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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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는 죽었다.’란 첫문장으로 시작한다. 리디아에 대한 정보를 책 소개글을 통해 만났기에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이 주는 의미를 깨닫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한 소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의 죽음을 통해 한 가족의 꼭꼭 숨겨져 있던 감정과 심리들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실제 모습들이 아주 낯설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일본 소설에서 가족의 무서움을 표현했던 작품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 가족들을 표현할까 하는 의문과 함께.

 

리디아는 중국계 아빠와 미국계 엄마의 혼혈아다. 1남2녀 중 장녀다. 그녀의 외모에는 동양인의 느낌이 많이 없다. 그녀는 가장 사랑 받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죽은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가 죽었을 때도 부모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테지만 리디아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그녀가 사라진 후 호수에서 시체를 찾았는데 정상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평화로워 보였던 한 가족의 각각 다른 속내와 바람과 욕망과 억압과 외로움 등이 엮이면서. 어느 대목을 읽을 때는 한국의 엄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리디아는 엄마의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엄마 메릴린은 의사가 되려다가 아빠 제임스를 만나 오빠 네스를 임신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메릴린은 가정교사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가 바란 것은 그녀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버드에 갔을 때만 해도 이 바람은 옳았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중국계다. 아직 1950년대였던 이 시기에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 결혼은 아주 낯설었다. 인종차별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그 차별이 존재하는 현재에 비해 더욱 심했던 시대다. 제임스의 교수직도 이 때문에 날아갔다. 보스턴을 떠나 오하이오 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들이다.

 

리디아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면 다른 축들은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 모습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들도 바로 이 가족의 과거와 현재의 삶들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한 바를 딸 리디아에게 투사한 엄마와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아들과 딸에게 바라는 아빠의 모습이다. 메릴린이 엄마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옛집을 다녀오면서 자신의 꿈을 떠올렸다. 그녀가 공부하던 당시에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었던 여의사를 주변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 욕망은 더욱 커졌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떠날 결심을 할 정도였다. 이 꿈은 셋째 한나를 가지면서 비록 사라졌지만 리디아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제임스와 메릴린은 젊을 때 자신들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식들에게 투사하면서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리디아는 엄마가 다시 떠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엄마가 바라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초기에는 잘 따라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뒤쳐진다. 엄마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리디아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는 가족이 또 한 명 있다. 오빠 네스다. 네스가 있음으로 인해 리디아는 작은 숨이나마 쉴 수 있다. 그런데 오빠가 하버드에 합격하면서 집을 떠날 생각에 들떠있다. 입학 전 교육에 가서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삶은 더욱 힘겹다. 네스에게 하버드는 탈출의 출구다. 그래서 리디아는 오빠의 합격 통지서를 숨겼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을 숨긴다. 속마음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니 서로가 알 수 없다. 제임스는 조교와 바람이 나고, 메릴린은 딸이 죽은 이유를 파헤치고자 한다. 자살이라는 경찰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살인자를 찾고자 한다. 딸의 방에서 단서를 찾고자 하지만 그녀가 늘 바라던 것만 보았기에 그 어떤 진실도 찾지 못한다. 오빠 네스는 리디아와 함께 다녔던 잭이 수상하다. 잭의 좋지 못한 소문을 생각하면 유력한 용의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그가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집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준 욕망에 휩싸였던 순간들이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이 소설은 가족 개개인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욕망과 희망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작품 속에서 또 하나 중요한 설정이 있다. 그것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다. 제임스와 그의 아이들이 겪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면 메릴린이 겪었던 것은 성차별이다. 인종차별은 제임스와 아이들이 백인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게 되는 하나의 원인이다. 제임스가 자라면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투사한 것이나 부모의 바람에 짓눌리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것 등이 바로 이 인종차별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단순히 인종차별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리디아에게는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차버렸다. 그들 자신이 다가가서 어울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로 가족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 수 없었다. 집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마지막 결말에 가서 그 산산조각난 가족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아름답게 마무리한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마무리다.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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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다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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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그런데 그녀가 쓴 드라마나 영화는 낯익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내가 이름을 알 정도의 작품들이다. 한때 최고의 드라마라는 말을 들었던 <연애시대>도 썼다고 한다. 이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이 가는데 이번에는 미스터리물이라고 한다. 약간 반신반의하는 느낌이 든다. 한국 미스터리 드라마를 보면서 몇 번이나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 나온 몇몇 유명한 작품은 아직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 작품들은 너무 느슨하고 뻔했다.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책을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연애시대>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 늦잠 자는 버릇 때문에 강무순은 깊고 깊은 두메산골 아홉모랑이 마을에 남겨진다. 홀로 남은 홍간난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다. 삼수생 무순이는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의 등살에 시달린다. 일찍 일어나라고. 그렇다고 쉽게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꿀 수 없다. 둘의 대립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무순이가 하나의 지도를 발견한다. 자신이 어릴 때 그린 보물지도다. 그때 그린 그림을 지금은 해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이 있다. 바로 홍간난 할머니다. 할머니는 종갓집 홍살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할 일이 없어 무료했던 무순은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여섯 살 꼬마가 묻어둔 보물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힘들게 파낸 통 속에는 십오 년 전 물건들이 들어있다. 다른 것들은 별 것 아닌데 손으로 깍아 만든 자전거 타는 목각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의 공산품이라면 그냥 버릴 텐데 직접 깍아 만들었다. 그리고 종갓집에서 아주 잘 생긴 소년을 만난다. 종갓집 아들로 입양된 유창희다. 이쁘게 생겨 무순이는 꽃남이라고 부른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마음이 생기는 외모다. 이 꽃남이 잘 그린 스케치북을 가져온다. 15년 전 사라진 유선희가 그린 것들이다. 평온한 산골 마을에서 오래전 사라진 소녀들을 찾기 위한 탐정 활동이 시작한다.

