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를 달래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로드무비님의 페퍼를 읽다가 문득,  건우와 연우가 떼를 쓰면 뭐라 달래야 하나 싶었다.

 

어린시절 대책없이 조숙한 딸부자집 셋째였던 나는 시세말과는 다르게 남동생 못본죄로 두고두고 구박덩어리였다.

큰딸은 살림밑천이라고, 손아래 여동생은 남동생본 딸이라고, 손위언니는 눈치빠르게 둘째딸로서의 처신을 요령있게 잘해 피해가는 구박을 오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나는 늘 정면대응으로 받곤 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말문이 막혀하시며 등짝을 쥐어박곤 하셨다.

지금이야 이유도 기억안나는 일로 엄마에게 한치의 물러섬없이 따박따박 따지고 들던 어린딸이 얼마나 기가 막혔으랴.

그러나 엄마만큼은 아니었어도 변변히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으며 양보만을 강요당했던 나도 기막히게 서운했었다.

 

어느날인가 무참히 서운한 마음으로 엄마의 차별을 따지고 드는 내게 엄마는 <열손가락 깨물어봐라 안아픈손가락 하나라도 있나> 하며 혀를 차셨다.

그말에 대뜸 < 손가락도 손가락 나름이고, 엄마가 어느 이빨로 얼만큼 세게 물었나에 따라 아픈 정도가 다 틀리겠지...>하며 그동안 쌓인 서운한 마음을 모아 가출보따리를 쌌었다.

자식이 이리 줄줄인데 설마 피한방을 안섞였다면 엄마가 나를 키울리 없을 것이고, 친자식이라면 저리 차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분명 나는 아버지가 바람피워 낳아온 딸이 분명하다고 소설을 써가며 아줌마 안녕히 계시라고 줄줄이 인사를 적은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그렇게 나선 대문밖 세상은 발을 내딛자마자마자 황당하게도 넓고 낯설었다.

금방이라도 찾을수 있을것 같던 상상속의 친엄마는 단서도 없고 어둑어둑해지는 골목을 돌아 동네에서 제법 떨어진 강둑에 앉아 있으려니, 비겁하게도 아버지가 돌아와 엄마를 나무라며 나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큰 희망으로 변해 있었다.

 

주변이 깜깜해져 주위가 분간이 어려워졌을 무렵 동네어귀로 돌아오니 내이름을 부르며 애가탄 식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몰래 열린문을 살그머니 밀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한참이 지나 식구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린마음에 절대 눈을 뜨면 안돼라고 속으로 다짐을 하며, 목이 멘 엄마가 등짝을 쥐어박아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던 것이 나의 가장 선명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초등학교나 갓 들어갔던 때의 기억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파란만장한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들려주면 우리 아이들은 뭐라고 할까.

혹, 엄마의 무모함과 과격함에 경악이나 하지는 않을지 피식거리며 잠든 아이들을 보니,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한다고 그새 아이들의 말대답이라도 들을라치면 울컥하는 내가 얼마나 가소로운지...

나의 과거사가 생각할수록 가소롭기만 하니 두고두고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덮어두어야겠다.

혹, 아이들이 너무 소심하여 무모함이라도 일깨워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는 조금 부끄러워도 얘기해줄일이 있으려는지...

조금더 기억을 더듬어보면 머리맡에 앉아 자분자분 이야기해줄 추억이 혹 생각 날까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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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2-1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떨어져 있던 아이들 잠든 모습이 애틋하시겠어요.
차별은 안하실테니 연우가 따박따박 따질 일은 없을테고,
논리정연함과 조숙함이 님의 어린 시절과 닮은 것 같은데요 ^^
긴 출장에 고단하셨을텐데, 잘 쉬세요.

또또유스또 2006-12-1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을 더 더듬어 보세요 님..
그래야 저도 더 듣지요.. ㅎㅎㅎ
옛날 이야기 듣는 거처럼 구수하다면 너무 오바인가요? ^^
저와는 차이가 있는 가출을 하셨군요... ㅎㅎㅎ

LAYLA 2006-12-1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겁하게도 아버지가 돌아와 엄마를 나무라며 나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큰 희망으로 변해 있었다.
...저도 옛날에 엄마에게 혼나 쫓겨나던 기억이 나네요.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빠는 그런날은 꼭 늦게 들어오드라구요 ^^

치유 2006-12-12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이른 가출이셨어요..전 호호 웃으며 옛이야기듣습니다..또 해주세요..네??
이불속에서 눈뜨면 안돼..ㅋㅋㅋ이젠 그런 맘까지도 알아버린 엄마이고 보니..참..

