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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열다 네이버 캐스트 철학의 숲
박일호 외 지음 / 풀빛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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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다루고 있는 철학자와 그 사상이 지금까지 나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은 현재도 어렵다. 왜 이렇게 근대, 현대 철학이 어려운지 잘 모르겠다. 적지 않은 철학 해설서를 읽었는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할 때 첫 번째 요소 중 하나가 이 어려움을 조금은 쉽게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전작 <철학의 숲, 길을 묻다>를 나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 의도는 솔직히 실패했다. 재미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철학의 10분의 1도 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을 열다’는 제목처럼 전작과 조금 다른 인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나 찰스 다윈, 막스 베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저자들은 이 독창적 사상가들이 지적자양분을 철학의 숲에서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들이 철학에 끼친 영향을 말한다. 그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가 단순화하면서 너무 획일적으로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철학의 숲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조금은 알게 된다. 그만큼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의 머리가 턱없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조그만 위안을 만든다.

 

모두 21명의 철학자들이 나온다. 열 명이 근대 철학자와 열한 명의 현대 철학자다. 이중에서 현재 생존해 있는 분도 있다. 가장 마지막에 다루는 위르겐 하버마스다. 그리고 굉장히 낯선 철학자도 몇 명 있다. 거의 처음 이름을 듣는 철학자도 있고, 그의 비중을 몰라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나 의문을 드러낸 철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나의 학창시절이나 그 이후 언론을 통해 배우고 읽은 것들이라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 자기 위안인가. 더 많이 철저하게 공부했다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언제나 근대철학사를 읽다보면 독일계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본다.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이 그들이다. 다른 영미권이나 프랑스 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대개 주류로 등장한다. 왜일까? 물론 이들의 철학이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기에 그럴 것이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오만에서 극에 달한다. 이런 천재적인 철학자들의 철학을 그냥 보통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 수박겉핥기로는 더욱더.

 

학창 시절 철학 수업을 신청해 들었을 때도 이들 중 한 명의 책 중 겨우 몇 쪽을 가지고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란 책이다. 이렇게 어려운 책이고 겨우 몇 쪽으로 강의를 할 것이면 도서관에 해당 쪽들만 카피했으면 되는데 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비싼 돈 주고 책을 샀다. 당연히 이 책은 책장 속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뭐 언젠가 한 번 읽어야지 하는 헛된 망상 속에서. 다행이라면 <자본론>을 사지 않은 것 정도랄까. 아마 샀다면 장서용 이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로 된 것도 겨우 읽고 아주 조금 이해한 상태인데.

 

철학자들이 네이버에 대중을 위해 철학 안내용으로 쓴 글이다. 사실 조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역시 철학자답게 그들의 문장은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철학 용어들이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어려운 용어로 그들의 일을 풀어낼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물론 쉽게 읽고 지나간 부분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전작을 읽을 때도 경험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은 모양이다. 뭐 그 때문에 나의 회색 뇌세포가 고생하면서 활성화된 부분도 있다.

 

이 저자들이 독자에게 요구한 것 하나를 말하겠다. 그것은 성찰적 사유다. “성찰적 사유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사유이며,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재귀적 사유이기도 하다”(13쪽) 이 성찰적 사유의 주체로 독자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고 있다. 과거에 읽은 몇 권의 책이나 주마간산처럼 읽어나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 철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놓고 그 길을 나에게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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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k 피크 1
임강혁 그림, 홍성수 글 / 영상노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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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한산을 자주 올라갔었다. 자주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그것도 한두 달 정도 다니다가 말았지만. 주로 봄이나 가을에 많이 올라갔는데 혼자 산행을 하다 보니 페이스 조절이 쉬워 비교적 쉽게 올라갔다. ‘쉽게’라고 말보다 ‘천천히’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산의 정상만 본다. 왠지 모르게 여유가 없어 주변을 천천히 살피지 못한다. 그러다 내려오는 길에 본 산악 구조대 모습은 낯설지가 않았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낯익은 산악 구조대지만 세계유일이자 특수한 대한민국 조직이다. 군인이면서 경찰이고, 경찰이면서 산악 구조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대를 창설하게 된 이유가 북한산에서 있었던 7명 사망 사건이다. 그 이후 신체조건과 체력 테스트를 통해 다섯 명을 선발한다. 이들이 바로 경찰산악구조대다. 이 만화는 바로 이 구조대의 창설 이유를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다섯 명의 신병을 통해 산악구조대의 일상과 구조활동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해 동안 북한산 산악 구조대가 처리한 산악사고가 적지 않다. 20여 년간 약 3000여건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스토리 작가 홍성수가 실제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짠 것 같다. 물론 가공의 캐릭터나 상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앞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다. 그 공감대는 평범한 인물들이 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산이 주는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때문이다. 예전에 산은 올라가기 힘들지만 포근하고 시원한 곳이었다. 겨울산을 여유있게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얼마나 빨리 산의 해가 지는지, 얼마나 어두운지, 방향 감각은 또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랐을 때 그랬다. 그것을 경험한 후는 바뀌었다. 이 만화의 주인공 연성이 경험한 것을 보면서 그때가 불연 듯이 떠올랐다.

