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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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2020년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의 5일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래퍼처럼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 내내. 나는 한 직장에서 8년간 일을 했다.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12월 9일까지 밖에는 일을 못한다. 문을 닫는 것이다.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자 합의라는 말이 나왔다. 최소를 요구했는데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봤다. 와. 유튜브는 최고다. 알기 쉽게 법 조항을 설명해 준다.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이해가 안 되면 돌려볼 수도 있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들었다. 나는 잘 듣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나와 있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김민정 시인의 질문에 김영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中에서)


시작하자마자 헛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일단 들었다. 왜냐? 내가 그동안 한 짓이라곤 책을 읽는 것 밖에는 없었으니까. 자나 깨나 읽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자다 일어나서 옆에 놓아둔 전자책을 읽었다. 그러곤 다시 잤다. 일어나면 다른 편에 놓아둔 종이책을 읽는다. 내용이 섞이든 말든. 시간을 보내는 유일무이한 나의 취미 독서. 그러다 보니 나는 김영민 교수가 말하는 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23일부터 27일까지 내가 읽은 책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칼럼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점잖은데 약간의 B급 유머가 곁들인 그의 칼럼과 영화 평론,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전부 이해했다면 거짓말이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받아들이며 읽었다.


책 바깥의 세계는 치열했고 거짓말과 협잡과 감정싸움, 치졸하게 서로를 공격하는 그야말로 총만 안 들었지 전쟁터 같았으니까. 이런 문장이 남았다.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와우. 뻔한 수사로 쓰였는데 가슴을 후벼판다. 요 며칠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거나 희망 따윈 개나 줘버려 같은 회의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니.


희망 대신 절망을 한 아름 돌아온 밤에 저 문장을 읽고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다시 가슴에 희망을 품은 채로. 그리고 이런 글.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과 악의 비판자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 악을 요청한다. 상대가 나쁘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비판하는 자신은 너무나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中에서)


나는 책을 오랫동안 읽었음에도 인간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관계를 책으로 배웠어요,랄까. 악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악인이 아니라는 것. 나쁜 놈 옆에 더 나쁜 놈이 있다는 것. 악인들의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한심하고 뻔뻔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옆에 있는 놈을 까대며 헐뜯고 비방하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까지 꺼내 놓는 악인. 피해자 코스프레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이게 대체 무슨 글이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쓴 리뷰냐. 리뷰를 가장한 푸념이냐. 하겠지만. 몰라. 나도 모른다. 대체 이 글의 주제와 목적은 무엇인지. 그저 타인에게 내 의견을 처음으로 강한 어조로 피력한 시간에 읽은 책이 하필이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여서 김영민은 교수인데 교수답지 않은 깨 발랄하고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글을 써서 좋다는 것을 밝혀두는 것으로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을 마칠까 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집밖에 나가지 않고 책만 읽었던 나의 시간은 축복이었구나. 헛소리와 거짓으로 점철된 서사를 파괴할 수 있었던 건 책 읽기로 단련된 경청의 자세와 문어체로 말하는 능력이었다. 죽음과 함께 하는 게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쉽게 함부로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리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저녁에는 희망을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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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아주 보통의 글쓰기 1
김미희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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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긴박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나. 대학도 나오고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모르는 것투성이다. 상관없나? 대학과 책은. 경험의 차이인가. 세세하게 밝힐 수 없지만(어느 정도 일이 끝나고 해결점이 보이면 전부 글로 써서 알리리라.) 복잡해 보이는 일을 겪게 될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책을 읽자. 계속 일에 매달리다 보면 불안만 가중되니까. 김미희의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어지러운 마음을 파고들었다. 걱정 마. 당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준다. 친엄마와 헤어져 새엄마와 술에 빠진 아빠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림 작가 김미희. 책은 장례식장에 가져갈 남편의 사진을 고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장암 3기였던 남편은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반복했다.


어린 아들이 있다. 아이를 낳고 1년 뒤에 병이 발견됐다. 수술과 치료, 재활을 하면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림을 그리던 남편은 내내 누워 있게 된다. 그전에는 기운을 차려서 그림 작업을 하던 남편이었다. 항암을 하면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남편이자 친구, 애인, 동료였던 박현수를 기억하며 써 내려간 책이다.


김미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더듬어 나간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소통을 시작한다. 술에 빠져 살며 인생을 낭비한 아버지. 미싱사로 일하며 친자식도 아닌데 자신과 동생을 키워낸 새엄마. 과장된 슬픔과 비애를 표출하지 않은 채 과거의 기억을 들려준다. 이제 좀 살만할 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전세 자금 대출로 집도 마련했는데 덜컥 남편이 아픈 현재.


팔자가 사납다는 말로 한 사람의 삶을 뭉뚱그려 요약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증명한다. 하늘로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들. 그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건 어렵다. 그저 손을 잡고 살아가는 일로 아이를 지켜주기로 한다. 오늘을 살면 내일이 있음을 알려주면서. 책의 후반부에는 '남편의 수술부터 사별 후 1년까지 쓴 일기'가 실려 있다.


