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순례하다 - 건축을 넘어 문화와 도시를 잇는 창문 이야기
도쿄공업대 쓰카모토 요시하루 연구실 지음, 이정환 옮김, 이경훈 감수 / 푸른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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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장소에 앉아서 창밖으로 계절이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늘 무심코 보던 그 창밖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변했다. 5월의 햇살 아래 푸른 잎으로 가득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창밖의 풍경은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곳도 아니었다. 창도 작았다. 단지 조그만 화단에 벽이 있던 곳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지겨운 창밖 풍경이 외부의 조건에 따라 나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은 늘 그늘이 져 있었는데 말이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창밖의 풍경이 마음 속 어딘가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때의 인상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정말 창만 다루고 있다. 크게 3개의 범주로 나눈 후 그 범주 속에서 창의 속성을 구분하다. 이 범주는 빛과 바람, 사람과 함께, 교향시 등이다. 이 범주는 세계를 돌면서 실측하고, 사진을 찍은 후 구분한 것이다. 단순히 실측과 사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에 집중된 행동을 관찰해 기록했다. 이 기록들이 각 창의 설명에 곁들여져 있고, 창 사진을 선택하는데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차분하게 그 창의 모습을 보면, 혹은 그 창밖의 풍경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은 깜짝 놀라고 어느 순간은 그 기능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어떤 때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도 한다. 청소 같은 것 말이다.

 

책의 구성은 3개의 범주로 나눈 것을 각 장으로 세분화하는 목차로 되어있다. 그런데 각 창의 설명은 동일한 방식으로 끝까지 진행된다. 실측한 그림을 좌측에 놓고, 간단한 지역 및 기능 설명이 같이 실려 있다. 오른쪽에는 창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실측 그림이 왜 중요하냐면 사진으로 결코 알려줄 수 없는 깊이와 자료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창이 벽 깊숙이 놓여 있을 때는 이 실측 자료가 현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던 것을 깨닫게 한다. 물론 가장 많이 나를 사로잡는 것은 역시 멋진 창밖의 풍경이다. 이 풍경을 단순히 설계한 곳도 있겠지만 거장들은 계산과 계획에 의해 창을 내고 건물의 효용을 높인다. 이것은 또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와도 연결된다. 빛과 바람과 풍경 등이 잘 어우러져야만 그 공간이 새롭게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시들의 무수한 창을 보면서 감탄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풍경 때문에 그런 적도 있고, 그 기능성 때문에 놀란 적도 많다. 종교적 문제로 창의 모양이 결정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다양한 창은 그 시대의 과학적 한계에 의해 결정된 경우도 적지 않다. 큰 유리를 만들 수 없어 작은 유리를 이어붙이거나 건물의 구조 상 불가능한 창이라 크기를 줄여야 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심코 본 그 창이 어떤 배경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 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많은 사진 때문에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바로 이런 문화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산산조각났다.

 

창은 단순히 창밖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창 안쪽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빛을 모으고, 시원한 바람을 끌어들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혹은 몰래 훔쳐보는 역할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창은 집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구분짓기에는 창의 기능과 활용이 너무 다양하다. 창 안쪽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것도 바로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창밖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창 안쪽에서 쉬거나 머무는 방식도 기능에 따라 제각각이다. 어느 곳은 꼭 가서 누워보고 싶은 곳도 있다. 열대지방의 한 곳은 그곳에서 쉬면서 열기를 식힌 바람을 맞으며 잠깐 졸음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한국의 창이 단 두 곳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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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229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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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이방인>을 제외하면 단편 한두 편 정도가 읽은 전부지만 말이다. 아마도 까뮈의 소설을 이렇게 읽지 않게 된 이유도 <이방인> 때문이다. 신입생 시절 읽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에 왠지 다른 소설에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다른 책까지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적 허영심에 다른 책들은 읽었다. 단지 읽었을 뿐이지만. 그러다 새롭게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페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이도 더 들었으니 이 책의 가치를 더 잘 알겠지 하는 생각까지 곁들이면서 펼쳤다.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 오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이 죽는다. 오랑은 알제리 해안에 위치해 있다. 이 쥐들의 죽음이 조금 이상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이것을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몇 마리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수 백 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사람들 몸 위에 검은 멍울이 생긴다. 증상이 페스트다. 하지만 이것을 당장 밝힐 경우 벌어질 사회적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변할 수 있다. 아직 정확한 병명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신중하게 접근한다. 어떻게 보면 이 신중함과 느린 대처가 페스트를 더 키운 것인지 모른다. 요즘 한국의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과 살짝 겹쳐진다.

