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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좋은 소설이란 인물들의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 아닐까. 위기에 빠진 그들이 제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는 소설. 허무에 절망에 잠식되지 말고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오늘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비는 소설. 소설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서 기어이 나의 현실을 보고야 마는 소설. 그래서 더욱 애틋한 기분이 되어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
여기 있다.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 그렇다. 한 손에 꼭 쥐고 읽을 수 있는 작고 귀여운 소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자리에서 홀라당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다. 읽어야 할 이야기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읽고야 만다. 회사를 퇴직한 성오 씨가 아내 대신 녹색 어머니회에 나가 대학 때 잠깐 연애한 여인을 재회하는 이야기 「녹색 재회」를 시작으로 『누가 봐도 연애소설』에는 사연 많은 사람들의 짠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물 떡볶이를 좋아하는 소박한 식성을 가진 이들로부터 연애에 성공해볼까 강아지를 분양받는데 도리어 강아지와 사랑에 빠지는 순수 청년의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애틋하고 소중해서 그러니까 허구 속 인물이 겪는 스펙터클한 모험이 아닌 내가 경험한 일들을 늘어놓은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이윽고 눈에는 눈물이. 뜨이씨. 이기호, 네가 날 알아? 하면서. 어떻게 다 알고 있어. 또 이러면서.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산으로 올라가 소리 한 번 질러, 서는 안 되고.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니까. 사람 없다고 마음 놓고 산에 갔다가 도시의 인간들은 죄다 이곳에 모인 거야 하면서 뜨악할 테니까. 산에 가지는 말고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꼭 읽어보시기를. 웬만해선 이렇게 대놓고 책 추천 안 하는데. 책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취향 타는 물건이라서 함부로 권했다간 관계가 어색해져서.
자신 있게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어서이다. 마스크 없이 뛰어놀고 싶은데 여행 가고 싶은데 나로 인해 누군가 아플까 봐 곤란에 처할까 봐 다들 숨죽이고 생계 활동 외에는 집에만 있는 그대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때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읽으며 맞아 나도 저랬어, 에고고 사랑 고백 한 번 폼 없지만 기차게 하네, 감탄과 탄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된다. 웃기고 서글프고 애틋하고 보듬어 주고 싶은 인생을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그거 데이트를 가장한 사기야. 말해주고 싶고. 재난지원금은 주거지에서 써야 돈이 차감되는 거야. 알려 주고 싶다. 짧은 소설의 대가는 성석제였는데. 였는데?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그건 아니고. 최근에 나온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아직 안 읽었기 때문에. 그거 조만간 읽어보고 성석제가 여전한지 판단해 보겠다. 아무튼 짧은 소설의 벼락 스타 정도 되겠다, 이기호는.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마지막에는 묘한 여운까지 독자에게 한 아름 안겨줘야 해서 짧은 소설 쓰기는 까다로운데. 이 어려운 걸 이기호의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 해낸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내 이야기라서 지금부터 말을 시작하면 2박 3일 동안은 꼼짝 않고 들어야 할 가슴 아픈 내 인생이 『누가 봐도 연애소설』에 들어 있다. 술 먹고 어른들이 항상 하던 말. 내 인생이 말이야.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야. 『태백산맥』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던. 지금은 시대가 변했으니까. 『태백산맥』 말고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란 말이야로 바꿀 수 있겠다.
니콜라스 장군님과 함께 한 가족의 여행기. 시골에서 농사하고 닭 키우면서도 넷플릭스로 <킹덤> 보는 성구의 사랑 고백기. 이웃 노인에게 반찬을 전해주기 위해 아픈 다리를 끌며 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머니의 이야기. 외국인 사위에게 홀딱 반하고야 만 아버지의 사연까지. 어느 편을 읽더라도 눈물을 흘리고야 말지어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마음이 들다가도 함부로 오를 수 없는 경지라는 걸 깨닫는다. 우선 살아내는 게 중요한 임무가 되어 버린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도 좋다는 안도감이 든다, 『누가 봐도 연애소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