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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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 3권이다. 그의 연인 라켈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다.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에서 볼 수 없는 밝음이 보인다. 앞의 이 문장들은 이 소설을 간결하게 표현할 때 쓰는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자면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 자원병의 독일군 참전 비극이다. 역사 속에서 과거는 이미 현재고 미래로 이어진다. 그 연장선상에 일어난 가슴 아픈 비극은 해리 홀레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과 상황으로 덧씌워져 있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하나의 사건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노르웨이에서 이스라엘과 아프카니스탄의 정상이 미국의 주재로 만나게 된다. 오슬로 경찰들은 미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동원된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홀레도 동원된다. 그냥 무난히 지나갈 일인데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만약을 걱정하는 홀레에게 이 상황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발포한다. 그런데 암살자가 아니다. 이 사건은 사실 외교문제가 될 수 있지만 쌍방 과실이 있기에 그냥 조용히 덮힌다. 이 문제를 풀 해법으로 해리의 업무가 바뀐다. 국가정보국 소속이다. 경위로 승진까지 한다. 정치는 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기보다 덮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 발령 전에 신나치주의자의 폭행사건이 있었다. 그가 범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베레 올센이란 신나치가 절차상의 문제로 풀려나게 된다. 인종주의자인 그는 나치와 히틀러를 찬양한다. 가끔 언론을 통해 만났던 신나치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를 풀어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변호사 크론인데 지금도 그런 능력있는 변호사가 돈 없는 신나치주의자를 변론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 뒤에 신나치를 지원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과 어느 정도 연결되지 않나 추론해본다.

 

현재가 진행되는 와중에 1940년대 동부전선으로 배경이 바뀐다. 독일을 돕기 위해 지원한 노르웨이 군인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무려 1만 5천 명 정도가 자원했다고 한다. 그중 대부분이 죽었다. 소련군을 최전선에서 마주하고 싸운다. 추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노르웨이 군인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추위, 배고픔, 공포 등이 뒤섞여 있다. 그중 다니엘은 놀라운 용기로 소련군을 죽이고 전리품을 챙겨온다. 하지만 그도 저격수의 총탄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시체를 둘러싼 소동이 벌어진다. 소련으로의 탈주 사건까지 일어난다. 그냥 무심코 읽었던 이 부분들이 책 뒷부분으로 가면 반전으로 작용한다.

 

이 이야기 사이에 한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큰 병에 걸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 목적을 위해 올센을 통해 총 한 자루를 구하고자 한다. 나중에 다시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공할 무기 매르클린이다. 가공의 이 총을 둘러싼 첩보는 해리의 본능을 자극한다. 유배지 정보국에서 이 사건을 쫓게 된다. 이 무서운 총이 어떤 큰 사건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사를 하는 도중에 한 노인의 죽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노르웨이 현대사의 어두운 일면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권력자는 언제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취한다. 약자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건 수사 도중 해리가 만난 라켈과의 관계가 이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노르웨이 근대사로 넘어가면 왕족들의 영국 망명이 대표적인 행동이다. 처음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했을 때 독일 군복에 환호했던 사람들이 전쟁 말기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한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흔히 말하는 시류에 부합하는 행동들이다. 하지만 이 행동들이 한 군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이 소설은 그 상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의 중심에 나치가 있다. 과거 나치를 신봉했던 노인과 현재 신나치족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비극을 만들 수밖에 없다. 노인은 전쟁으로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을 입었고, 젊은이는 범죄자의 굴레를 쓰게 되었다. 과거 속에서 현재로 살아온 노인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이 있지만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젊은이는 거기서 끝난다. 삶과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작가는 바로 이 역사적 두 시간과 사람을 같이 놓고 진행하면서 살아남은 자를 더 부각시킨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살아온 자의 삶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신나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과거의 교훈은 사라지고 환상만 남아있다. 또 다른 비극의 탄생이다.

 

