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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혹은 삼십대 까지도 열심히 살다보면 세상은 반드시 변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바램만큼은 아니어도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을 것같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6월 혁명을 거쳐 느꼈던 역사의 진보에 대한 희망이 세월호의 퇴행을 거치면서도 뭉개지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최근 민주당은 세월호의 충격보다 심하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뭉개고 있는 느낌이다.

그들이 내편이라고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안에 혹시 내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같은게 있었던 걸까? 

때로 민주당이  못미덥고 싫어도 자한당을 찍을수는 없어 투표장에서 인질같은 마음으로 찍었던 그 한표가 이리도 심한 모욕으로 돌아올 줄이야 . . . .

 

시민운동가에서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선함이라는게 있긴 한건지 의심스럽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던 지방자치제도도 부패한 지방토호의 모습들을 반복해 보여주고, 개인의 사생활을 국가가 통제하는게 지나치다던 간통제폐지는 성공한 권력자의 성비위를 은폐하기 쉽게하는데 이용되기만 하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젊어서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늙어서도 진보주의자면 뇌가 없는거라던 농담같은 말을 씁쓸하게 떠올리며, 내가 믿었던 신념들에 자꾸 혀를 차게 된다.

어쩌면 침조차 뱉게 될지도  모른다.

늙고 고집스러운 나이가 되니, 세상이 만들어준 실망에 더 큰 상처를 만들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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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과 2017년을 관통한 촛불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조금 들떴었던 것 같다. 세상이 조금은 변할지도 모른다고.....

5월이 가고, 6월도 7월도 8월도 9월도 간다

그러나 여전히 비리와 차별과 불관용의 벽은 높고, 타협은 보이지 않고 나의 생활은 아직 죽기살기로 아둥바둥이다.

 

대기업 정규직노동자에게도 삶은 여전히 가파른 고갯길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타인과 공존하며, 내것을 내주어도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내 아이는 실패속에서도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으며 부족한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꿈꾸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지렁이보다 더디게 움직이는 변화가 올바르다는 확신도 없는 오늘, 누군가는 기회조차 박탈된 세상에서 분노의 칼을 갈것이다.

불특정다수에게 휘두를 칼을 타협으로 내려놓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전을 거듭하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발밑이 불안한 정규직노동자는 꽉  쥔 주먹을 펴지 않고, 정치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오늘,

세상은 더디고 더디게 바뀌어, 내가 살아 생전에 그런 세상이 오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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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이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병이 되어버린지가 어느새 십수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참으면 지나가리라 여겨졌던 불경기는 일상이 되어 버렸고, 기업이 슈퍼갑이 되어버린 2014년, 제일 흔하고 값없이 되어버린게 사람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염치도 예의도 버려야 하는게 만성실업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덕목이 되어버린 것일까?

 

며칠전 터져나온 삼성의 총장추천제에서 나는 거대기업의 은밀하고 치밀하며 졸렬한 악의의 냄새를 맡는다.

한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115에서부터 제로까지의 숫자들.

또한 시작은 삼성이되 조만간 대부분의 대기업으로 번져나갈 그 숫자들 앞에 어느 대학에서도 거부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에서 슈퍼갑이 되어 젊음의 존엄을 짓밟는 취업이라는 괴물의 모습을 본다.

 

어느 한순간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한적이 있었느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증거를 들이밀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금 덜 받고, 더 나누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수도 있으리라는 꿈조차 버릴수는 없기에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막을수 없다.

 

이토록 팍팍하고 추운 겨울에 저들은 왜 새파란 젊은것들에게 자꾸 무릎을 꺽으라 종용하는가?

결국은 꺽인 무릎에 찍힌 모래며 돌멩이 자국들을 확인하며  절망하게 될 지라도 아직은 너무 젊은 그들에 앞서 우리가 좀 더 화를 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여러해를 먼저 살아온 우리들의 나이값이며, 또한 나는 아직 열몇살짜리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가?

 

그러기에 아직 나는 분노를 포기할 수없다.

내 아이들의 꺽인 무릎에 찍힐 수많은 상처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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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혹은 당분간 내 주변의 화두는 복지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그리고 반값등록금까지.... 

포털에 뜬 오세훈 시장의 인터뷰를 보니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그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하다. 