 

아직 1권이다보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았다. 연성이 북한산으로 자대 배치되었다는 소식에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떠올린다. 고참이 제대하기 전에 보여주는 맹활약과 엄청난 체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전에 지게를 진 상태로 북한산 정산으로 올라가는 상인의 모습을 보고 놀랐고, 중국 황산에서 수십 킬로의 짐을 지고 꼭대기까지 계단을 올라가는 지게꾼을 보면서 더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직 미숙한 신병들의 캐릭터가 드러나지 않아 약간의 맛뵈기만 본 듯한 느낌이다.

 

1권 마지막에 나오는 슬링의 키스 자국은 첫 경험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 첫 경험은 조난당한 사람을 자신의 몸에 묶은 후 달리면서 끈 자국이 몸에 남긴 것을 말한다. 이것이 없으면 묶은 사람이 느끼는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연성이 자기 전 이것의 본명을 ‘보람’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에서 이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힘든 일상이 어느 정도는 보상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권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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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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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첫 권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큰 히트를 치면서 작가의 모든 작품이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4권이 출간된 타우누스 시리즈 중 가장 나중에 번역 출간되었다. 독일에서 5권까지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조금 늦은 출간이다. 나머지 한 권도 출간 예정이라니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가 3권이 될 예정이다.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아직 읽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 큰 즐거움이다.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기에 더욱.

 

이 시리즈 중에 더 읽은 것은 <너무 친한 친구들>이다. 이 작품을 읽을 때보다 이번이 더 부드럽게 읽혔다. 아마 시리즈 중 한 권을 먼저 읽은 것이 이해도를 조금 더 높여준 모양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전개를 깔끔하게 풀어낸 것도 한몫했다. 시리즈 첫 권이라 보텐슈타인 반장과 피아의 만남과 이력을 간결하게 처리한 것도 집중도를 높여줬다. 가끔 시리즈를 중간부터 읽게 되면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조금은 힘 빠지는 결합이었다. 이혼 후 7년 만에 복직하면서 만났다니 너무 단순하다.

 

첫 사건은 대쪽 같은 성품의 부장검사가 자살한 것이다. 곧이어 한 젊은 여성이 전망대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젊은 여성이 바로 이 콤비로 하여금 고생 끝에 수많은 사건을 밝혀내고 범인을 찾아내게 만드는 이자벨이다. 처음에는 그냥 자살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의심스런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부검을 하니 나트륨 펜토바르비탈이라는 동물 안락사용 독극물에 죽었다. 분명한 타살이다. 이제 보텐슈타인 반장의 팀은 이 살인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남편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들은 정보는 이자벨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과 정보뿐이다.

 

아내가 죽었을 때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인물이 남편이다.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해명할 알리바이를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당연히 수감되고 제1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한 여자가 나타나 그의 알리바이를 증언해준다. 그런데 안나는 폭행을 당한 흔적이 가득하다. 남편에게 맞은 것이다.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살짝 바뀐다. 그녀의 증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와 인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녀가 활약했던 목장의 고객들의 증언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이자벨은 많은 질투와 시기를 몰고 다니는 여자였다.

 

하나의 사건이 독립적이지 않고 다른 사건과 연결되는 것은 이미 앞부분을 읽을 때 예상했다.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숨겨져 있던 이자벨의 비밀금고를 찾으면서다. 안나가 남편 되링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한 몇 가지는 이 사건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사건들은 파헤칠수록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이어진다. 분야가 다른 사건은 그 분야 전문가에게 넘기면서 보텐슈타인 반장은 그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이자벨 살인의 범인을 찾아간다.

 

단순히 이자벨 살인범 찾기에 머물렀다면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 새로운 사건을 집어넣고 보텐슈타인 반장의 감정을 흔드는 여자를 등장시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여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순도가 높아 순간적으로 영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사건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과정에 보텐슈타인이 당하는 몇 가지 굴욕적인 장면은 재미있다. 증거와 정황을 좇다가 몇 번의 헛다리 짚는 것을 보면 수사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진행되고 하나의 사건을 통해 다양한 문제와 사건으로 연결시킨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뭔가를 암시하는 듯하게 말한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넘어간 부분은 조금 아쉽다. 이자벨에 대한 실체를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조각낸 채로 독자에게 그대로 맡겨둔 부분도 그렇다. 독자가 충분히 이자벨을 재구성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죽기 직전에 일어난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왜 그녀가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조금 아쉽다. 피아의 활약이 미미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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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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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앙앙>의 인기 연재 '무라카미 라디오'의 일 년 치 글을 묶은 것이다. 이미 <무라카미 라디오>란 제목으로 1권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출간된 후 한참 지난 후였다. 한때 미친 듯이 하루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 당시에 출간된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하루키의 단편이나 에세이보다 장편소설을 더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 글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고 했을 때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이런 인식이 바뀐 것이 아마 <무라카미 라디오>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하루키의 단편집이 새롭게 나왔다. 구매 욕구를 마구 자극했는데 집에 있는 책들과 중복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고민 끝에 사지 않았다. 사실 책보다 더 욕구를 자극한 것은 무라카미 CD였다.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음악가와 음악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번 에세이에서도 많은 음악이 나온다. 기억이 부정확해서 그 음악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글은 늘 그 음악에 대한 갈증을 불러온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것을 읽는 동안에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 때 그의 아내나 아이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 사실 개인적인 관심사라 이 부분에 대한 글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 않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제목으로 나온 <채소의 기분>이나 <바다표범의 키스>도 그가 느낀 감상을 재미나게 풀어낸 것이다. 영화 속 대사를 재미난 상상력으로 풀어낸 <채소의 기분>은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바다표범 오일에 대한 맛을 쓴 <바다표범의 키스>는 그 비릿한 맛이 어떨까 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바로 이런 공감과 호기심 등이 이 글 속에서 나를 유혹한다.

