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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ㅣ 아주 보통의 글쓰기 1
김미희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평점 :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긴박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나. 대학도 나오고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모르는 것투성이다. 상관없나? 대학과 책은. 경험의 차이인가. 세세하게 밝힐 수 없지만(어느 정도 일이 끝나고 해결점이 보이면 전부 글로 써서 알리리라.) 복잡해 보이는 일을 겪게 될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책을 읽자. 계속 일에 매달리다 보면 불안만 가중되니까. 김미희의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어지러운 마음을 파고들었다. 걱정 마. 당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준다. 친엄마와 헤어져 새엄마와 술에 빠진 아빠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림 작가 김미희. 책은 장례식장에 가져갈 남편의 사진을 고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장암 3기였던 남편은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반복했다.
어린 아들이 있다. 아이를 낳고 1년 뒤에 병이 발견됐다. 수술과 치료, 재활을 하면 나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림을 그리던 남편은 내내 누워 있게 된다. 그전에는 기운을 차려서 그림 작업을 하던 남편이었다. 항암을 하면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남편이자 친구, 애인, 동료였던 박현수를 기억하며 써 내려간 책이다.
김미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더듬어 나간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소통을 시작한다. 술에 빠져 살며 인생을 낭비한 아버지. 미싱사로 일하며 친자식도 아닌데 자신과 동생을 키워낸 새엄마. 과장된 슬픔과 비애를 표출하지 않은 채 과거의 기억을 들려준다. 이제 좀 살만할 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전세 자금 대출로 집도 마련했는데 덜컥 남편이 아픈 현재.
팔자가 사납다는 말로 한 사람의 삶을 뭉뚱그려 요약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증명한다. 하늘로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들. 그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건 어렵다. 그저 손을 잡고 살아가는 일로 아이를 지켜주기로 한다. 오늘을 살면 내일이 있음을 알려주면서. 책의 후반부에는 '남편의 수술부터 사별 후 1년까지 쓴 일기'가 실려 있다.
내내 힘들지 않다. 계속된 고통에 휩싸여 살아가지도 않는다. 아픈 이의 머리를 쓸어 주고 반찬을 하고 어떻게든 더 먹이려고 기를 쓰는 시간. 웃을 땐 웃고 울 땐 울면서 소중한 이와 함께 살아갔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썼다. 글을 쓰면서 독을 풀어 냈다고 밝힌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던 순간을 글로 썼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나를 지켜내기 위한, 글쓰기.
쓰겠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야 한다. 쓰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버틸 수 있는 힘을 내일로 보내야 한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살아내야 한다. 엉망으로 살지 않았다고 먼저 간 이에게 말하기 위해 쓰겠다. 그렇게 살아가겠다. 어제 운 나를 오늘의 내가 눈물을 닦아주는 일. 쓰는 자는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