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엔 한의원에 다녀왔다.

건우아빠가 전에 다녔던 한의원인데, 그때 다녀본 경험으로 실력도 뛰어나고 약보다는 침을 권해 비용도 별로 안든다는 엄청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몰려오는걸 탐탁치 않아하며 결정적으로 집에서 두시간이나 지하철을 타야한다는 것이 단점인 곳이다.

어쨌든 몸이 힘드니 예약을 받아달라고 들이대다시피해 다니게 된 곳이라 군말없이 세개노선의 지하철을 갈아타고 보라매역으로 갔다.

땅속으로 다니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렇게 장시간 지하철을 타는건 태어나서 손가락안으로 꼽을 만한 일이었다.

 

긴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자니 앞자리에 앉은 사람을 멀뚱거리며 관찰하기도 맥없는 노릇이어서, 일전에 작게작게님의 리뷰를 보고 홀랑 구입을 한 정운영선생의 칼럼집<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을 읽었다.

작게작게님이 이 글을 본다면 정운영선생의 책을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읽다니하며 눈을 부릅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해해주시라. 최근의 나는 그나마 지하철에서의 한때가 가장 길게 여력이 나는 시간이니...

그리하여 왕복 네시간여를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때론 서서 내리는 지점을 놓칠까 눈을 흘깃거리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 책을 읽어 내려가니 선생의 어조나 느낌은 선명한데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은 벌써 가물가물 하였다.

그리고 이미 전에 두번 미리 진맥을 받고 침도 맞은터라 한약을 한재 받으며 몇몇음식은 먹지 말라 당부하는 한의사선생의 설명도 들은바 있건만 그날저녁은 그음식들이 더 당겨 한약먹기전 기념이라며 안주로 만들어 건우아빠와 술을 마셨다.

 

한잔만 마시자며, 아이들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며 건우아빠 공부얘기들을 나누다가, 내가 읽고있던 책에 화제가 돌아갔다.

건우아빠는 나이들어 같은 방면의 공부를 하는 이로써 정운영선생에 대해 느끼는 감회가 좀더 절실한 모양이었다.

나: 선생이 말년에 회한이 많았던 모양이야...

건우아빠: 그렇겠지...

나: 다른부분보다 장하준선생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어째 본인의 입장이랑 좀 비슷하게 여겨졌었던지 좀 비감하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안타까움이 유독 심한것 같더라..

건우아빠: 왜 안그렇겠어. 진작에 우리대학에 자리를 잡았어야하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너무 예리해 나쁜놈들이 감당하기 어려우니 저사람만은 안된다고 했다더구만... 세상에 나쁜놈들이 계속 기득권을 잡고, 좋은 사람들이 자꾸 밀려나면서 저렇게 퇴장을 당하는걸 보면, 이나라는 본질적으로 살만한 나라가 아닌것 같아...

나: 뭐 그렇다고 본질씩이나...

건우아빠: 지리적인 요인일까, 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 기회주의자들의 발호가 끊겼던 시대가 없는 것 같아.

나: 글쎄, 그렇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거 아닌가. 그리고 그 조금씩을 보고 우리는 살아가야하는거고... 난 가끔 운동을 하는(했던) 이들의 조급증이 걱정스러워. 당신을 포함해서...역사의 변화가 단시간에 이루어 지겠어?

건우아빠: 내말은 신자유주의라는 대세에서 마르크스경제학으로 바뀐다고 해도 말이야, 이런식이라면 지금의 기회주의자들이 다시 마르크스의 얼굴을 하고 또다시 기득권층이 되리라는거지. 기존에 그방면으로 열심히 하고 있던 모든 선량하고 성실한 이들을 다 밟아버리고 또다시...

나: 너무 비관적이네...

건우아빠: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땅에는 아무리 인재가 태어나도버림받기만 하는 것 같아.... 확 이민이나 갈까...

 

술탓이었을까, 건우아빠의 비관은...

한잔만 간단히로 시작된 술자리가 1.8리터 소주병에 든 복분자주를 반넘게 비운채 계속되었다.

술탓이기를, 그리고 안타까운 한 경제학자의 죽음에 뒤늦게 따라붙는 허무이기를 바라며 복분자주는 숙취가 없다던 동료의 말이 사실이기만을 빌었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추는인생. 2006-10-1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정운영 선생이 돌아가시던 9월 24일 토요일 오후.
그 스산했던 마음을 전 잊을수가 없어요.. 어찌 그렇게 좋은분들은 빨리 가시는걸까요.

Mephistopheles 2006-10-1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아빠님의 말씀이 술을 섭취한 후에 나온 이야기라고 하지만..80%진실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쪽으로도 이미 우리나라는 아르헨티나의 뒤를
차분히 밟아 나가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판단되어지고 있다고 하던걸요..

물만두 2006-10-1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민가면 그 나라는 안그럴까요? 사람 사는 세상은 모두 같습니다.

