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직업 - 두 언어로 살아가는 번역가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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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의 지시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일하면서 돈까지 벌고 싶다. 자주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며칠 전에 면접 하나 보고 왔는데 멘탈 털려서 내내 누워 있었다. 지나간 것에 후회나 자책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근무 시간, 급여 같은 기본적인 조건에 대해 묻지 못한 것이 죽도록 후회스럽다. 백수 되고 나름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있지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문학과 관련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가뭄에 콩 나듯 그런 자리가 하나 나서 당장 이력서를 보냈다. 구체적인 걸 말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걸 말하는 게 약간의 위험이 따른다는 걸 알기에 생략하고. 그날 나는 영혼이 털리고 멘탈이 깨져서 돌아왔다. 하라는 대로 하면 기본 사항에 대해 알려 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잘 가시라는 말. 연락드린다는 말. 검색창에 '면접, 다음에, 연락'이라고 쳐 보니 대부분 다음에 연락 같은 건 없다는 지식인들의 답변을 볼 수 있었다.


눈치는 있으니까. 망했구나. 연락 같은 건 오지 않겠구나 직감했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기에 혹시나 하고 있지만 그날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 같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희망 도서가 왔으니 찾아가라는 문자. 일본 문학 번역가 권남희의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신청했더랬지. 밀리지 않고 세금 내니 이 정도 요구는 할 수는 있는 거겠지. 하면서 매달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한다. 그전에 권남희의 산문집을 읽고 아 좋다, 쉽게 써서, 잘 읽힌다, 다음에 나오면 또 읽어야지 했다.


책에는 일본 문학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자아와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의 자아, 집을 사랑하는 집순이의 자아가 충돌하지 않고 모여 있다. 학연, 지연 같은 거 없이 번역해서 알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발췌 번역을 하고 책 소개서를 써서 출판사에 돌렸다고 한다. 일본에 살 때는 서점에 서서 책의 뒷장을 보고 출판사의 전화번호를 적어 전화 기피증이 있는데도 전화를 걸어 판권이 팔렸냐고 물었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번역료와 부드럽게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력과 운이 더해지면 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걸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도움이 됐던 글은 「자기소개」였다. 매일 밤공부 마치고 한글 창에 자기소개서 양식을 띄워 놓고 있는 게 일과다. 그래서 썼냐고? 단 한 편의 자기소개서도 쓰지 못했다. 어제는 이력서의 반까지만 썼다가 창을 꺼버렸다. 지원하려는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쓰라는 양식에서 막혀 버렸다. 없어요. 없어서 새롭게 도전해보려고요. 이따위로 썼다가는 서류에서 걸러지기에. 그전에 저는 내내 한 가지 일만 했어요. 라고 쓰면 성의가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아예 성의 자체가 없기에.


잘나가는 일본 문학 번역가도 자기소개를 쓰는 게 힘들구나. 틈틈이 다른 이들이 쓴 자기소개를 보면서 고친다. 딸에게 한 번 보이고 고치고. 글을 읽고 대충 어떻게 써야겠다고 감을 잡은 건 아니지만 나 말고도 자기소개 쓰는 게 힘든 사람이 있구나,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신춘문예 수필 심사 경험썰도 풀어준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인 번역가이지만 간간이 대외 활동을 하면서 쌓은 사람들과 쌓은 딱 책으로 쓰면 가슴 따뜻해질 사연이 곳곳에 있다.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이니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일단 나를 돌보기 위함이라는 걸 그래야 다른 누군가들에게도 미움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혼자여서 좋은 직업』은 보여 준다. 혼자 일한다고 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꽉 막힌 사람이 되진 않는다. 시답잖은 농담하고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고 고압적인 자세로 상대를 보는 태도를 가진 자들과 멀어질 수 있기에 정신 건강은 물론 육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그래서 정말 혼자 일하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지금 가장 쓰기 힘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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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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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산 그 집은 춥고 더웠다. 하필이면 봄에 그것도 낮에 집을 보러 갔다. 따뜻하고 밝았다. 방 한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는데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봇대에 붙은 '방 있음'이라는 낡은 종이를 보고 간 것치고는 괜찮았다. 집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어서 보증금 50만 원에 다달이 월세와 공과금을 함께 내는 걸로 합의를 했다. 오래 살아서 나중에는 월세를 깎아 주기도 했다.


