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
유정희 외 지음 / 아이네아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lita: Battle Angel" (2018)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극장을 찾았다. 놀랍겠도 Sci-Fi 장르에 심야시간 상영인데도 대다수 관람객이 40~50대로 보였다. 아마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총몽"을 즐겼던 중년이리라.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두 명의 사학자가 함께 썼다기에 짐작했다. 공저자 모두 일본 만화 "드래곤볼"을 읽으며 자란 세대에 속하리라고. 아니나 다를까, 유정희 저자는 이미 초등 6학년 때 '드래곤볼 Z 특별판'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을 정도로 팬이었고, 이후 26년을 숙성시켜 그 감상을 책으로 엮었다 했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전공한 공저자 정은우 역시 '드래곤볼'에 대한 생각의 "똬리를 풀고, 정돈하고, 또 엮(17쪽)"는데 무려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대상을 잘 알고, 주제를 오래 숙고한 만큼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는 지적 희열을 주는 멋진 책이다.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읽다 보면,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귀에 익숙해서 마치 뜻을 아는 듯해도 겉핥기 뿐의 용어..... 하지만 유정희, 정은우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드래곤볼"을 다시 소환하다보면,이 용어들이 어찌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쓰였는지 독자로서 후련함까지 느끼게 된다.




서구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이류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인종주의, 범아시아주의, 일본인의 이중적 정체성, 일본인의 역사의식, 역사적 트라우마, 일본인 기억과 망각의 정치학......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읽다 보면,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귀에 익숙해서 마치 뜻을 아는 듯해도 겉핥기 뿐의 용어..... 하지만 유정희, 정은우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드래곤볼"을 다시 소환하다보면,이 용어들이 어찌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쓰였는지 독자로서 후련함까지 느끼게 된다.

기본적으로 공저자는 "드래곤 볼"의 대표저자가 토리아마 아키라이건만, 이 만화가 드러내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전후 역사관은 일본인의 집단의식을 반영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작품을 분석한다. 물론 공저자가 서두부터 명확하게 했지만, "전후 일본인의 역사인식은 일정 부분 단층적일 수밖에 없었다...(중략)...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은 다양한 정체성들의 혼합체(26쪽)"으로 보아야 옳다. 저자들은 "드래곤볼"의 핵심 캐릭터인 프리더와 그 일당을 '서구 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의 구현자로, 이에 맞서는 사이어인(Saiyan) 베지터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리자로,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일본,' 특히 '일본의 전후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 파악한다. 


주목할 점은, 저자들이 이 만화 캐릭터들이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형성 "과정 "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원자폭탄의 피해자이자 잔혹한 침략자로서의 일본제국주의가 역사적 트라우마,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자기 반성이 충돌하는 그 지독한 다중성을 어떻게 화해시키려해왔는지 그 "과정"을 너무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들이 역사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cultural studies 등 제분야의 관련 자료를 잘 버무리고, 일본과 미국을 위시해 세계 각국에서 체류해본 삶의 경험을 녹여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을 썼기에 독자로서 책 읽다가 'A-ha' 모멘트를 수차례 경험하게 된다. 잔혹한 폭력성을 본성으로 가진 사이어인,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초사이어인'인 손오공이 종국에 프리터와 결전을 벌일 때, 그 사이어인의 본성인 복수심을 일깨워내 싸워 이겼다는 결말은 솔직히 끔찍한 예언같다.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을 펴낸 '도서출판 아이네아스'에서는 이렇게 공저자의 집필의도 핵심을 정리한다. "과연 일본 대중문화의 과거와의 화해 시도가 아시아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 속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10쪽). 출판사 측에서 공저자 두 분과 독자와의 만남을 또 한 번 주선해주시면 좋겠다. 제기한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기에 더욱 여러 번 되묻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눠 탐색해보아야 할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omo religious," "Homo economist,"온갖 "사피엔스"와 "호모Homo" 아류는 배운자들의 과시용 언어유희일까요?  리스트에 자꾸 신조어가 추가되니 어느 시점에서인가 "~ Sapiens" "Homo~" 표현에 식상해졌습니다. 솔직히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도 저자 최재붕 교수(성균관대)가 새로 제시한 단어라고 속단했는데 2015년 "The Economist" 특집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바로 IT기술이 바꾼 새로운 인간형을 칭하는 표현이지요. 




혼밥, 혼술 하더라도 페이스북 친구가 300명, 자연휴양림 찾는 일은 없어도 온라인 게임 속에서 정글과 숲을 누비며 환호하는 포노 사피엔스. 호오가 분명히 갈릴테니, 이를 21세기에 거부할 수 없는 생존환경변화와 함께 올 인류의 변화라고 천명하는 데에는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재붕 교수는 아주 명확한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소위 "스마트폰과 뇌가 동기화 되고 폰 기기를 손으로 삼는 포노 사피엔스가 인류 문명을 새로 쓰고 있으니 대세를 거스르면 폭망한다. 개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수준에서 폭망이 뻔하니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그 물결을 같이 타자! (직접인용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을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라고 깃발을 올려듭니다.