 

페스트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도시는 격리된다. 오랑의 시민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다른 도시에서 오랑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과 사랑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재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 산다. 도시가 거대한 감옥처럼 변한다. 외부 물품과 전기가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영화는 계속해서 재탕하지만 할 일이 없는 시민들에게는 최고의 놀이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완전히 공포에 잠겨 집에만 살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놀 것은 없지만 놀 것을 찾고, 술을 열심히 마신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오페라를 감상한다. 약간 부족한 생활이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술자가 있다. 그의 정체는 끝에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의사 리유다. 처음 그의 아파트에서 경비가 페스트로 죽었고, 출근길 복도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 실제 리유가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잔혹한 일이 된다. 페스트가 심해지면서 그의 일은 환자로 보이는 집에 가서 검사를 한 후 그 당사자를 격리시키는 작업을 한다.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한 일이지만 심리적으로 강한 압박을 받는다. 그와 동시에 격리된 환자들의 죽음을 봐야 한다. 한 소년의 처절한 사투 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는데 이런 것을 계속해서 본다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할 것 같다. 피로가 점점 쌓여 어느 순간에는 소독 절차를 생략하는 위험한 행동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리유가 의사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본다면 그의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태를 바라본다. 이들 중 몇 명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활동하고, 쌓이는 피로 속에서 이 삶의 무거움을 견뎌낸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작가가 아주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감정이입을 최대한 차단하여 설명하고 묘사한다. 덕분에 읽기는 더 힘들어진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헤매게 된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이 문체 때문이다. 감정보다 이성에 의해 쓴 글인데 마지막에 그랑이 하나의 문장을 두고 고민하던 것에서 형용사를 뺏다고 한 것과 왠지 모르게 연결된다.

 

페스트가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감정은 절제되고, 자극적인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몇 개의 숫자로 이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지만 현실은 아직 심각함이 모든 곳에 스며들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병에 전염된 사람을 격리하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도 격리 수용하고, 방역에 더 많은 공을 들이지만 전염병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병이 사라진다. 이 얼마나 인간의 노력이 무력한가. 인간들의 과학은 단지 이 전염병이 더 넓게 퍼지는 것을 막을 뿐이다. 영웅도 없고 성자도 없는 상황은 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막는 역할을 한다. 읽을 당시보다 지금 그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더 냉정하게 상황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일까?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같은 책이나 아니면 다른 번역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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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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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이전에 흥행했던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오우삼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다. 당시 홍콩에서 성공한 그가 과연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당대의 두 남자 주인공을 캐스팅한 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인데 오우삼 특유의 액션이 잘 먹힌 것이다. 이렇게 영화감독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것처럼 소설가들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단 한두 편에만 등장한 인물이 있는 반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몇 십 년을 계속한 인물도 있다. 우린 그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출간된 후는 열광하며 읽는다. 그런데 이 인물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하면 어떨까? 영화 <어벤져스>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두 명 정도 짝을 이룬다면 어떨까? 그 결실을 맺는 것이 바로 이 작품집이다.

 

이 놀라운 기획은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에서 시작했다. 이미 이 협회에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낸 적이 있다. 그때는 한 작가의 단편이었다. 이번처럼 두 작가가 자신들의 캐릭터를 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낸 것이 아니다. 실제 이렇게 같은 이야기 속에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도 시간도 다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성격이나 직업도 무시할 수 없다. 협업의 특성 상 자신의 개성을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협업을 작가들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다. 다만 이 22명의 작가들의 작품 중 한 번도 읽지 않은 작가도 있고, 이름마저 낯설어 조금 부끄럽고 아쉬울 뿐이다. 더불어 찾아 읽어야 할 작가들의 목록이 더 늘었다.

 

이 단편집의 문을 여는 작품은 대단한 두 작가의 합작품이다.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의 <야간 비행>이다. 코넬리의 보슈 시리즈가 최근에 잘 나오고 있지만 한때는 꼭 내어주었으면 하는 작가 일순위였다. 반면에 데니스 루헤인은 황금가지의 스타다. 이 출판사를 통해 그를 만났고 빠져들었다. 이 단편집 작가 중 유일하게 모든 출간작을 읽은 작가다. 그리고 이 두 작가의 주인공들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직업도 다르다. 보슈는 L.A 형사고, 켄지는 보스톤의 탐정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보슈가 보스톤으로 온다는 설정이고, 우연히 한 장소에서 만나 사건을 해결한다. 솔직히 말해 두 주인공이 만나 반가웠지만 둘만의 매력이 충분히 발현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장편을 기대한 것 때문이 아닐까?