또또유스또 2006-10-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탓입니다... 그냥 술탓이려니.. 하고 싶네요...
하루에도 맘속으로 몇백번 이민 갈 짐을 쌌다 풀렀다 하는 저랍니다...
나의 아이가 살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우리는 살 힘을 잃지 않을까 싶네여
우리 힘내요 님..

2006-10-17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10-1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님/ 그래야지요...그 믿음으로 아직은 꿋꿋하게 버티는 이들이 역사를 만들어 나갔으면 한답니다..
유스또님/ 술탓이어요. 그럼, 술탓이어야하지요....
나침반님/ 셤은 어쩌고...잘 보셨나요?
그렇게 같이 술을 마셨으니, 술탓이었다고 우긴다지요...
물만두님/ 저도 그리 말은 해주었습니다. 어느 나란들 속사정을 들춰보면 좋기만 하겠느냐고... 설마, 이민이야 가잘까요? 홧김에 한말이지요. 게다가 전 외국이 무서워요. 한국말밖에 몰라요...ㅜ.ㅜ
메피님/ 그래도 그리 걱정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이 사회가 견인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소심하게 술자리에서나 씹지만, 그래도 훌렁 보따리 싸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는 이들이 있어서...
우리 언제 다같이 모여 거하게 술한잔하며 씹어볼까요. 한국사회의 구린 구석구석을...^^
인생님/ 참 좋은 분이었지요.... 가시는 길이 자부심이 한가득이었어도 서운했을텐데, 회한이 있는것 같아 더 안타까웠어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10-1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다시 목구멍으로 삼켜버리고 마는 삼순이네요,,저희들이 살고 있는 우리 나라,,이 땅,,사실 문제도 많고 탈도 많고 어쩜 살기 힘든 곳일수도 있으나 어차피 우리가 태어나 죽을때까지 살아야 할 곳이라면 그래도 조금은 희망차게 그럴수록 더 밝고 꿋꿋하게 사는 건 어떨지요, 이민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더더욱 쓸쓸해지는 대한민국이 되겠죠, 그리고 만약 님이 떠나시면 이 곳 알라딘도 그럴거라구요,, 가지 마셔요,,꼬옥,,!

2006-10-17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0-1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부간에 좋은 시간 가지셨네요. 복분자주 저도 좋아해요. 이렇게 이야기 주고받는 게 그저 좋아보이네요. 정운영님의 그책도 담고갑니다..

푸하 2006-10-1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 님, '건우아빠는 나이들어 같은 방면의 공부를 하는 이로써 ' 이렇게 말씀하셨는 데, 남편분(건우아버 님이라고 지칭해야 하나요? 제가 좀 호칭에 약하군요.^^:)이 오로지(전업으로) 공부만 하시는 분이에요? 아니면 직장생활하시면서 하시는 거에요? 궁금한이유는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야 할 이유들이 막 생기는 시점에서 '공부하고'싶다. 의 욕구가 막 생겨서요. 얼마전에 시험보고, 도서관은 다니는 데, 평소 제가 보고 싶던 책을 '공부하고'있거든요. 수험서 보는 거와는 좀 다르게, 저를 성장시키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시험이 내년에나 있어사 가볍게 눈요기라도 하려다가, 미국의 대북한 외교에 관한 미국인이 쓴 책의 번역서를 읽고 있는 데, 한문장 한 문장,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으려니 이거 무지무지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대학 사년 동안 전공서적들을 흘겨서 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때는 정녕 완전히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간인데... 1~2년 오로지 도서관에 파묻혀 책을 보고 싶다. 이런 헛된 망상을 하곤 해요.  전 직장을 갖어도 공부를 하고 싶거든요.   남편분이 공부하신다는 얘기가 눈에 확~하고 띄네요....^^;

 


건우와 연우 2006-10-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삼순님/ 오늘은 기분이 좀 어떠세요? 날이 썩 맑지는 않아도 마음 트이는 곳으로 나들이라도 가셨으면...^^
숨어계신 님/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결정적으로 저는 우리나라말밖에 할줄 몰라서 외국은 무서워요...^^ 숨어서 속삭이는것까지 그리 귀엽다니요..^^
배혜경님/ 다른이들은 부부간에 과도하게 진지하다고 하던걸요...^^ 둘이 마시는 술자리가 잦아 그게 또 고민거리라지요.^^ 정운영님의 책은 참 좋았어요. 그런데 작게작게님의 리뷰도 참 좋더라구요...^^

건우와 연우 2006-10-18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건우아빤 시간강사 좀 뛰고 대부분의 시간은 공부하지요. 학교에서 비케이21인가 하는 지원도 좀 받고요. 박사과정은 끝내고 논문 준비중이예요. 워낙에 다니던 대학에서 전공을 바꿔 다시 하는 공부기도 하고 외도의 시간도 좀 있어서 나이만큼 공부진도가 많이 나가지는 못했네요. 그리고 어쨌든 제가 워낙에 노련한 직딩이라는게 중요하지요...^^
푸하님은 아직 나이가 여유가 좀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제 지레짐작인가요? 공부도 젊을때 시작해야 기회비용이 적게 든다고 해야할까요? 어쨌든 저는 좋은 생각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그리고 젊을때라면 조교같은거 하면서도 할수 있지 않나요?..^^

