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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여행자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방콕은 내가 처음으로 배낭여행 간 곳이다. 그 이전에 간 여행은 패키지나 반패키지였다. 친구와 함께 간 방콕은 살짝 두려운 공간이었다. 가기 전 혼자서 태국 관련 사이트를 뒤지면서 갈 곳과 동선을 짠다고 고생했다. 그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패키지 그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리고 혼자 혹은 같이 가는 여행에서 여행사 가이드는 사라졌다. 물론 현지에서 필요에 따라 가이드 관광을 한다. 그것은 일정 중 하루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그 자신감을 만들어 준 곳이 바로 방콕이고 태국을 여행할 때마다 경유하면서 머물던 곳이다.
방콕을 두 번째 갔을 때 노선도 모르면서 버스를 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무작정 탔다. 가장 저렴한 것으로. 내리는 곳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고 졸다 깨면 깜짝 놀라곤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방콕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 자신감은 다음 여행에서 산산조각 나지만 익숙한 그 무엇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방콕에 가면 꼭 가는 곳과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이 경험은 무심코 지나간 곳에서 보통 생긴다. 나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간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만과 착각과 부정확한 정보로 많은 착오를 겪어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만큼의 경험과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저자 박준은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로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나도 한 권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샀을 때는 카오산 로드를 몇 번 다녀왔기에 바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주 갔던 태사랑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콕에 장기간 머물면서 그 경험을 책으로 내었다. 가끔 장기 체류자가 거주자가 글을 올리지만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책은 전문 여행 작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7개월을 산 것이다. 며칠 휴가 내어 다녀가는 여행자가 경험하지 못할 것이 담겨 있을 것이란 기대가 강했다. 여기에 좋아하는 방콕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다.
내가 얻은 방콕의 정보 중 많은 부분은 첫 여행을 간 푸켓의 가이드에서 비롯했다. 그때 얻은 지식은 이후 얻은 지식에 덧붙여줘 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짧은 여행은 태생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곳에 가기 전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곳으로 갈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 문화를 단편적으로 얻고 동선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짜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기 쉽지 않다. 물론 좋은 사이트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어 관광객 대상이 아닌 곳을 방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수박겉핥기다. 이것은 7개월 머문 저자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현지인의 안내인데 이 책에서 D는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아무리 좋은 현지인을 사귄다고 해도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나라의 문화나 생각이 글 속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수많은 장소를 방문하지만 그곳의 단순한 분위기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철학을 듣고 오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간 곳 중 몇 곳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곳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려고 마음먹지 않거나 몰랐던 곳도 나온다. 이 장소는 읽으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감정과 함께 도시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당연히 기존 이미지와 충돌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방콕은 되살아난다.
단순히 장소와 사람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과 문화다.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다. 현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태국 하이쏘의 생활은 상상을 초월한다. 방콕의 홍수로 큰일이 난 것처럼 방송에서 말할 때 이 도시 사람들이 어떤 놀이를 했는지 보여줄 때 언론이 얼마나 흥미위주인지 알려준다. 압도적으로 낯선 곳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그와 나의 감성이 어떤 부분에서 같은지,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공간과 사람들 이야기는 내가 본 방콕이 관광객을 위한 방콕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몇 개월 머물면서 낯선 곳을 방문하고 그 나라를 하나씩 배운다면 어떨까? 이것을 보면서 한국 장기 체류 외국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동남아 장기여행이 다시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