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싸게 팝니다'
오래 전, 한 지방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대요.
'남편을 싸게 팝니다. 45세의 건장한 남자. 사업 잘함. 취미 골프. 성수기에는 장기외출도 함. 세일 또는 교환도 가능'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얘긴 아니니까요.
캐나다 벤쿠버는 골프 천국이라더군요. 그래서 남편이 골프에 몰두한 어느 부인이 화가 나서 이런 기사를 실었대요.
사람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전 차라리 골프 과부나 낚시 과부가 부러운 사람이에요.
제 말을 들어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오늘은 저의 답답한 심정을 좀 얘기해야겠어요.
그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어요.
우리는 무슨 연유에선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으르렁대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원숭이 띠, 제가 개 띠여서 그런가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겠어요?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우세하냐?
지금 생각하면 분명하게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말도 되지 않는 이론들을 가지고 나와서 상대를 몰아붙이곤 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짝을 찾을 나이가 되자 고민에 빠졌어요.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 임자가 있는 몸이 되면 어떻게 만나서 남자와 여자 중 누가 우세한가의 결론을 낼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의기투합하여 결혼을 했지요.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들었는지 결혼할 당시 우리는 참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친구처럼 늙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 반듯한 사고를 가졌으니 불의한 일로 마음 쓸 일이 없을 터이고,
책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 다른 취미 때문에 생이별을 반복할 일도 없다 싶었지요.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만날 때마다 다투곤 하던 일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거라고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어요.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몇 시에 오느냐고 묻는 건 기본이고 빨리 오라는 소리를 서너 번은 하지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혼자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기차를 탔어요.
한 시간 남짓 가는 사이 남편에게서 세 번이나 전화가 온 거 있죠.
저는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기차나, 버스, 지하철 안에서는 진동으로 조정해 놓고 잘 받지 않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큰 소리로, 나 어디 가고 있어, 라면 먹지말고 밥 먹어, 따위의 소리를 거의 무방비 상태로 듣고 있어야 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죠.
혹시 급한 일이 있나 싶어 전화를 해 보았더니 남편 말에 기가 찼어요. 어디쯤 가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했대요. 그게 어디 궁금할 일인가요?
학창시절, 수학은 젬병이라도 국어 성적은 괜찮았는데 어쩐 일인지 주제 파악을 잘 못하고 자신은 썩 괜찮은 남편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남편은 별로 자상하지 않고 다소 이기적인 경상도 남자예요. 게다가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아주 우습게 보지요.
신혼 초, 남편이 출근하면서 저에게 하는 말은 으레 ‘놀고 있어’ 였어요.
처음에는 심상하게 들었는데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며칠 간 골몰하다가 드디어 맞불을 놓지 않았겠어요.
여느 날처럼 ‘놀고 있어’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의 등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지요.
"당신도 놀다 와."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에요. 제 말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그런 집에서 자랐지요.
그런데 남편은 유교 전통을 가문의 영광처럼 자랑하는 집안의 장손이 아니겠어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함께 외출을 하실 때도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의 다섯 발자국쯤 뒤쳐져서 걸어가야 하는 그런 집이지요.
서로 다른 그런 환경에서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지내다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으니 어느 하룬들 그냥 넘어가는 날이 있었겠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바람이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한 집에 한 사람씩만 똑똑하자며 입에 거품을 물곤 하지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라면서요.
부모님이 등을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고 제가 우겨서 한 것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어요?
제 친정어머닌 늘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그저 아침 밥 먹고 나가서 저녁 때 들어와야 한다구요.
그러나 사무실이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곤 하지요.
"여보, 어딨어?" 그것도 이삼십 분 간격으로 말이지요.
아무래도 의처증인 것 같다구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게 아닌가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일 때문에 삼사일 씩 집을 비울 때는 집에 전화 한 통 없거든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 방을 따로 써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책 읽고, 글을 쓰고, 음악 듣고, 영화 보기를 즐기지요.
누가 옆에서 얼쩡거리면 답답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 남편은 부부란 항상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올 때가 많아요. 누가 이마에 손 얹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벌써 모임이 끝났어?" 물으면,
"빨리 집에 오고 싶어서 밥 안 먹고 왔어. 밥, 줘!"
누가 우리 남편 좀 말려 주세요.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우리 부부를 보고 전생을 믿는 친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 주었어요.
'아무래도 전생에 너는 별당아씨, 네 남편은 머슴이었나보다.
머슴인 주제에 언감생심 별당아씨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있었겠냐?
그래서 이생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어 그 원을 풀고 있는 것이겠지.
전생에 머슴이랑 사고를 쳤으면 액땜을 했을 텐데 네가 요조숙녀 짓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걸. 그러니 어쩌겠냐? 네가 참고 살아야지.'
그 말을 제게서 전해들은 남편은 정말 가관이었어요.
여느 집의 남편들이었으면 화를 벌컥 내며 "뭐라, 내가 머슴이었다고?" 열을 낸 터인데
우리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면서 "맞아, 그랬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옛날 문헌에서 내 이름과 똑같은 머슴의 이름을 본 것도 같아."
한 술 더 뜨더군요.
맨 처음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소개한 캐나다의 그 남편도 신문에 난 그 광고를 보고는 집에 와서 자기 부인한테 이랬다는 거 아닙니까?
"여보, 아직 안 팔렸어?"
근데 정신과 의사인 제 친구 말이 우리 부부가 건강한 부부라는 겁니다.
전생에 머슴이었다고 하는 데 화를 내는 남편이나 신문에 광고를 낸 부인을 나무라는 남편과는 절대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고 해도 사는 것이 이렇게 갑갑한 건 어쩌구요.
저희 친정 부모님은 몇 해 전에 모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남편과 같이 살고 있어요. 아직 막내가 대학생이니 어쩌겠어요.
결혼이라도 시켜놓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수 밖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지내고 있었어요.
소수의 편에 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요.
다수의 쪽에 서서 익명성을 유지하고 살아가기로 작정을 한다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가요.
그러나 남편은 왜곡된 사회현실이나 구조적인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피하지 않고 ‘양심적인 소수’가 되고자 하지요.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온 힘일지도 모르겠어요.
나이 탓일까요?
이제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행동반경을 줄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만 가끔 만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쯤에서 남편과의 소모전도 막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보다 더 시골에 살고 있는 친구네를 방문했어요.
온통 문을 열어 놓은 채 친구는 뒷산에라도 갔는지 집에 없었어요.
친구가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면서 근처를 산책하다가 좁은 신작로를 건너 나지막한 둑 위로 올라섰어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떠올랐어요.
어릴 적 외갓집에서 멱감고 다슬기 줍던 유년의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풀 섶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몇 마리의 염소들조차도 반가웠어요.
그런 시내를 끼고 좁은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어요. 그 길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길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겨우 야트막한 둑 하나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길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그건 인정해야 하지요.
'내 땅은 못 다친다. 네 땅 내놔라.' 하며 상대의 마음에만 내 마음대로 길을 내느라 포클레인으로 온통 파헤치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마음 속에 우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뭔가 달라지기야 하겠어요. 마음의 한 귀퉁이를 조금 비워두어야겠다는 생각 정도지요.
남편이나 저나 우월성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성의 문제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겠지요.
그게 쉽지는 않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하잖아요.
*** 그 별당아씨는 지금은 안방마님이 되어 아직도 그 머슴이랑 살고 있답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길은 여전히 아득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