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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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천일야화>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읽으면서 <데카메론>이 떠올랐다. 오래 전에 읽은 두 책의 내용이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조금은 힘들게, 때로는 즐겁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문체와 이야기 구조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단어의 선택도 나의 생각과 달라 반감이 생겼다. 서울보다 한양이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 더 읽으면서 이 위화감은 금방 사라졌다. 각 장의 단편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구성의 힘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의 재미는 덜하다. 하지만 각 장의 단편들은 각각 다른 재미를 주면서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때는 정조 시대. 소설이 금지되던 시절이다. 주인공 조인서는 백탑 근처 사는 친구 최린을 찾아가다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그곳은 폐가고, 그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곳이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대부 양반인 친구 최린이 소설에 빠져 있다. 조인서가 보기에 한심한 모습이다. 그 다음은 쉽게 예상되는 진행이 펼쳐진다. 조인서가 여차저차하여 소설로 빠져드는 것이다. 어느 날 그에게 소설이 한 편씩 한 편씩 전해진다. 이 소설들이 각 장의 단편소설로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새롭고 색다르게 재해석하여 풀어내었는데 신선하고 재밌다. 물론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조인서는 교리로 불리는 노인과 내기를 한다.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리는 곳에 살면서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100냥을 주겠다는 내기다. 친구는 이것을 말리지만 살 곳도 마련하고 성공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다 보니 덥석 내기를 한다. 그런데 이 집에 심상치 않은 내력이 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자의 집이다. 이 역적을 고변한 인물이 바로 친구고, 그가 집을 물려받았다. 친구의 아내까지. 하지만 그 아내에게 경제권을 빼앗기고 결국 집안이 패가망신한다. 유현당은 이제 귀신이 나오는 집이 된다. 마을 사람들이 가길 끄려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사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각 장은 소설에 대한 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 시대에 사대부들이 소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소설 폐인이 양산되던 시기다. 소설을 반대하던 조인서마저 돈이 궁해지면서 중국 소설을 번역한다. 시대 배경만 살짝 바꾸면 현재 소설가의 삶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설 폐인들은 새로운 소설이 나오길 바라고 세책점 주인들은 신작을 쓸 작가나 번역자를 모은다. 인쇄가 아닌 필사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 혁명 당시 위화의 일화가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소설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액자구성 속 소설에는 귀신도, 도깨비도, 이어도도, 온달 장군도 나온다. 현실 속 유현당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조인서는 이성적으로 이 기이한 현상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유현당을 둘러싼 소문과 진실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 축을 이룬다. 과거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교리가 바라는 것은 그 집을 팔아서 목돈을 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이 집을 제값 받고 팔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심이란 기생의 정체도 궁금해지고, 유현당의 미스터리도 미궁으로 빠져든다. 정말 귀신이 움직인 것일까? 그럼 왜? 역적의 누명은 어떻게 될까? 의문은 더 많아진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미스터리 소설이란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역시 유현당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만 불 땐 흔적이 없고, 철이 아닌데도 매화향이 풍긴다. 판타지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액자소설 속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일어나지만 조인서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여인네 가죽신이다. 단순한 관찰력만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귀신을 믿지 않으니 그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건축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솔직히 이 방향이 거슬린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나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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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 어쩌면, 때로는… 그렇게
윤서원 지음 / 알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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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늘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적게는 한 달 정도, 실제는 그보다 더 오래 머물면서 그 지역 근처를 돌아다니고 싶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이런 생각은 늘 불가능한 일로 치부한다.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힘들다. 백수가 된다면 가능할 것 같지만 결혼이라도 했다면 역시 쉽지 않다. 하지 않았다고 쉬울까? 아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것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저자는 혼자 여행 10년 차다. 반듯한 직장을 다니다 백수가 된 후 한국을 떠났다. 목적지는 미국 보스톤이다. 왜 보스톤이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보스톤에 친구가 있어 방값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 친구가 있다고 누구나 쉽게 그곳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친구나 선후배들이 놀러오라고 했지만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것 또한 대단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라고? 그냥 떠나면 된다고? 그럼 당신은 멋지고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아니면 엄청나게 부유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3개월 동안 저자가 한 것을 보면 단순히 보스톤에만 산 것이 아니다. 뉴욕도 다녀오고, 크루즈도 타고,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리스, 라스베이거스 등을 다녀왔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아는 길도 물어봤다. 뭐 실제로 친구가 이렇게 생기지는 않았다. Meet up이란 모임을 통해 친구를 사귀었다. 이 모임에서도 단숨에 친구가 생긴 것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을 했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결과다. 또 영어에 대한 노하우도 나온다. 단순하고 누구나 아는 것이다. ‘아무리 틀려도 뻔뻔하게 말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우린 네이티브가 아니다. ‘You speak, I listen'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공부법이다.

