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선언 -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사회를 위한
피터 바잘게트 지음, 박여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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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새 가장 궁금한 두 가지. "왜 자꾸 '수렵채집 사회에서 배우자!'는 건데?"와 "왜 다들 '공감(empathy),' '공감력'하며 야단인데?" 각기 다른 방향의 질문으로 보이지만 큰 지도 위에서는 얽혀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공감"을 검색어로 온라인 서점을 뒤져본다. 2000여 개 콘텐츠가 뜬다.



나는 '공감'이 적어도 한국 사회 출판계에서는 2010년대에서야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공감 선언(원제: The Empathy Instinct)』의 저자인 피터 바젤게트는 (아마도 저자가 속한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 등 구미 사회에서) 이 단어의 사용이 이미 1940년대 급증했다고 본다.

'공감'이라는 용어는 1962년 대중심리학 용어인 '의지력'을 능가했고, 1980년대 '자기통제'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도 훌쩍 뛰어넘었다. (...) 공감 본능은 진정으로 대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보다 나은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감 본능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미래, 30년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제는 공감의 과학이 정책을 주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공감 선언』 338쪽

위 인용문이 저자의 집필 의도, 지향점, 『공감 선언』의 기여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피터 바잘게트는 이 책을 단순히 학술적 차원에서 '공감'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고자 쓴 것도, 실현 가능성 희박하거나 미래형 제안으로서의 주장을 던지려고 쓰지 않았다. "Sir"라는 기사 작위가 말해주듯, 영국 왕실이 인정하는 인사로서의 그 엄청난 (정계, 학계, 재계, 방송계 등) 인맥과 실제 관련 기관들의 수장으로서의 실무 경험에 기반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


피터 바젤게트는 40년 넘게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방송 프로듀서이며 영국 ITV 회장이다. 2013년부터는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영국 홀로코스트 추모 재단(UK Holocaust Memorial Foundation)' 회장직을 겸하며 '공감 본능'을 연구하고, '공감력 있는 시민 육성'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안하고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를 들어, 4장에서는 디지털 디스토피아 시대의 공감 문제, 5장에서는 교도소, 6장에서는 의료기관, 7장에서는 부족주의, 인종주의를 '공감력'으로 극복한 실사례와 방법론을 소개해준다.



9장의 "공감헌장"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인데, 열 개의 강령 중 특히나 "문화예술"의 힘에 주목한 점이 인상깊다.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과 대중문화 장려"하라는 이 강령은 어쩌면 가장 즉각적으로 시도가능하고 효과도 빠를 듯 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예술을 집과 학교, 의과대학, 용양소, 교도소, 갈등 지역 등에 배치하는 것이 대단히 효과적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방법임을 살펴봤다. (...) 하지만 오늘날 학교에서 예술 관련 교육은 교양 과목 정도에 인색하게 배치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실수다. 모든 아이에게서 창의적인 불꽃이 튀어야 하며, 불꽃은 아이들과 아이들을 이어줘야 한다.

『공감선언』 347쪽

인간의 공감본능과 내집단 편향성은 동시에 타집단의 배제, 밀어내기 더 극단적으로는 적대적 폭력을 낳기도 한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대학살, 불편한 목록은 길게 늘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원래 그래'로 모른 척 해야겠는가? 피터 바젤게트는 "No"라며 긍정의 미래를 말한다. 비단 '공감'을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교육계, 문화예술계, 정치계에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어르신들 꼭 『공감 선언』을 읽었으면 한다. 한국형 공감력 증진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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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 -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피곤한 걸까?
나카노 히로미치 지음, 최서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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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 정의야 있겠지만, "건강(health)"이라면 사람마다 꽤 다르게 정의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라기 보다는 "아침에 가뿐히 일어날 수 있고, 뭔가 하고싶다는 활력이 넘치는 상태"로 생각하고 싶다. 『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의 저자인 나카노 히로미치 역시 '피로를 모르고, 활력이 넘치는 상태'를 이상적으로 보는 듯 하다. 