이번 작품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한 사건의 범인은 잡았지만 다른 한 사건의 범인은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은 범인조차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권력이 힘을 발휘하고 진실은 묻혀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역사의 한 부분을 단순하게 파헤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큰 문제다. 역사 왜곡이자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복잡한 구성 속에서 독자의 시선을 계속 끌고나가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과 권력, 역사적 사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장면 전환, 역사적 사실을 현실에 풀어내는 힘 등은 왜 요 네스뵈인지 알려준다. 분명히 이전에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와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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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림스톤 펜더개스트 시리즈 3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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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개스트 시리즈 3권이다. 앞의 두 권은 읽지 않았다. 3권부터 읽었으나 전편과 어떤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원래 이 시리즈가 그런지 모르지만 읽는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정확한 책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탓에 소설의 설정 중 일정 부분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가졌다. 이 선입견을 강화시켜 준 것은 다름아닌 펜더개스트의 능력이다. 지식이 짧아 다른 작품에서 이 정도 능력 있고 개성 강한 FBI요원이 있었는지 발견할 수 없다. 거기에 소설 속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한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7백 쪽이 넘는 대분량의 시작은 한 남자의 기이한 죽음이다. 그의 죽음을 발견한 것은 가정부다. 제레미 그로브가 죽은 모습과 그 주변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의 시체는 타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인체 자연발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거기에 그가 있던 방은 완전한 밀실이다. 방문을 잠근 상태에서 안에 짐을 쌓아두었다. 밀실 미스터리에서 흔히 다루는 완전 밀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밀실 트릭을 푸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초자연적인 상황을 다룬다. 이 상황을 완전히 해결했을 때 모든 비밀은 쉽게 풀린다.

 

펜더개스트의 등장은 흔히 영화 등에서 보는 FBI의 그것과 다르다. 휴가를 온 듯한 모습으로 현장에 나타난다. 그 현장에 있는 것은 전직 뉴욕 경찰서 부서장이었고 작가였던 빈센트 다고스타다. 그들은 이전에 한 사건을 같이 해결한 적 있다. 빈센트가 작가로 직업을 바꾸기 전이다. 현재 빈센트는 지역 경찰 경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다 그로브 씨의 사건에 투입되었다. 유능한 형사가 아닌 사건 현장을 지키는 경사로 말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펜더개스트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게 만든다. 다시 경찰이 된 것은 소설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것은 다고스타다. 작가로 변신하는데 실패한 후 다시 경찰로 직업을 옮긴 그의 활약이 더 눈길을 끈다. 그것은 펜더개스트가 보여주는 능력이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학식과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더불어 경찰로서의 활약은 더 대단하다. 이제 궁지에 몰려 끝났다고 하는 순간 그 난관을 해쳐나가는 모습은 루팡의 그것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거기에 뉴욕 대저택의 풍경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소녀의 존재는 이것을 더욱 부채질한다. 반면에 다고스타의 활약은 인간적인 모습이 강하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펜더개스트의 통찰력은 사건의 큰 방향을 잡아나간다. 그 속에 다고스타와 다른 인물들이 충돌하고 엮이고 헤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변질되고 이용되는지 보여준다. 벅 목사와 기자 해리먼이 그들이다. 컷포스에게 일어난 두 번째 기괴한 죽음을 계기로 사건은 부풀려지고 악마와 같은 존재의 희미한 그림자가 더욱 선명하게 드리워진다. 여기에 한 과학자의 연대적 일치는 이 사건을 더욱 초자연적으로 만든다. 이런 장면들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해석과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설정이다.

 

매체가 환상을 만들고 이에 동조한 무리들이 등장하여 사회에 조그만 혼란을 가져온다. 하지만 펜더개스트를 비롯한 경찰들은 현장과 증거에 집중한다. 사체를 부검해서 사인을 밝혀내고 죽기 직전에 있었던 전화 통화 내역을 참고해서 한 명씩 조사한다. 이 조사 과정에 충돌이 발생하고 암살자가 나타난다. 액션이 가미된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낯선 지역을 걸어 다닌 다고스타고, 그 다음은 펜더개스트다. 다고스타의 총격전이 그가 잊고 있던 경찰의 본능을 일깨우면서 흔한 장면을 연출한다면 펜더개스트는 암살자가 등장한다. 그냥 평범하고 밋밋한 듯한 대결 뒤에 숨겨진 심리대결과 작전은 사건이 종결된 후 비로써 빛을 발한다.

 