 

특별한 사회적 이슈나 정치색을 띄지 않아 조금 밋밋할 것 같지만 일상이 주는 재미가 이 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중간중간 나오는 그의 삶의 방식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결코 무겁지 않은 글이지만 노련한 소설가의 시선을 통해 다듬어진 상황과 장면들은 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그가 학창시절 엄청난 독서를 했다는 사실이다.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글에서 그가 내비친 자신감은 놀라웠다. 살짝 부럽기도 했다. 매일 조깅을 한다는 사실이 부럽고, 나이키 사에 있는 궁극의 조깅코스를 달리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각 에세이 끝 부분에 간략하게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이 글은 거의 뜬금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금 찬찬히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끌린다. 재미있다. 기발하다. 웃기다. 이런 자그마한 재미들이 곳곳에 깔려있어 단숨에 읽는 것을 예방하게 만들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읽게 된다. 길지 않은 에세이에 녹아있는 필력과 재미난 문체가 시선을 계속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집에 실린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란 점도 재밌다. 약간 다른 관점을 사물을 보는 점도.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동안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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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진실의 빛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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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존 경찰 소설과 조금 차이를 두고 있다. 연쇄살인범을 잡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과정이나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갈등이 다르다. 일반적인 수사과정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팀워크는 경쟁에 의해 약해 보인다. 일본 형사 중 엘리트들이 모인 수사1과이다 보니 이것이 더 두드러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도 바로 이런 갈등과 경쟁 심리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는지 알기 보다는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면서 생기는 갈등과 오해는 중반까지 기존 경찰소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적나라한 감정 표현은 어느 순간 주인공이 누구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일본 드라마 <경시청 수사1과 9계>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 사이조가 속한 조직도 수사1과 9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도 팀원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데 범인을 잡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다. 이 과정에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과 조사 결과를 통해 단서를 찾아내는 인물들의 활약은 약간 느슨하면서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느슨함이 없다.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또 이것이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 예고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사이조다. 경시청에서 명탐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조직 속에 동화하는 인물이 아니다. 개성 강한 형사들이 모인 수사1과이다 보니 조금 덜 튀어보이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인다. 외모부터 남다르고 사물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 때문에 좋은 실적을 올렸고 젊은 나이에 수사1과 9계의 주임까지 되었다. 이런 그의 실적과 행위 때문에 미워하는 인물이 있다. 와타비키다. 그는 한때 사이조와 함께 근무했다. 그 당시부터 그는 사이조를 질투하고 미워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지극히 감성적이다. 이 때문에 큰 사고가 발생하지만.

 

사이조가 주인공이지만 다양한 경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감정을 드러내고 활약한다. 사이조의 천적이라 불리는 와타비키. 신문기자에서 접대를 받으면서 정보를 살짝 흘리는 무라코시. 다른 형사보다 조금 인터넷을 안다는 이유로 인터넷 게시판 담당이 된 미쓰이.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가슴 속에 각각 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 이 감정들이 나올 때 단순히 범인 잡기를 넘어 형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조직이 가진 문제들이 하나씩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존재 목적이 하나로 합쳐질 때 왜 우리가 이들을 신뢰하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손가락수집가라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이야기다. 이 별명도 사실 외부로 공표된 것이 아니라 범인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이다. 누가 범인인가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밝혀지는 것이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담아둔 자가 범인이었다. 사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누가 범인인지 그렇게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과정이나 범인을 잡은 후 왜 그가 범인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손가락수집가라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더 관심을 끈다.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한국의 악플러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혀 달라는 요청이 그대로 실현되는 현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현실이 소설 속 세계를 추월한 지금 결코 이것이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사이조의 불륜을 두고 경시청 상사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관료 사회가 지닌 불합리와 권위주의를 그대로 보여준다. 행복했지만 불행한 그의 결혼생활은 이 시대 수많은 유부남들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이조의 경우는 조금 심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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