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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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놓고 본다면 취향에 맞는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를 생각하면 읽고 싶어진다. 왜냐고? <종료되었습니다>를 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한국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의 여고 탐정단이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기발랄한 각 장의 제목은 기대감을 높여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감은 개인적으로 충족되었다. 은근히 다음 이야기가 빨리 나오길 기다린다. 원래 단편이었던 것을 연작으로 바꿨으니 시리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 학교는 수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니까.

 

모두 다섯 문제가 나온다. 첫 문제는 원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에 실렸던 <무는 남자>다.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인데 언젠가 볼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복잡한 제목으로 바뀌었다. 제목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여고 생활을 나름 운치있게 표현했다. 솔직히 말하면 잊고 있던 학창시절 수학공식의 아련한 기억을 불러오는 동시에 다시 망각의 늪으로 빠트렸지만 말이다.

 

첫 문제는 신종변태 무는 남자 이야기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의미 있는 것은 선암여고 탐정단이 첫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채율이 집에서 나오다가 학교에 떠돌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인 무는 남자에게 물리면서부터다. 이 변태는 팔을 물고 달아나는데 바바리맨처럼 어떤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미 여러 명이 물린 상태인데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날 채율에게 일단의 소녀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바로 선암여고 탐정단이다. 이들은 학교 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한 상태에서 탐정 활동을 한다. 그들에게 실제 변태 사건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이다. 거기에 채율은 상당한 지력과 함께 천재 쌍둥이 오빠 채준이 있다. 그녀들이 채율에게 온 이유 중 하나가 쌍둥이 오빠이기도 하다.

 

학원 미스터리물이다보니 다루고 있는 것도 학교 관련된 일이다. 신종 변태의 행동 뒤에 숨겨진 비밀은 학력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부조리고, 민감할 수 있는 두 학생의 사랑은 어른의 개입으로 비극으로 변한다. 최근에 가장 민감한 왕따는 진실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고, 고등학생 사진작가의 작품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사건은 다음 사건을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선암여고에 있었던 몇 건의 자살 사건은 첫 문제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 선생과 엮이면서 불행했던 과거사가 드러난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나오는 몇 가지 트릭이나 설정은 내 기준에서 아주 낮은 부분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쌍둥이 천재 오빠를 둔 채율을 중심으로 미도 등의 탐정단은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미도 등이 학교 학생과 선생 등에 관해 수집한 정보들은 아주 방대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채율과 그 오빠에 관한 정보의 마지막 문장은 읽는 순간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미도 등의 아마추어 탐정들이 보여주는 활약이 어설프지만 그 열정은 대단하다. 실제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두뇌는 채율이다. 그녀의 직관과 추리력과 분석력은 미도를 비롯한 탐정단을 만나면서 활짝 핀다. 사실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탐정단의 등장과 그 활약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한 것이다. 작품 곳곳에 깔아둔 밑밥은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한 미도 외의 탐정단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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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융이 지음, 류방승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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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골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금이 우리 생활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몰랐다. 금이라고 하면 단순히 금광이나 골드러시 같은 몇 가지 이미지가 전부였다. 물론 당시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라 비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금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잘 몰랐다. 경제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금본위제 정도가 지식의 전부일 정도로 미천했다. 그런데 이번에 은에 대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백은비사>다. 이 책은 중국 명나라 이후 동서양의 은을 둘러싼 화폐전쟁의 역사를 다룬다.

 

은이라는 귀금속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모른다. 한국사에서 은괴를 조공으로 바쳐졌다는 것과 중국 역사에서 은이 통화로 사용되었다는 것 정도다. 사실 통화로 은을 사용하는 것을 본 것은 아마 중국 소설이나 영화가 전부다. 역사는 늘 그 당시 발행된 동전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은을 찾기보다 금을 찾는다. 당연히 은은 금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고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당장 반지를 사러가도 금반지와 은반지의 가격차가 상당하다. 세공에 따라 다른 것은 논외로 하고. 이런 교육과 영화 이미지는 은연중에 금을 더 중시하게 만든다.