2006-10-18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씩씩하니 2006-10-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 저도 그런 생각 들어요,,이민이나갈까...하는..
근대.저는 건우아빠의 비관적 마음을 토닥거려드릴 생각은 않구,,
그냥,,님이랑 건우아빠의 진지한 대화가 넘 부러워서,,,,아,,아,,,고개만 끄덕거렸지 뭐에요....

2006-10-20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수의 전기를 읽던 연우,

연우: 엄마, 이스라엘은 가난한 나라인가요?

나: 아니, 잘사는 나라야..

연우: 그럼 예수님이 태어나실 무렵의 이스라엘은요?

나: 그때는 요즘처럼 잘살진 못했던걸로 아는데...

연우: 책속에 나온 그림과 사진들을 보니 이스라엘은 사막과 모래가 많은 나라인가봐요.

나: 그렇지. 중동지역의 대부분이 사막이거든...

연우: 우리나라는 사막이 없잖아요?

나: 그래, 우리나라는 사막이 없지..

연우: 저는요,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예요.

나: 왜?

연우: 저는 더운거하구요 모래바람이 정말 싫거든요.

 

살다보면 멀쩡한 땅덩어리에 살아도 마음이 사막이어서 죽는날까지 모래바람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연우는 언제쯤 눈치챌까?

연우야, 네가 사는 세상이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아도 고요하고 평화로왔으면 좋겠구나.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유 2006-10-1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바램처럼..꼭 그렇게 되길 이 밤에 저도 소망합니다..

Mephistopheles 2006-10-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과 꿀이 흐르면...그 단내로 인해 파리가 엄청 꼬이지는 않을까 하는 혼자생각을 골똘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처럼 그런것이 흐르지 않아도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06-10-12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씩씩하니 2006-10-1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가,,,그런걸 모르게..그렇게 자랐음 좋겠어요...
그저 마음 속에 늘 따뜻함을 간직한,,그런 아이로요...
연우 화이팅~~~

카페인중독 2006-10-1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평보다 좋은점부터 찾는 아이, 연우...항상 행복해하며 살아갈꺼 같아요.
연우 화이링~!!! ^^

해리포터7 2006-10-1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연우..저도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요즘처럼 뒤숭숭한 시절만 없으면요.ㅎㅎㅎ

건우와 연우 2006-10-1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나이드니 조용하고 평화로운일상이갈수록 눈물겹게 소중하네요...^^
속삭이신님/ 마음이 모래밭이라면 끝없이 황량하지요. 가끔씩 우리도 그리 모래밭같을때가 있지 않나 싶어요.
바람구두님/ 사막의 고독한 아름다움을 철들면 알수도 있을까요...
메피님/ 그러게요, 누군가 석유를 저주받은 뭐라고 했던거 같은데... 젖과 꿀이 흐르니 전쟁도 꼬이지 않을까요...
또다른 속삭이신님/ 연우가 좋아하는 책중의 하나가 박테리아 할머니 물고기할아버지인가요, 그책이거든요. 아무래도 거기서 읽은 내용을 원용했나봐요. 많이 알기보단 읽은건 120%활용합니다. 아무래도 잔머리가 보통은 넘는듯...^^
씩씩하니님/ 그러게요. 아이들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건강은 좀 좋아지셨나요?
카페인중독님/ 중독님도 화이팅!!! 요즘은 어른도 화이팅이 필요한거 같아요..^^
해리포터님/ ㅎㅎ 저는 외국어가 젬병이고 할수 있는 말은 우리나라말밖에 없어 한국에 태어나길 다행이다 그랬었다지요...^^

비자림 2006-10-1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며...
추천 누르고 가옵니다^^

2006-10-13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10-1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감사하옵니다~
새벽에 속삭여주신님/ 이제 몸은 괜찮으신거지요? 하고 계신일 차근차근 준비 잘 하시리라 믿으며, 아프지 마세요...
좀전에 속삭여주신님/ 과찬의 말씀을... 근데 내용이 부실한것같아서 조금 민망합니다...

로드무비 2006-10-16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 철학자 연우!^^*

꽃임이네 2006-10-2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776

일등 잡았다 .

님 바쁘신가요 ,아님 아프신지 궁금해요 ..

 

 

어제 퇴근하는 버스안에서 연우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연우: 엄마, 엄마는 인간이 박테리아같은 미생물에서 동물을 거쳐 인간으로 진화했다는것과 하느님이 만들어냈다는 것중에 어느쪽을 믿으세요?

