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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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나서 번역이 부자연스러운거 같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으로 읽어보니 훨씬 잘 읽히고 이해도 잘 돼서 결국 개정판 새 책을 샀다. 혹시 몰라 킨들 미리보기로 원문도 비교 해봤는데 번역이 많이 아쉽다.
읽으면 어떻게든 읽겠지만 제대로 음미하며 재미있게 읽고 싶은 책이라 미안하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절판된 책이지만 혹시 중고로 구입하실 분들 참고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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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3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01-13 2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저는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술술 읽혔거든요.

coolcat329 2022-01-14 08:21   좋아요 3 | URL
네 개정판이 훨씬 자연스럽고 이해도 잘 돼더라구요. 개정판이 있는지 몰랐어요.ㅠ

바람돌이 2022-01-14 0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니 프루도 읽고싶은 작가인데 기억해둬야겠네요. 그나 저나 저는 이책 영화로만 봤는데 영화도 정말 좋았습니다.

coolcat329 2022-01-14 08:22   좋아요 3 | URL
영화 봤는지 안봤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책 다 읽으면 영화도 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1-28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제작을 영화로 먼저 보고 나중에 책으로 읽었어요.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 수작이에요.

han22598 2022-02-03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창작의 다른 이름인 것 같아요. 영어를 모르던 시절에는 ㅋ 그저 모르는 언어를 옮겨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일 이상이라는 것임을...매우 심하게 깨닫고 있어요..번역가님들에게 무한한 감사를.ㅎ

얄라알라 2022-02-03 18:42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 백석 시인을 주인공 삼은 [일곱 해의 마지막] 읽고 난 후, 백석 시인이 옮겼다는 러시아 문학서들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제2의 창작물일 것 같아서.

han님께서는 번역 능숙하게 하실 것 같아요. ^^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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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는 영국 런던, 인도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인도계 미국작가이다. <축복받은 집>은 그녀가 1999년 출간한 첫 소설집으로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단편소설로는 이례적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으니, 첫 작품으로 굉장히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 <그저 좋은 사람>,<저지대>등을 발표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축복받은 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인도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두 편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인도계 작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소설에는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라히리는 자신의 소설이 '이민자 소설'로 불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글로 쓰기 마련이기에 작품 속 인물들이 인도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미국의 교육을 받고 미국인으로 자란 작가가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겪은 삶을 작품으로 보여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인도인들의 문화와 역사는 낯설지만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낯섦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소통의 어려움과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공허한 관계는 국적과 인종을 떠나 모든 인간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 소설집 속 9편의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부재와 이해심 부족, 그로 인한 갈등과 고독의 문제를 다룬다. 미국 이민자로서 겪는 인도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축복받은 집>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아이를 사산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닌 채 서로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일시적인 문제>, '남편도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는,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p.110)과 역시 아내와 대화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관광 안내인 카파시를 통해 끝내 소통할 수 없는 인간 관계를 보여준 <질병 통역사>, 자신의 몸을 따뜻한 온기로 달아 오르게 했던 "당신은 섹시해요"라는 남자(불륜남)의 말이 사실은 상투적이며 공허한 사랑의 밀어였음을 깨닫는 여자의 이야기 <섹시>, 고국 인도를 떠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여인이 겪는 고독과 어려움을, 혼자서도 잘 지내는 11살 미국 소년과 대비해서 심리적으로 잘 보여준 <센 아주머니의 집>,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혼한 젊은 부부의 갈등과 이해의 어려움을 담은 <축복받은 집>은 인간 관계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두 번째 이야기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에서는 미국에서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세시)의 독립을 위한 내전을 지켜보며 그곳에 두고 온 가족을 걱정하는 피르자다 씨와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인도인 가족의 따뜻한 정이 열 살 소녀의 시선으로 묘사되는데 다 읽고 나면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작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었다.

인도인 남성이 인도, 영국을 거쳐 세 번째 대륙인 미국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힘들지만 평범한 삶이 그것을 겪는 개인에게는 달에 가는 것보다 더 큰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음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데 9편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가 싶다. 