 

15년 전에 한 마음에서 네 명의 소녀가 동시에 사라졌다. 무순이도 할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이란 말을 듣는다. 도대체 왜 이 네 명의 소녀들은 사라졌을까? 그것도 같은 날에. 이런 사건은 전국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마을 사람과 경찰은 이 소녀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무순을 할머니에게 이 사건을 듣는다. 그녀가 어릴 때 부모가 속닥였던 그 비밀을. 네 명의 소녀들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이 네 소녀는 종갓집 딸 유선희, 엄마를 위하던 황부영, 날라리로 소문났던 유미숙, 목사의 딸인 조예은 등이다.

 

시작은 15년 전 미스터리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유선희의 조각을 보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앨범 등을 통해 동창을 찾아가고, 그들의 기억 속 유선희를 만난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자신들의 바람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각들이 유선희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가게 한다. 동시에 같은 날 사라진 세 명의 기억과 추억도 같이 다룬다. 이 기억들은 남겨진 가족들의 몫이다. 조예은의 아빠는 저수지에 빠져 죽고, 엄마는 매일 밤 산에서 딸과 영적 소통을 한다. 황부영의 엄마는 삶의 의욕을 잃었고, 유미숙의 부모는 집문을 닫고 세상과 담을 쌓았다. 종갓집은 포기한 듯 조용하게 보낼 뿐이다.

 

이 평온한 마을의 이면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이것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바로 강무순과 홍간난 할머니다. 이 둘이 보여주는 콤비는 아주 흥겹고 손발이 짝짝 맞는다. 15년 동안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를 이 콤비가 해결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에 입이 싼 할머니 덕분에 민란(?) 같은 것도 일어난다. 어디선가 시체가 나타나 마을과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각 장 사이에 주마등이란 이야기를 넣어 15년 전 진실 중 하나에 다가간다.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 바로 이 주마등이다.

 

사실 미스터리로의 완성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지만 범인을 찾기 위한 긴장감이나 추리가 그렇게 돋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의 문장과 문체다. 통통 튀는 문장과 간결하고 함축적인 묘사 등은 전혀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힌다. 읽으면서 인터넷 소설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런 것보다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무순과 할머니 콤비의 대화와 행동 등이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였지만 15년 전 사건을 통해 한 마을의 속내를 잘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심리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면 무거웠을 테지만 아주 묵직하고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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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닌자
라르스 베르예 지음, 전은경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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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회사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표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 같은 것들 말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이런 바람이 여러 번 있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표를 내고 여행이나 갈까 하는 생각이 부쩍 많아진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쉽게 그만둘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옌스 얀센은 부러운 남자다. 매년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기 위해 천천히 준비를 하고, 사무실 안에서 사라졌다. 이 실행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라진 곳은 결단코 부러운 곳은 아니다. 왜냐고? 사무실 안에서 살아가니까.