 

서른네 살. 적지 않은 나이다. 물론 많은 나이도 아니다. 언제나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많이 먹었다고 느낀다. 십 년 전 나나 지금의 나나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었다. 핑계를 대기 바빴다. 그래서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저자는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맞다. 그녀처럼 낯선 곳에 살고 싶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런 그녀조차도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사랑, 결혼이다. 이것을 못했다고 문제나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삶은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있다.

 

낯선 곳에 머물다 보면 향수병이 찾아온다. 아플 때 더 하다. 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더 힘들다. 예전에 치앙마이로 여행 갔을 때 장기 여행자가 밤에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혼자를 즐기고 싶어 거절했다. 나의 여행이 조금 더 길고 시간의 여유가 많았다면, 아니 내가 좀더 붙임성이 좋았다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늘 여행이 끝나고 나면 떠오른다. 하지만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나의 틀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과 사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여행자들과 만나는 것과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다른 모양이다. 그 속에서 느낀 외로움이 드러날 때 향수병은 더 깊어진다. 포기하고 떠날까도 생각한다. 그러나 머문다. 그 대가는 달콤하고 색다르다.

 

낯선 곳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잘 적어놓았기 때문일까?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발상의 전환도 돋보인다. 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들이 넘실거린다. 자신의 독립보다 남자의 도움이나 부를 바라는 부분이 나오거나 키 작은 남자 혹은 머리숱이 적은 남자를 약간 경멸하는 문장들이 보인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불편하다. 저자의 외모를 모르는 상태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는?’이란 질문이 절로 나온다. 이전에 내가 예쁜 여자를 찾으면 주변에서 나보고 거울을 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글들이다. 이성을 돋보이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감성에 충실하다. 내가 남자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불편한 부분도 많다. 차이를 잘 보여주는 글들에서는 많이 공감하고 그 재치와 표현에 놀라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하나를 뽑는다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한 대로 살고 있으니....”란 문장이다. 실제 나의 삶은 꽤 많은 부분 살아지는 대로다. 이 나이되도록 생각한 대로 산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만. 저자의 관찰과 재미있는 표현들이 감수성의 옷을 입고 잘 어울려 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맞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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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은 행복하다
양정훈 글.그림 / 부즈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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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사이 북유럽이 유행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복지까지.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머물고 공부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메모를 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그냥 찍으면 되는 단순한 일도 귀찮아하는 나의 성격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랄 일이다. 그만큼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대답은 신선했고 잊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것을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지키려고 한다. 물론 이런 사회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저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공부하는 여행을 한 그는 말한다. “바깥을 향한 여행이 결국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탐험이 되는 일이며, 더 높고 더 먼 곳에서 삶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성찰의 고도가 바뀌는 일인 것”이라고. 이 책은 바로 이런 관찰과 성찰로 우리 사회와 다른 북유럽의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른 유럽이나 다른 대륙 사람들과도 다른 모습이다.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향이나 생각들이 너무 다르다. 요즘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뜨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한 번 깊게 고민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복지 문제에 있어서 누군가는 이것을 제도나 시스템이나 자금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장 스웨덴이 어떤 제도와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했고, 복지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게 가능한가 말이야.”라고 말한다. 가치의 선택과 복지가 무엇인지를 먼저 교육하는 나라라면 우리가 늘 말하는 예산은 그 다음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산을 위해 전체 예산의 우선순위가 조정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증세 등을 통해 그 자금을 충당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렇게 할 마음도 의지도 없다. 가진 자들이 내놓아야 할 돈이 더 많고, 그들이 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이제 ‘제대로’ 살고 싶어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처럼 ‘그저 열심히’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복을 위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위한 ‘열심히’인가. 왜 ‘열심히’인가. 그 ‘열심히’가 정말 맞는 것인가, 같은 물음들” 또 그들은 “사회적 행복을 높이는 작은 일들에 언제든 관여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부행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개인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생태계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자기계발서가 온통 개인에게 모든 책임 등을 떠넘기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노동자가 조금 더 급여를 받고 싶어 투덜거리면 양보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거대한 탐욕과 실수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차이가 커 보인다.

