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맛 기행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1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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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바닷가를 낀 도시다. 외할머니가 어시장에서 생선을 파셨다. 할머니의 몸에서는 늘 생선 비린내가 났다. 어릴 때 그 냄새가 싫었다. 지금은 그곳을 가도 바다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매립지와 건물들에 가려져 있고, 다른 곳에서 본 풍경은 어릴 때 배가 가득한 그곳과 너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선창가를 뛰어다니며 놀던 곳은 이미 사라졌다. 그 친구들도 어딘가로 다 흩어졌다. 기억 속 단편만 살짝 남아 있는 바다, 외할머니, 생선들, 해산물들. 하지만 어머니의 눈과 손질에 그 생선들을 맛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동으로 남으로 서로 옮겨 다니면 그 지역에 맞는 바다맛이 있다. 사실 자라면서 생선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제대로 그 맛을 몰랐다.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편식도 심했다. 아마 생선 맛을 알게 된 것이 서울로 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좋아하는 생선들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고기를 맛보고 싶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을 모르니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바다맛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제 맛을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요즘에야 제철 음식에 관심이 있었지 예전에는 양식과 하우스 재배로 철과 다른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아마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즐겁게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면 늘 제철 음식은 상에 올라왔다. 그냥 한 끼 밥과 반찬으로 먹으면서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중에서 지금도 겨울이 되면 집에서 대구를 사서 말린다. 시원한 대구탕과 말린 대구로 만든 된장찌개는 별미다. 대구 젓갈은 또 다른 맛으로 나를 유혹한다. 얼마 전 먹었던 그 맛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입속을 감돌았다.

 

책 속에 나오는 음식 중 찾아 먹는 것은 많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철 음식이라고 찾아 먹지 않았고 그 맛을 몰랐기 때문이다. 김은 그렇게 귀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주 구워먹었고, 국 속에 들어 있는 멸치는 그냥 맛을 내는 재료였다. 제사 때면 늘 탕국에 들어 있던 문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파래는 반찬일 뿐이었다. 전복이 귀하다고 했지만 그 맛을 알지 못했기에 혹은 비쌌기에 그냥 그런 식재료 중 하나였다. 미역국은 생일이면 지겹게 먹는 국이었다. 일상에 늘 접하던 음식들은 그냥 하나의 반찬이었다. 이 음식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만나기 전에는.

 

사실 제철 음식과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다. 과메기와 홍어와 매생이가 대표적이다. 과메기를 먹게 된 것은 술안주였고, 홍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극찬에 맛보았다.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다. 매생이는 굴집에서 먹게 되었다. 명태가 동태나 북어나 황태가 된 후 탕으로 국으로 끓여지면 그것만으로 한 끼 뚝딱 해치웠다. 낙지는 매운맛과 어우러지거나 연포탕으로 속을 녹여줬다. 어릴 때 먹던 칠게를 이제는 특별한 식당에서나 맛보지만 아그작 잘 씹어 먹는다. 간장과의 조화는 오히려 간장게장보다 좋다.

 