 

얀센은 자전거 안전 헬멧을 만드는 회사의 브랜드 매니저다. 나이는 34살이고, 안정적인 직장과 여자 친구가 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인데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지 못한다. 지쳤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실 천장 속으로 사라진다. 물론 이것은 다른 준비를 거친 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하지만 그 준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충분한 식량도 없었고, 장기간 실종 상태에 머물기 위한 위생품과 상비약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동적인 행동이다. 이런 충동적인 행동은 이 소설 속에서 몇 번이나 일어난다. 그가 바란 것은 모험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인데 어느 순간 모험극처럼 변한다.

 

놀라운 설정 중 하나는 얀센이 사라졌는데도 사람들이 그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카드를 다른 사람이 들고 출퇴근한다고 하지만 장시간 자리를 비웠는데도 누구 한 명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실종을 신고한 사람도 이전 여자 친구다.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몇 가지 재미난 해프닝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이 뒤섞여 벌어지는 이 해프닝은 흔하게 보는 장면이지만 가장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얀센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재밌다. 형사와 몇 가지 도구와 동료의 첩보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책을 읽으면서 회사 동료가 이렇게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 눈에 거의 모든 직원들이 보이는 작은 사무실이다 보니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팀이라면 어떨까? 팀원들끼리 큰 관심이 없다면? 조금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왜냐고? 직원 중 한 명이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워도 옆팀 직원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팀 직원들은 잘 알 것이다. 현실에서 업무는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런 극단적인 설정은 우리 회사의 모습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한다. 대기업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라짐은 곧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먼저는 씻는 것이다. 뻔뻔하게 화장실을 더럽히면서 샤워를 하면 될 텐데 조심한다. 덕분에 더러움이 묻어 있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그가 예상한 음식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늘 자판기에 의존할 수도 없다. 세 번째는 건강이다. 치료를 받을 수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면 영양이 부족한 몸은 더 힘들어진다. 네 번째는 시간의 잉여다. 남는 시간을 재밌게 즐겁게 보낼 수 없다. 물론 즐거운 시간만을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시간 부족과 치료제 부재는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잉여 시간을 이용한 관찰로 이어진다. 재미난 일들은 이때 일어난다.

 

그가 편지 배달부를 공격한 후 오피스 닌자라는 칭호를 받지만 정말 닌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은 무관심이 판치는 곳이다. 쌓여가는 업무는 충분한 관찰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반면에 시간이 남는 얀센은 직원들을 관찰한다. 회사를 중국에 팔려는 경영진의 음모도 알게 된다. 보통 이런 경우 이것을 막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텐데 이 소설은 다르다. 그러다가 하나의 기계를 발견한다. 바로 전화 연결기다. 이것의 찾아낸 후 그는 더욱 동료들의 비밀을 많이 듣게 된다. 폰 섹스를 하는 직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그도 이용한다. 외로움을 넘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정상적인 대화만 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 단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사회는 관찰과 변화와 철학 등이 섞이고 엮여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후반부에 검은 기사가 등장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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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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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부를 쌓던 그 시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요하네스도 상인이다. 단순히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넬라다. 열여덟 살의 소녀인 넬라는 서른아홉 살 요하네스와 결혼해서 암스테르담에 왔다. 이 결혼이 처음에는 넬라의 귀족적 배경을 원했던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단서를 책 중간에 목사의 설교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충격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몇 개월 되지 않는다. 약 4개월 안에 거의 대부분 벌어진다. 시골에 살던 소녀가 집안의 부를 위해 부유한 상인의 집으로 결혼해서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이 이 가족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시누이인 마린의 경우는 상당히 적대적이다. 하녀인 코넬라이도 그렇게 사근사근한 하녀는 아니다. 놀라운 일이 하나 있는데 흑인인 오토가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는 아직 흑인들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종이 아니었다. 오토가 외출할 때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통 새 여주인이 나타나거나 하면 그녀에게 아부하는 하녀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 속 하녀와 하인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시누이 마린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그녀를 대한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에 세상 경험이 거의 없는 넬라는 당혹스럽다. 여기에 일을 마치고 나타난 남편 요하네스도 그녀를 열렬히 상대하지 않는다. 넬라의 동네에 있었던 결혼식 이후 첫 만남인데도 깍듯한 예의를 차리고, 조금 거리를 둔다. 중년이라고 하지만 예쁘고 어린 신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하다. 이때부터 상상력은 이상한 쪽으로 발전한다. 나의 상상력은 빈곤해서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핑계라면 시대 탓 정도랄까.