 

행복하고 공정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고 늘 정치인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이 노력한 만큼, 성취한 만큼의 대가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공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들은 똑같은 기회를 준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공정한 기회는 “같은 곳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기회가 부족한 사람들을 그 출발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언젠가 만평에서 본 한국의 공정한 기회와 경쟁이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졌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열심’과 ‘느긋함’에 대한 생각이 다른데 그들이 보여주는 ‘느긋함’은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게 쫓기지 않는 것에서 비롯한다. 흔한 말로 쓸 데 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짧다고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스칸디나비아에 머물렀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간 탓인지 그 글에 담긴 질문과 문제의식이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 단순히 북유럽의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난 여행 에세이로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가 아름다운 풍경 사진 사이에 담겨 있는 관찰과 성찰에 깜짝 놀랐다. 다른 문화가 주는 놀라운 삶과 문화의 충격도 같이 실려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어느 순간에는 사진에서 풍기는 고요함과 아름다움에 빠져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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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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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면 늘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으로 나누어진다. 읽은 책을 세어 보니 딱 여섯 권이다. 물론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몇 권 보인다. 읽고 싶은 책은 아주 많다. 사놓았는데 읽고 싶은 책이면 시간을 내면 되지만 사지 않은 읽고 싶은 책들은 쌓여있는 책들 때문에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늘 이런 책들은 장바구니나 위시리스트에 담아 놓는다. 나의 책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읽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민이 나에게 익숙해진 것은 역시 MBC 방송 <베란다쇼> 때문이다. 아주 가끔 보면서 재미있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력을 보니 이전에 사놓은 기생충 관련 책의 저자다. 그때부터 서민은 나에게 친숙해졌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대학교수라는 것도 몰랐다. 알라딘에 자주 서평을 올린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단순히 외모만 보고 그를 판단한 나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끔 본 방송에서 그는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고는 했다. 쉬운 일이 아닌데 아주 멋지게 망가졌다. 이때의 인상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었다.

 

책 선택은 출판사와 목차에 나온 책들과 책에 대한 책이란 것 때문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참고해서 책을 사거나 글을 쓰곤 한다. 예전에는 고인이 된 물만두 님의 글을 많이 참고했다. 인터넷 서점에 나 자신도 자주 서평을 올리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잘 몰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과 비교하면 지금도 글 쓰는 방식이 많이 변했다. 요즘은 글이 조금 늘어진다고 느낀다. 이전처럼 충분한 시간이 없다 보니 날림도 상당하다. 나의 생각을 더 많이 넣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서민은 이 서평집에 자신의 삶과 생각을 아주 잘 녹여내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용감하다. 그가 대학교수에 방송인임을 생각하면 더욱 더.

 

이 책에 나온 서평 방식이 글쓰기의 전범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울 점이 많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서민이 삶의 일부를 녹여낸 에세이다. 그가 살아온 길, 삶의 철학, 정치 색깔, 착각, 오해 등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글은 책에 대한 것보다 다른 이야기가 더 많을 때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을 것 같은 책을 서평 책과 연결시켜 새롭고 색다르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개인사가 많이 나와 서민이란 인간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평소에 쓰는 서평에 비해 너무 길이 길어 이런 방식은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하다.