아들이 좌절할 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 아버지가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네가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고 말해준다. 그 우주 비행사들은 영원한 영웅이기는 하지만, 달에 겨우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中 (p.309)


단편 소설집으로 유명한 줌파 라히리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9편의 작품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읽기 전의 기대가 너무나 컸었기에 살짝 그 기대에는 못 미쳤다. 원제는 세 번째 작품 <질병 통역사 Interpreter of Maladies>가 표제작인데, 국내에서는 좀 더 느낌이 좋은 제목인 <축복받은 집>으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인도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인간 관계 속에서 허덕이고 길을 잃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갈등, 그 안에 보이는 작은 희망과 회복을 줌파 라히리만의 매우 차분하고 깔끔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집 <축복받은 집>, 데뷔작이지만 데뷔작 같지 않은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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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3 13: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글 읽어 내려가니 하나하나 다시 생각나요~~
저도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 너무 좋았어요. 인용하신 문장도 넘 좋았고요^^
다시 감동이 밀려옵니다~~

coolcat329 2022-01-13 14:15   좋아요 5 | URL
마지막 이야기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페넬로페님도 좋아하는 이야기군요!

새파랑 2022-01-13 16: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리뷰도 남겼고 좋았었는데 쿨캣님 리뷰 읽으니 조금씩 기억이 나네요~!! 약간 낯선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 다시 읽어보고 싶어 지네요~!!

coolcat329 2022-01-13 16:35   좋아요 4 | URL
네~단편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또 새롭고 좋더라구요~새파랑님은 줌파 라히리 많이 읽으셨죠? 저는 이제서야 읽었네요😚

새파랑 2022-01-13 16:38   좋아요 4 | URL
제가 찾아보니 저도 세권밖에 안읽었더라구요 😅
<그저 좋은 사람>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ㅋ

mini74 2022-01-13 2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작가분 다른 책들 찾아봤던 기억 납니다. 묘하게 정서가 닮은 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1-14 09:34   좋아요 2 | URL
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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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 존 파울스(John Fowles 1926~2005)는 1926년 영국 남부 에섹스(Essex) 주의 해안 도시 리온씨(Leigh-on-Sea)에서 태어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종전 후 옥스포드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교사로 일했고, 1952년 귀국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3년 발표한 <콜렉터>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파울스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주었고, 1966년 발표한 <마법사>는 '히피 세대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파울스는 런던을 떠나 영국 남서부 라임 레지스(Lyme Regis) 지방으로 이주하여 글쓰기에 전념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의 최고의 작품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1969년 발표한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파울스의 모든 소설들 가운데 가장 큰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전후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불리며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1981년에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대영제국이 가장 번영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867년 3월, 영국 남서부 라임 마을, 춥고 세찬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침, 귀족 가문의 찰스 스미스슨은 약혼녀이자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인 어니스티나 프리먼과 함께 성벽을 따라 걷다가 방파제 끝, 세찬 바람 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라 우드러프라는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찰스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자신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여성이라면 얌전하고 순종적이며 다소곳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시대'에 그녀의 얼굴은 자신을 찔러 죽이는 '창'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그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찰스는 아마추어 생물학자로서 화석을 채집하기 위해 외진 숲을 돌아 다니다 사라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몇 번의 만남과 마을의 소문을 통해 사라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 사연이란, 어느 날 폭풍으로 난파된 프랑스 선박이 근처 해안으로 표류해 오고, 마을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던 사라는 구조된 프랑스 중위를 간호하게 되었는데, 그 프랑스 장교와 부도덕한 밀애를 나눴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정조를 잃고 실연당한 여자로 생각, 심지어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지만 사라는 그런 주위의 비난은 무시한 채 스스로 '남에게 따돌림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던 것.