저런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앞으로 나의 남아있는 경제활동 가능시기는 얼마나 될까?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야 밥이든 병이든, 그리고 학자금이든 나와 가족의 문제를 어찌 해결하는 것이야 그닥 문제될 게 없지만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딱 거기 까지다.  

이제 조만간 열리게 될 근로소득이 중단될 기나긴 노년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건우와 연우는 그나이때의 나보다 더많이 배우지만 행복해보이지도 않고, 저 아이들이 또다른 가족들을 형성해서 독립적으로 잘 살아갈지 조마조마해 보인다. 

아이들도 나도 날마다 위태로운 것이 나만의 문제인것인지, 나는 요즘 새벽이면 후두둑 가슴을 내리치는 불안감에 잠이 깬다. 

멀쩡한 직장에 이 오랜 시간을 다니고도 집 한간을 갖는게 이렇게 힘들고 많지도 않은 아이들 가르치고 먹이는게 이리 불안한 나라, 이나라가 과연 정상일까? 

몇십년을 이땅에 살며 한번의 세금도 연체해 본 기억도 없고,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딱지도 제때제때 꼬박꼬박 내왔는데 나보다 잘먹고 잘사는 이들은 더 중요한 나랏일을 한다고 나설때마다 검증이라도 할라치면 숱한 세금포탈에 탈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며 이룬 치부를 관행이라 주장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들이 복지포퓰리즘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자니 이젠 화가 나는게 아니라 살의가 일어난다. 

성실과 정직보다는 대부분 대대로, 혹은 당대의 훌륭한 수완으로 잘먹고 잘사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그들.

대부분은 수완이라는 어감이 주는 부적절한 행위들을 포함하는 일처리를 통해 쌓은 부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뻔뻔함이 올해는 징그럽게 만연할 해인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문득 발밑이 자주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요즘, 최소한 무관심하지 말자고 눈부릅뜨고 지켜보자고 마음먹는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날 오세훈 시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당신의 말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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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신문에 천안함으로 인한 수도권 집권여당으로의 표쏠림 기사가 났다.  

예로부터 선거에서 표는 대개 여촌야도로 구분되어 나타나기도 했으니 지방이야 오죽하랴 싶다. 

제목을 본 이후로 기사의 내용은 더이상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대상도 막연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BBK동영상을 보고도 한나라의 지도자로 뽑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이들. 

촛불에 대응하는 정권의 모습을 보고도 그리 쉽게 잊어버리는 이들. 

온국민이 반대해도 내가 속한 집단에 이익이 된다면, 그리고 내가 맞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뜻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오만한 4대강개발을 용인하는 이들. 

독도를 위시한 국가와 주권과 영토에 대한 모습조차 비굴하기 짝이없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받이들이는 이들. 

가난한 목숨은 목숨취급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용산철거민 사태를 이리 쉽게 잊는 이들 

이제 천안함을 이용하여 국가의 안위가 걸린 전쟁조차 선거에 이용하는 이들과 그에 장단 맞추는 수많은 이들 

나는 이제 정권이 아니라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속아넘어가주는 내 이웃이 싫다. 

 

주말에 내려왔던 건우아빠를 바래다주러 역까지 태우고 가는 길에 건우도 함께 태우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기분이 착잡해져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건우야, 열심히 공부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그래서 실력이 있으면 그때는 네가 나라를 선택할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능력이 되면 너는 네가 자유로울 나라에서 살아라>

부모야 선택할 수 없지만 실력만 있으면 이민이 얼마든지 자유로운 이른바 글로벌시대 아닌가. 

진실도 거짓이 되는 나라에서 나는 굳이 아이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며  애면글면하며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나야 나이들어 뿌리박은 이땅을 떠나기 쉽지 않지만 아이들이야 제법 언어도 자유로우니 내 외로움 달래자고 자주 막막한 기분이 드는 땅에 너희도 함께 살자 말하고 싶지 않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 전화를 하며, 이번만큼은 저를 봐서라도 꼭 잘 찍으세요 하니 알았다, 걱정마라 하신다. 

아버지의 늙은 목소리가 초라한 위로가 되는 저녁 . 

천변에서 들리는 맹꽁이며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부질없는 마음의 분노를 나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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