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성숙한 시민을 위한 교양 수업
짜우포충 지음, 남혜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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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 이상이다. 단순히 나의 집중력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문장이나 설명이 아주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나와 의미가 순간적으로 바뀌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표시했다. 이 책에서 평소 내가 의문을 느꼈던 부분을 잘 풀어낸 부분에 상당 부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은 나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서고, 어떤 부분은 누군가와 논쟁에서 사용하려고 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논쟁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와 평등 등의 기본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함을 느낀다. 저자도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이 기본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영어에서 다른 단어가 하나의 번역어로 사용됨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저자는 자유방임주의와 자유주의 좌파를 구분한다. 흔히 자유주의자로 총칭하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인데 나에게는 스스로 만든 용어가 오히려 더 불편하다. 물론 이 책이 중국을 대상으로 했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다를 수 있다. 공산국가인 중국이 자유주의하면 우파를 연상시킨다는 주석은 그 나라 대중이 가진 정치적 이해를 드러낸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해석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쓴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발표한 것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같은 내용이나 인용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사실을 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자유다. 자유로운 인간이다. 사실 우리가 학창시절 받은 자유에 대한 교육은 충분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 이 부분이다. 자유란 단어가 주는 아무 곳에나 침을 뱉을 자유 같은 일차적인 상황만 머릿속에 계속 남아 더 깊은 논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방임과 방종이란 용어를 통해 자유가 제한적이란 사실을 배웠지만 그냥 지나갈 뿐이다. 자유와 내맘대로가 동의어처럼 이해되는 상황을 자주 보는 것도 바로 자유에 대한 교육 부족이다.

 

자유와 평등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고 논증한다. 이 부분은 누구나 유의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빈자들이 가진 자의 정당을 옹호할까 하는 부문에 대한 작은 단서 하나를 얻었다. “독재의 악은 독재가 정치를 우리 삶에서 소외시키고, 우리를 지배하면서도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외재적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우리 삶에서 공공성의 면모를 송두리째 앗아간다”라고 한 부분이다. 자신과 가장 밀접한 사안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정파성에 휩싸여 감정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쳤다. 한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이런 판단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의 제도를 통해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본 자유를 누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다. 결국 자유란 제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제도를 바꾸고 개선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유인은 자신의 의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정치권력이 행사될 것을 요구한다. 1인 1표 투표제는 그 방법 중 하나다. 이 투표제가 항상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기회에 개선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보장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체임을 실천하고 구현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우선을 외친다. 그래야만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시장은 국가 안에 있는 사회 기본 제도의 일부분이다. 시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강제적인 법률이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가지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들이 작은 국가를 외치면서 결코 국가를 버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을 보호하는 국가가 없다면 그들 자신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정치와 도덕 바깥에 독립된 자족적인 영역이라는 생각은 개념 혼란이다.”란 대목이 의미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시장자유자의자들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준 대목은 “시장자유주의자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실 평등한 자유가 아니라 사유재산권이며, 사유재산권이 평등한 자유를 가져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불평등한 분배를 제도적으로 합리화하고 강화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부분이다. 이것은 독재를 설명한 부분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쉽고 분명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다. 온전한 자유인을 실현하려면 온전하게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모든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억압을 줄이고 없애는 데 온 힘을 다하려면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정치철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쉽지 않지만 몇 가지 개념과 해석은 많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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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6 - 너구리 잠든 체하기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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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식구가 또 늘어났다. 이번에는 너구리다. 부제목도 ‘너구리 잠든 체하기’다. 이쯤 되면 이 집은 과연 어디고, 어떤 환경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주택이 아닌 것은 알지만 야생동물인 너구리까지 집안으로 들어올 정도면 상당히 숲과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두식이가 너구리를 보고 보인 반응은 본능을 잃어버린 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뭐 자신을 개가 아니라 고양이라고 생각한 두식이니까 가능한 것이지만 두식이가 산책을 하면서 새롭게 개 친구를 만든 것을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부제는 너구리가 위험을 느끼면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먹이 때문에 이 집에 나타났는데 시바 견 두식이가 그냥 가만히 있다. 처음에는 한 마리였는데 어느 순간 두 마리가 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이 가족은 이 너구리에게도 음식을 준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밥 때가 되면 나타난다. 팥알, 콩알, 두식이, 마당이, 너구리 두 마리까지. 정원 속에는 거북이들이 살고 있다. 이야기 한 컷에 이 거북이들이 점호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아주 웃겼다.