"전 수치심과 결혼했어요. (...)어떤 모욕이나 비난도 저를 자극할 수 없어요. 그 경계를 넘어선 곳에 저 자신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전 아무것도 아니고, 이젠 더 이상 인간도 아니에요. 그저 프랑스 중위의 창녀일 뿐......" (p.231)


찰스는 이런 사라를 보며 연민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도움을 주겠으니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제안하지만 사라는 이곳을 떠나는 것은 수치심과도 결별하는 일이 된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찰스가 새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이며 거듭 설득하자 사라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찰스는 가엾은 여인에게 자신이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과 함께 '자유 의지'를 운운하며 그녀와의 사적인 만남이 한 순간의 불장난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도움을 주고 받으며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일단락 된 듯 보이는데, 찰스가 백부로부터 호출을 받고 잠시 라임을 떠난 사이 사라는 사라지고 설상가상으로 찰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던 백부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어 저택과 작위를 상속 받지 못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돈만 많은 집안 딸 답게 약혼녀 어니스티나가 보여주는 숙녀답지 않은 태도는 찰스를 실망시키고 사라가 남겨놓고 간 편지는 찰스를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간청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 주세요. 오늘 오후와 내일 아침에 기다리겠습니다. 안 오시면,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p.269)


책을 읽다보면 전지적 화자는 찰스의 행동과 생각을 좇아갈 뿐 사라의 내면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사라에 대해 계속 의문이 생긴다. '이 여자는 왜 이러는 걸까? 이상한 여자네...수상하네...'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찰스는 사라에게 끌리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체면, 약혼녀 어니스티나를 생각해서 사라를 이성적으로 멀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온 사라의 존재를 감정적으로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다. 찰스는 사라의 부탁대로 그녀를 만나러 가고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찰스가 자신의 실존적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설 맨 앞에 '모든 해방은 인간 세계의 회복이며 인간 자신에 대한 인간관계의 회복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소설 전체의 제사(epigraph)로 씀으로써, 이 소설의 주제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라를 만나기 전 찰스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였다. 일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적당한 교양과 과학적 지식까지 겸비한, 거기다 신흥 부유층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재산도 더 불릴 수 있는 그야말로 미래가 창창한 그런 신사였다. 

그러나 우연히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찰스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낡고 진부한 신사계급의 껍질이 깨지는 것을 경험한다. 

찰스는 결국 파혼까지 해가며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사랑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랑이기에 그에 따른 댓가를 톡톡히 치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낡은 사회적 관습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과정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실존주의와도 연결된다.


이 소설은 1867년의 이야기를 1967년에 살고 있는 화자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갑자기 작가가 일인칭 시점으로 개입하는데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스티나는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그녀는 1846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던 날 세상을 떠났다.(p.40)]


[나는 모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상상이다. 내가 창조한 인물들은 내 마음 바깥에 존재한 적이 없다.(...) 물론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아는 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알랭 로브그리예와 롤랑 바르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p.128)]


1876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히틀러가 나오고 롤랑 바르트가 나온다. 또한 갑자기 일인칭 '나'가 불쑥 나와 소설의 이야기로부터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이런 서술 방식은 소설 내내 계속 된다. 

급기야 소설 후반부에 가면 작가가 소설 속 인물로 두 번이나 등장, 기존 소설의 형식을 벗어난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너를 이용해 먹을 수 있을까? 지금 너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은 바로 전지전능한 신-그런 불합리한 존재가 있다면-의 시선이다. 우리가 흔히 신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야비하고 의심 많은(누보로망 이론가들이 지적했듯이) 도덕적 특질을 가진 시선이다. 이 시선을 나는 찰스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그 사내의 얼굴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그 사내의 얼굴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내가 바로 그 사내라는 것을 인정하겠다.(p.526)]


이어서 등장 인물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한 가지 결과를 작가가 정하지 않고 두 가지 결말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총 세 가지 결말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찰스의 상상이고 나머지 두 개는 위에서 말한 찰스가 처한 딜레마를 아예 없애고 두 가지 결말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왜 마지막 한 가지 결말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결말을 제시하는 소설을 썼을까? 

