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시집살이야?"

방학이라 아들이 집에 내려와 있어요.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다녔고, 대학도 서울에서 다니다 보니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도 늘 집안에만 있어요.
우리 내외는 별 생각 없이 ‘밖에 좀 나가서 운동도 하고 바람도 좀 쐬지 그러니?’ 했었는데
사실은 친구도 없고 하니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런데도 방학하기를 목 빼고 기다리는 부모를 생각해서 집에 내려와서 과외도 하면서 군말없이 지냅니다.
저는 저대로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내 아들이지만 착한 아이지요.

그런데 이 아들로 인해 요즘 제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남편은 시골에서 자랐고, 식성이 좋습니다.
별로 가리는 음식이 없고 몇 번을 같은 것을 식탁에 올려도 개의치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주로 한국적인 음식들이지요.
된장찌개, 각종 나물, 김치, 일주일에 두어 번 돼지고기 정도면 되고, 국은 있어야 하지만 아무 국이나 괜찮아요.
반면에 저는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만 자라서 남편하고는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다릅니다.
지금에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 건강에도 좋고, 여자들은 또 그렇잖아요. 나 먹자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 둘만 있을 때는 별로 음식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아요.

그런데 아들 녀석은 다르지요. 저 닮아서 편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에 있었고,
방학 때마다 한 달씩 ROTC 훈련을 받느라 식성이 조금 좋아진 것 같긴 하지만
제 아버지 눈에는 차지 않아요.
같이 밥먹을 때마다 아들이 반찬을 뭐 먹나 보고 있다가 김치도 먹어야지, 나물도 먹어라, 고기만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 끊임없이 참견을 하면서 저에게 눈치를 줍니다. 제가 왜 암말 않고있냐는 거지요.
방학이라 내려오면 ‘뭐가 먹고 싶으냐?’ 고 제가 묻잖아요.
그러면 이 녀석이 생각해 내는 게 뭔 줄 아세요?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은 계란 프라이에 진간장을 넣고 밥을 비벼달라는 겁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반찬도 마땅치 않을 때 가끔 해 먹인 적이 있어요.
저는 집에 왔으니 웬만하면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하고, 편식을 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마음 편안하게 밥 먹는게 더 낫다는 쪽이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못 참아라 합니다.
대학생 아이가 그렇게 먹어서 돼냐구요?
제가 해달라는 대로 자꾸 해주니까 아이의 편식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입니다.  한술 더 떠서 왜 아이를 나무라는 그런 악역을 자기가 하게 하느냐구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러면 저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매 끼를 그렇게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그리고 누가 악역을 하라고 했냐고, 좀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안 되냐고, 밥 해 먹이는 건 내 소관이 아니냐고 소릴 지릅니다.

오늘도 역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어요.
선물로 들어온 햄이 있어서 이웃에 좀 나눠주고, 아들이 좋아하는 거라 오면 주려고 두어 개 남겨 두었어요.
남편 눈치를 보느라 차일피일 하다가 개학날이 다가와서 다시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다 되었어요.
그래서 그걸 구워 먹이려고 남편의 아침상을 먼저 보았어요.
혼자 먼저 먹으라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아들이 갈 때가 다 되다 보니 까다롭게 굴지 않고 혼자 먼저 아침 식사를 마쳤어요.
출근을 하고 나면 햄을 구워 아들 아침상을 보려고 하는데
이날따라 남편은 와이셔츠 입은 것도, 넥타이를 매는 것도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계속 식탁을 힐끔거리는 거 있죠?
참다못해 그만 폭발하고 말았어요.
“아, 그만 빨리 출근 못해? 왜 그렇게 꾸물거리는 거얏?”

