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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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읽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책이 나온 것에 비해 인연이 닿았던 것은 이번 책을 포함해서 <해피엔드에 안녕을>까지 총 3권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읽고 다시 관심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다른 책들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좋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놓은 책이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이번 작품은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하지만 짜임새는 만만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하나의 이야기 같지만 예상한 반전과 이것을 다시 뒤엎는 반전이 이어진다. 이 반전의 연속을 설정을 위한 설정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인간사는 애초에 모순으로 차 있다.”(287쪽)란 문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장인데 이 문장이 이 소설이 지닌 모순에 의한 반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두 남녀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여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보안실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남자 히라타는 묻는다. “배가 고팠나?”, “미안합니다”란 대답이 온다. 신분증을 본다. 출생연도에 생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적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그녀가 받는다. 평소와 다르게 다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를 내보낸다. 이 장면이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인연을 맺는 시작이자 모순으로 가득한 인생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마트 앞에 그녀 스에나가 마스미가 그를 다시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히라타의 딸은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뺑소니에 치여 죽었다. 이 사건 때문에 아내도 자살을 한다. 회사에서 임원을 바라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마트 보안직원으로까지 내려오게 된 이유다. 단순히 몇 문장으로 그의 삶을 요약했지만 그 속에는 그와 그의 아내가 겪은 수많은 아픔과 고뇌와 후회와 절망 등이 섞여 있다. 스에나가와의 만남을 보여주는 그 사이사이에 이 이야기를 집어넣어 그가 겪은 삶의 흔적과 아픔과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에 대비해 스에나가는 히라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시선은 좋지 못한 남자 친구로 고생하는 한 여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그가 이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정도로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생년월일 때문에 죽은 딸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약간의 금전적 도움을 줄 뿐이다.

 

이런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 둘을 오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녀를 통해 푼돈을 갈취하려는 남자 친구까지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 뭔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딸과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삶은 공허한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 그가 가장 울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와 딸이 죽었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그가 가장 솔직한 감정을 토해낸 것이다. 이런 감정과 인연과 일상이 차분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약간 밋밋한 것 같은데 흡입력을 가지고 읽게 만든다.

 

가볍게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난 후 남은 여운은 무겁다. 철학적으로 이 하나의 사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이 두 남녀의 행위를 분석해서 보여주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한 분석인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왜냐고? 제삼자조차도 이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해석한 것뿐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이자 추정일 뿐이다. 비탄과 후회와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이 작품으로 다시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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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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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1회보다 나은 것 같다. 1회 대상이 <섬>인데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고립된 공간이 무대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한 건물 1층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다. 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밖은 좀비로 가득하다. 그럼 뭘 먹고 살까? 그것은 정부가 옥상에 내려주는 배급식량이다. 이 식량을 가지러 가는 방법이 내부 쓰레기통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성인은 갈 수 없지만 주인공은 왜소증환자다.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은 사람은 생명줄이다. 단점이 장점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권력도 이동한다. 하지만 대체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 권력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짧은 단편 속에 비교적 이런 관계를 잘 녹여내었다. 설정에서 의문이 생기고 마무리가 도식적인 것은 조금 아쉽다.

 

<연구소 B의 침묵>은 어떻게 좀비가 세상을 덥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다. 사랑과 집착과 우연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종말의 씨앗은 낯익은 설정이다. 한 천재의 광기와 과학자의 호기심이 중심에 놓여 있고, 모든 원인이 잊지 못한 사랑이란 설정은 너무 도식적이다. 가독성은 좋지만 허술한 연구 환경과 문제의 근원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심사평에서도 지적했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서 말투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두 과학자의 광기를 좀더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종말의 시작이란 것만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부분이다. 분량에 비해 너무 무난한 느낌이다.