오징어. 십 수 년 전 동해에 놀러 갔을 때 회를 시키면 정말 거의 무한정 공짜로 줬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징어회를 돈 주고 먹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당시 오징어회가 원래 시킨 것보다 맛있어 다들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전어는 사실 비교적 최근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자랄 때 철되면 늘 먹었을 텐데 비교적 생선들이 귀한 서울에 오면서 서울 토박이와 방송 때문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천일염이 얼마나 좋은지, 함초의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아마 최근에 알게 된 맛의 대부분은 방송을 본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맛있게 먹은 기억만 나열했지만 저자는 그 맛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준다.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는 이름과 특산물은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어떤 굴곡을 겪는지 보여준다. 갯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어촌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말한다. 공동체 삶이 그 마을의 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대형화된 어선에 몰락한 어촌의 신산한 풍경도 보여준다. 죽어가고 사라지는 갯벌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맛을 넘어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역사와 사계절 바다 먹거리들을 발로 다니면서 알려주는 저자의 노력은 나의 입맛을 새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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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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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유. 모르는 화가다. 한국 현대미술에 문외한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몇 가지 수식어가 있다. ‘전세계에 현존하는 100대 화가, 생존하는 한국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 시장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은 화가’ 등이 그것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사실 그냥 그런 화가 중 한 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손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읽게 되었다. 이 실수는 오히려 화가 김동유를 선입견 없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무명의 지방대 출신 화가가 어떻게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에세이에는 김동유 화가의 삶이 담겨 있다. 그 삶의 궤적을 더듬어 오면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집스런 노력과 열정이 있는지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는 이 과정을 결코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교적 담담하게 읽을 수 있다. 담담하게 읽었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과 고집과 노력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성공한 화가의 과거가 신산한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그 고비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고비를 넘기기 위해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줄 때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사람을 걱정했다. 바로 그의 아내다. 딸이다. 성공 전 그의 삶은 그 정도였다.

 

수없이 좋은 말이 있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능력일 뿐이다.”(105쪽)고 말할 때 그의 삶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에 운도 분명히 작용했다. 하지만 그 운도 역시 그의 재능과 노력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그의 학창시절이나 무명시절을 생각하면 재능에 대한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이 한국 미술계의 비주류고, 남의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주류에 대한 그의 정의에서 그의 철학과 바뀐 환경이 만들어낸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 자신이 ‘과거는 고난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이다.

 

책 속에 그의 작품이 많이 나온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작품도 여럿 있다. 비슷한 이미지 때문이거나 실제 본 것도 있을 것이다. 그의 이중그림 화법이 이미 유명해졌고, 앤디 워홀의 그림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더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첫 번째 등장한 이야기 속 주인공 아리랑담배와 꽃과 여자 그림이다. 천박한 것을 가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낸 것에서 낯설음과 낯익음의 이중성을 경험했고, 꽃과 나비를 이용해 착시를 만들고 이것을 통해 여자 이미지를 만들 때 원근과 순간적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매혹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를 세계에 알린 이중그림보다 더 마음에 든다.

 

많이 이야기 중에서 ‘공무원 화가’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세계적인 작가 중에서 매일 작업실에 출근해서 작품을 꾸준히 써낸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낯선 화가의 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밤늦게 혹은 밤 세워 작업했다는 것보다 더 많이 공감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단순한 영감에 의한 일시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끈기 있고 열정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란 것을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 흔한 말로 그런 노가다가 없어 보일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가 자기계발서보다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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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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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완결편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매력적인 콤비와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재미와 여운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2010년이다. 번역이 좀 늦었다. 이 시리즈를 한참 읽을 때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다음 책을 외쳤다. 이렇게 끝나길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뭐 가끔 독자의 요청에 의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니 가슴 한 곳에 조그만 희망을 남겨두자.

 

이 콤비의 결혼 후 귀여운 딸 가브리엘라가 태어났다. 둘만 있는 것과 아이가 있는 것은 다르다. 더 벌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높아진다. 앤지가 학교에 가면서 혼자 벌어야 하는데 불황까지 겹쳐 벌기가 쉽지 않다. 이전 사무실은 이제 사라졌고, 켄지는 거대 탐정사무소 알바를 뛴다. 실제 이 일이 그의 주업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두하멜 스탠디포드의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업과 휴가와 보험과 연금 등을 바란다. 그런데 그의 고용주가 쉽게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다급한 그의 위치를 노리고 부려먹는다. 트집을 하나 잡아서 뒤로 미룬다. 그러다 과거의 한 사건과 다시 만난다.