여름이 문제였다. 서향 집인 걸 그제야 알았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동안 열기가 식지 않아 방이 절절 끓었다. 부엌 문을 열어 놓으면 모기가 들어와서 문을 열지도 못했다. 밤새 뒤척였다. 잠깐 평온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 해는 뜨는 줄도 모르게 떴고 정신 차려 보면 해가 졌다. 극지방의 극야가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너무 추워 주인집 몰래 난로를 켜기도 했다. 왜 몰래 켰냐면 전기세를 주인집과 함께 냈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비치는 빨간 불을 보고 뭐라고 할까 봐 가장 낮은 온도로 켜두었다. 그래도 추웠다. 힝.


공선옥의 산문집 『춥고 더운 집』의 제목을 보고 과거 우리 집 이야긴가, 해서 읽었다. 다시 문을 연(코로나 상황에 따라 문을 열고 닫는 도서관, 다행히 이번에는 빨리 열었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 꽂힌 공선옥의 산문집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내 최애 작가 중 한 명인데. 공선옥은 전라도 말을 소설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이다. 문자로 표현하기 힘들고 애매한 전라도 사투리를 어쩜 그리 맛깔나게 표현하는지.


『춥고 더운 집』은 공선옥이 태어나서 자란 집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사방이 시커멓고 구렁이가 달걀을 훔쳐 먹는 집. 북향이고 산에서 때때로 고라니가 출몰하기도 한다. 구렁이 때문에 화난 아버지가 초가집을 버리고 블록 집이라고 하는 '부로꾸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은 초가집 보다 더 험한 곳이었다. 외양은 그럴싸했지만 부엌이 없는 집이었다. 대문이 따로 없고 겨울에는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가 돌아와 집을 지어 다시 이사를 나갔다.


곡성에서 광주로 경기도로 다시 광주로 그리고 지금은 담양에서 공선옥은 살고 있다. 그 사이에 작가는 험난한 객지 생활을 했다. 사촌 동생의 소개로 기숙사에서 살아보고(몇 달 다니다 도망치듯 나왔다. 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는 기숙사 방에서 견딜 수 없었다.) 작은 빌라에서도 살아봤다. 어쩌다 땅을 사서 그 땅을 담보 잡혀 집을 지었다. 집을 지으면서도 애로 사항이 많았다. 괜찮은 시공자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걸 실감했다.


새로 지은 집에서도 시행착오는 계속되었다. 지붕을 잘못 올려 여름엔 더웠다. 잔디를 잘못 깔기도 하고. 그래도 공선옥은 처음 지은 내 집에서 살아간다. 시골에서 살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차를 끌고 다녔지만 사고가 나서 폐차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간다. 차가 없어서 물건을 많이 살 수도 없다. 대신 버스에서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알았다. 장날이 되면 힘들게 기른 야채를 이고 지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 기사는 할머니가 다칠까 짐을 싣고 찻삯을 낼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린다.


집이란 무엇인가. 『춥고 더운 집』은 내내 질문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내 소유의 집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몇 백 채의 집을 가지고 집장사를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도 있다. 집 때문에 웃고 우는 삶. 그깟 집이 뭐라고 그 설움을 다 견디고 사는 건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않는 이상 집을 살 수도 없는 시대. 평생 그 빚을 갚을 생각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산다지. 『춥고 더운 집』은 집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 밖에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하며 좋은 시절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녹진한 전라도 말로 이야기한다. 그 시절 엄마가 해주던 밥상을 기억하는데 엄마는 없다. 자식 먹이려고 온갖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공선옥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춥고 더운 우리 집에는 우리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먹을 것만 생각한다고 혼났던 수업 시간. 먹지 않고 살 수 있나. 『춥고 더운 집』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머물러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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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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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좋다는 이야기는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은데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거지.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나의 근황을 들려줄 기회가 생겼다. 딱히 궁금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방언 터지듯 말이 나왔다. 요즘은. 그래. 그러니까. 계속 누워 있어. 누워서 고민만 하고 있지. 그러다가 책 읽고 그러다가 잠들고. 엄마도 그랬는데. 정작 실행은 하지 않고 누워서 걱정과 고민만 했었지.


