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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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반갑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애정 하는 이가 쓴 책. 읽고 쓰는 일이 좋다는 말이 범벅 되어 있는 책. 읽으면서 구원받는다. 갑자기 구원? 그렇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토록 말했던,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말. 그 말을 한 귀로도 안 들은 척 살았던 나였다. 심지어 머리도 나쁘다. 겸손이 아니다. 이해력이 부족해 무조건 암기해서 시험을 볼 정도.


책 읽기는 달랐다. 책을 펼치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기만 되는 단순한 게임 같은 거였다. 책 읽기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 되겠지만 이해보다는 공감을 하겠다는 자세로 읽었다. 그렇게 어느덧 독서인으로 살아온 지 어언 삼십 하고도 몇 년. 활자 읽기의 달인까지는 아니어도 읽는 걸 잘한다. 장강명의 산문집 『책, 이게 뭐라고』에 나오는 말처럼 일상에서 쉬지 않고 읽는다. 책 읽기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책, 이게 뭐라고』를 읽으며 반가웠다. 소설가 장강명은 나처럼 전자책을 즐겨 읽는 것이 것이었다. 작가들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데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종이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한 번 전자책에 입문하기가 어렵지 전자책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경험이 펼쳐진다. 글자체와 크기, 간격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며 밤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누워서 읽을 수 있다.


『책, 이게 뭐라고』는 즐겁다. 신나게 읽힌다. 단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행자로 출연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비하인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지 진행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그 밖에 책에 대한 애정까지.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책 추천도 받을 수 있다. 『블랙 달리아 1, 2』는 꼭 읽어보겠다. 제2의 제임스 엘로이가 될 수도 있으니.


장강명의 산문은 쉽다. 놀랍도록 솔직하다. 알쓸신잡에서 자신을 불러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쓰기까지 한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가진 기술 전무, 이해력 꽝인 나 같은 사람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내내 말해준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세상을 밝게 해주는데 일조를 한다고 격려한다. 책을 읽으면 무슨 효용이 있느냐. 책을 많이 읽는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


이런 나약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책, 이게 뭐라고』에 있다. 책 읽기 말고도 즐거운 일이 천지다. 신작 드라마, 영화도 봐야 하고 예능은 틀어 놓기만 해도 집이 활기차지는 기분이다. 한 판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는 게임에 빠져 날이 새기도 한다. 쇼핑몰에 올라오는 신상품 구경만 해도 즐겁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 날 인생의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부터 책 읽기의 시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게 된다면. 인생 항로가 변하게 된다.


진짜 책 이게 뭐라고 이 난리냐고 하겠지만. 한 권이면 된다. 한 권의 인생의 책을 시작으로. 세계는 전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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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르는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
이근화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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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의 위치를 바꿨다. 바닥 생활자라 늘 이불이 깔려 있다. 최소주의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어 방에는 이불과 스탠드만이 놓여 있다. 일찍 일어나 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고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어제의 햇빛이고 바람인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휴대 전화에 들어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출근이 잠정 연기되었다. 일단 오늘 하루이지만 다음 주를 장담할 수 없다. 누워서 유튜브로 브이로그 하나를 시청했다. 누군가의 정돈된 일상을 보면서 힘을 낸다. 얼굴도 모르지만 볼 일도 없겠지만 화면 속 그들은 부지런히 요리를 하고 집 안에서도 바쁘게 살아간다. 혼자 먹지만 잘 차려 먹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면 마음도 가라앉기 마련. 얼른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모드 루이스, 낸 골딘, 진 리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었기에 알게 된 사람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듣고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마르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만큼이나 격정적인 삶을 산 마르타. 책에는 그녀 삶의 내력이 자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미 있게 써 놓았다.


그리고 모드 루이스. 『모드의 계절』이라는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눈이 내린 작은 마을의 풍경과 그 옆에 뚱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색감이 너무 예뻤다. 한 인간의 인생은 겉으로만 봐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그림들이었다. 불안한 삶이었지만 순수하고 다정한 내면을 지닌 모드. 그녀의 삶을 그린 영화 《내 사랑》과 책 두 권을 봐야지.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에는 정말 아주 작은 인간들의 말이 이근화의 시선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일상인과 시인으로서의 자아는 충돌과 조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2020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네 명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저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는 엄마로서. 책 읽기와 글쓰기를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인으로서. 이근화는 살아간다. 책에는 그림들이 있는데 추측건대 이근화의 아이들이 그린 것 같다. 막눈인 내가 봐도 잘 그린다.


