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의 시간
도종환 지음, 공광규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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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으로 나에게 그 이름을 알린 시인이다. 처음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단순히 사랑시를 쓰는 사람으로 착각했다. 영화로도 나왔던 그 시집은 나로 하여금 시인을 오해하기 딱 좋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당시는 베스트셀러를 읽지만 배척하던 모순된 감정을 가졌던 시기였던 탓일 것이다, 그 후 전교조 문제 등으로 그를 알게 되고, 시집 <접시꽃 당신>을 제대로 읽으면서 이 오해는 조금 수정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RHK에서 나온 시화선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로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번 이 시선집은 그의 시집들에서 몇 편씩을 발췌해서 시집 발간 순으로 실었다. 읽으면서 초기작과 대박시집 사이의 차이를 다시 느끼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 속에 시인의 변화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선집이 하나의 범주로 묶여 시풍이나 시어들의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없는 것과 비교되는 편집이다. 그의 일상과 의지와 희망과 사랑 등이 곳곳에 녹아 있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애절한 사랑의 시를 읽을 때면 나도 저럴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이전에 읽었지만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대부분 낯선 시들은 머리와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시는 현실을 담고 있다.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1985년)부터 그렇다. 개인적으로 ‘흑인 혼혈아 여가수에게’의 대상이 누군지 궁금하고, ‘조센 데이신타이(조선정신대)’의 비극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묻혀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접시꽃 당신>(1986년)속 ‘어떤 연인들’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굳세어 보인다. 아내에 대한 사모곡이 지닌 애절함과 그리움을 넘어 지켜보는 따스한 시선은 아직 그의 마음속에 사랑이 살아있음을 알게 한다. 이것은 나중에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로 이어진다. 이때는 이미 그가 재혼한 후이지만.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당한 후 그의 시들은 학교와 학생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감옥에서 만난 제자와의 단상을 ‘잘가라, 준아’로 풀어냈을 때 이 시대 수많은 학생들의 삶이 겹쳐졌다. “우리가 빼앗긴 세월을 반드시 돌려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정 선생님, 그리고 보고 싶은 여러 선생님께)의 희망은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귀가)로 이어진다. 이것은 다시 “어떤 투쟁이든 값진 것은 과정일 뿐”(쏭바)이라고 말하며 현실 속에서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60대가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좀더 부드러워졌고, 다양해졌음을 느낀다.

 

시인이기 이전에 그는 교사였다. 이제는 정치인으로 변했지만 그의 시 대부분은 교사였을 때 쓴 시들이다.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그가 전교조 문제로 해직되었을 때,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그 감정을 시로 풀어내었을 때 한결같이 그의 관심은 학생들이고 교육문제다. 전교조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닭장차에 실려갔고, 어느 날은 한 가족의 가장이자 자신을 감옥에 보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이때의 감정들을 시로 정제해서 풀어낼 때 그의 고뇌와 아픔과 갈등 등이 나의 가슴 한 곳으로 콕하고 와 박힌다. 그리고 ‘부드러운 직선’에서 사람들이 부드러워지라고 할 때 그것을 받치는 기둥이 직선임을 말한다. 그의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시다. 상대적으로 어렵게 쓴 시들이 아니라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사놓고 묵혀둔 다른 시집들에도 손을 한 번 내밀어봐야겠다.



 
 