 

<야간 비행>을 제외하면 솔직히 두 작가를 모두 읽은 조합이 없다. 한쪽을 알면 다른 작가가 낯설다.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작품을 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론 둘 다 낯선 경우도 없지 않다. 이때는 순수하게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지옥의 밤>과 <악마의 뼈>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옥의 밤>에서 보여준 반전과 섬뜩함은 취향에 잘 맞았다. 어쩌면 공포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물고 물리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수리공 잭의 활약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 나만의 것일까? <악마의 뼈>에서 오래된 액션의 한 흔적을 보았고 노인네라는 말에 발끈하는 말론의 모습이 정겨웠다.

 

<가스등>은 읽으면서 <트윈 픽스>의 향기를 느꼈다. <인 더 닉 오브 타임>에서는 현실적인 형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웃는 부처>는 이 시간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의 활약보다 이야기에 더 집중한 것이다. 법정물인 <팬더를 찾아>는 왜 북한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반전에서 솔직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마 내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임과 프레이>는 낯익은 링컨 라임에 더 집중했지만 중편에 가까운 분량과 반전들이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두 주인공이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아주 부드럽게 이어졌다.

 

<정차>에서 다시 만난 <사고>의 주인공 글렌 가버 이야기는 조금 잔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딸이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했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물론 멋진 활약을 딸 켈리가 다시 보여주었지만. <침묵의 사냥>에서 두 주인공이 협력하여 악당을 물리치는데 사실 조금 작위적으로 다가왔다. 세부 묘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 <대단한 배려>는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재밌게 마무리한다. 보스톤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대결을 그 바탕에 깔고 풀어내는 박력있는 이야기는 대단히 남성적이다. 이 경기의 승자를 정하기 어려웠다는 말에 두 팀의 팬심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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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피
강희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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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키스방에서 일하는 탈북 대학원생의 이야기로만 표현하기에는 그 내용과 역사와 현실이 무겁다. 우리, 혹은 내가 몰랐던 북한의 모습은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읽고 놀랐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더 놀랐다.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삶이 어떻게 뒤틀리고 파괴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탈북자에 대한 시선도 가슴 한 곳에 와 박힌다. 탈북자보다 오히려 중국 조선족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차별을 보여준다. 방송에 나온 탈북자들의 모습 뒤에 가려져 있던 실제 그들의 삶이 나의 무지를 일깨운다.

 

포피. 양귀비란 뜻이다. 이 의미 외에도 아편, 돈, 위로, 심지어 아버지란 뜻도 있다고 한다. 화자이자 주인공의 삶처럼 복합적인 단어다. 처음 이 설명을 읽었을 때 잘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의미들이 하나씩 밝혀졌고, 끝 무렵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것도 이제 겨우 20대의 삶이 이렇게 힘들고 참혹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가 하고 경악했다. 평온한 일상에 물든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겨우 만날 수 있는 삶이다. 영화니까, 소설이니까 하고 말하던 인생이다. 과연 이 포피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과장된 것일까? 현실이 소설을 압도한지 이미 오래된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일부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구성은 포피란 키스방매니저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져 있다. 일방적으로 그녀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잠시 다른 사람의 의견이 끼어드는 것도 포피의 반응 속이다. 키스방이란 공간과 입을 통해 이야기가 나온다는 설정이 묘하게 자극적이다. 실제 키스에 대한 섬세하고 자극적인 묘사는 에로틱하다. 그런데 이 에로틱한 키스가 그녀의 삶을 하나씩 풀어내자 안타까움으로 변한다. 아픔으로 다가온다. 좋은 대학의 대학원생이지만 결코 남한 사회에 편입되어 그 자유와 풍요로움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탈북자들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벽은 삼팔선이란 물리적 공간적 벽보다 심리적인 장벽을 더 높게 쌓아두고 있다. 몇몇 탈북자들 중의 성공한 사람과 방송 출연자들로 그 벽을 살짝 가리고 있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 가림막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림막을 치우기 위한 조그만 관심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우리들에게는 아직 없었다.

 

북한의 기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전에는 몰랐다. 북한의 독재자 집단은 이 정보를 숨겼고, 우리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기근 당시 30십만에서 3백만 정도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바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남한은 음식물 쓰레기로 전국토가 신음하고 있을 때다. 한국도 상대적 빈곤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다. 물론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과 그 당시의 복지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 살기 위해 그들은 북한을 떠나야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기 두려운 독재자는 그들을 잡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정보가 통제되었고 이 아사자의 숫자는 10배나 차이난다. 정확한 숫자가 없고 추정치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변함없는 사실은 30만이라고 해도 엄청난 숫자란 것이다.