 

<나에게 묻지 마>는 가장 많은 분량이다. 시골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이장이 되어야 했던 최동민의 좌충우돌 무시무시한(?) 좀비 이야기다. 솔직히 이 소설을 중반까지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명확한 장면이나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간 느슨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좀비 소설에서 기대한 장면이 빨리 나오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가독성이 떨어지다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빨리 깨닫지 못했다. 불법 제초제 매립과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가축 살처분과 최근에 있었던 불산 누출사고 등을 하나로 꿰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 장면은 왠지 모르게 우리의 천도제보다 왠지 모르게 중국 영화 속 강시가 더 떠오른 것은 왜일까?

 

<별이 빛나는 밤>도 사랑과 좀비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의 사랑과 좀비로 가득한 세계를 그려내면서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이 희망의 빛은 별들이 사라진 뒤에 나타날 별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강렬한 액션도 좀비의 무시무시함도 없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마지막 선택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그 상황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완성도나 재미 측면에서 부족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다음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가진다. 태동기에 있는 한국 종말문학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양적으로 부족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얼마 전 기성작가 중 한 명인 한상운이 보여준 좀비와 종말의 세계도 그렇게 완성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아직 이런 종류의 문학에 대한 이해도나 취향이 부족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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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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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뒤랑 시리즈 열두 번째 작품이다. 출판사에서 시리즈 첫 권부터 낼 예정이라고 한다. 열 권 이상 시리즈로 나왔다는 사실이 이 시리즈의 가치를 알려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원작자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집필 도중 죽으면서 다니엘 홀베가 그 다음 이야기를 완성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본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중반 이후 매끄러운 느낌의 전개가 아니다. 단절된 후 갑자기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원작자가 구상한 것을 따라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인지 궁금하다.

 

한 여자가 죽는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이 살인사건은 대학생들이 펼친 광란의 파티가 있던 밤에 생겼다. 피해자 이름은 제니퍼 메이슨이다. 살인현장은 참혹하다. 증거가 방안에 넘쳐난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학생들은 술에 취하고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발견된다. 왜 이런 참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 파티에 참석했던 학생 중 한 명만이 멀쩡한 정신이었다. 그가 바로 살인자 알렉산더다. 작가는 알렉산더의 다른 살인사건을 보여주면서 분명하게 범인을 알려준다. 그럼 그날 밤 그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무죄일까? 이런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2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 참혹한 살인사건은 이 시리즈 주인공 율리아가 전작에서 당한 사건 후유증 후 첫 사건이다. 현장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쉽지 않은 사건이다. 성폭행이 가득한데 그녀는 전작에서 살인자에게 감금되어 성폭행과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율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그 사건이 그녀를 얼마나 힘들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는지 전작을 보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동료들이 나온다. 2년 뒤에 다시 이와 비슷한 사건을 다룰 팀이다. 전작에서도 그랬겠지만.

 