*

저자는 아마도 "X세대"에 속할 연배일듯 한데, "신세대는 이미 구세대"라며 눈개리개 칭칭 머리에 두른 꼰대 취급합니다. 물론 '포노 사피엔스'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억합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요. 저자는 디지털 게임은 사람을 좀비 만드는 정신마약이 아니라 '유희적 인간'에서 스릴과 재미를 주는 신인류의 필수품인데 이를 법규로 규제하려 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롤드컵 결승전에 8000만 명이 모렸다는 데이터를 우리나라국회에 제시한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얘기할 것 같습니다. '그것 봐라, 이렇게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마약이 아니냐.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가슴이 콱 막힙니다. (본문 153쪽)"







국내 최고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이자, 2014년부터 기업, 정부기관, 교육기관 등에서 '포노 사피엔스' 관련 강연만 12,000여회 진행해왔고 현재는 Jtbc프로그램에도 출연한 화려한 약력에 걸맞게『포노 사피엔스』를 통해 저자가 소개하는 예시는 설득력있고도 방대합니다. 우리(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포노 사피엔스 시대, 혁명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지?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와 그 속도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으며 변화를 어떻게 주도할지? 갑질의 시대는 가고 소비자가 왕이자 권력인 온디맨드(on demand) 비즈니스가 왜 살길인지?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주장이 흔들림 없고, 제시하는 대안과 해법도 분명합니다. 

다만, 단순희 '디지털 문명'에도'인의예지'를 갖춘 사람됨됨이가 중요하다는 식의 가벼운 성찰을 더해서는 이 디지털 문명이 낳을(물론 줄인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불평등의 격차, 왜 소비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촉진시켜야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약해질 듯 합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강요된 연결성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싶은 자들을 어떻게 살아야하고 살게 될까요? 남의 이야기가 아니네요. 


"4차 산업혁명" 구구단외듯 단어로만 외웠던, 저같은 초보 독자에게 훌륭한 입문서로 『포노 사피엔스』를 추천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3-0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득권층과 마약업체와의 정경유착을 제대로 근절하지 못하면서 게임을 ‘마약’이라고 규정하는 정부의 태도가 우습네요... ^^;;

2019-03-06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 승. 섭.

재작년,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나니 '김승섭'은 지인도 아니건만 문득 안녕이 궁금하고 그 존재만으로 감사한 이름이 되어 있다. 역시나 김승섭 교수도 이름모를 독자들,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준다. 2018년 출간한 『우리 몸이 세계라면: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면지에 새겨진 그의 서명과 덕담이 왜 이처럼 든든하게 느껴지는지. 또 고맙다. 모르긴 몰라도 최근 타계하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못지 않게 살인적인 스케줄로 하루를 48조각으로 쪼개쓸 분이신데 이처럼 또 책을 안겨주니, 이 얼마나 머리 숙여 인사하고픈 고마움인지......

김승섭 교수는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3년부터 고려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2016, 2017, 2018년 3년 연속 고려대학교에서 최우수 강의상과 연구상을 받았다. 지금은 한국의 Paul Farmer처럼 보이지만, 지금처럼 헌신적이고 소신 세운 학자로서 십년만 활동한다면 그의 이름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알게 되리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교수, 학자들 과반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오는 현실에서 학문유행의 큰 물줄기에도 '본토(?)' 수입산 어류들이 헤엄치는 것은 당연하다.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불평등에 주목한 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김승섭 교수가 이 물줄기에서 변별되는 이유는, 그가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총대를 매고 앞장 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구가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고, 한국의 연구가 한국사회를 고민하지 않는 현실 이면의 배경을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연구자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당연히 권력가 정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미국의 학회를 중심으로, 영어로 쓰이고 유통되는 지식 시장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321쪽

대학이 지금과 같은 지식 생태계를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 인해 어떤 연구자와 어떤 연구가 배제당하고 있는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를 한국어로 고민하고 쓰는 연구자들이 오늘날 대학에서는 가장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특히 한국 사회의 사회적 약자에 관해 연구하는 경우 더욱 더욱 도드라집니다.

같은 책, 327쪽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일하며,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할지 매 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연구주제를 정하고 논문을 쓰고 그 지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나은 선택인지 판단하는 일이 제게는 항상 어렵습니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주목하는 오늘날 대학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몸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환영받지못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같은 책, 328쪽

전작, 『아픔이 길이 된다면』에서 그는 성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같이 비라도 맞겠다"는 표현으로 소신 세운 의료역학자로서의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그는 한결같다. "계속 해보겠습니다"라는 그의 두 마디에 나는 이처럼 부끄럽고 작아만지니, 어떤 속죄가 필요할까? 행동이다.