 

12년 전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다룬 이야기다. 그 당시 납치되었던 아이 아만다가 다시 사라졌다. 당시 이 사건을 의뢰했던 고모가 술에 취해 연락하고 이 둘은 다시 만났다. 당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까, 그것이 정의일까 고민을 했었는데 작가는 이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서 다시 이 고민을 다룬다. 최고의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자랐던 아이가 법과 정의에 의해 더럽고 타락한 환경 속으로 다시 돌아온 불편한 현실이 다루어진다. 이 사건 때문에 이 콤비가 깨어진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더럽고 나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아만다의 학교를 방문하니 아이에 대한 엄청난 칭찬과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아이비리그 장학금은 따 놓은 당상이고 납치 사건으로 공탁된 거액도 곧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다. 과거와 현재의 나쁜 기억과 추억으로부터 떠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기회를 버리고 사라졌다. 왜? 덕분에 독자는 과거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고, 작가가 왜 이런 상황을 다시 다루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가혹한 진실이 펼쳐질지 나타날지 걱정하게 된다.

 

사실이 드러난 곳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다시 과거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는 다른 방식으로 변해 이어지고 한 개인의 노력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라져버린다. 구조와 시스템과 현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시 보여주는 현실은 가혹하고 참혹하다. 전작에서 현실의 한 자락을 파헤치고 풀어내었지만 실제 바뀐 것은 없다. 어떻게 보면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콤비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자신들이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 과감하게 다가간다. 적들은 이제 러시아 마피아로 변했고, 더 강한 광기와 공포로 다가온다. 이제 딸까지 적의 표적이 된다.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시리즈 마지막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약해진 액션과 구성이다. 언제나 시리즈에 힘을 실어주었던 부바의 활약이 거의 없는 것도 조금 불만이다. 뭐 개비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단역이다. 그리고 켄지의 날카로운 분석과 수사력은 힘을 발휘하지만 전작에 비해 무력해졌다. 알바 뛰면서 경험했던 불편하고 불쾌한 사실들이 그를 조금 바꿔 놓은 것 같다. 거기에 딸 바보 아빠까지.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부각된 역할들이 있다. 그 첫째는 아만다고, 그 다음은 러시아 마피아 예핌이다. 예핌이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아만다라면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만한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뭐 최고는 다시 이 콤비가 탐정으로 돌아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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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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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광활한 우주란 단어를 사용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광활한 이란 단어로 우주를 표현하기엔 너무 작고 우주가 무한대의 크기라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식의 크기를 넘어선 숫자가 나오면 우린 경험의 한계에 부딪힌다. 우주물리학으로 옮겨가면 이런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현실 속에서 억 단위는 너무 흔한 것이지만 실제 억까지 세워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수천 개라니. 아! 여기서 억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가 지구를 포함한 은하다. 태양계가 아니라 은하다. 감이 잡히지 않는 크기다.

 

우주물리학을 가끔 만날 때면 우주의 크기에 대한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맨인블랙>의 한 장면이나 소설 속 장면으로 그 크기를 잠시 측정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늘 그렇듯이 수천억 개 중 하나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의 그 어떤 일부가 우리의 현실에 조금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축소도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더 작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 각각의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풀려나오는 것을 읽을 때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다. 단숨에 읽었다. 전문 분야 깊숙이 다루어진 부분이 많지 않아 비교적 쉽게 읽었다. 용어가 어려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현재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도 있다. 이 책의 기본 구성은 위에서 말한 크기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무한대의 크기를 상상하다가 지구의 시작으로 돌아오고, 그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인류가 발전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돌아보게 된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우주에서 인간으로 다가오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저자들은 어려운 우주물리학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비교적 쉽게 우주물리학에서 시작해 인류도 돌아온다. 이 과정을 거꾸로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이 된다. 이것은 목차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이 목차가 의미하는 바를 알 정도로 나의 지식이 높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은 것은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때문이다. 과학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과 전개는 우주와 인간의 흐름을 하나로 이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보통의 내공으로는 아주 힘든 일이다.