나카로 히로미치는 전문의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유명인사를 고객으로 확보할 정도로 성공한  카이로프랙틱 닥터(DC)라고 한다. 그는 건강검진 결과지에 나온 개별 "병명"에 주목하는 대신, '일상의 피로감'을 강조한다. 노화(aging) 역시 질병이나 장애로서가 아니라, 인체의 자가치유력이 몸의 기능저하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따라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평소 피로감, 권태감 등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목하여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평소에 몸의 기능 운동성, 더 자세히는 유연성(관절의 가동력), 안정성(근육의 강한 정도), 밸런스(움직임의 협조성) 을 향상시켜서 피로는 모르는 몸으로 스스로 만들어가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한 저자의 제안은 첫째, 내 몸 상태를 바로 진단하기. 둘째, 나의 기능 운동성에 알맞은 운동을 찾아서 일상에서 운동을 지속하기, 마지막으로 호흡과 자세 등 일상에서 내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늘 하기로 요약할 수 있다. 『피로를 모르는 최고의 몸』의 저자는 그 동안 많은 고객의 몸을 돌봐온 노하우에 의거해 실제 따라할 수 있는 다양한 생활 속 운동법도 알려준다. 





대단한 도구나 공간을 요구하지 않는 일상의 운동법. 이런 류 건강도서의 마무리가 늘 그러하듯, 문제는 실천이다! 피로감을 무시함으로써 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몸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다리 근육을 움직이고 폐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을 것인가! 또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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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2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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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통이 느슨해지면 죽은 듯이 잠에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통증의 파도가 밀려오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중략)...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얇고 노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순록의 달(Reindeer Moon)'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2편 332~333쪽.

한국에서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많이 읽힌 소설의 클라이맥스 대목이다. 원제 『 Riendeer Moon 』에 등장한 초승달 아래, 홀로 아기를 낳는 주인공 야난의 고독과 생존본능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다. 저 독백을 조아리던 한 사람, 여성, 초산 중인 10대 소녀, 야난의 숨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야난은 그렇게 죽어갔고, 아기는 태어났다.





벚꽃 만개한 4월의 환한 대낮, 스타벅스 매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물을 어찌 억제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다 뜨거운 눈물의 강둑이 몇 번이나 터지려는 걸 어찌 막으랴.

K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짧은 혼절과 진통 주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칼라하리 사막의 니사도,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생명을 낳았어."를 되뇌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진통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런 낭만적 생각을? 에라!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야난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 아기를 낳는 그 장면에서 바로 K가 전해준 그 '짧은 잠과 진통의 반복' 대목이 등장했다. '소설이 아니었구나. 경외했던 것이구나. K는 야난, 아니 생명을 낳고 지켜온 이 땅의 그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격했기에 진통을 감사해하며 견뎠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은 20,000년전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매머드, 여우, 늑대, 호랑이, 순록, 하이에나가 등장하고 파카(기능성 방한 아웃도어가 아니라, Inuit언어에 등장하는 가죽옷의 이름이다)를 입은 수렵채집 부족들이 등장한다. 원서로는 393쪽, 번역판으로는700쪽에 이르며 무려 2만년 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21세기 넷플리스 SF마냥 빠른 전개와 생동감 있는 묘사로 쓰여진 건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인생이력과 관련 있다. 그녀는 부시맨(San族) 탐사대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에(1950~1956) 칼라하리 사막에서 지내며 그 곳 사람들과 자연물,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인류학자로서 그녀는 이 경험에 기반해 『The Old Way』, 『The Harmless People』 등을 썼다. 부시맨이 따뜻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이라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묘사한 수렵채집민들은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견뎌내야하는 지역 사람들인데,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부시맨의 생활양식, 종교의례, 약혼과 결혼, 선물 교환의 규칙 등을 반영해서 상상해냈다.


예를 들어, 이 가계도만 보아도 약혼과 결혼으로서 집단의 연망이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에 어떤 잇점을 가져오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좁은 사회, 면대면 관계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상상한 20000년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체면, 윗 어른에 대한 공경, 서열짓기보다는 공동체성, 공동육아, 연대 등의 정서와 가치가 발달했다. 주인공 야난은 이 사회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한다면 더 충동적이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남편 티무에게 발끈해서 바로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여동생 메리와 함께 집단을 떠나 홀로 이동하는 길을 택한 에피소드가 야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야난은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생존에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고 고난과 마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동생도 살아 남긴다.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페미니즘의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1980년, 90년대에 학술서가 아닌 소설로서 여성의 존엄과 특히 어머니로서의 거룩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야난,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아내로...