덧붙여서....

소위 공부 할 줄 아는 사람, 공부를 업삼는 이들은 다 그렇지만 '질문 한 방'을 제대로 날린다. 혹은 좋은 질문을 알아본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는 그 한 방의 좋은 질문들이 연타를 해대니, 행복하게 자극 받아 뺨이 얼얼하다. 예를 들어, "일제 시대 조선인들은 더 건강해졌는가?" "Titanic호 승선자의 사망률을 살펴보면?" "2005 카트리나 홍수 때, 사망자의 지형도는?"

무엇보다, 어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은 '인종주의' 과학에 대한 자료를 늘 (이미 주어진) 서양 역사에서 찾았는데 한국의 학자들이 이미 좋은 성과물을 쌓아가고 있음을 재발견. 더 찾아 읽고 공부해보아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2-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은 책이었어요. 저자의 다짐을 보면서 저도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
 
세계화의 풍경들 - 그림의 창으로 조망하는 세계 경제 2천 년 비주얼 경제사 2
송병건 지음 / 아트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 새벽에 읽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에는 총 54개의 명화가 등장합니다. 어제 오전, 우연히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가 두 시간 만에 읽어낸 『세계화의 풍경들』에도 많은 그림이 소개되지요.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경제사와 연계해 시대상을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 자료라는 목적성이 강해서 굳이 명화가 아니더라도 만평, 캐리커처, 광고 포스터, 설계도면 등을 두루 등장시킨다는 점이지요. 두 책 모두 비주얼 자료들 덕분에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높여준다는 점은 공통되지만요. 하루마에 700페이지 넘게 읽은 셈이라, 등에 통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군요. 그래도 잊지 않게 정리를 해야겠죠?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글을 다듬어서 『세계화의 풍경들』를 펴낸 송병건 교수는 경제학과 학부 소속이었다지만 전공책보다 역사책을 더 즐겨 읽었다네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산업혁명 시기 영국 경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케임브리지 대학에 적을 두고 생활하는 가운데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다녔나 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맙게도, 송병건 교수가 미술관에서 느꼈던 지적 흥분감을 전문지식에 녹여내 말랑말랑하게 전해주니 '경제사'라지만 소화하기가 쉽습니다. 『비주얼 경제사』를 읽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비주얼 경제사2』를 '세계화'라는 키워드 아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려 34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합니다. 1부는 '고대에서 중세' 2부는 '대항해시대와 중상주의 시대' 3부는 '산업혁명의 시대' 4부는 '제국주의 시대' 5부' 세계대전과 자본주의의 황금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5부는 다시 24개의 에세이 형식 경제사 쪽글로 이뤄지는데, "비주얼 자료 하나 + 자료에서 뽑아낸 흥미유발 질문들"로 첫 노크를 합니다. '역사적 상상력이 뭐이더냐, 비주얼 독해력은 더더욱 웬말이냐'하는 무심한 이라도 그림을 보면 흥미가 생기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는 요런저런 답들을 상상하게 될 터입니다. 예를 들어 "노예제와 고대 로마의 몰락" 챕터에서 저자는 찰스 바틀릿(Charles Bartlett, 1860~1940)의 1888년 작품을 소개하며 "이 아이들은 누구일까? 왜 표정에 거부와 불신, 슬픔이 보일까?"를 묻습니다.



이 기골이 장대하지만 수수한 차림의 젊은이는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그 대단한(Great)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네요. 이처럼 떡밥이 맛있게 생겼으니, 경제사 문외한 독자 그 누구라도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얻어가는 게 참 많군요. 저는 이 책 덕분에 'Bull baiting'이라는 잔혹한 동물학대에서 'Bulldog'이 어떻게 쓰였는지, 나아가 산업혁명기 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자원을 활용하여 혁신을 이끌었음을 배웠네요.



송병건 교수는 서문에서 "'세계화'는 지구 곳곳이 인간의 교역과 교류를 통해 점차 가까게 연결되는 과정이다. 간단히 말해 세계가 좁아지는 움직임이다.(8쪽)"이라고 정의하는데요. '낭세녕'이라는 청나라식 이름도 가졌던 이태리 밀라노 출신 화가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건륭제'를 보니 그 연결과 문화적 버무림의 양상을 직관적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조우'라 하든, '정복'이라 하든 서로 다른 이름으로 스스로 인지하던 집단끼리의 만남은 필연 배제, 차별, 구별짓기의 과정을 수반할 텐데요. 저자는 세계화 과정에 수반되었던 이 충돌과 갈등의 모습을 인상적인 비주얼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강렬하게 기억시킵니다. 아래 일러스트레이션은 1904년 영국의 신문에 실렸다고 하는데, 자바 섬에서 실제 있었던 호랑이 사냥을 영국인들에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그려졌겠지요? 다시 말해, 보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피지배자에 대비하여 강인한 제국, 지배자의 모습을 대비시켜 각인시키려는 목적일 것입니다.