해리포터7 2006-12-1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초등학교시절의 가출이셨다니..그죠..아이들키우면서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있으면 정말 쥐어박고 싶어져요..근데 내가 그랬었는데 하고 생각해보면 별것아닌데 그시점에선 불같이 화가 치미니...도를 딲아야 해요.우린...좀더 크면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요?ㅎㅎㅎ

마태우스 2006-12-1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건우님을 이해해요. 부모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던 시절, 차별 받음 얼마나 서럽다구요.... 말대답이란 것도 억울함에 대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Mephistopheles 2006-12-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강단있으셨네요..^^
전 소심했었나 봅니다...가출은 곧 거지..라는 공식이 어렸을 때 머리속에서 떠나지
못했어요..^^

전호인 2006-12-1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섭섭한 말을 듣거나 차별을 받으면 어린 마음에 정말 내가 이집 식구의 일원인가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요, 요즘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빨리 깨닫고 일찍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ㅎㅎ

건우와 연우 2006-12-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애틋함은 잠시고 기말고사 성적을 점검하며 구박을 했더니 잠든 아이들이 더 안쓰러웠어요. 나는 차별을 안한다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입장은 그게 아닌지 연우가 벌써 따지고 든답니다.ㅎㅎㅎ
속삭이신님/ 사실은 좀더 구구절절인데 쑥스러워 많이 생략했어요.ㅎㅎㅎ
유스또님/ 제가 어릴적 반항이 좀 심했어요. ㅋ 덕분에 철도 좀 일찍 났달까요.^^
라일라님/ 맞아요. 그런날은 왜 그렇게 아버진 늦게 들어오시던지요.^^
배꽃님/ 엄마가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론 짠하셨던지 적당히 쥐어박고 마시더라구요.^^
해리포터님/ 그러게요. 아이들을 키우며 내 어릴적 모습은 왜 떠올라 주지 않는건지요.^^ 내게 유리한 것만 더 선명하다니까요. 그래서 더 잘 안참아지나봐요.^^
마태님/ 정말 서운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차별은 분명했는데, 지금이야 자식도 강단있어 신경이 덜 쓰이는 놈이 있고 웬지 더 안쓰러운놈도 있으리라는게 머리속으로라도 이해되지만 그 나이엔 안받아들여지더라구요.^^
메피님/ 제가 어릴적에 한성질했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저시절 얘기를 가끔 하시는데 그럼 제가 서둘러 말머리를 돌리고 아이들을 내보내지요. 아이들에게 엄마의 고분고분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을 들키면 아무래도 사는데 좀 불리하겠지요.^^
전호인님/ 글쎄 대문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그렇게 막막한건 참 충격이었어요. 그후 단단히 결심했지요. 준비없는 사고는 치는게 아니구나하구요.^^

꽃임이네 2006-12-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저도 가출한 적이 있답니다 ,그것두오빠와 차별한다는것때문에
울엄마가 계모아니야 하면서요 ,,ㅎㅎ

건우와 연우 2006-12-1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꽃임이네님도 가출을 해보셨다구요..@.@
아이들이나 옆지기분께 그리 다감한 님을 뵈면 상상이 안가는 일이군요.^^
빨리 전말을 고백해서 올리세요.ㅎㅎㅎ

건우와 연우 2006-12-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시절엔 무지하게 억울했는데, 지나고 나니 저도 재밌더라구요.^^
친정엄마는 아직도 가끔 그때 얘기를 하세요, 얼마나 기막혀하시는지요. 그러면 저도 이젠 어른이면서도 실실 웃으며 어쨌든 분명 차별은 한거 맞지? 하며 따지곤 하지요.^^

2006-12-14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1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출'을 전 마지막 패처럼 생각하고 품고 있었는데
아쉽게 한 번도 못 써봤다죠.
생각나는 일화는 곧 페이퍼로 올릴게요.^^

