정신과 삶은 더욱 충만한 상태로 향한다." (10쪽) 즉 그림, 그것도 명화를 통해 독자는 활자로 곱씹어 이해해야할 내용을 직관적으로 궁금해하고, 강렬하게 기억하게 된다. 나 역시, 40여개월이 지나도 이 책에서 소개한 명화 50여점을 대부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주장에 동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해하는 "고전"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교양"을 책제목에 내세우는 저자는 과연 어떤 고전을 선별해서 소개할까? 먼저, 저자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빌어 "고전이란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 되기 쉽지만, 실은 향미가 뛰어난 맛있는 요리와 같다고 한다. 또한 고전의 요리법은 하나가 아니기에, 독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을 조리해 먹을 수 있고 저자가 그 막막한 과제풀이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앞서 말한대로, 미술 작품을 안내자 삼는 방식으로. 그렇게 저자는 고전을 "철학, 문화, 사회, 경제" 네 분야, 다시 18개로 압축 선별했다. 순서 없이 18개 고전풀이하는 데 무방한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책머리에"를 들춰보니 제시된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1부 "철학에 길을 묻다"에서는 서양철학에서 '이성'에 대한 관점을 4편의 고전을 내세워 시대별로 정리했다고 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니체, 화이트헤드의 저작이 등장한다. 물론 서양명화와 병렬배치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정신적 열망을 설명하며 박홍순 저자는 "쾌락의 팔 안에서 알키바데스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르뇨, 18c)를 엮어 소개한다.


2부, "문화의 사려 깊은 매력"에서는 인류학자 말리놉스키, 푹스, 발터 벤야민,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에의 작품을 소개한다. 말리놉스키의 가족&친족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루소의 가족그림을, 서구의 도덕성에 정면 도전한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부셰의 그림들을 배치했다. 저자는 중간중간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나 저자의 여담을 곁들여, 서구 학자들만의 이론의 향연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3부 "살맛 나는 사회를 위하여"에는 법, 제도, 관료제, 자유, 여가 등 오늘날 사회 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전을 소개한다. 고전읽기를 '지금- 여기' 일상과 연결지으려는 저자의 큰 그림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경제 분야 고전을 다룬 4부, "경제를 생각한다"에서는 로크, 하이에크, 폴라니, 리프킨을 요약본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중간중간 생소한 용어와 뜻풀이가 필요한 부분은 '비아북' 편집실에서 매끈한 방식으로 해결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를 읽고 나면, 고전을 어떤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요리할지 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아직 못 찾았는데, 최근 읽은 『감염된 독서』의 최영화 저자가 '감염내과 전문의'로서의 렌즈를 특화시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방식과 『맛, 그 지적 유혹』의 정소영 저자가 영문학과 미디어 전공을 살려서 음식을 문학작품 속에서 디코딩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빌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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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2차 문헌에 있는 문장을 직접 인용하고 번역하지 않는다면, 2차 문헌의 번역본에 있는 문장을 인용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인용문의 출처를 밝히는 게 맞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문장을 인용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그땐 너무 가볍게 생각했는데, 표절로 오해 받아서 혼줄 났습니다. 그 날 이후로 출처 밝히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하라 히로코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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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 아닌 이들에게 한국 무용을 가르치는 한국인, 한국인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웠던 미국인에게 직접 들었다. 전자는 외국인 학생들이 스승을 섬기는 걸 배움의 일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한탄, 후자는 한국인 사범이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상하관계라는 불쾌감을 토로했다. 공통분모는 '사제관계' 관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옛 생각과 실천의 잔재가 다른 세계관과 충돌했다. (누군가에게서) 배우고, (누군가를) 가르침으로써 인간 문화가 전승된다고 배웠는데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를 쓴 일본인 인류학자 하라 히로코는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가르친다, 배운다'라는 행위가 각 문화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 사회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해어 인디언을 알게 되면서 나의 이런 생각을 바꿨습니다. '배운다'라는 인류 보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르친다, 배운다'라는 행위는 절대보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서문 중