상황을 타계하려면 일단 일어나서 행동해야 하는 데 그게 아닌 내내 누워서 말로만 걱정하고 불안해 하던, 엄마. 그걸 내가 하고 있지 뭐야.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나고 약간 서글퍼지고. 켄 리우의 소설집 『종이 동물원』을 읽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SF 소설 모음집이라서 사 놓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SF 소설에는 약간의 거부 반응이 내겐 있다. 이해력이 안 좋아서 그런 걸지도. 좀 어렵다, SF는.


그런 내가 전자책 기준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종이 동물원』을 완독했다. 정말 좋아서 아껴 읽었다.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고 짜릿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감동받았다. 특히 표제작 「종이 동물원」은 기가 막혔다. 주인공 '나'는 미국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카탈로그에서 고른 홍콩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나'가 울 때마다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지로 동물을 접어 주었다. 그 동물에게 어머니는 숨을 불어 넣어 주었다. 종이로 만든 동물은 생명을 얻어 돌아다녔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미국적인 아이가 되어간다. 어머니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에도 제대로 된 장난감이 없는 것에도 짜증을 낸다. 어머니는 '나'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대화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는 청명절이 되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한다. 「종이 동물원」은 그렇고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놀라운 반전을 들이밀면서 특별한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을 때면 내게 생명을 불어 넣어준 단 한 사람을 떠올리며 세상의 모든 슬픔이 밀려온다.


중국, 일본, 간간이 한국의 역사 이야기가 『종이 동물원』에 등장한다. SF 적인 옷을 입고서. 현실을 탈피하는 게 아닌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 켄 리우는 신화, 환상, 역사를 SF로 끌고 온다. 단 한 편도 거를 수 없다.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온 「레귤러」는 중간에 끊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인종 차별, 역사 왜곡, 인간의 이기주의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가독성까지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숙함 때문이었다.


망한 지구를 탈출해 우주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우주선을 고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사람. 후대에게 역사를 알리기 위해 모진 고문을 당하는 사람. 『종이 동물원』에는 특별한데 자신들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잔뜩 나온다. 소설 속 그들이 했던 선택을 현실에서라면 주저 없이 할 수 있을까. 없다고 생각하기에 소설이 쓰인다. 이야기가 나온다. 꼭 그렇게 했으면 하는 바람에. 자신보다 남을 위한 선택을 우리가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채우고 싶어서.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리웠는데 『종이 동물원』은 그걸 충족해 준다. 고통스럽고 슬펐던 기억을 잊고자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살아서 살아 있는 동안은 기억하고 추억하자. 위대하고 훌륭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구에서의 역할은 다 한 것이니까. 우주선에 못 타도 좋아. 꼭 알아야 할 역사가 있다면 공부를 해서 기억하도록 하자.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매 순간 떠난 그들을 기억한다면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하려고 찾아올지 모르니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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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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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신작 장편 소설 『지금부터의 내일』은 박력적인 소설이다. 거침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서 결말에 가면 사정없이 메다 꽂는다. 탐정 사와자키는 전 직장 동료의 이름을 딴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에서 의뢰인을 맞이한다. 누가 봐도 신사처럼 보이는 유명한 저축 은행 지점장인 남자는 대출이 예정된 요정의 여주인의 사생활 조사를 의뢰한다. '밀레니엄 파이낸스'에 다닌다는 모치즈키의 첫 등장이었다. 모치즈키는 탐정료를 선불로 지급하고 되도록이면 집에는 전화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사와자키는 의뢰를 승낙한다. 다음 주 토요일에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모치즈키는 떠난다. 그게 사와자키가 모치즈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었다. 사생활 조사를 부탁받은 요정 여주인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낸 사와자키는 그와 연락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은행으로 찾아가 직접 얼굴을 보고 의뢰가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돈을 돌려주려고 한다. 은행에 도착에 지점장 모치즈키를 만나려고 하지만 이상한 강도 사건이 벌어지면서 사건에 휘말린다.


두 복면강도가 들어와 은행 금고를 열라고 사람들을 협박했다. 사와자키는 탐정의 감으로 평범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은행 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지점장 모치즈키가 있어야 하지만 그는 돌아와야 할 시간임에도 은행에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강도 사건과 모치즈키의 실종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치즈키가 조사를 의뢰한 죽은 여인도 이 사건에 얽혀 있는 것일까. 사와자키는 외로운 수사를 시작한다. 은행 강도 사건 때 침착함을 잃지 않고 강도 중 한 명을 설득해 자수 시킨 청년 가이즈와 간간이 동행을 해가면서.