한 통의 신고 전화에 의해 시체가 발견된다. 현장에 출동한 형사는 프랑크와 자비네다. 너무나도 참혹한 살인 현장이다. 난도질당한 시체의 모습이 익숙하다. 이 이상한 익숙함을 먼저 느낀 것은 자비네다. 그녀의 말에 따라 프랑크도 느낀다. 그것은 2년 전 제니퍼 메이슨 살인사건이다. 이것을 프랑크가 사건 회의에서 임시 과장 역을 맡은 율리아에게 말한다. 그녀는 의혹을 가진다. 내부 알력이 생기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금방 메워지고 카를로 사건을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어느 경찰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 어떤 명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카를로 살인사건 후 알렉산더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취직한 상태다. 하지만 그의 살인 행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창녀를 물색하고 그녀를 찾아가 섹스 장면을 비디오에 담으려고 한다. 앞에서 이미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여줬기에 이번에도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예상대로다. 그런데 더 잔혹해졌다. 그가 대학에서 사귄 유일한 친구가 카를로인데 왜 그를 죽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형사들은 카를로의 방에서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힘겨운 탐문과 조사를 펼친다.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증거 중 하나가 알렉산더의 회사로까지 이어진다.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어색함과 비약이 펼쳐진 부분이 갑작스럽게 알렉산더가 사라진 이 부분이다. 연쇄살인범으로 그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 그가 한 창녀의 살인사건 후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그의 실종은 경찰들이 그의 집을 조사할 빌미를 제공하고 그가 숨겨놓은 비밀의 방이 들통난다. 이 방은 경찰이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게 만든다. 하지만 단절된 듯한 구성과 전개는 꽉 짜인 듯한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 왠지 반전을 위한 장치로 다가올 뿐이다. 다행이라면 소설 속 형사 캐릭터들이 이 공간을 채워준다. 솔직히 이 작품만으로는 율리아의 매력을 잘 모르겠다. 원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으면 달라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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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고백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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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작가다. <도모유키>를 사놓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손이 나가지 않았다. 한겨례문학상 수상작이라 산 것인데 왠지 모를 선입견과 감정 때문에 선뜻 읽지 못했다. 뭐 이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가들은 머리 한 곳에 늘 자리를 잡고 신간이 나오면 다시 관심을 불러온다. 그러다 마주한 책 소개글 중 “우리의 기억 저편, 그 어두운 이면을 서늘하게 그린 소설집”이란 문장에 빠졌다. 심리추리소설의 그림자 한 자락을 보았다면 과한 표현일까? 가끔 단편이 장편보다 편한 경우가 있는데 이번 선택이 바로 그랬다.

 

모두 여섯 편이다. 개인적으로 앞의 네 편은 취향에 맞았고, 뒤 두 편은 왠지 산만하게 다가왔다. 읽을 때 집중도 차이가 이런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첫 번째 작품 <끼끗한 여자>와 <장인정신>이다. <끼끗한 여자>는 깨끗한 여자로 잘못 읽었지만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끼끗하다’가 ‘생기가 있고 깨끗하다’란 의미가 있으니 완전히 다른 뜻은 아니다. 한 여자 연예인의 갑작스런 은퇴와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마지막 반전이 섬뜩했다. 소문과 사실과 강박증이 교차하는 과정에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은 작가가 우리 연예계를 보는 시선 한자락을 볼 수 있다.

 

<장인정신>은 도박 그중에서 화투를 좋아하는 여자가 칼국수로 돈을 벌려고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맛으로 소문난 골목구석 할머니 칼국수를 무려 108번이나 먹으면서 찾으려고 한 비법이 마지막에 드러날 때 이미 알고 있는 비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맛의 획일화 혹은 우리 기억 속 어머니의 맛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보여줄 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딸이 찾아와 맛있다고 말할 때 그녀도 엄마의 맛을 그렇게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함이 더해진다.

 

<시인의 탄생>은 열린 결말이다. 기억과 상처를 다루고 있는데 가장 미스터리한 전개를 보여준다. 한 여류 시인 정경숙의 시집 <시인의 탄생>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고, 어린 시절 그녀를 잠시 만났던 현직 형사와 다시 만난 후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협회에 시인 이름을 올리고자 한 박 형사가 시와 과거 사건을 엮으면서 풀려나오는 기억과 기록들은 나의 시선에서 보면 잘 맞아떨어진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쓴 시가 대히트를 치면서 생긴 부작용과 과거에 대한 의문과 의혹은 장편으로 개작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녀의 숨겨진 비밀과 과거를 더 충실하게 만들면서.

 

표제작 <진실한 고백>은 한 무기징역자의 고백을 다룬다. 그가 왜 감옥에 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장의 희생물은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실제 재미가 발생하는 것은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닐 것이란 것을 알고 읽는 독자의 심리다. 감방에 있으면 수십 수백 번은 더했을 이야기가 어떤 윤색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왔을까 추측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 과장에 자신의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조차 잊었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해본다.