 
델리 아시아 문학선 10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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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설이다. 두 명의 주요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만 이들이 중요 주인공은 아니다. 이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600년 긴 역사의 무대였던 델리다. 인도의 단순한 한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곳이 이 소설에서는 장대한 이야기의 배경이자 수많은 인물들의 삶이 교차하는 곳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는 화자인 나와 그의 정부이자 창녀이자 어지자지인 바그마티가 들려주고, 과거의 이야기는 델리를 무대로 활약하고 생활했던 다양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600년 역사 속 델리의 변천사를 알려준다. 실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 델리의 변천사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를 알면 더 좋을 것 같다. 하나는 시크교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인이다. 시크교는 작가의 종교이자 이 소설 속에서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인도인은 삶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 다른 탓이다. 힌두교, 시크교, 이슬람교 등이 서로 엮인 채 살아가는 인도에서 이들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시크교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딱 하나였다. 성이 모두 싱이라는 것이다. 검색으로 몇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인도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델리라는 이름보다 뉴델리로 더 각인된 인도. 그중 델리의 과거를 되짚어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눈은 다양한 계급의 인물들을 통해 풀려나온다. 정복자에서 시작하여 불가촉천민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기록은 한 시대에 뒤섞이지 않고 각각 다른 시대를 자신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보는 위치가 다르면서 생기는 시각 차이는 한 도시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힌두스탄 황제의 칸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이란의 술탄이 왔을 때 보여준 행동은 이것의 정점이다. 확실한 무력의 우위를 이용한 학살과 파괴와 약탈은 그 원인보다 그 현상으로 더 많이 알려진다. 역사가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현재는 바그마티란 제목으로 거의 구성되어 있는데 분량이 제각각이다. 처음 나와 바그마티의 관계를 알려주고 보여줄 때를 제외하면 이들의 비중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것은 이 둘의 성적 관계와 나의 활동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신문에 글을 쓰고, 여행 가이드 역할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서양여자들과의 섹스를 즐겼던 그의 삶이 노쇠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을 때 바그마티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때 이 둘의 묘한 관계가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 둘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어 아쉬웠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델리의 현재가 인도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이 소설 속에 델리의 장대한 역사를 녹여내었다고 하여도.

 

최근에 인도 여행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 신비와 환상으로 뒤덮여 있던 그곳이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인도인들과 뉴스를 통해 들은 몇몇 사건들로 인해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도 파편적인 정보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그 정보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의 외설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긴 델리의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있다. 만약 이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이자 연출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인도와 관련된 소설을 읽을 때면 늘 혼란스럽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모습이 보이다가도 종교 갈등이나 암살 등으로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 나디르 샤의 암살 시도 때문에 벌어진 대학살이나 최근 인디라 간디의 암살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세포이 전쟁 당시 각각 다른 입장에 처한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그 현장을 풀어낼 때 역사는 결코 몇 줄의 설명으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델리 속 각각의 등장인물은 델리의 속살과 이면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이 책 출간 후 20년 이상이 지났는데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도 궁금하다.



 
 
 
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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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 클로델은 아직 나에게는 어려운 작가다. 지금껏 읽은 소설들도 나의 이성이나 가슴에 완전히 와 닿지 않았다. 두 번째 소설을 읽을 때 살짝 그 문을 열어주었지만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낯선 지명과 잘 모르는 단어와 수많은 주석은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장과 어우러져 그 속으로 들어가기 더 힘들게 만들었다. 커피숍에 앉아 묵묵히 글을 읽기 한참만에 그 문이 살짝 열렸다. 단순히 피상적으로 느꼈던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추억으로 기억으로 향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머무르는 향기처럼 곧 사라졌다.

 

목차를 보면서 한글 제목만 열심히 읽다가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에세이들이 모두 알파벳 순서대로 쓴 것이란 사실이다. 아카시아와 여행까지. 낯선 외국어와 조급한 성격이 이것을 놓쳤다. 역자 후기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놓쳤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라고?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또 작가는 자신이 자란 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고 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 변한 곳이 많겠지만 오히려 그 변화가 더 많은 추억과 기억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 흔적과 기록이 바로 이 에세이일 것이다.

 

이 예순세 편의 에세이는 모두 향기와 추억을 다룬다. 시간은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같은 동네를 무대로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인지 기억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그들의 소식은 어느 순간 반갑게 다가왔다. 길지 않은 글인데 조금은 신기하다. 최근의 기억보다 오래전 기억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의 때가 탄 탓일까? 아니면 흥미와 신비로움을 잃어버린 탓일까? 하지만 그 기억을 하나씩 풀어내가는 것은 현재의 그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방점 하나가 그 감정을, 향기를 살포시 품어낸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다섯 가지 감각은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글 속에서도 그렇다. 할머니의 스테이크 맛은 후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여자의 성기를 만지는 촉감은 다시 후각으로 넘어간다. 낡은 오토바이는 소리와 냄새로 이어진다. 아픈 자신의 몸에 어머니가 발라주던 연고의 촉감과 냄새는 나도 모르게 아련한 기억 속 향수를 불러온다. 다른 환경과 시대를 살았지만 몇 가지는 보편적인 것이라 그 느낌과 향기가 ‘나도 그랬지’란 말을 자연스럽게 토해내게 한다. 대표적으로 새 시트와 곰팡이와 묑스테르 치즈 등이다. 물론 상황이나 사연은 전혀 다르다.

