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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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안젤루. 세계인의 영원한 멘토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미국 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그녀의 작품 중 내가 기억하는 작품이 지금 당장 하나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편협한 독서 이력이 그녀에 대한 무지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도 하지만 자신은 없다. 물론 이런 홍보가 없다고 해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자신과 엄마의 삶을 간결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진솔해서 놀라울 정도다.

 

이 책은 그녀가 일곱 번째로 발표한 에세이이자 마지막 발표작이다. 문학가가 되기 전 그녀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것도 엄마의 영향이 크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엄마는 자라면서 늘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우리를 돌봐주시든 그 엄마 이상이다. 물론 이런 엄마가 있다고 해서 이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이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삶에 도전하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십대에 흑인 중 아무도 하지 못한 차장을 하게 된 사연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마가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해도 그녀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는 그녀의 탄생부터 엄마의 죽음까지 다룬다. 한 인물의 일세기를 다루는 것에 비해 분량은 아주 적다. 손에 쥐고 조금만 집중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동안 그녀와 엄마 비비언 백스터의 삶과 그 굴곡에 놀라게 된다. 그녀들의 사랑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더 집중하지 이전투구와 같은 이혼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왜 이들이 이렇게 많은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아 있다. 혹시 이 부분을 알기 위해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읽을 용의가 충분히 있다.

 

그녀가 일곱 살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열여섯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산달에 다가와 겨우 말하게 된 그녀와 이 사실을 안 엄마의 반응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한국이라면 보통 낳은 아기를 엄마와 함께 힘들게 키우고,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겠지만 그녀는 자립한다. 엄마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와중에 한 남자의 오해와 질투가 그녀를 죽음에 이를 정도까지 만든다. 이때 그녀를 찾아 도와준 것도 엄마다. 그녀의 사업체가 도박장이었는데 보통의 여장부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짝 긴장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마야도 평범하지 않지만 비비언은 더 대단하다.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고 이 아이들을 친할머니에게 맡긴 후 다시 찾아 키운다. 자신의 어리고 미숙한 부분을 인정하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야를 때린 후 오빠가 보여준 행동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섬세함도 있다. 마야가 스웨덴에서 영화를 촬영할 때 그녀의 요청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도 그녀다. 이것을 보면 엄마는 마야에게 최고의 해결사이자 멘토다. 이 에세이는 그런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자신의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냉정하여 엄마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하게 엄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최근에 본 혹은 읽은 것들 중 가장 멋진 엄마와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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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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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문학은 참으로 낯설다. 이 문장을 적어 놓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낯익은 작가가 나온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다. 마르케스의 경우 늘 라틴아메리카 문학으로만 인식하다보니 콜롬비아 작가란 사실을 놓쳤다. 이 소설에서도 마르케스의 그 유명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나온다. 실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마르케스가 콜롬비아 문학가란 사실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우선이다. 가끔 작품에 작가의 국적 등이 가려질 때가 많다. 왠지 조금 씁쓸하다. 이렇게 조금 검색하니 콜롬비아 문학이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마르케스의 소설을 두 권이나 읽었으니.

 

이 소설에 관심을 둔 것은 역시 오독의 힘이 컸다.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진상’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이란 설명에 눈이 돌아가 갱스터 문학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나의 기대는 콜롬비아의 <시티 오브 갓>이었으니 이 차이가 얼마나 큰가. 하지만 콜롬비아 암흑가의 잔상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 중심은 역시 그 유명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전성기 시절, 그는 개인 동물원을 만들었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동물원을 방문했다. 책 속 내용을 보면 어지간한 나라의 국가 동물원보다 크다. 이 동물원에서 탈출한 하마 이야기로 시작하여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1996년으로 돌아간다. 화자는 당구장에서 의문의 남자인 리카르도 라베르데를 만났다. 이때 라베르데는 감옥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의 복무 기간은 20년이 넘었다. 당구가 아니었다면 이 둘이 만날 일도, 친구처럼 다니기도, 같이 총을 맞을 리도 없다. 하지만 이 만남이 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법대 교수인 화자는 라베르데에 그렇게 푹 빠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이 우선이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과 의문은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긴 세월 감옥에 있은 이유와 그가 그리워하는 아내의 존재다. 그의 아내는 미국인이다. 아내는 그 당시 미국에 있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풀려난 후 아내와 만나길 바란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 아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 죽었다. 라베르데는 어딘가에서 테이프 하나를 구했다. 이것을 듣기 위해 카세트를 찾는다. 무슨 내용일까? 이 테이프를 들은 그 날 밤 둘은 총격을 당한다. 화자는 겨우 살아났지만 라베르데는 죽었다. 이 총격은 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쉽게 풀릴 것이 아니다. 그러다 테이프 내용을 듣게 된다. 그의 딸 전화도 받는다. 만나러 간다. 이제 암흑가의 잔상과 한 남자의 과거를 되짚게 된다.