나:  음,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화했다는주장을 진화론이라고 하고 하느님이 만들어냈다는 주장을 창조론이라고 하는데, 엄마는 진화론을 지지한다만은 아직 확실히 결론이 났다고 볼수는 없지...

연우: 우와, 엄마도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나도 진화론이예요

연우가 신나서 손가락을 쭉 세우고 의기양양하여 손가락을 걸라는 시늉을 한다.

연우: 엄마는 왜 진화론을 믿으세요?

나: 글쎄, 그게 좀더 과학적으로 느껴져서라고 해야 하나... 너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손을 치켜들고 설명을 시도하는 연우의 눈이 반짝반짝하다. 

 

연우: 만약에요, 하느님이 계시다면요. 모기같은 나쁜 곤충은 모두 벌을 주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기에겐 좋은점이라곤 하나도 없고 오직 피해만 줄 뿐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모기가 늘어나는걸보니까 아무래도 하느님은 없는것 같아요. 그리고 나쁜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걸보면 하느님이 없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하느님이 없다면 당연히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 않겠어요?

 

연우의 창조론과 진화론을 판단하는 근거는 아무래도 가을 모기였나보다. 

올가을 다늦게 늘어난 모기가 연우에게 신에대해 회의하는 계기를 만들다니...

관념적인 종교보다 실재하는 모기가 연우에게 더큰 영향을  미치며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추는인생. 2006-10-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나이 여섯살에 처음으로 성당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얼마나 진화냐 창조냐 고민했는지 몰라요. 그때 제 고민을 누군가가 조금만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님 연우의 생각이 무럭무럭 클수 있겠끔 지금처럼 도와주셔요..^^
와 우리 연우.. 정말 대단해요... 꼬마 철학자. 연우.
연우보면 가슴뭉클해요. ^^

치유 2006-10-1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봐도 연우은 엄마를 너무 잘 두었어요..
건우와 연우님은 딸을 정말 잘 두시구요..

푸하 2006-10-1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고 싫어함에 대한 세심한 감각이 여러모로 유익할 것 같아요.

Mephistopheles 2006-10-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는 니체를 능가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조선인 2006-10-1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난 고등학교에 가서 한 고민을 벌써 하다니 연우를 존경합니다. 끄덕끄덕

카페인중독 2006-10-1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연우가 저보다 더 철이든 것 같아서...부끄부끄~ ( ")

건우와 연우 2006-10-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님/ 추석이 지나니 아침저녁 기온은 금새 차가와지네요. 건강하시지요?
배꽃님/ 마음착한 올케랑 넉넉하신 시어머님 뵙고 오시고 넉넉한 추석이셨던거 맞지요? 행복한 가을되시길...^^
푸하님/ 준비하시는일은 잘 되고 있나요?
예민한 아이는 상처도 잘받는것 같아요. 때론 덤덤하게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도 있어야 마음이 편하기도 할텐데요...
메피님/ ㅎㅎㅎ 생각이 많은 아이긴한데,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요.
조선인님/ 설마 모기에 대한 고민을 그때 하신건 아니지요.ㅎㅎㅎ
해람이랑 마로 크는 모습이 그림같아요.^^
카페인중독님/ 님은 철들지 마세요....^^ 님서재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즐거운데요.^^

로드무비 2006-10-1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진화론에 대한 명확한 이해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겠습니다.^^
 

건우아빠가 아침 9시쯤에 가까운 고등학교로 텝스를 치러간다고 말해둔지라 일요일아침의 달콤한 늦잠은 물건너갔다.

평소에 여섯시조금 넘으면 애들을 죄  깨워버릇했더니 별다른 씨름도 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런데 아침상앞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반찬투정을 한다.

건우. 연우: 엄마 먹을게 없어서 더 못먹겠어요.

나: 엄마는 원래 요리에 별로 취미가 없거든.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청국장찌개도 끓이고, 생선도 굽고, 연근도 튀기고 했잖아. 그럼 먹을 만큼은 먹어주는게 예의라고 생각해. 먹을게 없다니? 멸치볶음도 있고, 김도 있고.... 더이상의 메뉴는 엄마능력으론 무리야. 그러니까 엄마랑 사는 동안은 엄마솜씨에 너희들의 입맛을 맞춰.....

두녀석의 때아닌 반찬투정에 심술이 났다.

원래 음식솜씨가 썩 좋지는 않지만, 밥상앞에서 반찬투정에는 평소 애어른없이 가차없이 굴었던지라 좀 의외이기도 했다.

평소같으면 반찬투정을 한날은 거의 예외없이 반찬투정을 한 사람이 아빠랑 청소에 식사당번까지 시켜먹어왔는데 애들아빠는 시험치러간다고 아침부터 서두니 별 생각도 들지 않고 짜증만 울컥했다.

결국 아이들 밥그릇에 약간 남아있는 밥을 청국장찌개에 쓱쓱 비벼주고 차례대로 앉아 빨리 먹으라고 채근을 한게 화근이었다.