 

마늘 이야기에서 할머니가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난 내가 부르단다”라고 할 때는 울컥했다. 너무 자주 듣던 말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할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버지로 바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나라도 시간도 사람마저 달라도 이런 표현과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 문장이 결코 쉽지 않은 이 작가의 에세이를 계속 읽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대충 읽거나 띄엄띄엄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 읽은 지금 다시 펼치면 그때 놓쳤던 이야기나 아직도 남아 있는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작가는 이 에세이에서 보들레르를 자주 인용한다. 아직 나에게는 낯선 그 시인, 시집을 다 읽었지만 한 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 시인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은 그의 시를 느낄 수 있었다. 향기와 추억이 엮이면서 그 느낌이 살짝 다가왔다. 다시 보들레르를 시집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여행을 갈 때 그처럼 기형도의 시집을 들고 다닐지 모르겠다. 김수영이 더 좋으려나? 아니면 쌓아둔 시집 중 한 권을 들고 가 몇 편이라도 읽는다면 어떨까? 맞다. 한때 시집을 들고 가서 그냥 왔다. 신동엽의 <금강>이었지. 순간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오고 간다. 가끔씩 펼쳐 다시 아무 곳이나 읽어도 좋을 듯한 에세이들이다.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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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다. 아니 옛날 중국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름이 먼저 생각난다. 양씨 성을 가진 여자를 그냥 놀리듯이 혹은 장난스럽게 부를 때 양양이라고 하기도 한다. 내게 이때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 에세이를 읽고 한 명의 양양을 더 기억하게 되었다. 무명가수에 무명작가인 그녀. 쓸쓸할 듯한 제목과 분위기 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흔한 보통의 에세이처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이 예상은 빽빽한 글자들과 내면을 고백하는 문장들로 더디게 읽혔다. 그녀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날 때 조금은 불편했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적어나간다는 것을 어떤 것일까?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이다. 특별한 것도 없고, 철학적인 깊이도 많이 없다. 살아오면서 마주한 수많은 일들을 감정을 담아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적었을 뿐이다. 화려한 기교도, 억지로 재미를 과장한 사건도 없다. 멋진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나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도 거의 없다. 이 없는 것 투성이 속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자신이다. 양양의 생각, 생활, 친구, 경험, 아픔, 사랑, 그리움, 향수, 만남, 헤어짐, 웃음, 달콤함, 추억, 술 한 잔 등등. 제목처럼 이 글들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그래서 더 더디게 읽혔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중 일부를 같이 읽었다. 조금 더 감성과 이성을 자극하는 것은 이석원이다. 하지만 이 둘의 감성이 어딘가에서 겹쳐진다. 어떤 때는 누구의 글인지 살짝 구분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심리 상태나 행동을 보면 분명 이석원이 더 불안하고 불안정한데 왜 이 둘은 같이 쓸쓸하고 외롭게 다가올까? 그들의 감성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울함이 내 앞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양양은 많이 나은 편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부분만 본다면. 그리고 양양이 더 많이 타인과 교류하고 있다. 커피숍의 낯선 남자와의 대화와 술자리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기억과 추억으로 삶을 되짚어 가는 글은 바로 기억과 추억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섯 꼭지로 나눈 것이 마지막에 ‘노래가 된 글’의 제목들이다. 그냥 무심코 읽었던 제목들이 지금 이 순간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쿤밍 기차여행 서른일곱 시간도 아니고 ‘요리생활’과 내 친구 배순호‘ 이야기다. 자취를 그렇게 오래했지만 한 번도 나물을 무쳐 먹을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그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생활이 아쉬웠고 그녀의 도전(?)이 부러웠다. 오빠 배순호의 다양한 불운과 사연은 가슴 한 곳을 아~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이것을 다 넘어갔으니 다행이다.

