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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산 그 집은 춥고 더웠다. 하필이면 봄에 그것도 낮에 집을 보러 갔다. 따뜻하고 밝았다.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는데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봇대에 붙은 '방 있음'이라는 낡은 종이를 보고 간 것치고는 괜찮았다. 집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어서 보증금 50만 원에 다달이 월세와 공과금을 함께 내는 걸로 합의를 했다. 오래 살아서 나중에는 월세를 깎아 주기도 했다.
여름이 문제였다. 서향 집인 걸 그제야 알았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동안 열기가 식지 않아 방이 절절 끓었다. 부엌 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가 들어와서 문을 열지도 못했다. 밤새 뒤척였다. 잠깐 평온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 해는 뜨는 줄도 모르게 떴고 정신 차려 보면 해가 졌다. 극지방의 극야가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너무 추워 주인집 몰래 난로를 켜기도 했다. 왜 몰래 켰냐면 전기세를 주인집과 함께 냈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비치는 빨간 불을 보고 뭐라고 할까 봐 가장 낮은 온도로 켜두었다. 그래도 추웠다. 힝.
공선옥의 산문집 『춥고 더운 집』의 제목을 보고 과거 우리 집 이야긴가, 해서 읽었다. 다시 문을 연(코로나 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는 도서관, 다행히 이번에는 빨리 열었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 꽂힌 공선옥의 산문집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내 최애 작가 중 한 명인데. 공선옥은 전라도 말을 소설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이다. 문자로 표현하기 힘들고 애매한 전라도 사투리를 어쩜 그리 맛깔나게 표현하는지.
『춥고 더운 집』은 공선옥이 태어나서 자란 집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사방이 시커멓고 구렁이가 달걀을 훔쳐 먹는 집. 북향이고 산에서 때때로 고라니가 출몰하기도 한다. 구렁이 때문에 화난 아버지가 초가집을 버리고 블록 집이라고 하는 '부로꾸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초가집 보다 더 험한 곳이었다. 외양은 그럴싸했지만 부엌이 없는 집이었다. 대문이 따로 없고 겨울에는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가 돌아와 집을 지어 다시 이사를 나갔다.
곡성에서 광주로 경기도로 다시 광주로 그리고 지금은 담양에서 공선옥은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작가는 험난한 객지 생활을 했다. 사촌 동생의 소개로 기숙사에서 살아보고(몇 달 다니다 도망치듯 나왔다. 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기숙사 방에서 견딜 수 없었다.) 작은 빌라에서도 살아봤다. 어쩌다 땅을 사서 그 땅을 담보 잡혀 집을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도 애로 사항이 많았다. 괜찮은 시공자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실감했다.
새로 지은 집에서도 시행착오는 계속되었다. 지붕을 잘못 올려 여름엔 더웠다. 잔디를 잘못 깔기도 하고. 그래도 공선옥은 처음 지은 내 집에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살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차를 끌고 다녔지만 사고가 나서 폐차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간다. 차가 없어서 물건을 많이 살 수도 없다. 대신 버스에서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알았다. 장날이 되면 힘들게 기른 야채를 이고 지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 기사는 할머니가 다칠까 짐을 싣고 찻삯을 낼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린다.
집이란 무엇인가. 『춥고 더운 집』은 내내 질문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소유의 집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백 채의 집을 가지고 집장사를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도 있다. 집 때문에 웃고 우는 삶. 그깟 집이 뭐라고 그 설움을 다 견디고 사는 건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는 이상 집을 살 수도 없는 시대. 평생 그 빚을 갚을 생각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산다지. 『춥고 더운 집』은 집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 밖에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하며 좋은 시절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녹진한 전라도 말로 이야기한다. 그 시절 엄마가 해주던 밥상을 기억하는데 엄마는 없다. 자식 먹이려고 온갖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공선옥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춥고 더운 우리 집에는 우리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먹을 것만 생각한다고 혼났던 수업 시간. 먹지 않고 살 수 있나. 『춥고 더운 집』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머물러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