건우밥그릇을 밀어주는데 척추쯤에서 십센티가 조금 넘을것같은 길이로 불같은 통증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오분쯤 숨도 막히고 꼼짝을 못하고 있다가 시험치러 나간다는 남편을 불러세워 찜질팩을 데우고 드러누웠다.

그렇게 누울수도 앉을수도 없던 상태가 찜질을 서너번 되풀이하니 온전치는 않지만 조금씩 움직이는게 가능해졌다.

제아빠가 없는사이 건우는 찜질팩을 데워오고 자잘한 심부름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연우 읽을책을 챙겨주고 꼬마천사로 돌변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건우아빠까지 가세해 점심챙겨주고 연우는 허리를 주물러주겠다고 덤비고, 가만히 누워 일요일 하루를 책읽으며 보내는 재미가 그놈의 허리통증만 아니라면 꽤 쏠쏠한 것이었다.

이제 명절연휴의 시작인데, 이렇게 확 누워버려.

핑계김에 추석도 제껴볼까하고 사특한 생각으로 일요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통증과 함께 아침이다.

아무래도 더 버틸 통증은 아닌것 같다.

고개를 아래로 숙여도 보고 누워 다리도 들어보고 해 봤건만 내심 속으로는 병원을 서둘러 다녀와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꾸물거리게 된다.

혹시 이거 명절증후군이 척추로 간거 아냐.

어쨌든 더는 미루지 말고 병원에 다녀올 일이다.

.....

 

 

우와, 어쨌든 추석연흅니다. 다들 온가족이 함께 일하고, 일하지 않는자 숟가락도 들지 못하게 하면서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저는 미루었던 진찰받으러 병원갑니다.

일가친척들 부려먹는것도 내몸이 성해서 웃어가며 부려먹어야겠어요.^^

행복한 추석 맞이하세요.!!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6-10-02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리 조심하세요. 큰일나니까 이번 명절엔 일하지 마세요. 추석 잘 보내세요^^

비자림 2006-10-0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걱정이네요. 정확히 검진 받으시고 잘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추석 때 왕비님처럼 앉아만 계시길...
근데 아침상이 푸짐하네요. 반찬투정이라기보단 아이들은 아마 입맛이 없었을 거에요. 저는 찌개 하나에 반찬 두 가지 정도 겨우 해서 멕여요. 부실한 반찬땜시 과일은 꼭 챙기지만..^^

sooninara 2006-10-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이 든거면 다행이지만 혹시 다른 증세라면...허리는 잘 챙기셔야해요.
옆지기가 허리가 자주 아프더니 디스크 판정을 받았거든요.
결과가 잘 나오시길...물리치료도 받으시면 좋아지실겁니다.

sooninara 2006-10-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정도 메뉴면 우리집에선 상상도 못할 아침상인데.ㅠ.ㅠ
저희 국에다 밥 말아서 먹어버려요.

2006-10-02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리포터7 2006-10-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님..괜찮았음 좋겠어요..치료잘 받고 오셔요..아침에 아이들 입맛이 딸려서 그랬겠지요.뭐..울집아이들도 그럽니다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10-0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괜찮으신가요? 걱정입니다,
저도 오늘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했어요, 아직 명절 음식 차리기도 전에 아프셔서요, 진찰 잘 받으시구요, 그리 큰 문제는 없게 되길 바라며,,
그리고 건우와 연우도 좀 크면 반찬투정 안 할꺼에요, 저도 어릴적에는 그랬는걸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밥상 차려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래요, 언젠가는 건우와 연우가 님께 근사한 밥상을 차려 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페인중독 2006-10-0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건우와 연우님 글 넘 반가워요...그런데 아프시다는 글이라니...그냥 화악 드러누워 버리세욧~!!! 근데 쌓여있는 일을 생각하면 역시나 힘들겠죠? 님 화이링이야요~ ^^;;;

춤추는인생. 2006-10-0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빨리 검진받으셔요.^^ 저도 척추교청해야 한다고 했는데 1년정도 기체조 했더니.말끔히 나았어요.. 님두 하시면 좋을텐데... 저는 아직이지만 아마 주부님들은 명절이 곤혹일거라는 생각. 요즘은 제게도 명절이 조금씩 두려워지네요.^^
글두 메리추석하자구요.! ^^

달콤한책 2006-10-0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상이 말도 못하게 좋구만...그동안 너무 잘 먹이신 것 같습니다. 요리에 취미 없다는 분이어서 동료 의식을 가지려다 청국장에, 생선에, 연근을 튀기기까지...너무 겸손하십니다그려....
명절 앞두고 마구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무사히 명절 보내시고 귀환하시기 바랍니다^^

