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밥상

요즘은 웰빙이다 하여 좀 거친 음식이 인기라고 해요.
말하자면 가난한 밥상이지요.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굽거나, 찌지거나, 튀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소식을 하고 많이 움직인다고 해요.

현대인들은 그 반대의 식생활을 하고 있지요.
갖가지 양념을 많이 첨가하여 본연의 맛을 흐리는 것은 물론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리는 해서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과식을 하잖아요.
그리고 열심히 자동차를 타고 가서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러닝머신 위를 부지런히 걷곤 하지요.

남편은 식사 시간은 정확해야 하고,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어진 한 공기 이상은 절대 먹지 않지요.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엘 갔겠지요.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에요.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귀한 사위였겠어요.
저녁 식사때, 밥 한 공기를 맛나게 먹는 남편이 얼마나 흡족했겠어요.
그래서 친정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밥 좀 더 드시게."
근데 남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자세로 버틴 거 있죠?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좀 더 받아두었다가 저를 주던지, 남기면 될텐데 그런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이지요.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그 때는 정말 딸 시집 잘못 보낸줄 알았다'
저는 저대로 그런 남편이 서운해서 친정에서의 첫밤을 눈물바람을 했어요.
가끔 그 얘기를 하면 남편은 지금도 큰 소리를 칩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데? 한 공기면 됐지 뭘 더 먹어?'

그 남편이 4박5일의 세미나를 갔어요.
정확한 식사시간을 지켜야 하고, 정확한 밥의 분량을 따지고, 밖에서 먹는 밥을 싫어하는 남편을 둔 반작용이라 생각됩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세수도 하지않고, 잠옷바람으로 온종일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 소원인,
혼자 남겨진 50대 아줌마의 밥상입니다.

이름하여 '게으른 밥상'입니다. 



 이틀 전에 끓인 쇠고기국


이웃에서 갖다준 호박죽


 빵가게에서 사 온 고로케


단호박1/8쪽


비빔국수


정신의 양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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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0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식탐이 늘어서 걱정입니다.
밥을 먹어도 꼭 쓰레기 같은 간식들을 섭취하게 된다니까요.
헝그리플래닛인가에 보니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유럽사람들의 먹는 량이 엄청나게 차이나는 것을 보고 괜스레 제가 막 부끄럽고 그랬는데 왜 책읽고 하는 반성은 실생활에는 잘 적응이 안되는지요 --

gimssim 2010-02-08 20:06   좋아요 0 | URL
식탐은 어쩌면 견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입맛이 떨어지잖아요.
나이들면서 저 혼자 작은 결심 한가지...
'먹는 것에 품위 지키기'
근데 전 밖에서 먹을 일이 많아서 자주 과식하게 되요.

비로그인 2010-02-0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빔국수... 하하


gimssim 2010-02-08 21:54   좋아요 0 | URL
보긴 허멀건해도 맛은 있답니다. 전 국수 삶기 선수에요. ㅎㅎ

blanca 2010-02-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중전님 저는 빨간 소고기국을 끓여 먹고 싶은데 아기가 아직 어려서 멀겋게 끓인 것만 계속 먹고 있어요. 이 밤 정말 저 얼큰한 국에 밥 한사발 말아 먹고 싶어집니다.

gimssim 2010-02-09 06:40   좋아요 0 | URL
저는 파를 싫어해서 소고기국이 저런 모양이지요. 블란카님을 위해서라면 파도 듬뿍 넣고 고추가루도 좀더 넣은 얼클한 소고기국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순오기 2010-02-1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게으른 밥상 좋아해요.
가족에게도 게으른 밥상을 들이민다는 게 문제지만...ㅠㅠ
백미밥을 드시네요. 호박과 비빔국수에 침 흘려요.
우린 남편이 당뇨라 현미잡곡밥을 먹어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나지요.^^ 식구들이 국수를 좋아해 비빔국수보다는 잔치국수를 즐깁니다.
식탁보가 예전 우리 식탁보랑 같아서 혼자 실실 웃었어요.^^

gimssim 2010-02-11 10:23   좋아요 0 | URL
우리집도 잡곡밥이에요. 남편이 없는 날엔 그동안 못먹었던 흰 쌀밥을 먹은거죠. 남편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금방해서 김이 펄펄나는 쌀밥이죠. 전 그걸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금방한 밥을 창틀에 올려놓고 식혀서 드린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