 

옛날에 수많은 미국 영화와 소설에서 콜롬비아는 마약의 보고였다. 이 소설은 그 태동기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처음에는 마리화나였다가 점점 무거운 마약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 운송수단도 바뀐다. 한 번에 큰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비행기를 이용해 전달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 앞에 라베르데의 아내 일레인이 어떻게 콜롬비아에 오게 되었고, 둘의 사랑이 어떻게 꽃 피웠는지 보여준다. 순수와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약 재배에 큰 도움을 준 인물들이 백인들이다. 일레인이 소속되었던 미 평화봉사단 사람들이 콜롬비아의 소득 증대를 위해 도움을 준 것이다. 물론 이것이 현대사의 비극이 되지만 말이다.

 

에스코바르의 전성기 콜롬비아는 공포의 시기였다. 화자인 안토니오의 회상을 통해 잘 드러난다. 잘 모르는 아이들이 에스코바르의 동물원을 다녀오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정도였다. 이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그 강렬한 기억을 쉽게 뒤로 넘길 수 없다. 마약, 폭력 등이 난무하던 시절이다 보니 회상은 언제나 공포와 겹쳐진다. 이런 시절에도 사랑은 있다. 책의 반 정도는 이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힌다. 이것은 화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총을 맞은 충격이 그를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들었다. 라베르데의 딸 마야를 만나러 간 것도 이 영향 때문이다.

 

어둡고 무거우면서 잔혹한 현대 암흑가 이야기를 기대한 나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사랑과 절망과 공포 등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성도 보통의 장편과 조금 다르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것도 아니고, 한 인물의 삶을 그렇게 깊게 파고들어 길게 나열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와야 할 순간에 나와 그들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할 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마 이 당혹감은 나의 기대와 다른 전개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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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8
퍼트리샤 콘웰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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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타 시리즈 18권이다. 이 시리즈를 처음 읽은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늘 그렇듯이 한동안 열심히 읽다가 중단했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나오다 잠깐 멈추면 연속성을 잃는다. 이 시리즈도 1권부터 읽지 않았다. 예전에 2권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낯설고 특이했다. 아마 CSI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조금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긴 시리즈의 경우 중간부터 보면 앞에 나온 이야기의 흐름을 몰라 약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 시리즈도 그랬다. 하지만 법의학에 무지했던 그때는 스카페타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지금도 가끔 그 무지의 순간들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시리즈는 첫 권인 <법의관>이다. 시리즈 중간을 읽다가 첫 편을 보았는데 완전히 몰입했다. 그 후 이어지는 악당의 이야기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순서를 정해서 읽어야 했다. 지금도 분권된 그 시절의 책들이 책장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읽어주길 바라며. 그리고 이 시리즈를 다시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앞에 나온 것을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순서에 상관없이 읽다 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다. 반가운 등장인물들과 낯선 이야기들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는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오랜만에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며칠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이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못했다. 미군의 CT를 이용한 가상 부검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녀의 연구실에서 일어난 이상한 죽음이 그녀의 귀환을 하루 앞당긴 것이다. 심장 부정맥 이상으로 죽었다고 판별한 시체가 갑자기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혹시 연구실에 왔을 때 죽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다. 그런데 이 시체가 가진 기계 등이 특이하다. 최첨단 나노공학이 적용된 기술이다. 극소형 기계로 녹화된 영상이 있다. 하나의 의혹이 그녀를 흔든다.