그것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아닌지, 또한 소설 속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로만 한정하지 말고 현대까지 연결되는 인간 실존의 문제임을 이런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정말 많은 주제와 빅토리아 시대 충돌하던 가치관 등을 다루면서 즐거운 책읽기를 선사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다윈의 진화론, 매튜 아널드의 실존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재구성한 작가의 글을 내 지적 수준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방대한 지식이 집약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무엇을 써야 하나, 참 힘들었다. 작가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외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머리로 흡수하여 글로 정리하려니 참 내 능력으로는 벅찼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지적이고 실험적인 면에서)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 텍스트이자 전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있었고, 존 파울스의 다른 책들을 다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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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1-07 2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디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오셨군요!
<마법사> 절대 놓치지 마세요. 명작입니다.

coolcat329 2022-01-07 22:43   좋아요 3 | URL
네~~정말 신박한 소설을 만났습니다.
<마법사> 사겠습니다. 골드문트님이 극찬하신 글 읽은 기억이 나네요.
편한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 파울스 소설 직접 읽으신 coolcat님께서 보람느끼셨다는 말씀을 리뷰 후반부에서 보니, 아주 공감됩니다. 깊이 읽으셨기 때문에 더 보람있으시겠어요.

저는 희미하게 제목만 들어본 작품은 coolcat님 덕분에 줄거리 알아가네요.

방금 전 본 <Don‘t look up>에서의 메릴 스트립도 굉장히 카리스마 뿜뿜 멋진데 1981년 영화에서는 또 다른 매력도 있겠어요^^

coolcat329 2022-01-07 22:56   좋아요 3 | URL
소피의 선택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옛날 메릴 스트립 정말 아름다워요.
이 책 절판됐던데 현대 고전인만큼 개정판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방금 돈룩업 보셨군요. 메릴 스트립도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더 보고 싶네요~^^
북사랑님 좋은 밤 되세요~

얄라알라 2022-01-07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돈룩업 최고네요^^ 고양이라디오님 페이퍼 읽고,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지금 감동먹고 기후 위기 책 뽑아왔어요. 결국 헐리우드판 그레타 툰베리 영화인가? 하면서. coolcat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람돌이 2022-01-08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열린책들 세계문학판으로 다시 나와있어요. 저도 보고싶어서 검색해보니 나오네요. 같은 역자인걸로 봐서 개정판인지 아니면 세계문학전집으로 넣으면서 판형을 바꾼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책이 계속 나오는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저도 존 파울스의 세계로 들어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

coolcat329 2022-01-08 11:53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열린책들세계문학 상,하권으로 나눠서 2009년인지 개정판이 있긴한데 한 권으로 다시 나오면 좋을거 같아요~^^

새파랑 2022-01-08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거 같은데 들어가보니 품절이라는 ㅜㅜ 그런데 바람돌이님 답글보니 개정판이 있나 보네요 ^^ 사랑이야기에 다양한 결말이라니 재미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1-08 11:56   좋아요 2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
사랑이야기에다 빅토리아시대 공부도 됩니다~^^

coolcat329 2022-01-08 11:58   좋아요 3 | URL
상,하권으로 있어요~^^사랑이야기 외에 빅토리아 시대 공부도 된답니다~^^

mini74 2022-02-10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캣님 글 읽고 영화 찾아서 본 ㅎㅎ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2-10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 샀어요 ㅋ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ㅎㅎ 축하드려요~!!

coolcat329 2022-02-11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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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p.335,336)


올리브가 돌아왔다. 2008년 발표하여 이듬해 퓰리처 상을 받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이 11년만에 나온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미국 메인 주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중년의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작소설이다. 학교 수학교사인 중년의 올리브가 약사인 남편 헨리와 함께 외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는 것을 시작으로 아들의 결혼과 이혼, 애 둘 딸린 여자와의 재혼을 멀리서 지켜보며 부모로서 외로움을 느낄 무렵,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 헨리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결국엔 사별하기까지의 20여 년의 시간을 13편의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속편 <다시, 올리브>도 역시 1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편 <올리브 키터리지>가 남편인 헨리의 이야기 ('약국')로 시작했듯이, <다시, 올리브>도 두 번째 남편이 될 잭 케니슨의 이야기('단속')로 시작된다. 