 

이 책은 우주를 다루지만 결국 인간을 말한다. 우주의 탄생 장에서 “우리가 밤하늘에 끌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경탄할 때, 우리는 우리가 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다.”(16쪽)란 문장으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아직 sf처럼 우주를 개척할 능력이 되지 않지만 지구라는 행성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공생보다 파괴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우주가 파괴와 생성이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과 다른 것이다. 이것을 다룬 장들을 읽으면 인류의 발전 과정이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 몇 줄이나 몇 장으로 알 수도 없고 해결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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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시대 - 숲과 나무의 문화사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3
요아힘 라트카우 지음, 서정일 옮김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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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너무 흔히 있어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와 물과 흙이다. 나무도 그렇다. 도로변에 심어진 은행나무나 학교나 집주변에 나무가 늘 보이다 보니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려고 하면 그 가격에 놀란다. 원목을 이용한 것에는 더욱더. 그냥 흔해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나무가 제품으로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철거된 곳에 가면 나무들이 폐기물과 함께 실리거나 조각나 장작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풍경은 우리가 나무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 역사 속에서 나무가 어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나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했다.

 

이 책은 나무와 관련된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다루지 않는다. 나무란 물질 자체의 영역 내 역사를 다루는 데 무게를 두면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하나는 나무를 가공하고 사용한 기술적 과정, 두 번째는 나무의 예를 통해 환경과 자연자원이 사회사, 경제사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왔는지 밝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목표는 조금 어려웠다. 기술적 과정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사회와 경제 분야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 나무와 숲이 어떤 가치를 가졌고, 관련되었고, 관리되었는지 알려주었다. 사회계층 각각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숲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차이나는지 보여줄 때 단순하게만 가지고 있던 숲과 나무에 대한 인식의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 속에 귀족들의 사냥 애호는 그 당시 농민의 생존권과 충돌한다. 귀족들이 숲을 보호한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사냥하는 재미를 위해서다. 단순한 오락 때문이다. 반면에 농부들에게 숲은 자신들의 삶을 위한 터전이다. 숲이 많아지면 그들이 경작할 농지가 줄거나 숲에서 나온 동물들에 의해 농산물이 훼손당한다. 귀족과 농부의 이해가 충돌한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에 멧돼지가 출몰하면서 농지를 파헤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귀족과의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 즉 제철소와 제염소와 유리공장 등과도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나무의 가격이 오르고 나무 부족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생긴다.

 

하나의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이것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 나무 가격 상승은 원목과 톱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그 조각들을 이용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나무의 특성을 이용해 합판, 파티클보드, 건축용 섬유판 등의 새로운 목재를 만들어내었다. 수백 년 전 나무 두께를 1밀리 단위로 잘랐다는 글에서 괜히 그 두께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펄프를 통해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는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무를 베기 위한 기술의 발전도 함께 다룬다. 그 나무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의 발전도 같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발전하면서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손실이 줄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 강도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계속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은 좀더 유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 분야의 역사를 다룰 때면 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책 속에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활엽수, 침엽수 논쟁이나 특정 품종에 대한 호불호나 비판도 시대의 변화와 과학 발전 등으로 변한다. 이것을 보면서 과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전문가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생겼다. 뭐 이런 전문가가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말이다. 목재산업과 임업, 나무의 활용도 등을 경제와 환경과 각 분야의 이익과 결합시킬 때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전문가가 만들어낸 패악을 말하라면 4대강이나 교육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나올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숲과 나무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의 나무와 숲이다. 마지막 장에서 아시아의 나무를 다룬다. 그렇지만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더 충실하다. 간략하게 다루고 지나가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앞에 길고 깊게 나온 정보보다 더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마 인접국가고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제대로 소화를 못시킨 책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만 머릿속에 맴돈다. 마지막으로 숲 관리에 대한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숲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 유익함을 얻은 경우는 당대에 나타나는 역사적 상황, 즉 새로운 기회의 상황에 눈을 돌려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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