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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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말할 때, 특히 80년대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80년 5월 광주고, 다른 하나는 87년 6월 항쟁이다. 시간이 지났으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왜냐고? 이 사건의 주모자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29만원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과 종북을 외치는 정치인과 그 언저리들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올라가서 해방 후 친일잔재를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역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수많은 친일파들이 독도에는 열을 내어 흥분하지만 그 시절은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불편한 현실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작가는 80년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다. 현재로 진행되는 것은 87년 6.29 선언 이후다. 아마 이때 민주화를 외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찾아왔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체육관 대통령이 아니라 직선제를 쟁취하고 수감되어 있던 양김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 그 옛날 4.19혁명 때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흘러왔다. 지금의 정치현실을 혹자는 유신보다 더하다는 말도 할 정도다. 물론 외형적으로 유신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정권을 한 번 맛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웹툰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강풀의 <26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80년 5월 광주와 복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풀의 원작이 좀더 감성적이고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라면 이 소설은 좀더 진중하다. 피해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직접 그 당시 계엄군 지휘자와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서 다양한 시각을 담아냈다. 강풀의 원작보다 더 많은 인물을 담아내었다는 점과 악당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설이 지닌 힘이다. 하지만 가슴 울리는 감동은 사실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잘못 읽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등장인물 몇몇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박갑수. 그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하지만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러나 이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는 죽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의문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인물은 친구인 양창우 기자다. 박갑수와 전날 술을 마셨고 자신도 모르게 단서를 가진 인물이다. 박갑수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 있다. 광주 계엄군 장교였고 살인을 사주한 장상구 의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로 돈을 모았고 신분 세탁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한 전력이 있다. 장 의원은 폭력배를 부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인물이다. 금력을 이용해 조폭을 부리고 권력과 금력을 통해 언론사 등을 주무른다.

 

장 의원과 박갑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것이 주요한 미스터리다. 그런데 이것은 쉽게 앞에서 나온다. 이 미스터리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긴장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에 장 의원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의원의 부하였던 서창수 중사와 북파요원이었던 구성도다. 이들이 과거의 부하였다면 현재 조폭인 박태춘이 있다. 그는 장 의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이권과 과거 등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신문사 민 사장과 박갑수 마지막 술자리를 같이 했던 오 마담 등이 있다. 이들도 현재와 과거 속에 박갑수와 장 의원 등에 엮여 있다. 이런 관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과정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한 현대사를 정치, 언론, 조폭, 교육계, 공권력 등의 다양한 유착과 처참했던 과거를 연결시켜 풀어낸 것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대 속에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어떻게까지 변하는지, 양심이란 단어가 이권과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현실이 얼마나 지속적인지, 하나의 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분량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갑자기 비중이 줄어든 양창우 기자의 경우는 조금 당혹스럽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축소되고 80년 광주로 가면서 균형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물들 속에 현대사를 제대로 담아낸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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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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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이제하의 소설을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영화나 소설도 모두 봤다는 기억만 있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만은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엄청난 걸작이라서? 아니다. 특이한 제목이라서? 역시 아니다. 그럼 왜? 사실 이유를 모른다. 이름과 제목은 학창시절 소크라테스와 ‘너 자신을 알라’를 같이 외우고 기억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란 부제가 보인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집이란 설명글도. 특히 하성란의 허를 찔리고 말았다는 표현은 첫 작품이자 표제작 <코>를 읽을 때 그대로 느꼈다. 이 느낌이 좋아 다음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솔직히 말해 첫 작품과 같은 재미를 누린 이야기는 많지 않다. 콩트집에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하나의 이야기 분량이 달라서 호흡을 놓친 것도 적지 않다. 뭔 말이냐면 여기서 반전이나 이야기가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지고 읽는데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흐름과 재미를 놓치는 것 말이다. 거기에 좋지 못한 몸 상태에서 읽다보니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분량과 예상이 다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첫 작품 같은 소설들이 나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재미를 준 경우도 많다. 황당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곰을 길들여 생활한다거나 기차에서 만난 마술사의 엄청난 마술까지. 어떤 이야기는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충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도 있다. 문장이 나의 호흡과 어긋나면서 헤맨 이야기도 있다.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개인 역량 부족으로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서른아홉 편이 분량이 제각각이듯이 다루는 소재나 설정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다양함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끔 이런 종류의 소설집을 읽을 때면 겪게 되는 내 개인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내공 부족이 만든 장애다. 만약 이 장애를 넘어가게 되면 다양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때는 아주 큰 장점이다. 작가의 평가 중 ‘경계 없음의 미악’을 지녔다는 평은 아마도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는데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콩트집으로 불릴 정도의 분량을 넘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의 소설이 몇 편 있다. 개인적으로 이 때문에 호흡이 깨진 것도 적지 않다. 문체가 바뀌고 묘사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그려 넣은 작가의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작가의 이력을 잘 모르고 봤어도 그랬었겠지만 이력을 읽고 난 후는 더 자세하게 쳐다본다. 어떤 것은 장난같고 어떤 것은 그 단순한 선이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아마도 각각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일독을 한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서 가끔 이 책을 들쳐보면서 짧은 이야기를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행동이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짧은 글일수록 더 강하게 이런 느낌이 다가온다. 일상의 뒤틀림과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조금 다른 감성을 발견할 때 아! 하고 감탄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내공을 쌓은 뒤 읽으면 더 풍성한 재미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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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이윤정 옮김 / 포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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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본다. 번역된 책이 단 한 권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소설집은 연작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면서 동시에 이어진다. sf소설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다.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아 제5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sf팬클럽회의가 주관하는 그해 최고의 sf에 주어지는 세이운상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다. 언제나처럼 이런 내역은 시선을 끈다. 추천글이나 작품해설은 읽기 전 어떤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 좋지 못한 나에게 살짝 독으로 작용했다.

