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랜만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읽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책이 나온 것에 비해 인연이 닿았던 것은 이번 책을 포함해서 <해피엔드에 안녕을>까지 총 3권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읽고 다시 관심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다른 책들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좋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놓은 책이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이번 작품은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하지만 짜임새는 만만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하나의 이야기 같지만 예상한 반전과 이것을 다시 뒤엎는 반전이 이어진다. 이 반전의 연속을 설정을 위한 설정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인간사는 애초에 모순으로 차 있다.”(287쪽)란 문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장인데 이 문장이 이 소설이 지닌 모순에 의한 반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두 남녀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여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보안실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남자 히라타는 묻는다. “배가 고팠나?”, “미안합니다”란 대답이 온다. 신분증을 본다. 출생연도에 생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적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그녀가 받는다. 평소와 다르게 다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를 내보낸다. 이 장면이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인연을 맺는 시작이자 모순으로 가득한 인생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마트 앞에 그녀 스에나가 마스미가 그를 다시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히라타의 딸은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뺑소니에 치여 죽었다. 이 사건 때문에 아내도 자살을 한다. 회사에서 임원을 바라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마트 보안직원으로까지 내려오게 된 이유다. 단순히 몇 문장으로 그의 삶을 요약했지만 그 속에는 그와 그의 아내가 겪은 수많은 아픔과 고뇌와 후회와 절망 등이 섞여 있다. 스에나가와의 만남을 보여주는 그 사이사이에 이 이야기를 집어넣어 그가 겪은 삶의 흔적과 아픔과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에 대비해 스에나가는 히라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시선은 좋지 못한 남자 친구로 고생하는 한 여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그가 이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정도로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생년월일 때문에 죽은 딸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약간의 금전적 도움을 줄 뿐이다.

 

이런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 둘을 오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녀를 통해 푼돈을 갈취하려는 남자 친구까지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 뭔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딸과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삶은 공허한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 그가 가장 울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와 딸이 죽었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그가 가장 솔직한 감정을 토해낸 것이다. 이런 감정과 인연과 일상이 차분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약간 밋밋한 것 같은데 흡입력을 가지고 읽게 만든다.

 

가볍게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난 후 남은 여운은 무겁다. 철학적으로 이 하나의 사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이 두 남녀의 행위를 분석해서 보여주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한 분석인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왜냐고? 제삼자조차도 이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해석한 것뿐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이자 추정일 뿐이다. 비탄과 후회와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이 작품으로 다시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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