내내 힘들지 않다. 계속된 고통에 휩싸여 살아가지도 않는다. 아픈 이의 머리를 쓸어 주고 반찬을 하고 어떻게든 더 먹이려고 기를 쓰는 시간. 웃을 땐 웃고 울 땐 울면서 소중한 이와 함께 살아갔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썼다. 글을 쓰면서 독을 풀어 냈다고 밝힌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던 순간을 글로 썼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나를 지켜내기 위한, 글쓰기.


쓰겠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야 한다. 쓰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버틸 수 있는 힘을 내일로 보내야 한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살아내야 한다. 엉망으로 살지 않았다고 먼저 간 이에게 말하기 위해 쓰겠다. 그렇게 살아가겠다. 어제 운 나를 오늘의 내가 눈물을 닦아주는 일. 쓰는 자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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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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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이란 인물들의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 아닐까. 위기에 빠진 그들이 제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는 소설. 허무에 절망에 잠식되지 말고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오늘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비는 소설. 소설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기어이 나의 현실을 보고야 마는 소설. 그래서 더욱 애틋한 기분이 되어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


여기 있다.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 그렇다. 한 손에 꼭 쥐고 읽을 수 있는 작고 귀여운 소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자리에서 홀라당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다. 읽어야 할 이야기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읽고야 만다. 회사를 퇴직한 성오 씨가 아내 대신 녹색 어머니회에 나가 대학 때 잠깐 연애한 여인을 재회하는 이야기 「녹색 재회」를 시작으로 『누가 봐도 연애소설』에는 사연 많은 사람들의 짠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물 떡볶이를 좋아하는 소박한 식성을 가진 이들로부터 연애에 성공해볼까 강아지를 분양받는데 도리어 강아지와 사랑에 빠지는 순수 청년의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애틋하고 소중해서 그러니까 허구 속 인물이 겪는 스펙터클한 모험이 아닌 내가 경험한 일들을 늘어놓은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이윽고 눈에는 눈물이. 뜨이씨. 이기호, 네가 날 알아? 하면서. 어떻게 다 알고 있어. 또 이러면서.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산으로 올라가 소리 한 번 질러, 서는 안 되고.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까. 사람 없다고 마음 놓고 산에 갔다가 도시의 인간들은 죄다 이곳에 모인 거야 하면서 뜨악할 테니까. 산에 가지는 말고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꼭 읽어보시기를. 웬만해선 이렇게 대놓고 책 추천 안 하는데. 책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취향 타는 물건이라서 함부로 권했다간 관계가 어색해져서.


자신 있게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어서이다. 마스크 없이 뛰어놀고 싶은데 여행 가고 싶은데 나로 인해 누군가 아플까 봐 곤란에 처할까 봐 다들 숨죽이고 생계 활동 외에는 집에만 있는 그대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때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으며 맞아 나도 저랬어, 에고고 사랑 고백 한 번 폼 없지만 기차게 하네, 감탄과 탄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된다. 웃기고 서글프고 애틋하고 보듬어 주고 싶은 인생을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그거 데이트를 가장한 사기야. 말해주고 싶고. 재난지원금은 주거지에서 써야 돈이 차감되는 거야. 알려 주고 싶다. 짧은 소설의 대가는 성석제였는데. 였는데?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그건 아니고. 최근에 나온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아직 안 읽었기 때문에. 그거 조만간 읽어보고 성석제가 여전한지 판단해 보겠다. 아무튼 짧은 소설의 벼락 스타 정도 되겠다, 이기호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마지막에는 묘한 여운까지 독자에게 한 아름 안겨줘야 해서 짧은 소설 쓰기는 까다로운데. 이 어려운 걸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해낸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내 이야기라서 지금부터 말을 시작하면 2박 3일 동안은 꼼짝 않고 들어야 할 가슴 아픈 내 인생이 『누가 봐도 연애소설』에 들어 있다. 술 먹고 어른들이 항상 하던 말. 내 인생이 말이야.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야. 『태백산맥』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던. 지금은 시대가 변했으니까. 『태백산맥』 말고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란 말이야로 바꿀 수 있겠다.


니콜라스 장군님과 함께 한 가족의 여행기. 시골에서 농사하고 닭 키우면서도 넷플릭스로 <킹덤> 보는 성구의 사랑 고백기. 이웃 노인에게 반찬을 전해주기 위해 아픈 다리를 끌며 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머니의 이야기. 외국인 사위에게 홀딱 반하고야 만 아버지의 사연까지. 어느 편을 읽더라도 눈물을 흘리고야 말지어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마음이 들다가도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걸 깨닫는다. 우선 살아내는 게 중요한 임무가 되어 버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도 좋다는 안도감이 든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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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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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힌 책이었다. 『쓰지 않을 이야기』는. 보라색의 작은 책. 눈길을 끌었던 건 책의 뒤표지에 실린 말이었다. '전염병 아래 감춰진 이 시대의 진짜 얼굴을 선명하게 포착한 네 편의 소설'이라는 소개의 말. 얼른 책을 빌렸다.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다시 도서관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놈의 코로나. 언제 사라질 거냐. 집순이의 유일한 낙은 도서관 나들이였는데. 언제 열지 기약이 없다.