롱아일랜드 사우샘프턴에서 시작해서 뉴욕으로 이어진 사건은 나중에 무대로 이탈리아로 옮긴다. 이 소설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다. 용의자를 쫓아간 두 형사가 위기에 빠지고 어떻게 그 현장을 벗어나는지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기이한 죽음이 나오고 펜더개스트 등은 증거를 바탕으로 다시 추적하기 시작한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 살인 사건은 또 다시 일어난다. 미궁에 빠질 듯한 사건에 두 형사는 그동안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사건 추리 결과를 내놓는다. 일치한다. 여기서 초자연적인 살인사건은 과학으로 돌아온다. 액션스릴러라고 말하는지 알려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로 만들면 멋진 장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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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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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의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파스텔 빛 여행집’이란 설명에서 여행 에세이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다. 여행 에세이가 6편 들어있지만 12편의 단편소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편 사이사이에 에세이를 삽입한 구성이다. 처음 만난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응! 에세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은 몇 편의 단편소설을 더 읽은 다음이었다. 하지만 단편소설을 에세이로 착각하면서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오해는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12편의 단편 중에서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사실 몇 편 되지 않는다. 모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과 내용이라 단숨에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책을 읽은 후 목차를 펼쳐 다시 보니 가장 먼저 나온 <소원>과 <춤추는 뉴욕>과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소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비행기 속에서 소원을 비는 행동과 그곳에서 만난 예전 애인과의 짧은 만남이 조용히 가슴 한 곳에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단편을 실제 일어난 에세이로 생각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춤추는 뉴욕>은 친구와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불화를 다룬다. 이 불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여행의 마지막 지점에서 일어난 불화가 그에게 새로운 만남을 제공하고 살짝 연애의 기운을 풍긴 것이 재미있다. 조그만 에피소드가 주는 즐거움은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대응이 웃음을 자아낸다. <베스트 프렌의 결혼식>은 내용보다 처음 혼자 외국에 나간 여자의 결심이 과거 나와 현재 친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두려움 속에 움츠려 있던 그녀가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다른 여행지를 가려고 하는 그 모습은 친구에게 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 외 자전거를 도둑맞은 후 편지를 훔친 여자 이야기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몰랐던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나 작가로 성공한 친구를 기다리는 한 남자의 심적 변화를 다룬 단편이 흥미로웠다.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펼쳐진 옛 연인의 흔적을 담아낸 것이나 대학 입학 후 부모의 품을 떠난 아들을 만나러 간 엄마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가 가슴 한 곳에 자리 잡는다. 신혼여행을 온 여자가 남편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하늘색을 볼 때 느낀 감정은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만든다. 이 외 다른 작품도 간결한 이야기와 장면으로 가득하다.

 

12편의 단편소설과 달리 6편의 에세이는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콕에서는 몇 번이나 갔지만 한 번도 갈 생각을 못한 곳이 눈길을 끌고, 최근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한 곳인 루앙프라방은 올해는 꼭 가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한 번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못한 오슬로는 가슴 한 켠에 자리를 잡았고, 타이베이는 나와 다른 입맛을 가진 작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겨우 며칠만 머문 그곳에 다시 가고 싶게 만들었다. 호치민은 회사 직원들의 말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곳의 비를 보고 싶어졌다. 친구가 엄청난 추천을 했던 스위스는 한적한 마을의 여유있는 휴식과 멋진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일본 항공사 ANA 기내지에 연재된 것을 다듬어 낸 책이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을 하나 인용하자. “불안함이란 절대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문득 이 감정을 느꼈을 때 다음에 보는 풍경이 기대 이상으로 선명하고 강렬하여 잊기 힘든 것이 될 때가 있다.”(215쪽) 여행지에서 목적지를 찾다 헤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글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 느낀 감정을 기대에 따라 엇갈릴 수 있지만 먼 훗날 아주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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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의학의 진실
데이비드 뉴먼 지음, 김성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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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공은 응급의학이다. 그래서인지 각 장에 나오는 사례들이 대부분 응급실에서 벌어진다. 응급실에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그 현장이 실제 어떤지 알 것이다. 환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눈에 딱 봐도 빨리 치료해야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의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로 몇 번 다녀온 그곳은 솔직히 말해 의사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내었다. 아픈 환자의 병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쓸 데 없는 처방을 내리고 허둥지둥하면서 결국 환자가 시간만 보내다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경험만 가지고 보면 응급실에 갈 것이 못 될 것 같지만 늦은 밤 혹은 공휴일에 찾아갈 가장 확실한 장소는 역시 응급실이다.

 

응급실에 대한 부정적인 글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책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응급실의 경험에 부정적인 것은 그 현장에서 만난 의사들에서 비롯한 것이지 응급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외상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효율적인 곳이 응급실이다. 가끔 뉴스에서 심한 환자를 거부해서 응급실을 다니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까지 매도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책 각 장에서 말하는 내용을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가 답답할 뿐이다.

 