 

아편과 탈북자란 설정은 상징적이다. 굶주림에 지친 국민을 위해 먹을 것을 심어야 정상인데 양귀비를 심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지,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경제적 봉쇄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려준다. 독재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이것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편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에게는 국민이 굶어죽는다는 사실보다 이것이 알려지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불편한 일이다. 단지 하나의 사건만 볼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관계를 봐야한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포피 같은 탈북자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늘 자신이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또 하나의 장벽을 만난다. 중국 공안이다. 그들은 탈북자를 잡아 북한으로 돌려보낸다. 운 좋게 이들을 피한다고 해도 그들을 받아줄 나라가 많지 않다. 남한으로 와서 새터민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정말 일부만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된다. 정부의 지원이 이들의 취업을 돕는다고 해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여성의 삶은 더 가혹해진다. 얼굴이 반반하면 할수록 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매춘으로 그들의 삶이 흘러간다. 북한에서 억압되었던 성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열린다. 포피의 엄마가 보여준 이중적인 모습은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녀가 북한에 살아남은 남편에게 집착하는 것이 단순히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애절한 것은 역시 포피의 사랑이다. 그녀가 사랑했던 의붓삼촌 이야기다. 그녀는 꽃미남 삼촌을 사랑했고, 그는 포피의 엄마를 사랑했다. 이들 사이에 성교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일방적으로 흘러갈 뿐이다. 포피는 삼촌에게로, 삼촌은 포피의 엄마에게로. 이 흐름 속에 포피를 잠시 흔드는 남자가 등장한다. 같은 탈북자인 체육학과 선배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대체품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려 살고자 하던 그에게 탈북자란 낙인은 너무나도 깊고 강렬하다. 자신의 외모에 혹한 사람들이 나타나도 잠시일 뿐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미국으로의 이민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키스방매니저였던 포피의 다음 삶을 암시한다. 그들에게 우리사회가 제대로 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갈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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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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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강레오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일 때 받은 선입견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 속 그의 행동이 고든 램지를 따라했다고 생각했고, 과연 그가 그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평가할만큼 내공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 방송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유명 요리사 중 한 명 정도로, 혹은 과대평가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것은 그를 TV라는 매체로 짧게 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물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깊은 이야기가 많아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지우게 되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말을 만들고 있다. 최현석 셰프를 비판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현석의 예능감과 요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좋아하는데 이것이 강레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혹자가 말한 것처럼 영국 유학파의 자존심이 발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오독이라면 사과를 먼저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비판과 논쟁이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입장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에서 이것을 부풀려 자신들의 클릭수 올리는데 자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둘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닌 듯하다.

 

요리사 강레오. 사실 그의 몇몇 런던 고생담은 이미 방송을 통해 몇 번이나 나왔다. 솔직히 신선하지 않았고, 가슴 깊이 와 닿지도 않았다. 몰라서 그런데 그가 배웠다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대단하지 모르다보니 살짝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의 고생에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해도 몇몇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과 지식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 본 방송 하나에서 그 이전에 다른 요리사가 보여준 행동이나 표현과 완전히 달랐다. 이것은 단순히 방송을 좀더 많이 한 것 차이가 아닌 요리와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의 차이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얼마나 한식과 재료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보여주는 지식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폭과 깊이는 단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빠르고 가볍게 읽으려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나 생각들이 많았다. 그가 힘들게 고생한 것과 이런 저런 경험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들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가 흔히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 속에서 그 잘못을 끄집어낼 때는 더 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집밥’이다. 언제부터인지 ‘집밥’의 환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식당에서 집밥을 찾고, 엄마의 손맛과 비교하는 것이다. 외지에 나와 오래 산 나에게 솔직히 집밥의 기억은 희미하다. 가끔 가서 먹는 밥이 맛있지만 다른 식당에 가서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 강레오의 지적처럼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 속에는 강레오의 요리와 식당 운영 등에 대한 철학이 잘 나온다. “요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재료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조리해야 궁극의 맛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 기교나 개성은 그 다음에 스스로 쌓으면 된다.” 그런데 이 기본이 결코 쉽지 않다. 요리 방송을 볼 때 요리관련 전문가나 요리사가 이 부분을 설명해줄 때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기본이었으니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식당과 화장실의 청결문제나 요리사가 자신이 요리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은 약간의 논쟁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요리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한 학생이 그에게 스타 셰프가 되는 방법을 물었을 때 해준 대답은 정확했다.

 

강레오는 요리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요리사가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이 차이가 삶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그가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1만 시간이 충분조건이 아닌 작은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의 삶도 하나씩 흘러나온다. 방송 중 에피소드가 아닌 살면서 수술을 해야 했던 일이나 자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치열한 경쟁 등 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좋았던 것은 역시 그의 열정과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제목처럼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레오의 삶과 철학뿐만 아니라 요리사란 직업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요리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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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5-06-26 16:27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