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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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다. 서점 주인 빅토르는 루카스에게 자신은 단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떠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하며 서점에 찾아와 종이와 펜을 사가던 루카스에게 조금 비싼 값으로 서점을 팔고 떠난다. 과연 그는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슬프고도 쓸쓸한 소설이다. 3부 조금 남았는데 빨리 읽어버리고 싶지 않아 잠깐 덮어 두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소설가가 돼 있을 줄 알았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시인 정도는 될 줄 알았다. 그렇다. 노력은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 생각한 바보였다. 연중행사처럼 신춘문예에 투고 하기를 몇 해. 그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지 몇 해. 나 같은 게 무슨 작가가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몇 해. 어영부영 지내고 있다. 그래도 책 읽기는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읽고 보는 주의. 왜 못 쓸까. 생각해 보니 쓰기는 누워서 할 수 없다는 다소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엔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누워 있기다. 어제도 오늘도 내가 한 생산적인 일이란 누워서 책 읽기였다. 밥 먹고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순간 머리가 아팠다. 온갖 병약함을 가지고 있는 내가 유일하게 없는 병증이 두통이었다. 누가 머리 아프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증세니까.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망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이어 머리까지 아프다. 공부하기 싫어 별 핑계를 다 댄다, 증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흡입하듯 읽었다. 이상한 외계어 같은 글자만 보다가 말랑말랑 위로 위로 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글을 읽으니 세상 살 것 같다. 책의 내용도 나 같은 애들을 위한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책 한 권 쓰고 싶은 욕망쯤은 다들 있잖아요. 그죠?


제목도 각 잡고 책을 쓰자고 한다. 책 한 번. 말이 쉽죠. 책 한 번 써보자는 말. 매일 일기 쓰는 것도 버거워 미루고 미루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쓰는 나다. 그런 나인데 욕심은 많아서 내 이름으로 된 책은 내고 싶고. 야 너도 책 쓰기 할 수 있다는 책을 읽으며 의욕을 끓어 모은다.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으며 한글을 열어서 제목을 쓰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나를 상상했다. 상상만 했다.


에세이, 소설, 논픽션 쓰기에 대한 요령이 실려 있다. 도움이 됐던 부분은 에세이 쓰기다. '솔직한 글을 쓰려면 뛰어넘어야 할 세 가지'에는 '욕먹는 데 대한 두려움, 자신을 뽐내고 싶은 마음, 교훈과 감동에 대한 집착'이다.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할 정도로 나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빠져 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나만 세상을 신경 쓰고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써야지 했지만 리뷰만 쓰고 있다. 이러다 리뷰만 쓰다가 죽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언젠간 책을 쓰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읽는 게 즐거우니까. 빅토르나 루카스처럼 꼭 써야 할 순간이 오면 쓰겠다. 그때까지 읽기 훈련과 쓰기 근육을 만들어 놓겠다. 쓰기의 대가들이 내놓는 영업 기술을 읽으며 너넨 그렇게 쓴단 말이지, 나는 참고만 할게, 하면서.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소개한 책들을 읽으며 머리 아픔을 이겨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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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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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폭망하고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이란 누워 자는 거였다. 왜 이렇게 잠이 오냐. 하면서 잤다. 간간이 드라마 보고 틈틈이 책도 읽었다. (『시지프스』 뽀갰다. 죽으면 미래로 가는 거였다니. 미래란 망한 한국이었다.) 희망 도서 왔다고 도서관 가서 책 빌렸다. 눈앞에 나의 희망 도서가 있었는데 아직 등록 안 했다고 다음에 와서 빌리라는 말 듣고 황당. 언제 또 오냐. 그러지 말고 빌려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빌려온 책 『나의 생활 건강』을 읽었다.


시인 열 명이 모여 몸, 건강이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요즘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얼마 전에는 백은선 에세이. (읽으면 글쓰기 의욕이 샘솟는 책이다.) 어머, 나 요즘에 시 안 읽나 봐. 시인 열 명의 이름을 보는데 처음 본 이름이 많다. 미안하지만 열 명의 시인의 시집이 한 권도 없다. 한동안 문학에 소홀히 한 나를 용서해 다오. 대체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지.