 

그녀가 연구실로 돌아온 것은 6개월 만이다. 그 동안 연구실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다. 잭 필딩이다. 부소장인 그는 제대로 연구실을 운영하지 못했다. 시체가 피를 흘린 것을 발견한 것도 그다. 그런데 그가 전화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그가 이전에 부검한 사건들의 의혹이 스카페타 앞에 하나씩 드러난다. 그 중 한 사건은 야스퍼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조니 도나휴가 아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머리에 못을 박고 죽은 채 발견되었고, 조니는 자신이 한 것으로 자백했다. 벤턴이 심리 검사를 한 결과는 조니가 범인이 아니다. 그럼 누가? 뻔한 전개로 가면 가족 중 한 명이 범인일 수도 있다.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그녀는 시체를 다시 조사하고 부검한다. 쉴 틈도 없다. 그녀 주변으로 마리오, 루시. 벤턴 등이 계속 오간다. 그녀에게 전달된 편지와 사람들의 잭에 대한 증언들이 그녀를 피곤하게 만든다. 사건의 나열, 증거 자료의 조사, 법의학 자료 등이 이어진다.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해도 이미지가 없다 보니 낯설다. 몇 개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본 것이다. 결국 나의 이미지는 CSI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이전에 본 CSI를 떠올리며 그녀의 활약을 본다. 증거가 누군가를 가리킨다. 여기에 과거 속에 봉인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그녀가 장학금을 위해 선택했던 군 시절 남아공 파견이다.

 

이야기는 며칠 동안 스카페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정보가 그녀에게 집중된다. 그녀가 발생시키는 정보도 있지만 아직은 그녀에게 오는 것이 많다. 4분의 3정도가 액션도 없이 이런 정보의 집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정보가 어느 순간 하나로 이어지면서 올올히 풀린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용의자가 보인다. 왠지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시원함이 아니라 연료가 불완전하게 연소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약간 답답함이 있는데 나의 몰입에 문제가 있나 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의문사 남자가 끌고 다닌 개 삭이 신경 쓰인다. 연구실을 둘러싼 역학관계부터 과거의 기억까지 뒤섞인다. 혼란 속에서 그녀의 논리는 힘을 발휘하고, 진실에 한 발 다가간다. 다시 역주행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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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146
척 드리스켈 지음, 이효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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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는 소재다. 히틀러의 아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소설에서도 히틀러의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추종자들과 비밀을 밝히는 주인공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대결 구도가 아니다. 제국을 꿈꾸는 추종 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히틀러의 아기를 가진 여자의 일기를 둘러싼 욕망과 여기서 비롯한 폭력과 복수가 있다. 처음에 책 소개 글에서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화려한 액션과 잔혹한 복수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었다.

 