의사도 모르는 것이란 1장은 의사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 어머니의 사례인데 의사들은 환자가 왜 아픈지 모른다. 그래서 붙인 병명이 감응 불능 복통이다. 진단 불가가 다른 병명으로 대체되어 환자에게 알려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스트레스성 위염이란 병명이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사례 중 요통에 대한 것이다. 한때 디스크 환자들에 대한 수술이 유행이었는데 이 수술 후 환자들이 모두 완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의사들이 요통의 실제 발생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완치법도 모른다”(33쪽)는 결론에 도달한다. 수많은 요통 전문 병원을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심폐소생술. 이제는 영화나 텔레비전으로 너무나도 익숙해진 치료다. 실제 이것이 효과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실패율이 93에서 99프로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은 할 수밖에 없다. 만약 하지 않으면 환자 가족들에게 소송당할 수 있고 마지막 가능성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사례는 좋은 예가 된다. 그가 의술은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예전보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들은 그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바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갔다. 진찰을 하자마자 MRI를 찍으라고 했다. 고가의 비용이 들어가는 검사다.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했다. 그런데 그들은 수익이라는 것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고가를 치료를 하게 만들면서 병명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물으니 검색해서 알려줬다 고가의 기계를 이용한 치료와 간단한 물리치료가 병행되었는데 과연 그 기계 치료가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도 있다. 그리고 이 병은 완치되지 않았고 운동을 조금 등한시한 지금 다시 아파온다. 고액이 든 이 치료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를 위해 환자의 지속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와 비슷한 병을 경험한 대부분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위약 효과에 대해 말하면서 현재 유통되는 것 중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한 약들을 지적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바로 NNT(치료 효과 발현의 필요 증례수)다. NNT 수치가 1에 가까우면 효과가 100%고 그 숫자가 늘어나면 효과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 수치를 연구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상업적 목적이 우선이고 의료계가 폐쇄적이다 보니 이것은 더 심해진다. 유효성이 떨어지는 약이 환자에게 처방되어지고 환자의 부담은 더 높아진다. 환자와 의사의 유대감과 소통 부재가 만들어낸 현재 의료계의 현실이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DNA수준까지 높아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 외에 우리가 치료 못하는 병이 많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몸을 기계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일부분 인정한다. 이것을 보면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동양의학이 더 대단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서양 의학 모두가 모든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과학이란 이름으로 의학의 성을 높이 쌓은 지금 그 성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바로 오만과 폐쇄적인 환경 때문이다. 누군가가 현대 의학을 말하길 ‘실제 의학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의료 기계가 발전한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의 데이터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내려지고 그 차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병이 생기면 병원으로 간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이 수순은 변함이 없다. 의사를 신뢰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안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현실에게 그래도 그들이 가장 유력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의 소통과 신뢰는 환자의 치료를 더 손쉽게 한다. 물론 불치병도 난치병도 있다. 하지만 이 소통과 신뢰가 의학의 한계를 분명히 할 때 최대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해 이 책은 의사나 현대 의학을 불신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발전된 환경을 만들고 더 좋은 치료를 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요즘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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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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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재간되었다. 세부적인 변경 사항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두 편의 중편소설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 및 표지가 바뀐 것과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전 것이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변함없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운명의 사람에 대한 의문과 이야기는 더 만족스럽다.

 

사실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된 책인 줄 몰랐다. 첫 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를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상상하는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은 황당했는데 차분히 되짚어보면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의문과 여운으로 남는다. 그것은 귀족 출신 아키오의 열등감과 사랑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결혼이 가족들과의 불화를 가져오지만 그 선택을 밀고 나갈 정도의 열정과 뚝심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삐거덕거리는 결혼에 대한 그의 선택은 우유부단하다. 거기에 직장상사이자 상담가로 등장한 도카이 씨는 은연중에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가능성이 아내 나즈나와의 결혼을 더 흔들어놓는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아키오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의 첫 장면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남자 친구 세이지가 있는데 다른 남자 구로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주인공 미하루의 연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육체적 욕망에 의한 관계처럼 비쳐졌던 미하루와 구로키의 관계는 강한 절제와 인내가 없으면 결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열린 결말로 독자에게 상상할 공간을 남겨놓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두 중편 속 주인공의 성별은 각각 다르다. 첫 편은 남자고, 다음 편은 여자다. 이런 설정이 의도적인 것 같다. 아키오의 사랑이 굉장히 안정 추구적이라면 미하루의 사랑은 감성적이다. 아키오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을 다룬다면 미하루는 이미 그 열정의 감정에 빠져 있다.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섹스가 주는 강렬함과 구로키가 주는 열정에 푹 빠져 있다, 아키오가 한 발 나가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미하루는 이미 모두 경험한 후 빠져나가려고 한다. 빠져나오는 것이 감정의 문제라면 쉽지 않다. 이 둘에게 감정을 벗어나는 방법은 비슷하다. 한 명은 죽음이고, 다른 한 명은 떠남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사람이 정말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일상의 감정을 공유한다고 그 사람이 운명의 사람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카이나 구로키와의 일상이 지속된다고 해서 그것이 운명의 사람은 아니다. 끌린다는 것만으로 정의하기는 더 어렵다. 사랑의 지속 가능 시간이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정보에 의하면 아키오와 미하루의 사랑도 그 시효는 분명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영원히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도 바로 그들의 죽음 때문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좀더 비낭만적으로 표현하면 그들의 사랑은 우리나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 사랑이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간결하게 만들고 좁혀 놓았는데 더 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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