건우와 연우 2006-10-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제가 사실은 건강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했는데...애들아빠말로는 불어난 체중때문이라고 우기네요 . 제견해론 과로탓이구요...ㅜ.ㅜ 텝스는,토익 토플 텝스 뭐 그중에 하난가봐요. 저도 잘 몰라요...늙어공부하느라 바쁜남자다보니...^^
달콤한책님/ 손바닥은 어떠신가요? 물닿으면 많이 쓰릴텐데요. 책님도 무사히 명절보내세요. 해피추석^^
인생님/ 안그래도 병원갔다오다가 애들아빠한테 질질끌려 헬스클럽에 등록하러 갔다 왔어요...ㅜ.ㅜ
중독님/ 님도 시골에 가시지요? 사고도 많이 치시구요^^ 재미나게 보내고 오세요. 화이팅!!!
삼순님/이미지가 카리스마짱이군요^^ 삼순님댁엔 손님도 많으신것 같던데 님도 명절에 화이팅입니다..^^
해리포터님/ 애들이 최근 일년여를 혼을 내지 않았더니 간이 부었지 뭡니까... 감히 반찬투정을 하다니요...우리집에선 반찬투정하면 죽음이거든요...^^
속삭이신님/ 제가 성격이 살갑질 못해 덜렁 책한권만 보내고 말았지 뭡니까...좀 마음에 걸렸어요...다음 기회엔 예쁜 카드도 넣어야지...^^
수니나라님/ 안그래도 디스크조짐이 보인다고하셔서 치료받고 남편한테 질질끌려 헬스클럽 등록을 강요받았어요...ㅜ.ㅜ
속삭이신님/ 저도 드러눕고 싶어요...^^ 제가 둘째며느리지만 추석은 제 몫이거든요. 시가쪽 풍습대로 제사를 나누어 저희가 제주랍니다..^^ 어쨌든 합리적이긴하니 내놓고 투덜대지도 못하지요. 할수없이 온가족을 착취할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다지요...^^
비자림님/ 님은 비행기타고 내려가시나요? 몇년전까진 저희도 온가족이 추석에 내려갔는데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더라구요. 명절때마다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래도 돌아오는 밤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에버랜드랑 서울야경은 제법 그럴싸했습니다. 고향길 잘 다녀오세요. 해피 추석^^
만두님/ 정말 그러고 싶지만 추석은 제 몫인걸요. ㅜ.ㅜ
신경외과 선생님한테 상차려야하는데 어쩔까요?하니 최선은 개기는거고, 차선은 많이 심하지 않으니 허리보호용 콜셋을 착용하라고 하시네요. 들어오면서 의료기파는데 들러 사왔는데 의외로 편한데요. 어쨌든 무지하게 운동을 싫어해왔는데 최소한 앞으로 3개월은 꼼짝없이 건우아빠의 감시의 눈초리하에서 운동을 하게 생겼습니다. 둘러보니 우리동네헬스클럽선생들은 죄다 여자인지라 눈요기할일도 없더만요...^^

전호인 2006-10-0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허리가 좋지 않으시군요. 고거이 모르는 사람들은 고급병이라고들 한답니다. 제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보았기 때문에 빡쎄게 잘아는 병이지라. 다리가 저리지 않다면 디스크는 아닐 듯 하고, 아마도 요통일 것 같습니다. 항상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남들은 꾀병인 줄 알지만 당사자는 미치는 거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심하면 제대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수영이나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수영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Mephistopheles 2006-10-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증후군이라고 온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학생들 시험보는 날 복통오는 것마냥 주부들은 명절때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로드무비 2006-10-0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담이 올 때의 그 불길한 느낌을 저도 알지요.
어깨쪽이나 허리.
아무튼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허리 핑계로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하루 빼내셔서
영화도 보고 하시면 좋겠는디.
건우와 연우님, 모쪼록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길 바랄게요.
아프지 마시고요.^^

건우와 연우 2006-10-0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없이 보낸 추석연휴였네요...
전호인님, 메피스토님, 로드무비님, 따우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저는 연휴기간에 신경외과로 한의원으로 또다른 한의원으로 다니면서 좀 바빴답니다. 덕분에 연휴기간동안 일가친척부려먹기는 확실히 실행에 옮겼지요...^^

카페인중독 2006-10-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결국 연휴기간 내내 아프셨구나...
연휴에 아프고 또 일하다 그냥 그렇게 가버렸으니 섭섭하시겠다...
건우와 연우님 어쨌거나 화이링입니다욧~!!!

건우와 연우 2006-10-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규에 있어서 대부분의 신분이 공무원에 준한다라고 되어 있어요. 혹 필요하시면 사규(너무 두꺼우니까 후생복지관련부분만)나 단협을 따로 보내드릴수도 있어요. 참고용으로. 단협은 아마 공무원도 체결할걸요...복지부분은 사규나 단협이 근기법보다 상회하는부분은 사규를 유지하고 법규가 개선되면 법규정에 맞춰 변경하지요. 육아휴직부분은 공무원보다 못한거 같네요. 복지부분중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것은 공무원보다 떨어지는게 훨씬 많을것 같네요. 최근 몇년간 모성보호조항이 노조의 무력화이후 개선된게 없어서, 생각보다 참고사항이 많이 될지는...