 

명 이후 중국 역사 속에서 은은 많은 굴곡을 거쳤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유통되는 통화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정권을 잡은 왕조는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화폐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 개혁은 놀랍게도 지폐의 발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수많은 지폐가 발행되었다는 정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기준이 분명하게 잡히고 지속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대체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은이다. 금은 더 귀하고 비싸 대체할 수 없었다.

 

은으로 동서양으로 연결하는 데는 정화의 대항해와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대착취가 있었다. 정화의 대항해가 아프리카 동부 연안까지 갔다고 하는데 그 여정 중간중간에 중국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여정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가 거쳐 간 지역에서는 다르겠지만. 스페인의 중앙아메리카 대학살과 엄청난 은의 착취는 나라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 부는 나중에 나라에 독으로 작용한다. 국내 산업과 경제를 좀먹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돈이 넘쳐나니 필요한 것을 외국에서 사면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스페인 제국은 몰락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의 유럽인이 있다. 마르코 폴로다. 그의 여행기는 중국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덕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지만 유럽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도시는 중국에 있었고, 중국은 엄청난 문화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국 문화 중 하나인 차가 유럽에 퍼지면서 무역상들은 찻잎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결제수단은 은이다.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중국에서 차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은을 제공해야 했다. 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 말에 이르면 이 은은 급속하게 빠져나간다. 아편과 전쟁배상금 등으로.

 

저자는 아편보다 무서운 것으로 금융무지를 꼽는다. 이미 화폐전쟁은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중국에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통화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면서 일어난 착시현상이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민의 부는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엄청난 달러가 쌓여 있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들의 부는 그만큼 사라진다. 숫자로 존재하는 화폐는 항상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때문에 금을 다시 세계의 통화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최근 몇 년만 놓고 본다면 금값보다 은값이 더 많이 올랐다. 금은복본위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은을 통화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많았다. 책 광고에서도 나왔지만 <오즈의 마법사>가 미국의 은화 자유주조 운동과 연관있었다는 지적은 재밌는 해석이다. 기축통화 논쟁은 이미 <화폐전쟁>에서도 다뤘지만 경제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최근 유럽의 경제문제도 바로 이것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마저 이것과 연결시키는 것에서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세계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늘 존재한다. 또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은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든다.

 

역사적 시간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동서양의 은이 차지한 위치와 어떤 경제적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낯선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거나 몰랐던 부분이다. 특히 13행은 그렇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도와 관료주의가 자리한 중국에서 무역상들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의 부는 정부에 귀속되고 수장은 관료에게 살해되었다. 실리보다 명분이 나라 경제를 망친 것이다. 이것은 금융무지로 이어지고 정치 혼란과 연결되면서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현재의 은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금보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잠재력까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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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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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주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고, 그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식회사가 운영된다는 그 인식 말이다. 물론 노조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외환은행 론스타 사태에서 보았듯이 주주들이 엄청난 배당금을 받아먹고 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한국 재벌의 이상한 기업지배구조도 주식회사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책은 모두 2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경제 귀족주의고, 2부는 경제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2부 경제 민주주의다. 그럼 경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설명을 다룬 장들이 바로 1부다. 여기서 저자는 현재의 주식회사 제도는 중세 왕권신수설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는 것이 바로 1부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룬 2부보다 재미있었다. 2부의 해법이 나의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의 숨겨진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원제는 ‘The Divine Right of Capital'이다. 왕권신수설과 비슷한데 표지에서도 나온 주주 몫은 이익이고 왜 직원 몫은 비용이라 하는가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자본이 지닌 속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풀어내면서 현대 주식회사의 자본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한다. 이익극대화가 최상의 목표인 주주들에게 이것에 방해되는 것은 없애야 할 장애다. 그러니 환경이니 복지니 하는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딴나라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삼성반도체 직원의 백혈병 사건이나 최근의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건 등만 보아도 너무나 분명하다.