코로나19가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며 살아가나. 시인들은 그간의 일상의 루틴을 『나의 생활 건강』에 공개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오랜만에 간 집에서 고구마 들다가 허리 삐긋해 할머니와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다섯 개의 직업을 가지고 굴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와. 다섯 개 라니. 난 하나도 없는데.


'읽기, 쓰기, 마시기'를 하며 충실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무해한 일들. 따로 여행을 가기도 힘든 요즘. 읽고 쓰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 아닐까 한다. 하루 확진자 수가 오백 명을 넘나들고 어제는 칠백 명까지 갔더랬지. 그런 요즘 나는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고 누워 드라마 보고(지금 보고 있는 건 『나빌레라』와 『머니게임』. 이 좋은 걸 나만 몰랐단 거지. 나만 빼고 다들 재밌게 보고 있었단 말이지.) 배달 음식 시켜 먹는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이 일요일인 건가 그런 생각 안 해도 돼서 겁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시 시험 보려고 공부하고 있는데. 진짜 하기 싫은 마음을 접어 두고 책을 읽는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 즐거운 법. 책을 읽는데 황홀하기까지 하다. 넘나 즐거운 책 읽기. 공부 스케줄 쓰려고 산 플래너에 이번 주 읽을 책의 목록을 적는다. 드라마 뽀개면서 책도 다 뽀갤거야. 이번에는 전부 읽고 반납할 거야. 그런 생각이었지만 책 빌려온 지 3일 만에 겨우 읽은 책이 『나의 생활 건강』이다. 죽지 말고 아프지 말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면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가자.


방, 산책, 새벽, 빵, 드라마, 영화, 책.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들. 무슨 알고리즘인지 모르지만 취준생 브이로그 보고 있는데 어쩌 다들 그리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지. 반성 반성. 나의 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한심한심하겠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당분간 고민은 접어 두고 누워 있을 테다. 아침에 눈 뜨면 책 읽으면서.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한다고 하던데. 어쩌냐. 취뽀 하면 회 배달 시켜서 먹으려고 했는데. 미리 먹어야 되나. 이 상태로 가다간 취뽀는 힘들 것 같은데. 다들 연락 준다면서 왜 안 주는 건데요. 왜.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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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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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쓰는 리뷰다. 이거 실화임? 이틀에 한 번은 리뷰를 쓰던 나였는데. 게을러진 건가, 인간. 그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책 읽고 리뷰 쓰는 거 말고 다른 일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공부. 믿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도 하지 않던 공부를 뒤늦게 필받아서 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기출문제 4회분을 꼬박 풀었다. (아, 얼마 전에 본 컴활 2급은 합격 했습니다요. 자랑을 했나, 안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


4회분을 풀고 느낀 건. 나란 인간은 멍청하고 한심해서 어디 갖다 버리든지 해야겠다는. 틀린 걸 또 틀리고 자빠졌다는. 채점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이구. 어림잡아 여섯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간식도 먹긴 먹었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문제를 풀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무슨 공부를 하느냐. 궁금하실 수도 있는데. 과연 궁금해하시려나. 합격하면 자랑하겠습니다요.


나름 열공 모드로 지내느라 본업보다 열심히 했던 책 읽기와 리뷰를 쓰지 못했다는 사연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렇다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건 아니다. 전자책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었고. (아직 다 못 읽은 건 함정. 예전에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아껴 읽고 있다고 자위해본다.) 선물로 받은 백은선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서 드디어 오늘 완독했다. 예! 소리 질러!


주간 문학동네에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로 연재한 산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리뷰 쓰기 전 자주 사이트 방문해서 읽으며 글쓰기 뽕을 맞았던 산문들이다. 희한하게도 백은선의 산문을 읽고 나면 무엇이든 쓸 수 있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생겨서 마구 자판을 두들겼다. 그건 너무나도 솔직하게 너무나도 솔직해서 읽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에 이르는 글이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솔직함을 보는 일이란 나의 거짓을 들켜버리는 일이었다. 산문을 읽으면서 나의 위선과 위악이 차례로 떠올랐고 조금만 더 솔직해질 수 없을까를 반성했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백은선의 시집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한 번씩 올라오는 시인의 산문을 기대하며 지냈다. 공부한다고 문구류 사러 간 서점이었는데. 그렇다. 나에게 서점이란 책 보다 문구를 구경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문구를 챙긴 다음 예의상 매대 쪽을 보았고.