어느 덧 70대 중반이 된 올리브. 전편에서 남편 헨리가 죽고 뉴욕에 사는 아들 크리스토퍼와는 여전히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런 올리브에게 아내를 잃고 역시 외로움에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잭 케니슨이 다가오고 두 사람은 재혼을 한다. 다음은 잭 케니슨이 올리브에게 청혼하는 장면인데, 좋게 말해 올리브가 얼마나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맙소사, 올리브, 당신은 정말 까다로운 여자예요. 더럽게 까다로운 여자. 젠장, 그런데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괜찮으면 올리브, 나하고 있을 땐 조금만 덜 올리브가 되면 좋겠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땐 조금 더 올리브가 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시인' 中 (p.336)]


<다시, 올리브>에는 올리브를 중심으로 전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늙어감과 죽음'이다. 

올리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제자에게 자신도 죽음이 무섭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겠지만, 신디.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 - '햇빛' 中 (p.207)]


또한 82살의 올리브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제자에겐 나이를 먹으면 어떤 기분인지 말한다.


["나이가 들면 투명인간이 돼.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유를 주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는 말이야. 거기에 뭔가 자유를 주는 측면이 있지" -'시인' 中 (p.324,325)]


늙으면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올리브의 말은 삶을 초월한 노인의 말 같으면서도 쓸쓸하게 들린다. 더이상 내가 아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할 기력마저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슬퍼하기엔 남은 생이 너무 짧은 것일까? 아마도 처음엔 올리브도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에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8년 간 결혼 생활을 한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정말로 혼자가 된 올리브는 이런 현실을 슬퍼하기 보다는 노년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올리브는 두 번째 남편 잭과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헨리 생각을 한다. 헨리가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첫 번째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지만 자신의 그런 마음을 헨리는 영영 알 수가 없으니 괴롭고 힘들다.


"내가 별로 잘해주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지금 마음 아픈 거고. 정말로 마음이 아파. 요즘 이따금-드물게,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따금-내가 인간으로서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 헨리가 내게도 그런 모습을 전혀 못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로워." -'햇빛' 中 (p.205)


올리브의 이 고백이 나는 정말 너무나 슬펐다. 올리브가 헨리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던가. HBO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면 올리브가 얼마나 집안 분위기를 자기 맘대로 엉망으로 만들었는지, (아, 그 숨막히는 식사 장면!)  또한 헨리에게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근데 그런 올리브가 지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 문병을 가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올리브 성격 상 대화 상대도 없고 전 남편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을 잭에게 말 할 수도 없으니 아픈 옛 제자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또 다시 후회하고 슬퍼하고 뉘우치고 또 다시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올리브를 비롯한 <다시, 올리브>속 인물들은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삶의 상처와 결핍을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방황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서 크게 엇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들이 인간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인생에 있어서 값지고 소중한 것들은 그 존재를 깨닫기 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어쩌면 모든 인간이 지닌 슬픔의 근원이 아닌가도 싶다.


잭도 떠나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극적으로 살아난 올리브는 노인 거주 단지로 거처를 옮긴다. 올리브는 이제 끝이 다가왔음을 안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삶을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헨리의 다정한 눈빛, 잭의 영리한 미소, '심장의 바늘'인 아들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와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으나 헨리와 잭, 두 남자의 사랑을 받은 올리브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여자였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지난 삶을 글로 남기려는 올리브는 다음과 같이 타자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친구 이저벨에게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p.460)


올리브는 자기가 누구였는지 깨닫고 세상을 떠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지난 삶을 되돌아 보고 기록하면서 조금씩 후회하고 성찰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가지 않을까?

곧 2월이 올텐데 아마도 올리브의 이 말이 귓가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쩜, 나는 늘 2월의 햇빛을 사랑했어. 2월의 저 햇빛 좀 봐."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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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3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도 좋았고 드라마속 여주가 상상한 올리브보다 조금 날씬하긴 하지만 눈빛이며 참 좋았어요 ~ 쿨캣님 글 읽으니 그때 느낌이 새록새록, 다시 꺼내읽고 싶어집니다 ~

coolcat329 2022-01-04 11:32   좋아요 2 | URL
올리브 발이 275죠 ㅎ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를 너무 잘 했죠?
이 책은 1년 후 다시 매일 한 편씩 읽어봐도 좋을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04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리뷰를 보니 올리브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막 나네요. 저는 올리브의 그 평범함이 진짜 매력적이더라구요. 다들 실수하고 후회하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그런데 또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했던 올리브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모습이어서 더 공감이 많이 갔던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1-04 11:38   좋아요 2 | URL
네 올리브에게 제 모습도 보여서 뜨끔했어요. ㅎㅎ
앞으로 늙어갈 제 자신을 그리며 읽으니 더 와 닿았습니다. 바람돌이님도 꼭 읽어보셔요~
 