『쓰지 않을 이야기』의 부제는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다.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그렇다. 하늘길은 막히고 여객기는 수송기로 구조를 변경해 운행 중이다. 해외여행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찍어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활보하며 맛집을 다니고 유명 관광지를 가는 여행 다큐를 보고 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거 안 좋아해서 미치도록 가고 싶다까지는 아니고 신기해서 틀어 놓고 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조수경의 「그토록 푸른」은 현실적인 소설이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행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조소영은 전염병이 돌면서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병보다 무서운 건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의 압박이었다. 비대면 장 보기가 늘어나자 물류센터에서는 사람들을 급하게 모집했다. 매일 아침 조소영은 일을 하겠다는 카톡을 보내고 응답을 받는다.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타고 작업장으로 들어가기 전 문진표에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의 증세는 '손이나 발끝에 푸른빛이' 도는 것이었다. 조소영은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특별재난지역」은 청도 지역의 사태를 다룬다. 요양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동일 집단 격리에 들어간 시간을 그려낸다. 실제 지명과 사건을 토대로 보여주어 독자는 몰입해 들어가기 쉬운 구조이다.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신 일남.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을 해서 아버지를 먹이는 일남이었다. 청도 대남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일남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 병원에서도 면회가 금지된다. 철없는 아들이 낳은 손녀를 키우랴 아버지를 모시랴 일남의 일상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세 번째 이야기, 「두痘」에서 박서련은 여성과 전염병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능숙하게 다룬다. 시골, 여선생님, 마을 이장, 폐쇄적인 마을 주민들, 이유를 모르는 피부 발진. 어떤가. 식상한 소재들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서련은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증세는 여자아이들에게만 나타난다. 같은 집에 살면서 생활하는 남자 형제에게는 전염이 되지 않았다. 왜 여자아이들에게만 병이 발현되는 것일까. 이유를 알고 나면 무참한 기분에 빠지고야 만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가족들을 여러 번 죽였다. 송지현의 「쓰지 않을 이야기」는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아빠는 좀비로도 등장시켰다. 죽었는데 죽지 않는. 그 와중에 좀비가 되면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해외로 떠돌던 아빠는 전염병이 돌자 한국으로 돌아와 거실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지낸다. 자취하는 동생의 방을 자신의 방으로 만든 아빠. '나'는 빵과 맥주를 사서 애인과 모텔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한다. 소설은 긴박하거나 공포스러운 일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지내는 풍경을 묘사한다. 자신이 죽는 소설을 쓸 것 같은데 그러기 싫다는 엄살을 떤다.



『쓰지 않을 이야기』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우리 모두가 겪었던 겪고 있을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소중하다. 나만 두렵고 외로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받는다. 문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실을 색다른 관점에서 들려준다. 미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썼다. 쓰지 않을 이야기란 없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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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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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의 소설 『단지 살인마』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옆에 휴대전화를 두고서. 원래 책을 읽을 땐 휴대전화를 멀리한다. 굉장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고. 한 번 들여다보면 계속 보게 되서. 블로그, 카페, 유튜브, 뉴스 기사, 쇼핑몰의 신상품 구경까지. 책 읽는 시간 보다 휴대전화 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서. 이번만은 예외로.


안전 안내 문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는 코로나19. 지난주부터 확진자 수가 증가하더니 오늘은 도시에 있는 병원이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꾸 무섭다고 말하면 불안감만 더 가중되지만 그래도 무섭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도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 줄이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고. 그것이 내가 매일 지나가는 곳이라서. 일상에 밀접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벌어지다니.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망연자실해진다. 『단지 살인마』를 읽는 동안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현실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와의 사투.


『단지 살인마』는 '첫 번째 희생자는 거구의 20대 남자였다'로 시작한다. 사건으로 바로 직진해 들어간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 좋다.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첫 희생자는 조직원이었다. 특이한 점은 희생자의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차례로 희생자가 나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끈다. 희생자들의 손가락이 계속 없어지는 것이다.


사건의 특이성을 느낀 주인공 '나' 장영민은 기사를 계속 읽어나간다. 희생자들의 배경을 파헤치면서 그들이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죽었다는 규칙을 발견한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장영민은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이게 중요하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파헤치는 자는 세상의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 손가락이 절단되면서 살인은 계속 이어진다. 장영민은 연쇄 살인 안으로 자신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들이민다.


범인의 살인 패턴을 알아낸 장영민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겠지. 안이한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단지 살인마』는 게으른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장영민은 자신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주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불안 장애를 안긴 친구를 찾아가 복수한다. 단지 살인마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잘라낸다. 그 후 자신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손동식이 등장하고 사건은 끝을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십계명의 순서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살인마는 누구일까. 『단지 살인마』는 모두가 범인이라고 말한다. 죄의식과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 고독과 불안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 단지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무너진 멘탈을 부여잡으며 이성의 부스러기를 훑으며 살아가는 한국인들. 들키지 않게 잘 숨겨 놓은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단지 살인마』는 추리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현실은 현실이고.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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