건우와 연우 2006-10-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님 / 아프면 아픈대로 씩씩하답니다.^^
다행히 애들아빠가 워낙 자주 아팠던터라 나름대로 아는병원, 한의원이 많아 멀긴하지만 좋은 한의원에 다녀와 많이 좋아졌어요..^^

건우와 연우 2006-10-0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님 제가 기계치니 메일로는 그렇구요, 빠른시간안에 우편으로 부쳐드릴께요...^^

씩씩하니 2006-10-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떠세요? 좋아지셨어요?
그래도 드러누워계시진 못했지요?ㅎㅎㅎ
명절 인사 드리러 잠깐 들렀다,가요~~~
님 페퍼에는 늘,,,자잘한 일상의 행복이 배어나요~~

2006-10-11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점심시간이면 으례 그렇듯이 여직원 서넛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마치 내외라도 하는것처럼 남직원들은 또 그들끼리 둘러 앉곤 하는데, 요즘 며칠은 종종 직원들중 젊은편인 남직원B가 우리 자리에 끼어 같이 밥을 먹곤한다.

오늘도 식판에 밥과 반찬을 챙겨와 마주보고 밥을 먹는 도중 누군가가 팀장의 흉을 보았다.

뚜렷이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것으로 보아 팀장의 언행불일치나 사소한 씹을거리 수준이었던것 같다.

거기에 맞장구를 친 B의 대꾸가 말썽이었다.

딴에는 유머라고 생각했던지 <제가 따끔하게 팀장을 혼내줘야겠군요. 하하...>한다.

그러자 마주 앉아 있던 모직원이 싸한 표정으로 < 말이 참 듣기가 불편하네, 누가 누구를 따끔하게 혼을 내?> 하며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물론 백번 만번 젊은 직원의 말버릇이야 나무랄 일이지만 말이 길어져 사내에 온 젊은이는 모조리 싸잡아 싸가지없고, 더불어 이나라의 모든 젊은이의 싸가지까지 도마에 올랐다.

미루고 온 일이 있어 머리속이 복잡하여 맨숭맨숭 대꾸없이 밥을 밀어넣고 있던 나는 슬슬 밸이 꼴리는 거였다.

나: 물론 사내에서의 젊은직원들의 최근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 이전에 이런말을 우리 연배에서 하자면 우리는 선배노릇 어른노릇 잘하고 있나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모직원: 아니 우리가 애들한테 그렇게 무시당하도록 행동을 잘못한게 뭐가 있어요? 선배니까 존중하는건 당연한거지...

나: 선배니까 선배대접을 받기위해서라도 경영진이나 간부들앞에서 어렵고 힘든 말도 나서서 정리해주는것도 당연하지. 과거엔 당연했던 선배로서의 처신을 시대를 핑계삼아 행하지 않으면서 시대가 변해 젊은애들이 싸가지 없어진건 못받아들인다는건 말이 안맞는것 같은데...

모직원: 우리 회사만 그렇다는게 아니고 어딜가나 다 그렇다는거고, 그애들을 내가 일일이 가르칠수도 없고 또 요즘같이 살벌한 때에 내가 무슨 배짱으로 경영진에 맞서냐구...

나: 사회가 그런거야 결국 모두들 내집에서 내가 내자식 잘못가르친거고, 또 처음 신입일때부터 일관성있게 누구나 선배로써 제대로 처신해왔으면 후배들이 아무리 되바라졌다고 어차피 걔네들은 소수였는데 그렇게 버릇을 잡기가 어려웠을까? 이쯤에서라면 먼저 우리세대의 반성이 뒤따라줘야하는거 아냐?

원인제공한 B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식당에서 결국은 참지 못하고 내지른 내 말이 도화선이 되어 밥상머리 대화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수시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실리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제 앞가림에만 급급한 노동조합,소도 비빌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간 보여온 나이든 이들의 숱한 비열함은 열손가락으로 세어도 부족할 젊은직원들의 싸가지 없는 행동을 덮고도 남는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게다가 한때나마 의기충천했던 나의 비겁까지도 기실 선배대접 못받는 이유중의 하나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는 이 불행한 시대에 나만 참고, 나만 정의로와야하는것은 부당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그러했기에 오늘 이 사회 여기저기가 병들고 썩는것이고 경륜은 무시받아 마땅한 것이 되는것 아닐까...

불의앞에 용기를 낼줄 모른다면, 젊은이앞에 솔선하지 않는다면 이 변화의 시대에 전광석화같은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무슨 명분으로 대접을 요구한단 말인가.