2021년을 마무리하며 올해 읽은 책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올해는 참으로 내 수준을 넘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읽었다. 

좀 더 많은 책을 못 읽은 게 이맘때가 되면 늘 아쉽지만 그래도 올해는 거의 모든 작품이 좋았기에 만족한다. 그 중 여러가지 이유로 인상깊었던 책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내심과 싸워 이긴 책


     

 














7월 한 여름에 읽었다. 정말 읽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다. 재밌는 책도 아니었지만 올 여름은 이상하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독후감도 길게 쓰지 못했다. 

헤세가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그의 사상을  집대성 한 작품으로 전설적인 유리알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 50페이지의 서문이 쥐약인데 이 부분만 넘기면 그래도 읽을 만 하지만 그래도 재밌지는 않다. 1946년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작품이다.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읽으면서 신 났던 책

















드디어 나도 <백년의 고독>을 읽는구나! 읽으면서 너무나 즐거웠던 책이다.

읽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웬걸,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야기, 긴 호흡의 문체, 헷갈리는 이름 등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조금 더 집중하고 정신만 차린다면 이 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다. 특히 1권 200쪽의 장남 호세 아르까디오가 죽고 그가 흘리는 피가 온 마을을 돌아 엄마인 우르술라가 있는 부엌까지 흘러오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웃기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웃긴 책















표지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한명인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이다. 다른 곳에서 프로필 사진으로도 사용 중이다.

이 못된 놈이 쏟아내는 독설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이 소설로 1981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는데, 특이한 점은 이 소설이 작가 사후 11년 만에 출간, 이듬해에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웃기면서도 슬픈 이유는 32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작가의 우울과 슬픔이 이그네이셔스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 

나는 이 책을 주변의 책 읽는 사람들 몇몇에게 추천했는데 아...다들 반응이 별로이다. ㅠㅠ

그 중에는 이그네이셔스의 수다를 견딜 수 없어 읽다가 포기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던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 책도 웃긴데 조금 지저분하고 노골적이라 깔끔하신 분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화가 펼쳐 보이는 900페이지에 걸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그 기막힌 이야기의 힘은 대단하다. 

어쩜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나, 역시 중국인들, 중국작가답다! 

이 소설의 매력은 비극을 희극적으로 그리면서도 또 그 웃음 속에 눈물이 묻어나게 한다는 점.



▶올해의 작가 '조지프 콘래드'의 책

















올해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작가는 조지프 콘래드 (Joseph Conrad 1857~1924)이다.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음은 물론 너무나 놀라운 삶을 산 작가에게 묘하게 끌렸다. 러시아 치하 독립운동을 한 부모, 유배생활, 부모의 죽음을 겪고 외삼촌 보호 하에 있다가 16살에 폴란드를 떠나 20년간 바다에서 선원 생활, 30대 후반에 세 번째 언어인 영어로 소설을 써 세계적인 작가가 된 조지프 콘래드! 변방 폴란드 출신으로 늘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그가 영어로 글을 쓰면서 토마스 만, 헤밍웨이, 포크너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것은 바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언어가 아닌 남의 언어로 쓴 그의 글은 진지하고 심각하며 심오하다. 비록 원서로 읽지는 못했지만 번역된 책으로도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썼는지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콘래드에게 매료된 이유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















'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p.597)