스마트폰이나 족보가 없던 20000년 전, 사람들은 피부 냄새와 음성으로 서로를 식별하고 이야기의 타래에 엮어 이름을 기억하고, 황홀경에 이르는 춤을 추어 천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하고자 한다. 마블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유니버스가 아니어도, 이들은 원초적 생명력과 상상력의 힘으로 이 불가해한 우주의 거룩함을 만난다.『세상의 모든 딸들 』을 꼭 여성, 어머니의 시각에서만 읽으려하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 그 거룩한 생존력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를 비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육체성으로 살지만 나는, 너는, 우리는(심지어는 늑대와 순록까지도) 연결되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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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1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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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고통이 느슨해지면 죽은 듯이 잠에 빠지고, 그러다 새로운 통증의 파도가 밀려오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돌아보았다... (중략)...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턱턱 막히는 숨을 참으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멀리서 순록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얇고 노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순록의 달(Reindeer Moon)'이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 2편 332~333쪽.

한국에서는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어, 특히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많이 읽힌 소설의 클라이맥스 대목이다. 원제 『 Riendeer Moon 』에 등장한 초승달 아래, 홀로 아기를 낳는 주인공 야난의 고독과 생존본능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다. 저 독백을 조아리던 한 사람, 여성, 초산 중인 10대 소녀, 야난의 숨은 천천히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야난은 그렇게 죽어갔고, 아기는 태어났다.





벚꽃 만개한 4월의 환한 대낮, 스타벅스 매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물을 어찌 억제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을 읽으며 콧날이 시큰해지다 뜨거운 눈물의 강둑이 몇 번이나 터지려는 걸 어찌 막으랴.

K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다. 그녀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짧은 혼절과 진통 주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칼라하리 사막의 니사도,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렇게 생명을 낳았어."를 되뇌며 감격스러워했다고 한다. '진통이 어마어마하다던데 그런 낭만적 생각을? 에라!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야난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어 아기를 낳는 그 장면에서 바로 K가 전해준 그 '짧은 잠과 진통의 반복' 대목이 등장했다. '소설이 아니었구나. 경외했던 것이구나. K는 야난, 아니 생명을 낳고 지켜온 이 땅의 그 모든 어머니들에게 감격했기에 진통을 감사해하며 견뎠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은 20,000년전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매머드, 여우, 늑대, 호랑이, 순록, 하이에나가 등장하고 파카(기능성 방한 아웃도어가 아니라, Inuit언어에 등장하는 가죽옷의 이름이다)를 입은 수렵채집 부족들이 등장한다. 원서로는 393쪽, 번역판으로는700쪽에 이르며 무려 2만년 전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21세기 넷플리스 SF마냥 빠른 전개와 생동감 있는 묘사로 쓰여진 건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인생이력과 관련 있다. 그녀는 부시맨(San族) 탐사대였던 아버지를 따라 20대에(1950~1956) 칼라하리 사막에서 지내며 그 곳 사람들과 자연물, 동물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인류학자로서 그녀는 이 경험에 기반해 『The Old Way』, 『The Harmless People』 등을 썼다. 부시맨이 따뜻한 지역의 수렵채집민이라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서 묘사한 수렵채집민들은 혹독한 시베리아 추위를 견뎌내야하는 지역 사람들인데, 많은 부분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부시맨의 생활양식, 종교의례, 약혼과 결혼, 선물 교환의 규칙 등을 반영해서 상상해냈다.


예를 들어, 이 가계도만 보아도 약혼과 결혼으로서 집단의 연망이 어떻게 맺어지고 유지되는지 이것이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에 어떤 잇점을 가져오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좁은 사회, 면대면 관계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상상한 20000년전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체면, 윗 어른에 대한 공경, 서열짓기보다는 공동체성, 공동육아, 연대 등의 정서와 가치가 발달했다. 주인공 야난은 이 사회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비한다면 더 충동적이고,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때린 남편 티무에게 발끈해서 바로 이혼을 선언하고, 어린 여동생 메리와 함께 집단을 떠나 홀로 이동하는 길을 택한 에피소드가 야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야난은 어쩌면 겪지 않을 수도 있었을 생존에의 압박을 더 크게 느끼고 고난과 마주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동생도 살아 남긴다.

엘리자베스 토마스는 페미니즘의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던 1980년, 90년대에 학술서가 아닌 소설로서 여성의 존엄과 특히 어머니로서의 거룩함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나보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야난,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아내로...