 

<이정희 선생님>은 제목을 읽으면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먼저 떠올랐다. 얼마 전 대선의 여파다. 하지만 소설은 한 중년이 초등학교 담임이었던 선생을 죽이려고 한 이유에 대한 것이다. 다 읽고 난 후 어떻게 그런 일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순간의 기억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그의 기억도 자신의 감정에 의해 왜곡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그가 성장을 거부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정의 기복과 반전이 없다는 부분이 흡입력을 떨어트린다.

 

<뻐꾸기를 보다>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작가가 있다. 성석제다. 한때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야기를 풀어내고 환상과 전설 같은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그를 떠올려준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말할 때 이미 뻥이란 느낌을 주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었던 댐이 사람과 호랑이 등을 몰아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읽으면 산업화 현대화가 우리 삶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감성을 메마르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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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자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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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내가 처음으로 배낭여행 간 곳이다. 그 이전에 간 여행은 패키지나 반패키지였다. 친구와 함께 간 방콕은 살짝 두려운 공간이었다. 가기 전 혼자서 태국 관련 사이트를 뒤지면서 갈 곳과 동선을 짠다고 고생했다. 그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패키지 그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리고 혼자 혹은 같이 가는 여행에서 여행사 가이드는 사라졌다. 물론 현지에서 필요에 따라 가이드 관광을 한다. 그것은 일정 중 하루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그 자신감을 만들어 준 곳이 바로 방콕이고 태국을 여행할 때마다 경유하면서 머물던 곳이다.

 

방콕을 두 번째 갔을 때 노선도 모르면서 버스를 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무작정 탔다.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내리는 곳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고 졸다 깨면 깜짝 놀라곤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방콕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 자신감은 다음 여행에서 산산조각 나지만 익숙한 그 무엇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방콕에 가면 꼭 가는 곳과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이 경험은 무심코 지나간 곳에서 보통 생긴다. 나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간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만과 착각과 부정확한 정보로 많은 착오를 겪어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만큼의 경험과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저자 박준은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로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나도 한 권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샀을 때는 카오산 로드를 몇 번 다녀왔기에 바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주 갔던 태사랑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콕에 장기간 머물면서 그 경험을 책으로 내었다. 가끔 장기 체류자가 거주자가 글을 올리지만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책은 전문 여행 작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7개월을 산 것이다. 며칠 휴가 내어 다녀가는 여행자가 경험하지 못할 것이 담겨 있을 것이란 기대가 강했다. 여기에 좋아하는 방콕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다.

 

내가 얻은 방콕의 정보 중 많은 부분은 첫 여행을 간 푸켓의 가이드에서 비롯했다. 그때 얻은 지식은 이후 얻은 지식에 덧붙여줘 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짧은 여행은 태생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곳에 가기 전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곳으로 갈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 문화를 단편적으로 얻고 동선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짜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기 쉽지 않다. 물론 좋은 사이트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 관광객 대상이 아닌 곳을 방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수박겉핥기다. 이것은 7개월 머문 저자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현지인의 안내인데 이 책에서 D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아무리 좋은 현지인을 사귄다고 해도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나라의 문화나 생각이 글 속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수많은 장소를 방문하지만 그곳의 단순한 분위기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철학을 듣고 오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간 곳 중 몇 곳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곳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려고 마음먹지 않거나 몰랐던 곳도 나온다. 이 장소는 읽으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감정과 함께 도시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당연히 기존 이미지와 충돌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방콕은 되살아난다.

 

단순히 장소와 사람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과 문화다.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다. 현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태국 하이쏘의 생활은 상상을 초월한다. 방콕의 홍수로 큰일이 난 것처럼 방송에서 말할 때 이 도시 사람들이 어떤 놀이를 했는지 보여줄 때 언론이 얼마나 흥미위주인지 알려준다. 압도적으로 낯선 곳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그와 나의 감성이 어떤 부분에서 같은지,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공간과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본 방콕이 관광객을 위한 방콕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몇 개월 머물면서 낯선 곳을 방문하고 그 나라를 하나씩 배운다면 어떨까? 이것을 보면서 한국 장기 체류 외국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동남아 장기여행이 다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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