 

2부로 나눈 후 각각 6가지 원칙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제 귀족주의에서 다루는 것은 성구-세계관, 특권, 재산, 통치, 자유, 주권의 원칙 등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계몽, 평등, 공공선, 민주주의, 정의, 혁명적 진화의 원칙 등이다. 이 원칙들에서 헷갈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와 주권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네가 아니라 나에게 자유를’을, 주권은 부유한 소수의 경제적 주권을 의미한다. 용어가 만들어낸 착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생각하면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쉽게 생각하면 자유무역이란 용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얼마나 다른지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정치가 민중에게 권력을 이양했지만 경제 주권은 아직 그대로라고 말한다. 경제 주권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른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서 주구장창 주장한 것이라 낯설지는 않지만 이미 10년 전에 나온 책에서 벌써 다뤘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물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경제주권과 ‘나꼽살’이 다루고 있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자 등을 감안하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경제 민주주의를 다룬 2부 첫 장 제목은 깨어나기, 즉 계몽이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언어의 문제다. 주주와 소유주, 투자자와 투기꾼, 재산권과 부유권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공식 하나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직원 이익 + 자본 이익 = 매출 - 재료비. 현대 주주는 초창기 자본을 낸 주주들이 아니다. 주식시장이란 시장을 통해 자본 이익을 얻기 위해 투기한 사람들이다. 회사의 실질적인 자본 증가엔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고 이익을 빼내어가는 사람들이다. 실제 좋은 회사의 경우 그들이 투자한 돈의 몇 십 배 회수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권리와 이익은 보전된다.

 

여기에 반대 생각으로 만약 회사가 망하면 투자자들이 모두 손해를 껴안는다는 의견이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초기 투자의 경우나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면 그 경우는 더 줄어든다. 대부분 주식시장에는 해당 사항이 드물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 해도 주주의 재산 손실보다 직원의 생존권이 더 큰 문제다. 주식 투자에 올인한 주주들이 많이 있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역시 이런 일도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그냥 마구 사용하던 용어 중 하나가 ‘법인’이다. 저자는 주식회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맞다.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인(法人)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권리를 누리게 한다. 주식회사와 부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자신들에게 맞게 조정한 후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주주는 법인의 탈을 쓴 후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변 환경과 상황을 변화시킨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 민주주의가 아주 더디고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했듯이 경제 민주주의도 곧 다가올 것이다. 여기엔 정치와 같은 힘겨운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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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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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 나는 지금까지 이것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자유 의지가 단연코 환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자유 의지 관념이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고,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두 가정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두 가정이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논증으로 심리학과 신경학을 이용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논증에 빠져들게 된다.

 

