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산에 올랐다. 안내판에는 왕복 2시간 코스라는데 어째 모든 이들이 다 나를 지나쳐 올라간다. 전문 산악인 복장을 하신 분들이야 그렇다해도 나보다 한 세대는 족히 더 어르신인 분들도 가뿐한 발걸음으로 저 멀리 앞 서 가신다. 계속 길을 비켜드리면서도 '오늘따라 이상한 걸' 싶다.
이유를 알았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만지고 들여다보다가 못 걸었구나.
산책로 소나무마다 비슷한 높이에 흉터가 깊이 패여 있다. 일제말기 자원수탈로써 일본군이 한국인을 동원해서 송진을 채취시켰다고 한다. 한 그루, 한 그루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애도한다. 이 깊은 흉터를 지닌 나무들을...분노를 삭이느라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왕복 2시간 코스라는 데 올라가는 데만 80분이 걸렸다. 못 본척 하고 지나치기에는, 깊이 패인 나무의 상처들이 딱 내 눈 높이에 있다. 어쩌자고 나는 별 데 다 마음이 아플까.

이 곳의 나무들은 비범한 생김에 고귀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경주 "오릉"의 나무들이다. 나무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대나무 속에서 작은 사슴이 폴폴 날듯이 뛰어 나온다. 저 사슴은 뭘 먹고 살지? 걱정스러워서 매표소에 문의하니 이 곳에서 잘 지낸다고 한다. 우아한 소나무들 속에서 우아하게 뛰노는 사슴.




석가탑의 사자는 한 마리만 남았다 한다. 나머지 세 마리는 일제 시대에 사라졌다고 안내판에 써있다. 허리를 도끼로 베인 나무들을 보고 욱했는데, 한 마리 뿐인 사자상을 보고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