 

책을 추천한 사람들이 그가 같이 방송을 한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해 이들의 말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정혜윤이 아니었다면 반도 아니었을 것이다. 첫 책의 서평을 읽으면서 그의 내공을 확인했고, 그의 글은 이전에 읽었던 장정일의 독서일기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을 늘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의 서평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의 인식을 넓히고, 특정인물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이지만 살아온 방식이나 철학 등에 의해 다른 부분을 더 부각해서 생각하고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더 느낄 수 있었다. 하나를 예로 든다면 <제노사이드>에서 내가 본 것은 ‘작가의 던진 문제의식’인데 그는 ‘의사의 융통성 없음’에 더 집중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더 풍성하게 책을 이해하게 만든다. 서민의 알라딘 서재를 언젠가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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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열흘
아데나 할펀 지음, 황소연 옮김 / 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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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의 전개다. 취향을 많이 탈 책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다. 주인공 알렉스에게 거의 공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나 그녀가 누린 혜택이나 7단계의 천국이란 설정 등이 반감을 불러왔다. 천국까지 등급이 나누어져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계급적인가. 그리고 알렉스가 살면서 누렸던 엄청난 혜택과 미국 사회의 모순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표현될 때 그 반감은 더 심해졌다. 그냥 소녀들의 판타지를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텐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29살의 알렉스가 미니 쿠퍼에 치여 죽은 후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사랑하는 애완견 복숭아와 새벽 산책을 하던 중 차에 치여 죽었다. 천국 입장을 대기하던 중 새로운 남자 애덤을 만난다. 더 놀랍고 더 행복한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던 외조부모와 모리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이다. 이들과 만난 후 알렉스는 천국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누린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엄청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천국의 풍요로운 행복을 누린다. 그녀가 지상에서 누렸던 물질적 풍요에 더해진 물질적 풍요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니 또 하나의 즐거움이 추가된다. 새로운 연인과는 가장 완벽한 섹스를 한다. 말 그대로 천국이다.

 

이런 그녀에게 시련이 닥친다. 그녀 생애 최고의 열흘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에세이가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녀는 현재 7단계 천국에서 3, 4단계로 떨어질 수 있다. 그것에서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풍요는 제한이 있다. 이 상대적 발탁감에 그녀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이 장면은 그녀의 에세이에서 그녀가 누렸던 엄청난 혜택을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지 잘 드러난다. 그리고 작가가 설정한 천국의 모습도 지극히 계급사회적이다. 절대적인 차이도, 상대적인 차이도 다 있다. 단지 절대적인 빈곤이 없을 뿐이다. 과연 이런 천국이 행복할까? 1단계의 천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물론 소설의 핵심은 그녀가 생각하는 생애 최고의 열흘이다. 그녀가 힘들게 탄생한 것부터 시작하여 그녀가 죽은 후 경야까지 이어진다. 힘들게 태어난 그녀를 주변 어른들은 기적의 아이라 부르고 애지중지한다. 엄청난 미모의 엄마와 엄청난 부를 가진 아빠 밑에서 행복하게 자란다. 이 가족 중에 외조부모와 모리스 할아버지가 포함된다. 첫 키스의 강렬한 추억도 있고, 파혼한 후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나 자신의 애완견 복숭아를 산 것과 새로운 일을 자신의 힘으로 얻어낸 것 등이 담겨 있다. 이런 최고의 열흘 에세이는 결국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어떤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뭐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까지 포용할 정도의 넓은 마음이 아직 나에게는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지만 그것을 받쳐주는 세부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들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알렉스에 감정이입되어 그 이야기를 즐긴다면 재밌고 즐겁겠지만 허술한 설정과 전개가 더 눈에 들어온다면 지루할 것이다. 나는 후자다. 개인적으로 천국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그녀의 삶을 좀더 현실적이고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면 더 몰입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천국에 살면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인지 하는 의문을 뒤로 하고 말이다.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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