저자는 그레이트베어 호수 북서쪽에 사는 캐나다 원주민, 해어 인디언(Hare Indians) 공동체에서 현지조사를 했다. '특정 사회에서 문화가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과정' 탐색을 위해,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배웠습니까? 누구에게 배웠습니까?"를 묻고 다녔다. 그런데, 의외였다. 일본인인 저자에게 지극히 익숙한 '사제관계' 관념, 누군가에게 배워서 안다는 개념 자체가 해어 인디언에게는 없다(고 저자는 판단했다). 대신 이들은 타인을 관찰하고, 모방함으로써 필요한 기술을 터득하고 스스로 가르친다는 생각한다고 했다. 따라서 저자가 아무리 "누구에게 배웠니?" 혹은 "나에게 눈썰매 타는 법 가르쳐줄래?" 해봤자 대답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대에서 수학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동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의 눈에 해어 인디언의 가족관계, 자아정체감, 인생관, 감정 표현양식, 공동체 생활 등등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방인의 시선으로 해어 인디언 양육법에서 문화적 의미를 읽어냈을 것이다. 이 책이 초판 된 1979년이라면 문화연구가가 양육법의 비교연구에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시기이다. 저자 스스로는 이 연구가 '문화전승'에 관한 것이라고 큰 울타리를 치지만, 콕 집어 말하면 양육법에 관한 문화적 이방인의 시선이 주가 아닌가 싶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은 어린이, 어른, 선생님, 혹은 동화 작가...... 어떤 국적의 누가 읽어도 각자 입장에서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 하나씩은 만들게 해준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이 다 그렇지만 이 책도 '익숙함을 낯설게 보기' 위해 물음표를 던진다. 2019년 한국 사회에 'SKY 캐슬'류 경쟁과, '자녀- 부모' 조합을 운명 공동체로 보는 시선을 비딱하게 되묻게 한다. 저자의 말을 빌어,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자유롭다면 가장 큰 이유는 뭘까?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의무교육에서 자유로워서도 대학수학능력평가같은 제도가 없어서도 아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식, 특히 자녀의 입시에서 서바이벌하는 능력을 가족의 미래를 가늠할 부표이자 부모노릇에 대한 성적표로 여겨서 자녀를 조련시키려는 태도가 해어 인디언 부모에게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불가에 가도 '네가 불 무서운 걸 직접 겪어서 위험이 뭔지 스스로 알아야지.'의 태도로 방관하고, 먹을 걸 발견하면 챙겼다 자식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제 입으로 바로 쏙쏙 집어 넣는 해어 인디언 성인의 태도는 2019년 한국사회의 잣대에서라면 '무심,' 혹은 '(자식) 방치'라는 죄명으로 힐난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그들 방식으로 아이를, 아니 인간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린이는 어려도 대접받고 존중받는다. 아니, '어려도'를 지우자. 나이로 밀고 나가지 않는다.


SKY캐슬폐인이 등장하는데 발맞추어 기자들도 소프트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한민국 사교육 열풍이 얼마나 일그러졌는가라는 기조가 이미 (고발과 힐난으로) 정해진 기사 중에는, 사교육 입시학원 전문가라는 이가 등장해서 한국 부모들이 노후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자식 성적, 대학 서열화에 목매다는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식이 좋은 대학 나와 안정된 직장 다녀야 노후에 자식에게 발목잡혀 빈곤하게 살지 않는다는 계산이 자녀를 조련(네 성적은 내운명, 네 대학 이름은 내 얼굴)하려는 태도 이면에 작용한다는 분석이었다. 이 대목에서 하라 히로코의 분석이 다시 생각났다. '자식-부모'를 공동운명체로 생각하고 자식을 다 참견하려고 들고 무엇을 배울지 어느 수위로 배울지도 부모가 다 결정하고 강요해서는 결코 해어 인디언 아이들처럼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스스로 확장시켜나가는 능력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분석. 얇고 쉬운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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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 신경인류학으로 살펴본 불안하고 서투른 마음 이야기
박한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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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만 보고 책 집어 드는 건 수험용 학습지 이후로 없었는데, 요새 내가 재밌다고 읽은 책들의 교집합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니 그 이름, '휴머니스트.' 읽어 내려가다 보니, '휴머니스트' 출판사 책이 많네요. "팔리는, 팔릴 만한" 책 제목을 뽑아내는 편집자들의 능력이야 아서 클라크(였나요?)가 아부했다는 '신의 영역'에 속할 텐데요, 특히나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분야의 책 제목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좋은 뜻에서요. 제목만 봐도 읽고 싶어지게 만들거든요. 『우리 모두는 2% 네안데르탈인이다』라는 데,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라는 데 읽지 않고 배겨 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후손이 있겠습니까? 동의하지 않으세요?



목차를 눈으로만 훑어도 이건, 안 읽고 못 배길 책이 맞습니다. 짝짓기(mating) 전략을, 인간의 자기 기만(self-deception) 본능을, 양가적 감정을 일으키는 여성의 유방을 이야기한다는데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젯 밤 잠들기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박한선 저자가, 마치 대학 교양강의를 전개하듯 쉽고 친절하게 신경인류학과 연관된 과거와 최신, 논문들을 정리하고 우리 삶과 연결지어 화두를 던져줍니다.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과 함께 읽어 보기 추천합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원더박스," "협력의 진화,"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비맨" "이타적 인간의 출현," "타고난 반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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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2019-01-0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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