건우와 연우 2006-12-1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건우는 선물하는걸 즐기지요. 실속도 없이...
그래도 선물을 고르는 동안 즐거워하는 걸로 보아 손해나는 장사는 아닌가봐요.
그 즐거움을 어디서 찾겠어요? 연우도 덩달아 즐거워해 다같이 한참을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시험망친 건우를 들볶을 시간이 줄었으니, 천만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건우와 연우 2006-12-1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흥미진진한 다음페퍼를 기다려도 되는 거지요?
주하는 새동네에 좀 익숙해졌을까요? 예쁘고 씩씩한 주하,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로드무비님만큼이나 인기많은 주하가 기운을 잃으면 안돼지요...^^
 

제법 긴 출장을 다녀오니 그새 날씨가 본격적인 겨울로 바뀌었네요.

돌아오니 밀린일과 새로 벌어진 일로 정신이 없어서 며칠은 좀더 바빠야 할 것 같습니다.

주인없는 서재에 들러주신 분들께 일일히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이렇게 두리뭉수리 인사를 합니다.

그간 다들 건강하셨지요?

더 추워진 날씨에 감기조심하시고 자주 따뜻한 차라도 마시며 느긋하고 따뜻한 겨울 함께 나기로 해요.

천천히 그리웠던 분들 서재에 인사드리러 다닐께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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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1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긴 출장을 다녀오셨군요. 잘 다녀오셔서 반갑습니다. 날씨가 확 바뀌어있죠?
바쁜 일 하시고 차츰 오세요. 건강하게 지내시구요^^

Mephistopheles 2006-12-1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생각보다 긴 출장이셨나봐요..^^

또또유스또 2006-12-1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
푹 쉬시고 찬찬이 오시어용...

치유 2006-12-1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해리포터7 2006-12-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허전하드라니..건우와연우님께서 출장을 다녀오신거군요..쉬엄쉬엄하세요..알라딘서재 어디로 도망 안가요.ㅎㅎㅎ

반딧불,, 2006-12-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다녀오셨군요.

sooninara 2006-12-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죠? 이야기 보따리 좀 풀어 보세요^^

부리 2006-12-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어요? 밀린 페퍼 읽으시느라 바쁘시겠어요 연말인데...^^

춤추는인생. 2006-12-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중국이야기도 건우와 연우이야기도 너무너무 기대되요.^^
어서오셔요*^^*

건우와 연우 2006-12-1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날씨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감기조심하세요.^^
메피님/ 예. 제법 길었다지요. 돌아오니 밀린 일은 그보다 더 길게 줄을 섰네요. 여전히 흥미진진한 님의 서재에 곧 인사드리러 갈께요^^
또또님/ 유스또학교문제는 잘 되셨나요? 혹 그렇지 않더라도 유스또는 올한해 님이 선물한 추억으로 행복한 아이일거라 믿어요.
배꽃님/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배꽃님. 늘 건강하세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해리포터님/ 저도 포터님이랑 알라딘을 못봐 많이 허전했어요.^^
속삭이신님/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물게 해주는 글들을 읽으며 님의 인기를 실감했다지요.^^
반디님/ 노랑이랑 파랑이는 잘 지내나요? 이제 곧 겨울방학인데 방학은 일하는 엄마에겐 비상시국이더군요. 아이들 계획표를 어떻게 짜야 힘들이지 않고 유익하고 즐거운 방학을 보낼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좋은 계획 없으신가요?
수니나라님/ 수니나라님의 반짝거리는 두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네요. 천천히 인사드릴께요^^
연말인데 부리님의 몸만들기는 잘 되어가시나요? 저도 몸만들일이 많은데 비법이 궁금해요. 페퍼는 근무중 틈틈이 읽고 있지요. 재미기 쏠쏠 하답니다.^^
인생님/ 중국은 아직도 멍한 상태로 상황정리가 잘 안돼네요. 워낙에 큰 땅덩어리만 머리속에 가물가물해요..^^ 올해가 가기전에 아름다운 연애담을 올려주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일주일간 중국으로 출장갑니다.