저자가 질문으로 던진 몇 가지 예는 사실 끔찍한 것이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살인에 대해 아직 우리의 인식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살인에 우리의 의지가 작용했는지 묻는다. 예를 들면 뇌종양이 있는 환자의 경우다. 좀더 극단적인 예를 들면 최면에 의해 살인한 경우다. 물론 심리학자는 최면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이 살인에 개인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살인이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예로 어린 아이에게 다른 아이를 때리라고 할 때 때린 아이는 자유 의지로 그런 일을 했을 까? 아니다. 그냥 시킨 대로 했다. 그럼 어른은? 여기서 자유 의지와 선택과 결정이 등장한다. 이 선택과 결정은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일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의 커피와 홍차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왜 오늘 아침은 커피 두 잔일까 묻는다. 이 선택과 결정에 자유 의지가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의지의 무의식적 작용 때문일까? 또 다른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모든 요인들을 인식해야 하고, 그 요인들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22쪽)고 말한다. 실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앞에서 말한 커피와 홍차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선택이 의지의 작용이 아니라 의식 속에 ‘나타났다’고 하는 표현이다. 이런 일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난다. 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몰입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상당히 산만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럼 몰입하는 순간은 어떨까? 좀더 생각해볼 문제다.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다룬 장에서 “자유 의지를 신봉함으로써 우리는 ‘죄’라는 종교적 개념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과응보에 몰두하게 되었다”(61쪽)고 말한다. 이 두 개념은 인간의 문제들을 개인에게 예속시키는 작용을 한다. 사회 체제나 환경 때문에 일어난 일도 모두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도덕심 부족 등으로 몰아갈 수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의지가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교육인데 과연 현대의 교육이 이 작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게 되면 그 답은 부정적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쇼펜하우어의 말을 다룬 주석이다.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바랄 수는 없다.”(97쪽) 내가 바라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가 바란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혹은 선택했던 수많은 일들이 나중에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괜히 나의 의지박약에 맞는 주제란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이런 논증에도 불구하고 의지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욱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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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새
케빈 파워스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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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프리카의 소년병에 대해 말한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전쟁 도구로 사용하냐고?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 열일곱 살에 입대한 작가와 등장인물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소년병들(미군보다는 몇 살 어리다)은 나쁘고 미군은 좀더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올바른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든 것은 역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주인공을 포함한 하사와 중위 등의 군인들이 모두 20대 초반이란 사실 때문이다. 이 청소년들은 전쟁을 영화나 게임으로 보았던 세대고, 그 참혹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육이오나 월남 전쟁을 경험한 분들에 비하면 나도 그렇지만.

 

가상의 이라크 도시 알 타파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매일 미군이 죽는다. 야간 전투에서 어린 군인들은 각성제와 두려움 때문에 깨어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바틀과 머프와 스털링 하사다. 화자인 바틀이 스물한 살이고 머프는 열일곱, 스털링은 많아야 스물다섯을 넘지 않은 어린 나이다. 이 어린 나이에 그들은 무더운 이라크의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한다. 이라크에 오기 전 그들에게 전쟁은 영화나 게임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만용과 용기가 뒤섞인 이 선택은 그들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다.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전투 장면은 없다. 불시에 날아온 총알은 죽음을 부르고, 옆에 선 동료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공포와 둔감해진 감각은 적군이 아닌 민간인에게 총알을 쏟아붓는다. 적은 시체를 이용해 함정을 파고, 갑작스런 공격에 주변은 늘 죽음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들을 작가는 굉장히 건조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단순히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왜 평론가들이 시적 언어란 단어를 사용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과거의 한 시점에서 현재로 진행하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의 사건을 넣어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특히 머프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과 의문은 뒤로 가면서 더 커지는데 사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독자가 느낀 의문이 이 정도라면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군에 입대한 청소년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했겠지만 실제 전장은 그 중요한 무엇보다 생존의 본능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수많은 병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기사를 다시금 되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전쟁에 참가한 바틀과 머프 등에게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 보여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머프의 기이하고 괴상한 죽음과 그의 사체를 두고 일어난 사건은 이 전쟁이 만들어낸 광기의 결과물이다. 이후 바틀이 집으로 돌아온 후 보여준 행동들은 이 결과의 파편이다. 이 두 순서를 바꿔놓아 이야기 속에 더 몰입한다. 단순히 시간 순서를 바꿈으로서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부대에 온 대령의 연설 “대원들. 미국 국민이 제군을 믿고 있다. 대원들 평생에 이런 중요한 일은 다시는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119쪽)는 엄청난 거짓말이다. 바틀과 머프의 대화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이 전쟁이 평생에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전장에 있지 않고 게임처럼 이 상황을 보는 사람에게 이 거짓말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최면이자 새로운 신병을 모집하는 광고가 된다. 정치인들 중 단 한명도 전장에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싸우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들을 죽음의 땅으로 내몰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아직 남북이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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