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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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의 소설 『단지 살인마』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옆에 휴대전화를 두고서. 원래 책을 읽을 땐 휴대전화를 멀리한다. 굉장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고. 한 번 들여다보면 계속 보게 되서. 블로그, 카페, 유튜브, 뉴스 기사, 쇼핑몰의 신상품 구경까지. 책 읽는 시간 보다 휴대전화 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서. 이번만은 예외로.


안전 안내 문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는 코로나19. 지난주부터 확진자 수가 증가하더니 오늘은 도시에 있는 병원이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꾸 무섭다고 말하면 불안감만 더 가중되지만 그래도 무섭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도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 줄이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고. 그것이 내가 매일 지나가는 곳이라서. 일상에 밀접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벌어지다니.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망연자실해진다. 『단지 살인마』를 읽는 동안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현실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와의 사투.


『단지 살인마』는 '첫 번째 희생자는 거구의 20대 남자였다'로 시작한다. 사건으로 바로 직진해 들어간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 좋다.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첫 희생자는 조직원이었다. 특이한 점은 희생자의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차례로 희생자가 나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끈다. 희생자들의 손가락이 계속 없어지는 것이다.


사건의 특이성을 느낀 주인공 '나' 장영민은 기사를 계속 읽어나간다. 희생자들의 배경을 파헤치면서 그들이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죽었다는 규칙을 발견한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장영민은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이게 중요하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파헤치는 자는 세상의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 손가락이 절단되면서 살인은 계속 이어진다. 장영민은 연쇄 살인 안으로 자신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들이민다.


범인의 살인 패턴을 알아낸 장영민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겠지. 안이한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단지 살인마』는 게으른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장영민은 자신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주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불안 장애를 안긴 친구를 찾아가 복수한다. 단지 살인마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잘라낸다. 그 후 자신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손동식이 등장하고 사건은 끝을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십계명의 순서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살인마는 누구일까. 『단지 살인마』는 모두가 범인이라고 말한다. 죄의식과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 고독과 불안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 단지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무너진 멘탈을 부여잡으며 이성의 부스러기를 훑으며 살아가는 한국인들. 들키지 않게 잘 숨겨 놓은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단지 살인마』는 추리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현실은 현실이고.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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