게으른 제 서재에 가끔씩 들러주시는 반가운분들께 평소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늦가을 비도 오는데, 다들 건강하시고 꽃보다 곱다는 단풍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다녀와서 인사드릴께요.

건강하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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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7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06-11-2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날이 많이 안좋은때네요. 서재는 먼지 잘 털고 있을께요^^

전호인 2006-11-2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추억 만들어 오시길 바랍니다.

물만두 2006-11-27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춤추는인생. 2006-11-2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가셔요?^^ 많이 보고 오셔서 좋은글 남겨주셔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또또유스또 2006-11-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갔다 오시어요...
음 중국으로 출장... 왠지 부럽기까지(?)한 전업주부이옵니다
뭘 모르는 소리 말라구요? 네네~
건강하게 잘 다녀 오세요...
대한민국을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님...

sooninara 2006-11-2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아이들은 누가 돌보시는지..걱정도 되시겠어요.

기인 2006-11-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 중국 먹을 것 많더라고요 ㅎㅎ

씩씩하니 2006-11-2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잘 다녀오세요,,무엇보다 건강하게...
가방 속에 쭈그리를 하고서라도 따라가고싶은 맘이 굴뚝 같에요...흐...

치유 2006-11-28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건우와 연우가 잘 하고 있을 겁니다..건강하게 다녀오세요..^^&

2006-12-01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2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무실 전화음은 내부전화냐 외부전화냐에 따라 벨소리의 길이가 다르다.

외부전화의 신호음은 길게 울리는데, 긴 신호음이 울리면 어쩔수 없이 조금 긴장하게 된다. 

사적인 전화는 대부분 휴대폰으로 주고 받으니 사무실로 오는 외부전화는 업무와 연관있는 담당 공무원의 협조요청이거나 사고처리요청이다.

협조야 내쪽에서 처리해주면 그만이나 사고는 우리쪽의 실수를 처리해야 하는 일이니 기술적인 저자세가 요구된다.

비굴하지 않게 사무적으로, 신속한 사과와 정확한 업무처리로 이어져야 일의 확대를 막을수 있다.

 

엊그제는 아침부터 긴 신호음이 울렸다.

<여보세요...>하는 소리를 들으니 공무원의 목소리는 아니다. 말소리에 기름기도 좀 끼여있고 늘여서 하시는 톤이 전형적인 사모님이다.

대뜸 본인이 관공서에 신청한 일이 언제 처리되는지를 물었다.

나: 그 부분은 선생님께서 해당 관청에서 설명들으셔야 하는 내용인데요.

사모님: 내가 궁금해서 그러잖아... 요즘 공무원들을 어떻게 믿을수도 없고.

나: 몇일날 신청하셨나요? 신청한 날짜별로는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사모님: 그럼 내게 지금 어디쯤 있나 확인해주지.

나: 선생님 개인의 주민번호를 확인해서 개인개인에게 임의로 확인해 드릴수는 없습니다. 주민번호를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당사자인지 제가 확인해볼 방법이 없을뿐 아니라 개인신상에 관한 부분을 담당공무원의 승인없이 발설하는 것은 규정에 위배됩니다. 다만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신 날짜에 신청하셨다면 그날 신청하신 분은 오늘 아침 모두 완료되어 발송했으므로 담당공무원에게 알아보시면 즉시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모님: 내가 공무원을 못 믿는대잖아. 내주민번호하고 주소넣어 확인해줘.

 

이쪽의 답변을 무시해가며 사모님이 대는 주소는 이른바 대표적인 버블세븐 지역이었다.

나: 선생님, 공무원에 대한 불신부분은 해당 기관의 감사실이나 민원실에 말씀하실 내용이구요. 지금 확인을 요청하신 부분은 저희에게 열람권이 없으므로 곤란합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해당 읍면동으로 전화해주시면 곧바로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개인신상에 관한 부분은 번거로우시더라도 규정을 준수해야 사고를 막을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개인신상에 관한 부분은 사소한 내용이라도 임의로 발설할수 없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분기가 남아있는 사모님 목소리가 좀더 이어질듯하더니 뚝 끊겨버렸다.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보니 세상에 예외없는 법칙이란게 없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고의가 아닌 실수도 하고 사는 것이고 그럴때마다 원칙을 들이대며 아니오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원칙에 맞추어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고 부득이 예외를 요구할때도 그에 합당한 절차와 수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며칠전 피디수첩의 말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법앞에 평등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것 아니냐는 태도로 말하던 고액 수임료의 변호사의 말이 나는 아직 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가진게 적어 지킬것조차 적지는 않으니, 당당하다 못해 오만한 그들이 무섭기는 하지만 아직은 당신과 나의 귀천이 다르지 않음을 작은 목소리로라도 말해줘야 하리라.