 

콩고양이들이 두식이와 함께 산책 가서 다른 개에게 위협을 느낀 장면은 왠지 이전에 집을 떠났다가 힘들게 돌아온 에피소드가 떠오르게 했다. 두식이가 콩고양이들을 따라 하는 모습은 재밌지만 한 편으로 짠하다. 고양이 타워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쌍둥이 동생이 다른 개를 데리고 와 친구가 되었을 때 모습은 흥미진진했다. 혹시 싸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잘 훈련된 개가 두식이 때문에 나쁜 버릇 하나를 배워 갔는데 이것 또한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훈련된 개를 보면서 두식이를 훈련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당연히 실패했기에 더 그렇다.

 

아주 놀라운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한낮에 가족들이 한 명씩 누워 낮잠을 즐긴다. 그런데 우연히 이 광경을 본 할아버지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혹시 이 집에 큰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해서 말이다. 이 오해를 단순히 해프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이 집 식구들이 키우는 고양이들과 개와 너구리들과 닭 등을 보면 아주 큰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각자 자신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의 용품을 사주지만 실제 집을 관리하는 마담 복슬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점점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면서 마담 복슬의 역할이 줄고, 아버지의 사라짐이 없어진 것은 조금 아쉽다. 나의 관심 중 하나가 이 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가볍게 펼친 6권이지만 단숨에 읽고 말았다. 7권도 손이 갔지만 잠시 멈췄다. 이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남겨놓기 위해서다. 실제로는 6권 읽으면서 마신 술 기운 때문이다. 늦은 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자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 술 기운이 조금만 늦게 올라왔다면 7권도 끝까지 읽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다음 이야기는 조금 아껴둬야겠다. 짧은 독서와 긴 여운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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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생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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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강이란 이름 낯설다. 그의 이력을 보니 이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박진규란 이름으로 문학동네문학상을 수상한 <수상한 식모들>이다. 워낙 오래 전이라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 것은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박생강이란 필명으로 다른 작품도 한 권 내놓았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아마 박진규란 것을 알았다면 한 번쯤 더 눈길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최근 나의 관심이 신인작가보다 이전에 재밌게 읽었던 작가에게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 부족이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거부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러면서 몇몇 문학상 수상작가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관심을 둔다. 점점 편해지려고 하고, 브랜드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이미 나는 브랜드의 노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문학상이나 기존 작가의 믿음 등에 완전히 빠져 있다. 이 소설 속 고급 멤버십 피트니스의 보증금이 3~4천만 원이라고 할 때 그렇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텔의 가격은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 헬라홀 회원들이 1%라고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더 놓은 곳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비싼 가격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고, 더 힘쎈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이런 착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 많이 본다. 자신들의 위치를 항상 최상위급과 비교하는 나를 비롯한 지인들의 모습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물론 이 헬라홀 회원 모두가 1%는 아니다.

 

갑을 관계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현실에서는 병이 더 많다. 병보다 못한 정도 있다. 하층에 하층으로 내려가면 그들의 지위는 을보다 훨씬 못하게 된다. 아니 병보다도 못하다. 그래도 소설가 태권은 병은 된다. 월급도 많지 않지만 밀리지 않고 나온다.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힘이 들지만 실제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육체노동보다는 오히려 감정노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우나 매니저란 이름이 있지만 그들은 ‘락카’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퇴락한 헬라홀의 비품들은 고객들의 불만을 사지만 이 불만을 그대로 받는 역할도 그들이 한다. 한 사람의 당당함을 보여주면 불편함을 느끼는 회원들을 보면 그들의 현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1%라고 하지만 이 헬라홀은 신도시 부자 노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이 부자들이 사우나에서 새로운 양말 등이 나오면 들고 가 골프장에서 한 번 신고 버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새로운 양말 등을 계속 가져다 놓을 수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회원들이 빠져나가면서 특별히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바꿀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대여품이란 글자까지 쓸 정도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신도시란 특성과 권력에서 멀어진 노인들이란 위치는 이 불만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요구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백화점 휘트니스가 생겨 강력한 라이벌이 될 것 같지만 이곳은 비싼 회원제가 아니다. 1%의 대우를 원하는 노인 등은 그곳으로 갈 생각이 없다.