아이스크림은 좋아하진 않지만 색감은 좋아하는 민트 빛을 띤 백은선의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발견했다. 한동안 공부한다고 책을 멀리했는데. 그걸 나무라는 냥 책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다 하고 잠이 들기 전 한 챕터씩 읽었다.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물성이 있는 종이책으로 보는 게 더 슬프고 아프고 그랬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읽어보면 알겠다. 책에도 나오는데 돈 주고 사서 보는 걸로. 시인이 산문을 쓴 이유는 대단, 거창한 게 없었다.


전 남편이 진 카드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8년부터 만나 여러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는데 이혼할 때는 사억 육천 중에 오천을 주었다고. 전 남편은 매매로 집을 얻었고 아이와 함께 사는 백은선은 영끌해서 대출받아 전세. 아빠 집에 갔다 온 아이는 그 집이 좋았다고 고백하듯 말한다. 화장실이 두 개라고. 책에 다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이 책은 시인 백은선의 삶보다 사람 백은선의 삶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으려고 메모했고 최근에 나온 『도움 받는 기분』은 사서 읽을 거다.


붉은 스탠드 밑에서 읽는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그래도 문학, 어서 이 길로 돌아와야지, 재촉했다. 문학 없이 살 수 있겠어. 책의 문장을 읽다가 다른 생각에 빠지는 너를 만나야 하지 않겠어. 물었다. 그럴 때마다 울고 싶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맺어야겠지. 잘 끝내고 돌아올게 하고 답했다. 나 역시 내가 싫으면서도 좋다. 이상하기까지 한 내가 말이다.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수많은 밤에 책을 읽었다. 좋은 사람이 되길 글렀어 하면서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식을 떤다.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싫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가지만. 책의 문장은 그런 나를 위로한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 쓰는 걸 잊어버렸을까 봐 어제는 오랜만에 한글을 열어서(한글을 열어 글을 쓴다는 건 나 지금부터 제대로 된 글을 쓸 거야 같은 행위라서 피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다행히 한글을 안 까 먹었더라. 손이 기억하는 한글 자모의 위치.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밤에 쓴 거라서 안 열어보았다. 「내가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이라는 글의 마지막 문장, '그때까지는 살아야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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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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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아침형 인간이 된 지 석 달.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인다. 집을 나서면 횡단보도 앞에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어른이 있다. 일명 녹색 어머니회. 어머니회라고 하지만 남자 어른도 있다. 깃발과 경광봉을 든 두 어른은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에스코트하듯 아이를 학교 쪽으로 인도한다. 조그만 몸에 큰 가방을 멘 아이들은 마스크를 꼭꼭 쓰고 있다. 올해는 초등학교 1, 2학년은 매일 등교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줄이야.


단지 공부만 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낀 2020년이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놀기도 한다. 체육시간에는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모여 뛰어다닌다. 운동회와 소풍날에는 모여 앉아 김밥을 나눠 먹는다. 이런 일을 작년에는 하지 못했다.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다. 아동 센터도 문을 열지 않아 아이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학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은 학원에 갔지만 그마저도 코로나가 심해지면 휴원을 해야 했다.


내내 안타깝고 서글픈 한 해였다. 2021년은 좀 다를까. 요즘 내가 아침에 보는 풍경은 어른이 아이를 지켜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어른과 함께 길을 걸어도 아이들은 손을 들고 걸었다. 배운 걸 실천하는 똑똑함. 엘리베이터에서 학교나 유치원에 가는 어린이를 만나곤 하는데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서 오늘 나도 한 가지를 실천했다. 그전에도 인사를 받으면 고개를 숙이거나 안녕하세요라고 하기는 했다.