 

아침부터 전화한 사모님이야 한번더 전화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었을뿐이라고 애써 믿으며, 나는 아직 이 사회가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리라고 우긴다.

아들과 함께 이땅을 떠나는 벗과 차를 마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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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사를 시키라고 하세요. 참 나...

기인 2006-11-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변호사의 말은 과히 혁명적인 부분이 있네요. ^^;
참. 그래도 '민주주의'를 표방하잖아요!! 라고 pd가 말했어야 했는데. 그럼 이제 대중매체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우리 알고 보면 민주주의 한 적 없고, 앞으로도 별로 그럴맘 없다고...

2006-11-22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1-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변호사나...얼마전 마태님 페이퍼에 등장한 의사는 3D업종이다..라고
주장한 양반이나..전화 걸은 사모님이나.. 다 거기서 거기...이런 양반들
한번 된통 당하는 그런 분기점이 없을까요.??

sooninara 2006-11-2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참내.....

건우와 연우 2006-11-2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ㅎㅎ 김기사는 땅보고 오라고 시켰을지두요...^^
12:19 속삭이신님/ 그러게나 말이예요...시골의 나이드신 노인분들이나 좀 부족한 정신지체장애인 이런 분들도 차근차근 설명하면 대부분은 이해를 하는데요. 뭔가 심리적인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기인님/ 테레비에서 저렇게 대놓고 말도 하는구나 싶어 손끝이 덜덜... 했어요. 솔직하긴 한거지요.^^
12:58속삭이신님/ 뺑뺑이에 운명을 맏기지 않아도 잘 될거예요.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눈위를 구르던 꼬맹이의 모습이 선한데, 잘 다녀오세요.^^
메피님/ 아마 그분들이 종사하는 업종이 3D업종이 맞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정서장애와 판단장애를 동반할리가 없잖아요.^^
수니나라님/ 잘 지내시지요? 사는게 종종 허탈해요...

전호인 2006-11-2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웠다는 인간들, 조금 가지고 있다는 인간들이 더 하는 세상입니다.
어디서 반말을 지껄이고 지랄이야 지랄이. 저 같았으면 한바탕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전혀 알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하대를 하면 못 참는 성격인지라. ㅎㅎ, 기분 푸시길 바랍니다.

조선인 2006-11-2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땅을 떠나는 이가 너무 많아요. 가슴 아프죠.

씩씩하니 2006-11-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너무 멋진 답변이에요,,
정말 믿을 수 없고 부정부패 일삼는 하는 일 없이 돈만 많이 타는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면서,,,또 자주 접하는 일들이지요..
저도 그런 경험 있어요,,님처럼 잘 설명했더니..후에 그 아줌마 하는 말,,,
'우리나라 공무원이 언제부터 이렇게 똑똑했어?'헐~~~~~~

2006-11-2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6-11-2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목소리 하나 보탤께요.^^
아직은 믿을만한 사회맞지요? 님..^^
 

엊그제 퇴근무렵엔 비가왔다.

어느새 입동이 지나니 여섯시면 사방이 깜깜한데 빗줄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우산도 그대로 둔채 덜렁 퇴근을 하였다.

울음이 잦아진 연우가 머리속에 어른거려 서두르다보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내쳐 건우와 연우가 미리 타고 있는 셔틀버스로 갔다.

가는길에 붕어빵을 구워파는 포장마차에서 이천원어치를 사들고 차에 오르니 버스 뒷편 어둑어둑한 자리에서 연우만 창문에 눈길을 고정하고 앉아 있었다.

나: 연우야, 오빠는 어디가고 연우만 혼자 있어?

연우: 모르겠어요. 어, 근데 붕어빵을 사오셨네요?