 

아홉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정보를 먼저 내놓는다. 단편에서 이 정보를 제대로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 신화를 이용한 오스트레일리아 크기의 거대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는 기존 sf소설이나 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과연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거대한 박물관 행성이 엄청난 동식물, 미술품, 음악, 무대예술을 모두 모아 두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이런 배경이 작가의 상상력을 증대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작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연작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 다카히로를 등장시킨다. 그는 뇌수술을 받은 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학예원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각 분야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곤란한 일을 의뢰받는다. 그것은 한 음악가가 그린 음악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도 졸작인 그림이 독설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에게 천상의 음악이 들린다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병원의 환자들이 열광한다. 왜 일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또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은 노부부의 황당한 의뢰를 다룬 <이 아이는 누구?>다. 이 아이는 바로 인형이다. 인형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다. 이름을 찾는 과정과 왜 이름을 찾고자 하는지 알려줄 때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은 가슴이 아리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범인이 누군지 금방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군지가 아니다. 왜?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연주자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수많은 기모노와 문화는 사실 너무 낯설어 몰입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춤으로 신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 <꿈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한 무용가의 삶을 통해 본질이 왜곡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포옹>은 이 소설에서 문제유발자 매튜가 처음 등장한다. 사실 매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뒤편부터고 학예원들이 뇌수술로 심어놓은 기계의 프로그램 버전을 처음으로 다룬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작품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장애가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매튜에게서 더 심하게 일어나지만.

 

표제작 <영원의 숲>은 매튜가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표절과 사랑을 다루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든다면 가슴 뭉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리사의 거짓말>은 인어를 찾는 소년과 다리를 잃은 조형가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엔딩에 놀란다. 그리고 인어전설을 작품에도 인용한 것은 재미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는 황금비율과 짝사랑을 다룬다. 외계에서 날아온 씨앗과 오각형 채색조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마지막 작품 <러브 송>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왔던 97건반의 흑천사와 다카히로의 아내 미와코가 중심에 선다. 여기에 외계 씨앗에서 핀 연꽃이 연결된다. 일에 치인 사람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볍게 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용어와 설정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무시하고 읽어야 하는데 주석에 눈길이 자꾸 간다. 덕분에 흐름이 깨어졌다. 여기에 좋지 못한 몸상태까지. 하지만 예술을 소재로 sf적 배경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선하다. 읽으면서 왜 다카히로가 상위버전으로 바꾸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기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한계와 순수함이 재미있다. 이것을 세대차이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그 재미를 누리지는 흥미로운 작품집이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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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6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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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권에서 사실 기대한 것은 두 귀신 키쿠치와 소이치로의 싸움이었다. 미리 이 물음에 답을 말하면 없었다. 대신 다이자부로와 키쿠치의 싸움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싸움이 이번 이야기의 중심이다. 개성 있는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주던 다이자부로. 무사로써 전장을 누비고 싶지만 현실의 평온함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그. 긴 창을 들고 무술을 연마하던 그. 이전까지는 그가 얼마나 작고 못생기고 문제아였던지 몰랐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했고 왜 그 옆에 예쁘게 생긴 겐지가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동시에 그가 누린 가장 행복한 순간도.

 

앞부분은 겐지가 키쿠치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그 누구도 단서를 주지 않는데 국수를 파는 노점상이 빨간눈에 대해 말해준다. 이 빨간눈도 정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주인 다이자부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결국 그를 통해 다이자부로는 키쿠치를 만난다. 에도를 떠돌며 자신을 잡아가두는데 도움을 준 인물들을 하나씩 베고 다니던 그를. 그리고 황당한 일을 의뢰한다. 바로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이다. 돈까지 걸리니 살인귀 키쿠치가 움직인다. 대결이 벌어지고 예상한 결과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 장면과 그 결과까지 이르는 과정은 예전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알게 만든다.

