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2020년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의 5일은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래퍼처럼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 내내. 나는 한 직장에서 8년간 일을 했다.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12월 9일까지 밖에는 일을 못한다. 문을 닫는 것이다.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자 합의라는 말이 나왔다. 최소를 요구했는데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봤다. 와. 유튜브는 최고다. 알기 쉽게 법 조항을 설명해 준다.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이해가 안 되면 돌려볼 수도 있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들었다. 나는 잘 듣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나와 있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김민정 시인의 질문에 김영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물으면 사실 안 읽어도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中에서)


시작하자마자 헛소리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일단 들었다. 왜냐? 내가 그동안 한 짓이라곤 책을 읽는 것 밖에는 없었으니까. 자나 깨나 읽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자다 일어나서 옆에 놓아둔 전자책을 읽었다. 그러곤 다시 잤다. 일어나면 다른 편에 놓아둔 종이책을 읽는다. 내용이 섞이든 말든. 시간을 보내는 유일무이한 나의 취미 독서. 그러다 보니 나는 김영민 교수가 말하는 대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23일부터 27일까지 내가 읽은 책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내 곁에는 책이 있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칼럼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점잖은데 약간의 B급 유머가 곁들인 그의 칼럼과 영화 평론,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전부 이해했다면 거짓말이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받아들이며 읽었다.


책 바깥의 세계는 치열했고 거짓말과 협잡과 감정싸움, 치졸하게 서로를 공격하는 그야말로 총만 안 들었지 전쟁터 같았으니까. 이런 문장이 남았다.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와우. 뻔한 수사로 쓰였는데 가슴을 후벼판다. 요 며칠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거나 희망 따윈 개나 줘버려 같은 회의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니.


희망 대신 절망을 한 아름 돌아온 밤에 저 문장을 읽고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다시 가슴에 희망을 품은 채로. 그리고 이런 글.


악이 너무도 뻔뻔할 경우, 그 악의 비판자들은 쉽게 타락하곤 한다. 자신들은 저 정도로 뻔뻔한 악은 아니라는 사실에 쉽게 안도하고, 스스로를 쉽사리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과 악의 비판자는 일종의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때로 악을 요청한다. 상대가 나쁘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비판하는 자신은 너무나 쉽게 좋은 사람이 된다.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中에서)


나는 책을 오랫동안 읽었음에도 인간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몰라 허둥대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관계를 책으로 배웠어요,랄까. 악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악인이 아니라는 것. 나쁜 놈 옆에 더 나쁜 놈이 있다는 것. 악인들의 행태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한심하고 뻔뻔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옆에 있는 놈을 까대며 헐뜯고 비방하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일까지 꺼내 놓는 악인. 피해자 코스프레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이게 대체 무슨 글이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쓴 리뷰냐. 리뷰를 가장한 푸념이냐. 하겠지만. 몰라. 나도 모른다. 대체 이 글의 주제와 목적은 무엇인지. 그저 타인에게 내 의견을 처음으로 강한 어조로 피력한 시간에 읽은 책이 하필이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여서 김영민은 교수인데 교수답지 않은 깨 발랄하고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글을 써서 좋다는 것을 밝혀두는 것으로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을 마칠까 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집밖에 나가지 않고 책만 읽었던 나의 시간은 축복이었구나. 헛소리와 거짓으로 점철된 서사를 파괴할 수 있었던 건 책 읽기로 단련된 경청의 자세와 문어체로 말하는 능력이었다. 죽음과 함께 하는 게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쉽게 함부로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리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저녁에는 희망을 생각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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