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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농담 ㅣ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평점 :
마시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종종 술 마시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떨리는 손을 감추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더 마시려 애쓰고, 술 마시는 걸 자책하고 숨기려다 남몰래 마시며 불안한 안도감을 느끼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술 없이 부끄러움에 맞서기 싫을 때, 세계가 짐짝 같은 무게로 업혀올 때, 오래된 관계를 내가 다 망쳤다 싶을 때, 아무리 달리 보려고 해도 내 마음이 하찮을 때, 가까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실망으로 마음이 그을릴 때, 한마디로 제정신인 걸 참을 수 없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
(편혜영, 『술과 농담』, 「몰沒」中에서)
소설 가르치는 선생은 수업이 끝나면 일찍 가시는 분이었다. 사는 곳이 멀어서였다. 뒤풀이를 가질 새도 없었다. 소설 창작론 수업이 종강했을 때였다. 그때는 웬일인지 모여서 차를 마시자고 했다. 차를? 술도 아니고 차를? 이해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선생은 한동안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했다. 간간이 수업 시간에 술을 마셨을 때와 끊었을 때의 시절을 토막 내서 들려주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질문은 하지 않았다.
차를 마셨다. 선생은. 그러나 우리는 생맥주를 마셨다. 진정한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술을 마시는 자들 곁에서 참고 마시지 않는 거라고 들었다. 선생은 진정 중독에서 벗어난 듯 차만을 홀짝였다. 우리들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여다보는 눈이 슬퍼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술을 마시지 않는 것과 마시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실로 거대했다. 선생은 둘 다였다. 마시지 않으면서 마시지 못하는 것. 뭐가 더 안타까울까 저울질해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자업자득인 게 분명했으니까.
술에 관해 말해보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술잔을 바라보던 선생의 표정이 떠오를 뿐이다. 남들은 취미 부자라고 하면서 다종다양한 취미를 섭렵한다던데 나는 그 흔한 혼술의 취미도 없다. 마트에 가면 가지 않는 코너는 주류 코너. 언제부터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뭘 몰라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셨는데 곧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고는 집에만 틀어박혔다. 초코 우유와 탄산음료를 즐겨 마시며 살이 피둥피둥 쪘다.
완전 최애 작가들의 글 모음집 『술과 농담』은 술에 관한 각자의 기억 혹은 약간의 허구를 가미한 서사가 들어 있다. 처음에는 에세이로 읽었다가 중간에는 소설로 읽고 나중에는 시로 읽어 버리는 『술과 농담』. 편혜영의 글에서 술과 불화한 듯한 낌새를 눈치채기도 하고 조해진은 다양한 술의 종류를 빌려와 술의 나날을 펼쳐 놓는다. 조해진의 산문을 읽어본 적 없어서 『술과 농담』 속 조해진의 글을 흡수하듯 읽어버렸다. 내내 술을 마시며 소설을 쓴다니.
김나영은 육아 퇴근 후 마시는 맥주를 끊었다고 한다. 배가 나와서. 이주란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소설로 읽었다. 그러다 '주란'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진짜 이주란 이야기를 이주란이 쓴 건가 의심하다가 그런가 보다 하고 읽게 된다. 그런가 보다, 가 중요하다. 이주란의 글은. 어떤 일상은 마음이 아파서 사실로써 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주란은 그런 순간을 쓴다. 그래서 진짜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소설로 읽는다.
한유주의 「단 한 번 본」을 읽고 이제는 한유주를 읽어도 괜찮겠다는 안심을 한다. 이장욱의 시 같은 글을 끝으로 『술과 농담』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술도 못 마시고 농담은커녕 농담 비슷한 걸 시도했다가 분위기만 싸하게 만드는 나란 인간은 술과 농담을 글로 배우고 있다. 술에 취한 기분이 싫고 술이 깬 다음날은 더더욱 기분이 더러워져 술을 마시지 않는다. 유쾌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농담을 시도했다가 상대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울면서 집에 온 적도 있다. 술과 농담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그것에 관해서는 읽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