 

두 귀신이 다음 권에서 벌어질 것이란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그림이 눈에 더 들어왔다. 가늘고 개성 강한 그림체야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피카소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앞권에서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강하게 다가왔다. 아마 이야기를 편안하게 보면서 혹은 오랜만에 이 시리즈를 읽게 되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변함없이 화면 구석구석과 지나가는 듯한 그림을 배치해서 시선을 끌고 웃게 만든다. 원작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을 끊고 잇는 장면 분할이 세심한 읽기를 요구하고 그 간격에 여운을 느낀다. 다시 자신의 칼을 든 소이치로의 모습은 긴장과 기대감을 불러오고 책 끝에 나온 ‘기다리오. 기다리오’란 두 단어가 나의 솔직함 감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 권씩 읽는 즐거움도 적지 않지만 역시 단숨에 읽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갑갑함에 아쉬움이 더 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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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트로폴리스
존 스칼지 외 지음, 홍인수 옮김 / 책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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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존 스칼지 때문이다. 이 선집에 나오는 작가 중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이자 그가 최근에 본 sf소설 중 최고의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장 뜨거운 작가 4인의 상상력이 탄생시켰다는 책 소개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뜨거운 작가라고 하지만 신작 sf소설이 잘 번역되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뭐 원서능력자고 sf소설 마니아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존 스칼지다. 편집자 서문에서 그는 이 선집에 대한 놀라운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제를 던져주고 각자 집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세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세계를 가지고 각자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세계를 건설할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세계와 개념을 떠올려주었다. 비록 정확한 시대 구분이 없어 우선순위에 대한 확신이 없고 이 세계가 그려내는 중요한 몇 가지를 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각 이야기 앞에 편집자의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첫 작품은 제이 레이크의 <밤의 숲속에서>다. 사실 이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 캐스케디아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충분한 이미지를 그려내지 못했다. 소설은 이 도시와 이 도시를 방문한 한 남자 타이거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이다. 도시 이미지를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경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더 빠졌다. 그리고 왠지 생략된 듯한 이야기는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 아닌 다음 이야기를 위한 안내서처럼 다가왔다. 이것이 다른 작품에 충분한 안내서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작품은 존 스칼지의 <꿀꿀대는 소리 말고는 버릴 것이 없다>다. 이 소설은 화자의 결혼식 사진에 돼지가 왜 있는지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 보여주는 신세인트루이스는 나도 모르게 기존에 나온 sf영화를 재빠르게 뇌리 속에서 훑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영화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프닝과 사건은 결코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 그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비어스 버켈의 <확률 도시>는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조금 어둡게 만들어지겠지만 기존 장르소설이 갖춘 장치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바의 기도인 주인공 스트래턴이 해병대 출신이라거나 디트로이트를 관리하는 사설경비단체 에지워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득의 대부분을 교통비로 지출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나 이 세계를 바꾸려는 집단의 노력 등이 그것이다. 시위대를 이끌고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에지워터에 대항하는 스트래턴의 활약은 약간 긴장감이 부족하지만 재미있다.

 

엘리자베스 베어의 <하늘의 붉은 것은 우리의 피>는 마피아의 손에서 벗어난 한 여성의 고군분투기다. 주인공 캐디는 어느 날 사람들의 팔에 걸려 있는 인식표를 발견한다.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일상은 이런 호기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 보호시설에 자신의 양딸 피루자 맡겨두고 가끔 찾아간다. 그런데 한 남자 호머가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낯선 자의 말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이용한 탈출 경로다. 그리고 이들의 삶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약간 평온한 듯한 분위기 속에 사건이 발생한다.

 

마지막 작품 칼 슈뢰더의 <머나먼 실레니아에서>는 가상 세계를 다룬다. 이 세계가 낯설다. 존 스칼지를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 철학적 사유로 유명한 작가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가 그려내는 세계가 어렵다. 현실과 가상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유능한 방사능 사냥꾼 겐나니의 활약이 가상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보니 단편으로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가상 세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서 다루는 도시와 대상과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일상 생활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전복시킨다. 지적 재산권 대신 오픈소스를,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극복을, 자본의 변함없이 지속되는 욕심에 대한 반발을, 도시 환경 변화를 위한 조금은 과격한 프로젝트를, 실용적 공동체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런 전복은 이 미래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데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제목처럼 저 너머의 도시는 이 작가들의 펜 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고 현재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그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의 얕은 지식이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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