 

외롭고 우울한 일상에 조그만 파문을 던져주는 것은 남편이 그녀에게 선물한 미니어처하우스다. 그녀는 이 집을 채우기 위해 미니어처리스트를 광고지에서 찾아낸다. 편지와 돈을 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미니어처리스트가 만든 물건들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실제 사람이나 사물을 작은 크기로 아주 정확하게 만들어낸다. 놀라운 기술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미니어처들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다. 이 순간에는 아주 사실적인 이야기가 잠시 미신적인 부분으로 넘어간다.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이 미니어처리스트의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 일부가 나중에 드러나지만 충분하지 않다.

 

작가는 그 시대를 아주 충실하게 재현했다.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한 대목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터트리고, 다시 이어서 다른 사건을 터트리면서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여기에 미니어처들에 있던 표시들이 ‘뭐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또 마린, 프란스, 아그네스, 요하네스, 잭, 오토 등의 엮이고 꼬인 관계들은 갈등을 만들고, 사건들이 파국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이 와중에 단순한 소녀였던 넬라가 여인으로 성장한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급하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짝 의문을 들기는 했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몇 장을 넘기지 않아 깨어졌다. 치밀한 묘사와 설명은 충실한 자료 조사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또 그 시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과 사건은 유럽이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니어처리스트의 존재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었다. 한 소녀의 꿈이 깨어지고, 잔혹한 현실의 벽이 나타날 때 그녀는 조금씩 자란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도 있고, 전혀 예상 밖의 상황도 있다. 비밀이 나에게 살짝 느슨하게 다가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남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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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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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으로 바라본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의 국제관계’란 설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때 제일 궁금한 것은 지정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지정학의 정의로 ‘지리적 환경과 정치적 현상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국가정책의 용어로 스웨덴의 정치학자 J.R. 셸렌이 1916년 국가이론 5체계의 하나로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아직도 피상적이다. 실제 내용을 읽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책의 구성이 지정학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과 같이 지리적으로 묶어서 정치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듯이 1945년 이후는 미국과 소련 두 나라를 중심으로 한 냉전 시대였다. 이 시대가 지난 후 미국과 소련 진영의 긴장이 완화되는 데탕트의 시대가 된다. 이 시대는 두 진영의 긴장이 완화되었다는 의미지 화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시기 다음은 양극화 이후 세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진영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의미한다. 이때의 양극화는 우리가 흔히 경제학적으로 말하는 부의 쏠림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양극화를 생각하고 읽으니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 다른 분야에서 똑같은 용어를 사용할 때 생기는 문제를 여기서도 겪었다.

 

위에서 말한 냉전, 데탕트, 양극화 이후의 세계 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를 좀 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산산조각났다. 짜깁기식 지식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것은 책의 구성과도 관계가 있다. 유럽과 미국을 먼저 풀어내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지역을 연대식으로 다룬다. 어떤 나라는 몇 줄로 끝나고, 어떤 나라는 몇 장을 할애한다. 저자가 프랑스 국적이고,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곳이 유럽과 미국이다 보니 이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특히 냉전과 데탕트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가장 핵심적이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데탕트 시대에 벌어진 몇 가지 놀라운 사건은 소련과 공산권의 해체와 분열이다. 소련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간단히 설명할 때 왜 페레스트로이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식민지가 해체되고, 새로운 나라가 생기면서 생긴 수많은 문제들은 아주 낯익은 장면들이었다. 소련이 주변 국가들을 지배하면서 수탈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소련 등과 다른 방법으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중국의 모습은 역사의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민족주의가 유행하면서 인종간의 대학살이 몇 번이나 벌어졌는지 모른다. 잘 알려진대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인종청소란 표현까지 나올 정도의 끔찍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물론 이 이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는 미국의 힘이 미친다. 물론 이전과 같은 힘이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은 미국과 소련이 냉전과 데탕트 시절에 만들어 놓은 유산이다. 각 지역을 다루다 보니 무수히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데 아는 것만큼 이해가 되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현재는 핵전쟁의 위험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대립 구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럽 등의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졌지만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계로 바뀌었다. 물론 이것이 서방 강대국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방세계의 독점이 무너졌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다원주의 체계가 네 번째 시기가 될 것인지 저자는 묻는다. 수십 년 사이에 아주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곳도 많고, 중국 같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아직 세계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요즘같이 무더운 것의 원인 중 하나로 꼽는 지구온난화나 봄만 되면 불어오는 황사 등의 문제만 해도 충분하다. 분명히 쉬운 책은 아니지만 1945년 이후 세계 역사를 지정학으로 간략하게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정치 문제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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