작년에 읽은 역사책 중에는 『코르셋과 고래뼈』, 『소비의 역사』가 『비주얼 경제사』에는 못미치더라도 많은 비주얼 자료를 소개하고 있네요. 그 많은 논문들 섭렵하랴, 학술활동하랴, 그 와중에 미술관 및 박물관과 친해서 조금 더 참신하고도 흥미유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대중에게 전하는 이분 학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플러스, 존경의 마음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 18권의 철학·문화·사회·경제 고전을 54점의 그림으로 읽는다
박홍순 지음 / 비아북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읽는데, 수십 페이지를 넘기도록 책 내용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초판인쇄일로 따져보니 40여개월 만에 펼쳐들었는데? 나, 설마 기억력 천재?!' 그럴리가! 실은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교양이 답하다』의 집필방식 덕분에 내용을 잘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저자 박홍순은 '서가명당' 명강사도, 논문이 인용되는 학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화가의 꿈을 키우며 미술을 공부했던 경험을 십분 살려서 고전을 '명화'와 엮어 해석하는 방식을 특화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고전이 갖는 한계를 미술 작품이 보완해준다. 대부분의 고전은 문학작품이 아닌 이상 다루는 내용과 논리적인 형식 덕에 지극히 이성적이다...(중략)...미술 작품을 고전 이해의 동반자로 삼음으로써 우리의 정신과 삶은 더욱 충만한 상태로 향한다." (10쪽) 즉 그림, 그것도 명화를 통해 독자는 활자로 곱씹어 이해해야할 내용을 직관적으로 궁금해하고, 강렬하게 기억하게 된다. 나 역시, 40여개월이 지나도 이 책에서 소개한 명화 50여점을 대부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주장에 동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해하는 "고전"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교양"을 책제목에 내세우는 저자는 과연 어떤 고전을 선별해서 소개할까? 먼저, 저자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빌어 "고전이란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 되기 쉽지만, 실은 향미가 뛰어난 맛있는 요리와 같다고 한다. 또한 고전의 요리법은 하나가 아니기에, 독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을 조리해 먹을 수 있고 저자가 그 막막한 과제풀이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앞서 말한대로, 미술 작품을 안내자 삼는 방식으로. 그렇게 저자는 고전을 "철학, 문화, 사회, 경제" 네 분야, 다시 18개로 압축 선별했다. 순서 없이 18개 고전풀이하는 데 무방한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책머리에"를 들춰보니 제시된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1부 "철학에 길을 묻다"에서는 서양철학에서 '이성'에 대한 관점을 4편의 고전을 내세워 시대별로 정리했다고 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니체, 화이트헤드의 저작이 등장한다. 물론 서양명화와 병렬배치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정신적 열망을 설명하며 박홍순 저자는 "쾌락의 팔 안에서 알키바데스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르뇨, 18c)를 엮어 소개한다.


2부, "문화의 사려 깊은 매력"에서는 인류학자 말리놉스키, 푹스, 발터 벤야민,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에의 작품을 소개한다. 말리놉스키의 가족&친족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루소의 가족그림을, 서구의 도덕성에 정면 도전한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부셰의 그림들을 배치했다. 저자는 중간중간 21세기 한국의 상황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나 저자의 여담을 곁들여, 서구 학자들만의 이론의 향연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3부 "살맛 나는 사회를 위하여"에는 법, 제도, 관료제, 자유, 여가 등 오늘날 사회 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전을 소개한다. 고전읽기를 '지금- 여기' 일상과 연결지으려는 저자의 큰 그림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경제 분야 고전을 다룬 4부, "경제를 생각한다"에서는 로크, 하이에크, 폴라니, 리프킨을 요약본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중간중간 생소한 용어와 뜻풀이가 필요한 부분은 '비아북' 편집실에서 매끈한 방식으로 해결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교양, 미술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를 읽고 나면, 고전을 어떤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요리할지 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아직 못 찾았는데, 최근 읽은 『감염된 독서』의 최영화 저자가 '감염내과 전문의'로서의 렌즈를 특화시켜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방식과 『맛, 그 지적 유혹』의 정소영 저자가 영문학과 미디어 전공을 살려서 음식을 문학작품 속에서 디코딩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빌어와야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2-1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2차 문헌에 있는 문장을 직접 인용하고 번역하지 않는다면, 2차 문헌의 번역본에 있는 문장을 인용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인용문의 출처를 밝히는 게 맞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문장을 인용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그땐 너무 가볍게 생각했는데, 표절로 오해 받아서 혼줄 났습니다. 그 날 이후로 출처 밝히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