게이지 하트라인. 미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크레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실수로 두 아이를 죽인다. 이 실수는 그의 잘못이 아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기억은 그를 뒤흔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 기억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이 주저함이 비극을 불러온다. 특수부대 출신의 전투 능력은 시작 부분에서 비행기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능력을 이용하면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지만 크레타의 악몽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모니카. 그가 사랑하는 여자다. 크레타의 악몽이 그녀와의 사랑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니카가 먼저 한 발을 내딛는다. 이 한 발이 그의 삶에 빛을 가져다준다. 그가 크레타에서 겪었던 사건을 말하고,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그의 과거를 밝힌다. 더없이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았던 이들에게 엄청난 벽이 나타난다. 그것은 게이지가 발견한 일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게이지가 프랑스 정보부의 의뢰로 도청장치를 설치하러 갔다가 발견한 일기 뭉치다. 일기를 쓴 사람은 그레타,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인 걸 숨기고 한 정치인의 집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정치인이 바로 히틀러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풀면 히틀러가 그녀를 사랑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말랑한 연애는 없다. 대신 강간이 있다. 권력으로 그녀를 겁탈한다.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숨겼는데 만약 히틀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책소개에서 기대한 것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일기의 내용도 모르는 무리가 엄청난 큰돈이 될 것이란 이유만으로 게이지와 모니카를 좇는다. 게이지에게 일을 준 장은 자신이 의뢰한 일이기 때문에 일기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프랑스 깡패들은 모니카의 오빠가 살기 위해 내뱉은 말 때문에 이들은 뒤좇는다. 이 과정에 갱 두목의 절친한 부하를 죽인 것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원인을 나열할 수도 있다. 모니카가 믿었던 책을 팔고 있는 오빠를 찾지 않았거나, 일기를 찾자마자 홀로코스트센터 등에 알리거나 자신이 바라는 금액이 아니니 도청 일을 하지 않거나 미군 특수부대를 그만두지 않거나 등으로 계속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크레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레타의 일기가 이야기 중간중간 나와서 어떻게 그녀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 분량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아이를 낳기 위해 달아나야 했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과정도 짧게 나온다. 솔직히 말해 이 일기를 숨기고 발견하게 된 것에 약간의 허술함이 있다. 이 허술함을 지워줄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일기는 게이지의 활약을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발칙하고 놀라운 상상이지만. 그리고 매력적인 조연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레브 조직의 두목 니키 밑에서 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2인자 마르셀과 재독미군수사관 엘리스 대위다. 엘리스가 놀라운 수사관 능력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끌었다면 마르셀은 조금 다른 매력이다. 바로 이성과 포기다. 이성은 불필요한 행동이나 살인을 자제하자고 하지만 니키의 잔혹함은 이것을 넘어간다. 이때 포기가 생긴다. 하지만 그 한계는 언제 넘어갈지 모른다. 가끔 보여주는 텅 빈 허무함과 포기가 일상에 찌든 월급쟁이들과 겹쳐보였다. 너무 오버인가. 아무튼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게이지의 다음 활약은 어떤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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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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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라는 저서 하나로 우리나라를 뒤흔든 저자의 신작이다. 이 저서를 사놓고 묵혀둔 것이 몇 년 되었다. 두께와 내용 때문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워낙 평이 좋아 이번에 나온 이 책에 큰 관심을 두었다. 두께도 그렇게 두툼하지 않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세계적인 석학이란 말이 너무 무색한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로마 루이스대학교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곱 번의 강연을 기초로 꾸민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그의 자료 조사와 비전공 분야의 공부가 나의 지식과 너무 다른 것 때문일 것이다.

 

다른 나라도 이 강연을 기초로 책으로 엮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문도 한국 독자를 위한 것이 있다. 역자의 글이 없었다면 이 책이 강연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모를 뻔 했다. 글 중간 중간에 한국을 말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외국 아이돌 그룹이 나라별로 제목을 바꾼 것이 떠올랐다. 너무 비약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한 부분은 역시 5장과 6장이다. 그의 경험과 전공이 결합되어 있고, 얼마 전에 읽은 책과도 조금 연관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내용도 그렇게 깊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빈부를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을 나누어 설명한 1장과 2장은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지만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 지리적 요인 중 토양에 대한 부분은 새로웠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쉽게 본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자원의 저주를 풀어내면서 지리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빠트리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상식이 된 제국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탐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요인에서 궁극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의 글은 표면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스타리카의 예가 한국과 비교하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을 다룬 3장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과연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인지 의문이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아 중화사상의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티베트를 옛날부터 중국의 한 지역으로 표현한 것이나 ‘남중국인이 열대권 동남아시아인의 조상이기 때문’이란 단정적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중국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결과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재미난 것은 중국 일당독재 때문에 미국 같은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정화의 대항해를 너무 확대한 듯한 글도 가정이 너무 심하다.

 

4장에서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를 다룬 것을 보면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2년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으로 492명이 죽었다. 이 사건으로 그 유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어떤 치료가 병행되었는지 간략하게 말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진실이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진상 조사에서 가족들은 제외되어 있고, 비겁하고 비열한 언론 조작들이 난무한다. 저자가 과연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연결시켰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표면적이다. 테러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초보적이다. 빈부격차를 그 이유로 내세웠는데 종교를 이유로 든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세계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 3가지를 말한다. 기후 변화, 부의 불평등, 환경자원의 관리 등이다. 당연히 간단하게 말하고 지나가는 방식이라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석학의 말이 하나의 안내판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어선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이 수자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 부분은 놀라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곳곳에 나와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른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에 대한 평가는 그의 역작인 <총, 균, 쇠>를 읽을 때까지 조금 유보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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