엄마를 위해 큰 딸이 만드어준 「코딱지 왕」 책은 놀랍고 특별함을 자랑한다. 시인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관찰력이 뛰어나다. 외톨이 조가 고독을 떨쳐 내는 이야기, 「코딱지 왕」. 학교에 가지 못해도 마스크를 쓰고 놀아도 즐거운 아이들. 종이와 펜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그려내고 써 내는 아이들. 그 작은 인간들의 말을 이근화는 기록한다. 친분이 있는 시인의 시를 읽고 그가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 정세랑의 소설을 읽은 감상기는 위로에 가까운 글이었다. 2020년 이후의 시간들은 내내 위로가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다. 괜찮다는 영혼 없는 위로는 사절하겠다. 대신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감상을 적어가며 나를 보살피겠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팬데믹의 세계에서 나를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읽고 쓰기. 귤에 핀 곰팡이를 들여다보는 고운 시선을 기억에 간직하는 일. 영혼의 휴식을 위해 기꺼이 고통 속으로 자신을 내몰았던 이들이 남긴 서사를 해독하는 일. 이근화의 표현대로 세상은 신속하게 망할 것 같지 않다. 천천히 망할 거다. 그 시간을 살아내고 지켜내야 하는 나로서는 아주 작은 인간이 되어 잡음을 만들어 내야지. 망해가는 세상을 비웃으면서. 씩씩하고 다정하게. 이부자리의 위치를 바꿨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마음을 만들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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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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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은 마음산책 2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사 대표 정은숙이 문인 스무 명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표지에 적힌 작가들의 이름을 보는데 그리움이 밀려왔다. 한때 열렬하게 추종하며 읽던 작가들의 이름. 신간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곤 했다. 책이 집에 점령 당하는 꼴이 싫어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탔다. 그 덕에 책을 사는 횟수가 줄었다. 아무래도 전자책은 신간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 나중에 전자책으로 사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곤 해서 예전만큼 신간을 빠르게 사서 읽는 부지런한 독자의 길에서 멀어졌다.


마음산책은 애정 하는 작가들의 산문집이 수시로 나와서 좋아하는 출판사다. 짧은 소설 시리즈와 말 시리즈도 되도록이면 찾아서 읽곤 한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충격적이게 좋아서 두 권을 샀다. 책이 두꺼워서 한 권은 반으로 쪼개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려고. 나머지 한 권은 소장용으로.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으며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되었다.


시인, 소설가, 번역가를 만나는데 그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작가의 사인, 작가가 운동화를 받아든 순간을 포착한 사진, 정은숙이 쓴 작가에 대한 단상으로 인터뷰는 시작한다. 본질 보다 주변의 곁가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무슨 운동화를 선물했을까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 스타일의 운동화는 손보미 작가에서 선물한 하얀색 가죽 운동화.


기획력이 좋은 출판사답다. 앞으로의 도약을 바라며 문학의 세계로 폴짝 뛰기를 바라는 마음에 운동화 선물이라니. 작가들이 정말 좋아하는 게 책을 통해서 느껴졌다. 발 치수를 알아야 하고 취향을 고민해야 하는 선물이므로. 평론가 신형철에서 시작해 백수린, 김금희, 손보미, 김숨, 이기호, 김중혁, 이승우 등을 거쳐 김용택 시인으로 끝이 난다. 스무 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거창하게는 문학 담론과 사소하게는 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까지 『스무 해의 폴짝』은 포착한다.


의외였던 건 손보미 작가 편. 정은숙 대표의 표현대로 굉장히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단다. 신형철의 미루기에 대한 이야기에도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잘할 수 있을까를 의심해서 불안해서 미루는 것이라고. 그 말은 지금의 내 상태를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영어, 컴퓨터를 공부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 현재 나의 상태를) 문학은 의외로 꼭 필요한 공공재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하는데. 그중에도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아쉬워들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소리 없이 읽고 있는 나와 같은 문학 독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자를 의식해서 글을 쓴다는 작가들은 의외로 없었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쫓지도 않는단다. 그저 써야 할 것이 있기에 쓰고 있기에 쓴다는 선언. '쓰면서 쓰게 됐다'라는 호원숙의 말처럼 그들은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얼 의식하거나 바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스무 해의 폴짝』을 읽기 전 나를 압도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있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 사람은 모름지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허투루 들었던 걸 자책하고 후회.


『스무 해의 폴짝』에 소개된 그들의 약력을 읽으면서 몇 권을 제외하곤 한 작가의 작품을 충실하게 읽은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읽는 동안 그렇게 나는 치유가 되었다. 공부는 무엇이 되는게 아닌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한 일로 문학을 읽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읽은 지 어느새 나도 스무 해가 되었다. 학교 앞 서점에 가서 문제집 사이에 간신히 꽂혀 있는 소설책을 골라 나왔던 시절에서부터.


경력과 자격증 및 특기 사항에 쓸 게 없어서 한숨을 지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문학을 읽은 지 스무 해. 간간이 돈을 벌었고 소심한 마음을 지녔으며 유머에 깔깔깔 웃는 걸 좋아한다, 고. 쓰는 걸 망설이곤 하는데 세계 명작을 써야지라는 허튼 생각 때문에 그런다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좋아하고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망작을 써 내도 좋아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항목을 적으면 대박이겠다고 『스무 해의 폴짝』을 읽고 나서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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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만 갖고 쓰는 거지. 용기 하나만 갖고.
그가 말했고, 그날 밤 나는 좀 많이 울었다. 용기가 조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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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만 갖고 쓰는 거지. 용기 하나만 갖고.
그가 말했고, 그날 밤 나는 좀 많이 울었다. 용기가 조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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