『지금부터의 내일』은 추리 소설답게 모든 인물에게 역할과 의미를 부여한다. 이 사람 수상한데 하는 순간 그는 사건의 핵심 인물이 된다. 누구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된다. 지점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그는 죽은 여인의 사생활을 왜 캐달라고 한 것일까. 사와자키는 특출난 감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고 들어간다. 곧바로 사건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지금부터의 내일』은 바로 그 소설이다. 중간에 쉴 틈 없이 사건 현장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나이가 든 탐정은 휴대 전화도 없어 전화 서비스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지도 않고 뛰어난 말빨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혼자 묵묵히 돌아다니며 사건의 실체를 꿰뚫어 볼 뿐이다. 경찰과는 적대적이고 사교성이 있지도 않다. 걷고 전화를 걸고 탐문하면서 실종과 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찾아간다. 사건의 연결 고리가 하나씩 맞아 들어가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소설이 빨리 끝나버릴 것 같은 아쉬움에 애써 천천히 읽었는데도 금방 끝이 나고야 말았다. 이렇게 빨리 끝나기야. 너무나 아쉽. 다음 시리즈를 기다린다. 14년 만에 나온 『지금부터의 내일』인데. 솔직히 14년은 너무 했습니다요. 좀 더 빨리 내주세요, 다음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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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 강지혜 에세이 매일과 영원 2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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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어서 여름휴가 이야기를 꺼냈다. 짧은 휴가를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다들 어디 놀러 가시나, 궁금한 것도 있고. 사회성 있는 인간으로 보이고 싶어서. 제주도 이야기가 나왔다. 그 순간 제주도에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해 제주도 관광 지도도 받아 보았다. 게으름뱅이가 그 정도 했으면 큰일 한 거다. 지도를 받아 든 것만으로도 제주도에 가 있는 기분.


딱 거기까지였다. 항공편을 알아보고 숙박 시설을 검색하는데 지쳤다. 하필이면 그때가 성수기였던 것도 있고. 핑계인 거 다 안다. 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면 어떻게든 갔을 텐데. 온갖 가기 싫은 이유를 끌어대면서 결국에는 가지 않았다. 아, 제주도. 내게는 너무 먼 곳. 책으로만 만날래. 그래서 강지혜의 에세이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집어 들었다.


요즘 시인의 시집은 안 읽고 시인이 쓴 에세이만 읽고 있다.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시보다는 생활의 감각이 묻어나는 에세이가 더 와닿는다. 버거운 출퇴근을 하던 시인 강지혜는 어느 날 이렇게는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그래서 영혼이 바닥난 기분이 든다. 이렇게는 살기 힘들겠다는 남편은 여행을 떠나고 기브 앤 테이크로 시인도 전국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가을의 제주를 만난다.


별명이 강추진만. 한 번 추진하려는 일에는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시인의 별명. 강추진만은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계획을 짠다. 함께 여행을 떠났고 제주도 촌집을 사서 꾸민다. 남편과 동생이 함께 이주를 했다.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촌집은 촌집이었다. 촌집은 리모델링보다는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하는 게 이득이란다.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은 나도 한 번 제주도에 살아볼까 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신들이 생각한 것만큼 낭만적인 제주도 살이가 아니라는 것을 웃프게 들려준다. 가족과 함께였지만 가족이어서 서운하고 힘들었던 점 또한 솔직하게 말한다. 어렵게 리모델링을 하고 가게를 열었다. 만만치 않은 자영업자의 삶. 그럼에도 행복이 찾아온다. 강아지 신지와 귀여운 아이 다하. 시인과 엄마, 숙박 업체의 사장으로서 강지혜의 삶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에세이 끝에는 시가 한 편씩 실려 있다.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여 뭉클했다. 시 밑에 쓰인 이야기 역시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진다. 어떤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썼을지가 상상이 되어서.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내가 제주도에 갈 일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제주도를 책으로 배웠어요가 될 것 같다. 누군가의 제주도 살이를 보며 그이가 들려주는 일상의 슬픔과 기쁨을 상상하며 가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책은 그러라고 읽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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