 

‘두점박이 사슴벌레’ 포장마차는 가보고 싶다. 허름한 옛날 목욕탕 풍경은 아련하다. 도다리쑥국은 나도 어릴 때 엄마가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추억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녀가 경험한 몇 번의 사랑은 노래가 된다. 국밥 한 그릇의 추억 속 그 아이는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게 한다.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다가 내기 때문에 건 전화로 그 말을 했을 때 돌아온 그 한 마디 “그래, 나도 사랑해”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삶은 늘 지나간 후에 깨닫게 되고 그리워하는 것들이 많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 중 하나다. 이석원의 글과 다른 점이 이제는 더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의 단어가 명사가 아닌 동사인 것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일까? 나에게 해당되는 단어들이 수없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 커피에 빠지다 - 커피향 가득한 길 위의 낭만
류동규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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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가끔 집에서 커피를 내려 먹기도 한다. 하지만 배운 적도 없고, 특별히 공부한 적도 없다보니 커피 맛이 내릴 때마다 다르다. 원두를 갈 때도 있고, 통으로 사놓고 먹을 때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메일 내려먹는 것 같지만 귀찮아서 사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드립커피를 주로 마시지만 그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품종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서 원산지 원두와 그 맛을 표현했을 때 솔직히 부러웠다. 나도 한 번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열다섯 곳의 커피하우스 때문이다. 여행보다 커피하우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국내 여행을 가면 갈 커피하우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첫 여행지인 천안, 아산 이야기를 읽자마자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낯익지만 한 번도 여행갈 생각을 하지 못한 이 도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니 길만 막히지 않으면 금방 갈 수 있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한 번 둘러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새로운 발견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더불어 멋진 커피하우스 정보까지 곁들여 있으니 맛집만 한두 곳 찾으면 최상의 여행지가 된다.

 

여행과 커피를 하나로 묶었지만 주가 되는 것은 역시 여행이다. 잠시 머물다 간 곳 포함해서 열세 곳의 여행지 모두 한 번씩은 가본 곳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몇 시간을 달려간 곳도 있고, 한때는 철만 되면 가던 곳도 있다. 광화문의 경우는 한 달에 몇 번이나 나가던 곳이다. 이런 곳들이지만 신기하게도 열다섯 곳의 커피하우스 중 가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어릴 때는 커피를 찾아 마실 돈도 여유도 없었고, 최근까지는 그냥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나 관광지 근처 조그만 커피숍으로 갔기 때문이다.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곳도 당연히 볼거리와 맛집이 우선이었다. 가끔 블로그에서 좋은 커피숍이 나온다고 해도 그렇게 비중을 높게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물론 강릉의 커피하우스 정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접해 낯익지만 그래도 강릉행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국내여행사 대표답게 그가 소개하는 여행지들의 다른 모습은 저절로 눈길이 간다. 과장된 표현이 살짝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유혹은 없다. 본업이 여행사이다보니 그곳을 나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커피하우스에 대한 평가도 역시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사실 그 맛을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와인을 시음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나와 살짝 놀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조금 저렴한 가격의 핸드드립 커피하우스가 나왔을 때는 바로 달려가서 그 맛을 보고 싶었다. 현실은 사무실에서 프렌차이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최상의 호사지만.

 

사라진 커피하우스 대불호텔도 좋지만 인제 춘천 여행 끝에 도착한 춘천의 시실리아가 왠지 가보고 싶다. 낡은 커피숍 소품에 진한 커피향기가 곁들여진 그곳. 소양강 댐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 역할만 했던 춘천. 이제 새로운 목적지가 생긴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가보고 싶은 경주도 눈길을 강하게 끈다. 커피업계 3대 천왕이 있다는 것보다 많은 관광지를 둘러본 후 잠시 숨을 고르면서 진한 커피 한 잔으로 피로를 풀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맛있는 커피 한 잔이면 어디에서나 피로를 풀 수 있지만 여행지에서 특별히 찾아간 곳이라면 분명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 자주 가는 파주의 커피공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