아, 이건 또 무슨 시집살이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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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남편분도 해주시지 그랬어요~.ㅎㅎㅎ
저도 오늘 아침 아이들과 남편에게 스팸과 계란 해주었는데~.
전 따로 따로 구워줬어요~. 저희집 애들은 노른자 터트리는거 더 좋아해요~.ㅎㅎㅎㅎ
오늘은 아이들 학교 종강식이 있어서 일찍 나가봐야 해서
서재에 이른 시간에 들어와 봤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랄께요~.^^

gimssim 2010-02-19 21:29   좋아요 0 | URL
모르시는 말씀! 우리 남편은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거 엄청 싫어해요. 제가 말씀 드렸지요. 통일을 좋아한다구요. 자기가 안먹으니까 다른 사람도 먹지 않는 걸로 통일을 하자는거죠.
금방한 따끈한 밥에 햄구이...맛있지 않나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 먹는 걸로 차별하면 얼마나 섭섭한데요~ 암요!

gimssim 2010-02-19 21: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근데 우리 남편은 안해줘서 섭섭한게 아니라 아내와 아들은 통일이 되는데 자기만 안되니까 열받는거죠.^^

순오기 2010-02-1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님은 다 늦게 시집살이 하는건데 보는 우리는 즐겁군요.^^
그댁 바깥양반도 참 대단하셔요.ㅋㅋ
우리도 요즘 아들녀석 한약 먹이느라 반찬을 가리고 있어요.
아침에 먹을게 없어서 아들만 달걀후라이~노른자 반숙으로 해줬어요.

gimssim 2010-02-19 21:32   좋아요 0 | URL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채플린^^

울보 2010-02-1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집은 딸아이도 옆지기도 정말 토속적이라,,
스팸이나 햄은 주로 부대찌깨할때만,,
그렇지 않고는 노상 김치. 된장찌개라서,,,ㅎㅎ너무 귀여우신님과 낭군님 아닌가요,,

gimssim 2010-02-19 21:3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도 부대찌개할 땐 스팸이나 햄을 먹긴 하네요.
생각난 김에 내일 저녁 반찬은 부대찌개로 할까봐요. 감사^^

페크pek0501 2010-02-2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은 멀리서 보는 숲처럼 아름다운 것"-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236쪽.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 식탁퐁경을 저는 멀리서 보니까요. 그런데 숲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을 감지하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숲 속에 있는 사람은 숲 안에 있는 벌레들과 쓰레기가 먼저 눈에 띄거든요. 좋은 방법이 있지요. 그 식탁퐁경을 먼훗날 회상하는 거지요. 그러면 거리가 생겨서 먼 숲을 보는 사람이 되어 멀리 보는 숲처럼 그 식탁풍경도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아, 재밌는 글입니다.

gimssim 2010-02-20 16:59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스트레스가 좀 많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이런 글들을 쓰는 것은 저 나름의 안간힘이지요.
흘러가는 일상사에서 '작은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님들 만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페크pek0501 2010-02-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트레스가 많답니다. 애들을 키우고 부모의 역할을 하며 사는 것 자체에서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지... 이번에 큰애가 대학에 입학을 했어요. 입학만 하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네요. 엄마 자리가 주는 부담이 버거워요. 저 역시 글쓰기로 위안을 받고 삽니다. 제가 오늘 올린 리뷰 <토니오 크뢰거>라는 소설은 글쟁이로서 가지는 희열과 함께 고뇌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간 나실 때 보러 오세요. 중전님의 아들이 대학생이란 것을, 글을 통해 알고서 저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아 무척 반가웠어요. - 페크가 다녀갑니다.

gimssim 2010-02-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쟁이라 그에 관한 커퍼런스에 2박3일 다니니라 코피납니다. 이제 귀가했어요.
우리나라의 엄마의 역할은 대학입학 시켜놓으면 반시름은 던거지요. 축하드려요.
아직 리뷰 읽어보지 못했는데 읽어보고 소설도 시간내서 볼께요.
가끔 만나요. 좀 이런저런 수다떨 친구가 그리운 아줌마거든요.
감사드리고...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