 

사우나라는 곳을 거의 가지 않는 나에게 이곳의 풍경은 낯설다. 호텔 사우나에 간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냥 보통의 목욕탕보다 조금 더 넓고 좋다는 것 정도 밖에 느끼지 못했다. 내가 빨리 씻고 나가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생각도 못했다. 동네 목욕탕이야 너무 좁고 자주 보니 금방 눈에 들어오지만 낯선 사우나는 그렇지 않다. 세신사라는 용어가 낯설게 느껴진 것도 이용해본 적이 없고, 내가 자주 이용할 때는 없던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 속에는 세신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발사는 나오는데. 노인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생기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아주 특이했다. 아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보지 못했을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뛰어난 블랙유머로 패러디했다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냥 한 단면을 보여준 것뿐이다. 작가의 사우나 매니저 경험이 70%나 녹아 있다는 글을 보면 뛰어난 관찰기다. 사우나 매니저 일 자체가 힘들지 않지만 이직율이 높다는 것은 낮은 급여와 그 일의 만족도와 연결된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 일을 지원하는 듯한데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풍자적인 문체와 개성 강한 캐릭터와 한정된 공간 속의 다양한 군상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출간 전 이 책 제목으로 바뀐 것은 그 사우나의 정의를 잘 보여준다고 한 작가의 말 그대로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노인층이 실제 JTBC를 거의 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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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스피어
김언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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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 이름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네이버북스 미스터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맨스 소설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다. 인터넷 서점 평점도 좋다. 뭐 이 분야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다. 아직은. 이런 사실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화엄사상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뛰어넘는 매직 스피어란 물건이었다. SF장르를 좋아하기에 이 분야를 화엄사상과 어떻게 연결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의 지식이 화엄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는 선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몇 가지 타임루프 설정은 새로웠고, 의문을 던져주었다.

 

프롤로그가 상당히 긴 편이다. 도입부의 장면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많은 소설 등에서 본 듯하기 때문이다. “왜……왔어, 나를…… 네 생에서 지우라, 했잖아” 이 문장도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코 자신의 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강력한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현도는 수많은 삶을 살게 되고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은 시도를 반복한다. 이 소설은 이 반복되는 시도와 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사랑과 그 속에서 풀어내는 미스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가끔 날아오는 카카오페이지의 로맨스 소설과 비슷하다. 강 기자가 아이돌이었던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장현도를 만나러 오고, 그의 바뀐 기를 알아채고, 화엄일승법계도의 영묘함을 느끼는 그 상황들 말이다. 그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장현도를 찾아갔다가 그가 남긴 기록을 받는다. 실제 이야기는 바로 장현도가 남긴 기록에서 시작한다. 수많이 반복되었던 그의 삶과 열정과 결코 꺾이지 않았던 의지와 사랑 이야기 말이다. 그 중심에는 공바라가 있고, 매직스피어가 있다.

 

