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딸딸이'에 관한 단상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학교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좀 일찍 '빈 둥지'가 되었어요.
아이들의 교육이나 양육의 방식이 저와 남편은 많이 다릅니다.
저는 부모는 '울타리'이니 그저 거리를 두고 보자는 쪽이고,
남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혼자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녀서인지 매사에 아이한테 '엎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그 원칙들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아이나 저에게 많은 상처가 되었어요.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겠지요.

또 아이가 자라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심도 느껴지곤 했어요.
밥을 좀 있다 먹겠다고 해놓고도 아이가 먹겠다면 자기도 따라 먹겠다고 합니다.
남편은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들 녀석은 닭요리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모처럼 닭볶음탕이라도 하면 남편은 너무 열심히 잘 먹는 거예요.
주말이라 튀김통닭이라도 한 마리 시킨 날에도 예외가 아니지요.
한술 더 떠서 '왜 꼭 통닭은 아들이 있을 때에만 시키냐?'고 태클을 걸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위해서,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아이를 좀 일찍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사실 어미인 저는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참 많이 마음이 아팠어요.
고등학교를 기숙학교에 가면 대학도 서울엘 갈 거고, 군대에 갔다가 결혼을 하면 어미 품에 둘 수 있는 시기는 다시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집을 떠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다가 호주에 이 년 갔다가 복학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딸도 그렇게 집을 떠났어요.

너무 일찍 빈 둥지가 된 것이 때로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아이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의 상처가 있겠지요.
착하고 제 할일을 잘 알아서 하지만 부모에게 살가운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것도 못내 서운합니다.
좀 어리광도 부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면 좋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다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 얘긴 '빈 둥지'에 관한 얘긴 아니에요.
빈 둥지가 된지 팔년 째이니까 그동안 남편이 집을 비우는 경우에도 혼자 씩씩하게 잘 지냈어요.
근데 이번엔 좀 다르더라구요.
나이가 들면 겁이 더 없어진다는데...밤을 지나고 새벽녘에 발자국 소리, 물 마시는 소리가 꿈결인 양 들리는 거 있죠?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인데 말이지요.
겁이 더럭 났어요. 꼭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어요.

예수쟁이라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내 마음 속에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남편이 이 시간에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집에 혼자 있을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구나!'
저도 그런 적이 있거든요.
지난 해, 남편과 아들을 집에 두고 바이칼 호수에 갔을 때였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에서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가기 위해 네 시간을 정차한 적이 있어요.
까다로운 입국 수속을 하면서 그 시간에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아들은 걱정이 덜 되도 남편은 좀 어리버리 하거든요.
기도를 하면서 내 몸은 여기 있지만, 내 영혼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겁은 났어요.
그래서 밖에서 신으려고 분홍색 플라스틱 슬리퍼를 사둔 있어서 그것을 꺼내 신었어요.
일부러 사람이 많이 있는 것처럼 요란하게 “딸딸딸” 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어요.
생각해 보니 좀 우스운 그림이더군요.
새벽에 웬 잠옷 바람의 아줌마가 분홍색 딸딸이를 신고 딸딸거리면서 거실을 왔다갔다하는 장면을 그려 보세요. 귀신도 옆에 있었다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지요.

그런 새벽이 가고, 오전에 창 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창틀 때문에 바닥에 이런 모습의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 비스듬히 누운 사각의 빛 안에 두 의 슬리퍼를 두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곁에는 내가 평소에 신던 슬리퍼지요.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 시간이 기도시간이었다네요.

오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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