어린이에게도 본격적으로 존댓말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어야겠다는 결심과 실천. '어린이가 있다'라는 진실을 『어린이라는 세계』는 깨우쳐 주었다.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다가 독서 교실을 열어 어린이와 수업을 하는 김소영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부끄럽고 뭉클했다. 어린이라는 시간을 거쳐왔지만 그때의 기억을 다 잊은 듯 항상 어른이었던 것처럼 지내왔던 것이다. 왜 저렇게 뛰어다닐까.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지. 나 역시도 어린이였을 때는 시끄럽고 떼를 쓰며 지냈는데, 홀랑 다 까먹고.


몸집이 작은 어린이가 보는 세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어린이라는 세계』는 이야기한다. 책상 위에 있는 걸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싶어 위험한데도 손을 댄다. 제대로 된 자기표현을 할 줄 몰라 크게 말하는 것이다. 김소영이 독서 교실에서 만난 어린이의 에피소드를 읽고 있으면 뭉클해지는데 그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어른들의 그것에 비해서 솔직하고 다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행을 가면 맛있는 걸 사와 독서 교실의 선생님에게 주고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걸 선물하는 어린이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어린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김소영의 관점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쓰레기로 뒤덮인 집에서 한 어린이는 아빠와 아이들이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홀로 방치된 채 말이다. 자신의 상황과는 너무 다른 환상 속 세계를 보며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짐작하기조차 미안해졌다. 아이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는 게 아닌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환상을 파는 게 아닌.


아이들은 환상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안정적인 세계로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넌 몰라도 돼. 넌 어리니까 모를 거야 하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 모두 알만큼 알았고 알았지만 모른 척하며 살았던 걸 잊지는 않았겠지. 어린이가 질주하는 차로부터 보호받으며 학교에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어른으로서 '어린이라는 세계'에 안착하고 싶다. 그거면 된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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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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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입니다. 밤이고요. 왜일까요? 배가 고픕니다. 당연한 거라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오늘은 여섯시 일어나기에 성공했습니다. 다시 잠들까 봐 전기장판을 끄고 책을 읽었습니다.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부지런하지 못한 저는 금요일까지 잡고 있었어요. 오늘은 다 읽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요조의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입니다. 전작 『아무튼, 떡볶이』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떡볶이에 진심인 것 같더라고요.


대체 얼마나 떡볶이를 좋아하길래 떡볶이에 대해 쓸 수 있는 건지, 무언갈 열렬히 좋아하는 자의 열정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여겼던 학창 시절이 떠올라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걸어가 먹었던 떡볶이. 고추장의 맛을 빌려 그나마 맛을 내서 해 먹는 떡볶이. 배달 앱을 보지만 이 돈 주고는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시켜 먹지 않는 떡볶이. 아침이 밝아오는 걸 보면서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읽어나갔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제주도에서 가서 책방을 새로 연 요조의 일상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비건』을 읽고 채식을 시작한 이야기까지. 완전한 채식이 아닌 간헐적 채식을 권하는 글이 좋았습니다.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일상의 습관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하세요가 아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해주어서요. (약간 친절해 보이는 청유형의 말투를 좋아합니다. 별 차이 없는 것 같다고요? 전 좀 다르게 느껴지던데.) 사고로 죽은 동생 이야기를 애써 감추지 않기도 해요.


죽음에 대해서. 이겨내거나 극복하라고 하지 않아요. 슬픔이란 옅어지는 게 아닌 우리 인생의 배경이라는 걸 아는 자의 담담함이 엿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글을 쓰며 살게 되었을까요, 요조는. 답을 알 수 있거나 최종 목표를 정할 수 없는 게 글쓰기인데. 글을 쓰지 않아도 잘만 살아갑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어쩌다 성취도를 평가하기에 애매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자로 살아가는지.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읽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일을 못한다면 불안하고 막막해서 미치지 않을까 해서 꾹 참고 일을 했습니다. 막상 일을 쉬게 되자 막막함 대신 편안함이 찾아왔습니다. 안도감도 듭니다. 왜 이런 마음이지, 내내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일찍 일어나기. 한 달에 책 10권 이상 읽기.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기.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여기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나이 또래의 누군가들의 성공기를 보면서 하지 않아도 될 나 자신과의 비교를 간간이 하기도 합니다만. 결코 실패라는 얄팍한 단어로 지금의 나를 설명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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