장현도. 창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이 임신 사실을 알고 자신의 삶을 바꾼다. 장현도는 이 사실 때문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 성정 0.1%의 엄청난 성적이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영혼까지 파고든다. 공바라. 전교 일등에 잘 생기고 춤까지 잘 추는 그와 특이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공바라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들은 없다. 하지만 항상 가장 먼저 등교하던 그보다 먼저 와 있던 바라는 어느 순간 그의 영혼에 각인된다. 그리고 바라의 죽음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서울대 대신 감옥으로. 이 상황을 바꾼 것은 한 통의 메일이다. 그곳에서 바라의 흔적을 보고, 그녀가 남긴 유산을 받는다. 그 유산이 바로 매직 스피어다. 이 기계를 통해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는 바라의 죽음을 멈추려고 한다. 언제나 실패다. 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결국 찾게 되는 것은 바라와 그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다. SF가 어느 순간 미스터리로 넘어간다. 하지만 가장 큰 설정은 타임루프다. 보통의 타임루프라면 자신만 변한 것을 알 텐데 이 소설에서는 이 변화를 바로 아는 사람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그들은 장현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의 김 변호사와 김 변호사를 만나게 해준 최 형사와 위조범이자 그의 제자인 천식 등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낯선 설정이지만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이 설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화엄사상과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매직 스피어. 이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있고, 장현도는 이 기계를 이용한다. 불교의 이론으로 보면 공바라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의 법문을 소설 속에 넣고, 양자물리학을 설명하면서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설정을 만든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바탕이다. 장현도의 반복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명이다. 한 부분만 놓고 보면 무협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다. 반복되는 새로운 삶도 이미 몇 번이나 소설이나 영화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낯선 장면과 설정을 잘 버무려 내어 한 인간의 사랑과 의지를 풀어내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뛰어난 가독성도 같이.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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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길을 걷다 - 동화 같은 여행 에세이
이금이 외 지음 / 책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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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 문학 작가 다섯 명이 발트3국을 여행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렇게 세 나라다. 이 에세이의 작가들도 말했듯이 발칸반도의 나라와 자주 헷갈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도를 찾아보니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 쌓여있어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침입과 압제를 많이 받았다. 아니 시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를 추월한다. 이런 시기들이 그 나라의 유적으로, 전설로, 시로, 행동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이 압제의 잔재들을 없앴을까 하는 의문으로 흘러간다. 당연히 이 책 속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섯 작가 중 이름을 제대로 아는 작가는 한 명도 없다. 작품을 보니 그래도 낯선 작품명을 가진 작가는 이금이 작가다. 워낙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없다 보니 더 그렇다. 모두가 작가이다 보니 문장은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여행지를 둘러보는 방식도 다르다. 이것을 비교할 수 있는 곳은 후기인 작가의 말에서 이 다섯 명이 다시 모여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명을 말하고, 그곳에서 산 물건을 말할 때 그곳을 여행했던 기억과 추억들이 활짝 피어난다. 이 경험은 누군가와 같이 좋은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차를 보면서 가장 먼저 착각한 것은 작가들의 글이 몇 사람에게 편중되었다는 것이다. 몇 사람 이름이 연속으로 나오면서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실제는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세 편의 글을 썼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글을 써지는 않고 한 나라만 쓴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다섯 명이 각자 한 나라에 대한 글을 썼다면 그들이 느낌 감상을 조금은 더 다양하고 새롭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한 작가가 한 나라에 대해서만 쓰고, 다른 작가의 간단한 감상을 끝에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괜히 한 번 트집을 잡아본다.

 

나라의 위치를 착각한 덕분에 그 나라의 날씨나 풍경을 꽤 잘못 이해했다. 누군가가 코발트빛깔을 발트와 연결한 것처럼. 각 나라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곳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역사와 전설 등이 어우러져 풀려나온다. 에스토니아 민족 시인 크리스티안 야아크 페터르손 이야기는 작품보다 그 작품을 쓴 언어와 문법 등을 더 부각한 듯하여 아쉽다. 차이콥스키의 사연을 여기서 만날 것은 생각도 못했고, 그가 앉았던 의자를 새롭게 만들면서 악보를 새겼다는 사실은 재미있었다. 표지의 사진에 담긴 에피소드는 욕망의 충돌이 만들어낸 재밌는 이야기다.

 

여행을 “특별한 곳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으로의 초대”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여행에서 자주 느끼는 감상이기 때문이다. 이 공감은 이 작가들의 글에서도 자주 나온다. 여행의 바쁜 일정 속에서 낯설고 신기한 것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결국 마주하는 것을 일상이다. 이때 나의 삶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만난 하나의 에피소드가 한국의 어딘가로 이어지고, 그 나라의 비극적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 연결된다. 그리고 국경을 차로 건넜을 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나라의 경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외국 국경에서 국경놀이를 한다는 여행자들이 순간 떠올랐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발트3국 중 가장 큰 나라였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다. 나폴레옹과 연결되는 빌뉴스의 백골은 권력자의 욕망이 그 나라 백성들에게 어떤 악영향으로 드러나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역사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 언덕이다. 크고 작은 셀 수 없이 수많은 십자가가 꽂여 있는 그 언덕의 풍경은 아주 놀랍다. 그들의 삶과 열망이 그 어떤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나라가 무너지는 와중에 나타난 진정한 리더의 존재는 그가 죽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다시 우리 역사와 겹쳐진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나온 건물들 중 어느 하나도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 높이가 한국의 고층건물과 대비된다. 분량과 달리 이리저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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