이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미대륙에서 사라져가는 '마지막 3퍼센트'의 원시림을 지키고자 모인 아홉 명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간이 알지 못하는 나무들에 관한 경이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간은 숲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무는 인간이 쓰고 버리는 작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며, 암울한 미래를 위한 희망이고 무엇보다 신비로운 존재이다. 이 책을 읽고 밖에 나가 나무를 보면 나무가 나에게 향기로 말을 건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읽기 쉽지 않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정말 보람있었던 책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1933년부터 1945년 동안 나치 독일과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역사를 다룬다. '피에 젖은 땅'은 폴란드, 발트 연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소련의 서쪽 변방지대를 이르는 땅을 '지칭하는 말로 영어로 'Bloodlands'라 한다. 이 땅에서 12년 동안 약 1400만 명의 사람들이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절반은 굶어 죽었다. 특히 나치 독일이 유럽에서 저지른 학살은 많이 알려진 반면 스탈린이 소련 내부에서 벌인 학살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 가려진 진실을 자세히 보여준다. 두 독재자가 저지른 범죄가 어떻게 상호작용 했는지 방대한 자료와 연구로 그 실상을 생생하게 파헤친 <피에 젖은 땅>! 정말 돈이 안 아깝고 눈에서 어떤 막이 제거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감사한 책















단편 소설을 좋아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올해 <그레이엄 그린> 단편집을 읽고 단편이 싫어졌었다. 53편의 이야기 중 거의 반을 이해 못했던거 같다. 당분간 단편을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예전에 읽다 만 트레버의 단편이 눈에 들어왔고 하루에 한 편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편을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다. 23편의 이야기가 다 내 주변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그런 안타까우면서도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 절망, 후회, 슬픔을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트레버의 글에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있다. 



이런 페이퍼 처음 써 보는데 '아 내가 이 책도 읽었었구나...'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니 좋다. 올해 80여 권의 책을 읽었는데 내년에는 100권 이상을 읽고 싶다. 북플 이웃님들 올해도 많이 배웠고 즐거웠습니다. 님들을 만나서 제 삶이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몰라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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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2-31 12: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엄 그린> 단편집을 읽고 단편이 싫어졌었다.˝ 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을 읽고 그레이엄 그린이 싫어졌는데 ㅋㅋㅋㅋ 그린도 참 재주꾼이네요? ㅋㅋㅋㅋㅋ

내년에는 위화의 <형제>에 도전해볼까 싶어지네요! ㅎㅎ

coolcat329 2021-12-31 14:50   좋아요 2 | URL
이해를 못하니 자연히 싫어지더라구요.ㅎ
<형제>는 아래 폴스타프님 말씀대로 비위가 약하시면 조금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지만 잠자냥님은 더한 것도 많이 읽으셨으니~^^

새파랑 2021-12-31 12: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중에 네권 읽었네요~! 조셉 콘래드 저도 올해 접했는데 완전 좋더라구요. 암흑의 핵심은 제 인생책중 하나로~!! 저도 비밀요원은 곧 읽어보겠습니다~!!

쿨캣님 올 한해 독서에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도 같이 화이팅 해요 ^^

coolcat329 2021-12-31 14:54   좋아요 2 | URL
콘래드 좋으셨군요~^^비밀 요원도 좋아하실거에요.

올해 새파랑님 알게 되서 자극도 받고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즐겁게 만나길요~

미미 2021-12-31 13: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피에젖은땅>저도 올해의 책 중 하나예요! 연말에 이렇게 정리해보고 서로 공유하며 곱씹는것 너무 행복한일입니다ㅎㅎ

coolcat329 2021-12-31 14:55   좋아요 3 | URL
이런 글 처음 써 보는데 나름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라 좋네요.
미미님 늘 북플의 활력이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1-12-31 13:5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유리알 유희>가 나이 들어 유일하게, 근사하게 읽은 헤세인데요. ㅋㅋㅋ 헤세는 10대에 읽어야 한다고 믿는 인간이라서요. 근데 10대에 <유리알 유희> 읽은 큰 아이는 제일 재미 없었던 헤세라고 하더군요. 대빵 웃겼습니다. ㅋㅋㅋㅋ
잠자냥님, <형제>는 일단 모옌 <개구락지>부터 읽어보시고 마음에 들면 시작하시지요? ㅋㅋㅋ 쿨캣 님 말마따나 좀 지저분한 게 자주 나와서 말입죠. ㅋㅋㅋ 귀엽게 지저분하긴 합니다만.