남의 뒷통수에서 욕하며 밥먹은 오후, 사는게 부끄럽고 부끄럽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6-09-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이 안나는 말싸움은 무시해버리거나 시작을 안하는 것이 제일 현명하긴
하겠지만 어디 그렇게 되나요...^^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 까지야....^^
다 그런걸요 뭘...그래도 페이퍼 내용의 사회문제만큼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물만두 2006-09-2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카페인중독 2006-09-2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무지 화나셨겠군요...
근데요 뜬금없지만...몰라요...난 그런 님이 좋아요~

라주미힌 2006-09-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현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를 읽고 있는데, '혈구지도'라는 의미와 통하는 페이퍼를 만나게 되는군용. 반성과 성찰이 숨쉬는 삶,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는 거 많이들 공감할 것 같습니당.

비자림 2006-09-20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사 시간이 즐거워야 하는데 좀 일이 있으셨네요.
기성세대의 과오부터 먼저 따져 봐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2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그러게요, 사실은 저도 좀 후회가 됩니다. 과도하게 열을 올린것 같아서...^^
물만두님/ 사는게 가끔 심란하지요...^^
카페인중독님/ 좀 서글프더라구요. 지금 우리 사는 모양새가요...^^
산새아리님/ 반성과 성찰...나이들며 체면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아이들을 나무랄때도 내지른 말이 무색하지 않게...근데, 참 힘든 시대네요...^^
비자림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후내내 속이 좀 더부룩한게 과도하게 흥분을 했나봐요...부끄러워라...^^
바람구두님/ 그렇네요... 당당하고 싶어도 밥줄이란게 참 어쩔수 없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하지요...
오규원의 시가 와락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감사!!

2006-09-20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06-09-2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62992

동감하는데도 왜이리 씁쓸한지...


씩씩하니 2006-09-2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정의감이 투철한 성격인대....동질감이 확 밀려들어요..ㅋㅋ
근대..말싸움으로 몸과 마음의 힘을 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 너무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드는거 있죠..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 전에 그저 편한 관계, 편한 마음,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되요...
나이가 들었다는 뜻일까여??
암튼 오늘 점심 일로 힘드셨을꺼 같애요,,오늘 밤 푹 주무시고 새로운 낼을 향해 화이팅 해요~~~

건우와 연우 2006-09-2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어째 님이 유난히 아이들을 자분자분 잘 챙기시고 잘 다독거린다 했어요... 경험은 속일수가 없는거지요...
그쪽일이 유난히 힘들고 고되지요. 어린애들 다루고 보살피는게 말이 쉽지 보통 고되고 인내심을 요구하는게 아니잖아요...그게 쌓여 지금 그렇게 이리저리 살피며 살뜰하게 사시는 거지요. 사실 직장생활 삐까뻔쩍하게 잘해도 집에 있으면 마냥 바보가 되곤 하는게 현실인걸요..... 님이라면 항상 속한 자리에서 표안내고 사브작 사브작 잘하실거예요...^^
반디님, 그리고 씩씩하니님? 좀 씁쓸하지요...
사실은 아까는 사는게 치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서 세상에나, 눈물이 다 나려고 하지 뭡니까...
나이드니 눈물도 때와 장소를 못가리는지 불쑥불쑥 슬프려고 하지 뭐예요...^^
이거 주책인거 맞지요...
오늘은 일찍 자려구요, 자고 나면 또 해가 뜨겠지요?

또또유스또 2006-09-2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998

3000을 잡겠습니다


또또유스또 2006-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999

chika 2006-09-2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000            또또유스또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삼천입니다.  ^^

또또유스또 2006-09-2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000

앗싸~~~~~~~~~

건우와 연우님 2222 힛을 제가 놀러 다니느라 지난 여름에 못 잡아드린것을 대신하여 3000을 잡았나이다...

 30분이나 기달렸어여 흑흑흑...

저 잘께요...

님 내일 뵈여~~~~~~~~~~~~~~

 


또또유스또 2006-09-2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고맙습니다... ㅎㅎㅎ^^

꽃임이네 2006-09-21 0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저도 축하드려요님.^^*

로드무비 2006-09-2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점심시간엔 드라마 이야기 정도가 딱인데......^^

건우와 연우 2006-09-2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부비님/ 그치요, 밥먹을땐 드라마얘기가 딱인데...^^
그래도 오래 담아둘줄 모르는 아줌마들이라 하룻밤 자니 다들 잊은듯 또 사는얘기하며 점심먹었어요...^^
밤늦도록 지켜주신 또또님, 치카님, 꽃임이네님 다들 고맙습니다...^^
다들 일이 많아 피곤하실텐데, 오늘은 일찍일찍 주무세요....^^

2006-09-22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2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건지 암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같이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래도 좀 안심을 해도 될까요...^^

2006-09-27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2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평소에 챙기는곳 많으신분이라 추석이 다가오니 아무래도 더 바쁘시겠지요...^^
일녀내내 한가위만 같으라는데 명절이 자꾸 심드렁해지는건 주부증후군인가요?^^
바쁜 와중에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저도 명절지나면 더 자주 찾아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