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퇴근무렵엔 비가왔다.

어느새 입동이 지나니 여섯시면 사방이 깜깜한데 빗줄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우산도 그대로 둔채 덜렁 퇴근을 하였다.

울음이 잦아진 연우가 머리속에 어른거려 서두르다보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내쳐 건우와 연우가 미리 타고 있는 셔틀버스로 갔다.

가는길에 붕어빵을 구워파는 포장마차에서 이천원어치를 사들고 차에 오르니 버스 뒷편 어둑어둑한 자리에서 연우만 창문에 눈길을 고정하고 앉아 있었다.

나: 연우야, 오빠는 어디가고 연우만 혼자 있어?

연우: 모르겠어요. 어, 근데 붕어빵을 사오셨네요?

나: 그래, 근데 날도 춥고 비도 오는데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갔나?

연우에게 붕어빵을 쥐어주고 다시 비내리는 거리주변으로 나서니 주변은 깜깜한데 비를 피해 서두르는 아이들 사이 건우는 보이지 않았다.

좀 있으면 버스도 출발할텐데 나타나지 않는 건우를 기다리자니 슬금슬금 한기도 나고 좀처럼 두꺼운 옷을 입지 않는 아이의 입성도 마음에 걸렸다.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죄 버스에 오르고 기사아저씨까지 차에 올라서야 저만치서 뛰어오는 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 오히려 울컥 부아를 불러 올렸다

나: 건우야 비도 오는데 어디갔었어? 이런날엔 차에좀 얌전히 있을 일이지...

건우: 엄마, 어느길로 오셨어요?

나: 늘 오던길이지.

건우: 엄마가 우산을 안가져가셨잖아요. 그래서 우산가져다 드리려고 회사앞까지 갔다왔어요.

그러고보니 연우가 마음에 걸려 이삼분 일찍 나오며 비까지 오자 서둘러 뛰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돼는 거리니 그 약간의 사이에 붕어빵집으로 쑥 들어가버린 나와 건우가 엇갈린 모양이었다.

불그레 언 건우의 손을 잡으니 그사이 커진  손이 제법 두툼했다.

바지가랑이가 젖은 건우를 자리에 앉히고 녀석이 챙겨든 우산을 받아들고 붕어빵을 내미니, 여전히 찬바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씨익 웃는다.

아이구 이녀석, 감기들면 어쩌려구..... 마음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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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1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듯하셨겠습니다..^^

물만두 2006-11-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가 다 컷네요^^

씩씩하니 2006-11-1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건우 땜에..제 가슴이..다 따뜻해지네요..
어찌나,대견한지..건우 꼭 안아주셨지요,님?

반딧불,, 2006-11-1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 참 이쁘기도 하지..^^

치유 2006-11-15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나 연우는 참 속깊고 맘따뜻한 아이들로 잘크고 있어요...^^&

건우와 연우 2006-11-1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침반님/ 글로 써놓고 보니 이쁜데 당장은 안쓰러웠어요. 날도 추운데 우산을 썼어도 애들이니 여기저기 젖었더라구요...ㅜ.ㅜ
메피님/ 나중엔 뿌듯했지만 그날은 속상했어요. 엄마가 일한다고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서요...
물만두님/ 그쵸. 아이들이 크는건 정말 잠깐이예요.^^
씩씩하니님/ 아이들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흐믓하기도 하고 어느새 생활의 대부분이 그렇게 변해있네요. 건우는 안아주려면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쑥쓰러워하면서 도망가요.^^ 그새 컸나봐요.^^
반딧불님/ 노랑이랑 파랑이도 잠깐이면 저렇게 자란다지요.^^ 게다가 엄마가 일하다보니 아무래도 더 빨리 크는것 같아요. 노랑이 파랑이랑 반딧불님도 건강하시지요?
배곷님/ 배꽃님 말씀에 좋아서 혼자 웃습니다. 아이들이 저혼자 알아서 쑥쑥 자라네요^^
속삭이신님/ 애들아빠가 중국에 1년정도 나갔을때 건우에게 네가 엄마랑 연우를 잘 돌봐줘야한다며 열심히 세뇌를 시키더니 어느새 머리속에 박혔나봐요. 가끔 측은하기도 해요..

2006-11-17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6-11-1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건우마음이 너무 따뜻해요.. 믿음직스러운 연우 오빠네요...^^
아이있는분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님은 특히 보람있고 대견하실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도 그리고 님도 저도 오늘하루 즐겁게 보내요..^^

로드무비 2006-11-20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오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지요.
동화 속의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11-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꽃임님^^ 님이 그렇게 부러워하시면 다른이들은 할말이 없지요. 꽃임이랑 꽃돌이랑 아이들하고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기자기한지 동화같구만요.^^
인생님/ 님서재를 들여다보면서도 요즘은 이사도 없었어요. 제가 좀 마음이 복잡해서요... 잘 지내시지요?
로드무비님/ 아이 좋아라...^^ 다른이도 아니고 로드무비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마음이 더 우쭐한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