coolcat329 2021-12-31 15:01   좋아요 3 | URL
10대에 이 책을 읽다니 아드님도 대단하네요.
제 글을 다시 보니 유리알 유희 읽지 말라는 글 같아서 고치고 싶어지네요. 당시 저의 상태가 문제였는데 말이죠. ‘근사한‘ 책 저도 깊이 동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12-31 13: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생때 유희알 유희 읽다 던져 버렸어요. 지금 읽어도 분명 어려울 것 같아요. 백년의 고독은 2월에 읽을 예정이고 오버스토리 구비되어 있습니다~~
조셉 콘래드는 내년에 꼭 읽어볼께요.
쿨캣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olcat329 2021-12-31 15:04   좋아요 3 | URL
저도 읽었으니 페넬로페님 문제 없습니다. 다만 초반 50페이지 서문만 통과하시길요~~
내년에 좋은 책 많이 준비하셨군요. 올해 페넬로페님 만나서 좋았습니다. 내년도 즐거운 독서 화이팅!

mini74 2021-12-31 14: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피에 젖은 땅~~ 저도 넘 좋았어요 인내심과 싸워 이긴 책 ㅎㅎ 전 잠시 인내심과 화해하고 덮어놓은 책들이 좀 되네요 ㅎㅎ 쿨캣님 즐거운 연말 새해 보내세요 ~

잠자냥 2021-12-31 14:22   좋아요 3 | URL
미니 님 <비에 젖은 땅> 하니까 완전 다른 책 같아요. ㅋㅋㅋㅋ 뭔가 우수에 찬 연인들 나오는 책 같음. 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12-31 14:27   좋아요 3 | URL
헉 오타 고쳤는데 반영이 안되나봐요 ㅠㅠ 폰으로 쓰니까 ㅔ ㅐ 등 온갖 오타가 난무합니다 ㅠㅠ 그래도 자냥님 웃으셨다니 뭐 ㅎㅎㅎ제가 북플계 오타의 왕 아닐까합니다 ~~

coolcat329 2021-12-31 15:09   좋아요 2 | URL
네 올해 참 좋은 책들을 만났어요. 다 북플 이웃님들 만나 알게 된 책들입니다. 미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olcat329 2021-12-31 15:11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정말 그러네요! ㅋㅋ

han22598 2021-12-31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버 스토리...세상사람들 중에 저는 포함이 못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여름에 읽다 포기한 기억에 ㅋㅋㅋ

그래도 이런거 머리속에 깊게 남아서, 몇년이 지난면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합니다. ㅎㅎ
백년의 고독이 잼나셨다는 리뷰가 훅 들어오네요. 2022 리딩 리스트에 넣어두겠습니다.
결산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coolcat329 2022-01-01 15:01   좋아요 2 | URL
책도 나의 당시 컨디션과 날씨 등 영향을 받더라구요. 모든게 최고로 맞아떨어질 때 나의 북리스트에도 오르는게 아닐까 싶어요.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셔요~😉

얄라알라 2022-01-01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coolcat님께서 강력 밀어주시니, 강력 담아갑니다!

coolcat329 2022-01-07 22:48   좋아요 0 | URL
네~~잘 읽히는 책은 아닌데 읽고 나면 정말 겸손해져야겠다, 숙연해지는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1-02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백년의 고독, 을 안 읽었으면 어쩔 뻔~~~, 이중 그거 하나 완독했네요.ㅋㅋ

coolcat329 2022-01-07 22:47   좋아요 0 | URL
오 <백년의 고독> 넘 좋죠!

scott 2022-01-07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켓님 이달의 당선 추카!! ✌관왕!^^

새파랑 2022-01-0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의 어마어마한 21년 리스트 다 다시 담아야 겠어요 ㅋ 당선 축하드려요 ^^

mini74 2022-01-07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 좋았던 리뷰 역시!!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2-01-07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일이! 부끄럽습니다. 스콧님, 새파랑님, 미니님 감사합니다. 님들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