나: 그래, 근데 날도 춥고 비도 오는데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갔나?

연우에게 붕어빵을 쥐어주고 다시 비내리는 거리주변으로 나서니 주변은 깜깜한데 비를 피해 서두르는 아이들 사이 건우는 보이지 않았다.

좀 있으면 버스도 출발할텐데 나타나지 않는 건우를 기다리자니 슬금슬금 한기도 나고 좀처럼 두꺼운 옷을 입지 않는 아이의 입성도 마음에 걸렸다.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죄 버스에 오르고 기사아저씨까지 차에 올라서야 저만치서 뛰어오는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오히려 울컥 부아를 불러 올렸다

나: 건우야 비도 오는데 어디갔었어? 이런날엔 차에좀 얌전히 있을 일이지...

건우: 엄마, 어느길로 오셨어요?

나: 늘 오던길이지.

건우: 엄마가 우산을 안가져가셨잖아요. 그래서 우산가져다 드리려고 회사앞까지 갔다왔어요.

그러고보니 연우가 마음에 걸려 이삼분 일찍 나오며 비까지 오자 서둘러 뛰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돼는 거리니 그 약간의 사이에 붕어빵집으로 쑥 들어가버린 나와 건우가 엇갈린 모양이었다.

불그레 언 건우의 손을 잡으니 그사이 커진  손이 제법 두툼했다.

바지가랑이가 젖은 건우를 자리에 앉히고 녀석이 챙겨든 우산을 받아들고 붕어빵을 내미니, 여전히 찬바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씨익 웃는다.

아이구 이녀석, 감기들면 어쩌려구..... 마음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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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듯하셨겠습니다..^^

물만두 2006-11-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가 다 컷네요^^

씩씩하니 2006-11-1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건우 땜에..제 가슴이..다 따뜻해지네요..
어찌나,대견한지..건우 꼭 안아주셨지요,님?

반딧불,, 2006-11-1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 참 이쁘기도 하지..^^

치유 2006-11-15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나 연우는 참 속깊고 맘따뜻한 아이들로 잘크고 있어요...^^&

건우와 연우 2006-11-1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침반님/ 글로 써놓고 보니 이쁜데 당장은 안쓰러웠어요. 날도 추운데 우산을 썼어도 애들이니 여기저기 젖었더라구요...ㅜ.ㅜ
메피님/ 나중엔 뿌듯했지만 그날은 속상했어요. 엄마가 일한다고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서요...
물만두님/ 그쵸. 아이들이 크는건 정말 잠깐이예요.^^
씩씩하니님/ 아이들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흐믓하기도 하고 어느새 생활의 대부분이 그렇게 변해있네요. 건우는 안아주려면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쑥쓰러워하면서 도망가요.^^ 그새 컸나봐요.^^
반딧불님/ 노랑이랑 파랑이도 잠깐이면 저렇게 자란다지요.^^ 게다가 엄마가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더 빨리 크는것 같아요. 노랑이 파랑이랑 반딧불님도 건강하시지요?
배곷님/ 배꽃님 말씀에 좋아서 혼자 웃습니다. 아이들이 저혼자 알아서 쑥쑥 자라네요^^
속삭이신님/ 애들아빠가 중국에 1년정도 나갔을때 건우에게 네가 엄마랑 연우를 잘 돌봐줘야한다며 열심히 세뇌를 시키더니 어느새 머리속에 박혔나봐요. 가끔 측은하기도 해요..

2006-11-17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6-11-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건우마음이 너무 따뜻해요.. 믿음직스러운 연우 오빠네요...^^
아이있는분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님은 특히 보람있고 대견하실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도 그리고 님도 저도 오늘하루 즐겁게 보내요..^^

로드무비 2006-11-2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오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지요.
동화 속의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11-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꽃임님^^ 님이 그렇게 부러워하시면 다른이들은 할말이 없지요. 꽃임이랑 꽃돌이랑 아이들하고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기자기한지 동화같구만요.^^
인생님/ 님서재를 들여다보면서도 요즘은 이사도 없었어요. 제가 좀 마음이 복잡해서요... 잘 지내시지요?
로드무비님/ 아이 좋아라...^^ 다른이도 아니고 로드무비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더 우쭐한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