스마트폰이나 족보가 없던 20000년 전, 사람들은 피부 냄새와 음성으로 서로를 식별하고 이야기의 타래에 엮어 이름을 기억하고, 황홀경에 이르는 춤을 추어 천상의 존재와 소통하고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하고자 한다. 마블에서 이야기하는 다중 유니버스가 아니어도, 이들은 원초적 생명력과 상상력의 힘으로 이 불가해한 우주의 거룩함을 만난다.『세상의 모든 딸들 』을 꼭 여성, 어머니의 시각에서만 읽으려하지 말고 인간의 위대함, 그 거룩한 생존력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읽어 볼 수도 있겠다. 인류학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엘리자베스 토마스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를 비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육체성으로 살지만 나는, 너는, 우리는(심지어는 늑대와 순록까지도) 연결되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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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
유정희 외 지음 / 아이네아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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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ta: Battle Angel" (2018)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극장을 찾았다. 놀랍겠도 Sci-Fi 장르에 심야시간 상영인데도 대다수 관람객이 40~50대로 보였다. 아마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총몽"을 즐겼던 중년이리라.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두 명의 사학자가 함께 썼다기에 짐작했다. 공저자 모두 일본 만화 "드래곤볼"을 읽으며 자란 세대에 속하리라고. 아니나 다를까, 유정희 저자는 이미 초등 6학년 때 '드래곤볼 Z 특별판' 비디오를 빌려다 보았을 정도로 팬이었고, 이후 26년을 숙성시켜 그 감상을 책으로 엮었다 했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전공한 공저자 정은우 역시 '드래곤볼'에 대한 생각의 "똬리를 풀고, 정돈하고, 또 엮(17쪽)"는데 무려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대상을 잘 알고, 주제를 오래 숙고한 만큼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는 지적 희열을 주는 멋진 책이다.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읽다 보면,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귀에 익숙해서 마치 뜻을 아는 듯해도 겉핥기 뿐의 용어..... 하지만 유정희, 정은우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드래곤볼"을 다시 소환하다보면,이 용어들이 어찌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쓰였는지 독자로서 후련함까지 느끼게 된다.




서구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이류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인종주의, 범아시아주의, 일본인의 이중적 정체성, 일본인의 역사의식, 역사적 트라우마, 일본인 기억과 망각의 정치학......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를 읽다 보면,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귀에 익숙해서 마치 뜻을 아는 듯해도 겉핥기 뿐의 용어..... 하지만 유정희, 정은우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드래곤볼"을 다시 소환하다보면,이 용어들이 어찌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쓰였는지 독자로서 후련함까지 느끼게 된다.

기본적으로 공저자는 "드래곤 볼"의 대표저자가 토리아마 아키라이건만, 이 만화가 드러내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전후 역사관은 일본인의 집단의식을 반영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작품을 분석한다. 물론 공저자가 서두부터 명확하게 했지만, "전후 일본인의 역사인식은 일정 부분 단층적일 수밖에 없었다...(중략)...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은 다양한 정체성들의 혼합체(26쪽)"으로 보아야 옳다. 저자들은 "드래곤볼"의 핵심 캐릭터인 프리더와 그 일당을 '서구 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의 구현자로, 이에 맞서는 사이어인(Saiyan) 베지터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리자로,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일본,' 특히 '일본의 전후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 파악한다. 


주목할 점은, 저자들이 이 만화 캐릭터들이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형성 "과정 "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원자폭탄의 피해자이자 잔혹한 침략자로서의 일본제국주의가 역사적 트라우마,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자기 반성이 충돌하는 그 지독한 다중성을 어떻게 화해시키려해왔는지 그 "과정"을 너무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들이 역사학, 인류학, 정신분석학, cultural studies 등 제분야의 관련 자료를 잘 버무리고, 일본과 미국을 위시해 세계 각국에서 체류해본 삶의 경험을 녹여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을 썼기에 독자로서 책 읽다가 'A-ha' 모멘트를 수차례 경험하게 된다. 잔혹한 폭력성을 본성으로 가진 사이어인,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초사이어인'인 손오공이 종국에 프리터와 결전을 벌일 때, 그 사이어인의 본성인 복수심을 일깨워내 싸워 이겼다는 결말은 솔직히 끔찍한 예언같다.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을 펴낸 '도서출판 아이네아스'에서는 이렇게 공저자의 집필의도 핵심을 정리한다. "과연 일본 대중문화의 과거와의 화해 시도가 아시아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 속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10쪽). 출판사 측에서 공저자 두 분과 독자와의 만남을 또 한 번 주선해주시면 좋겠다. 제기한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기에 더욱 여러 번 되묻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눠 탐색해보아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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