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맛 기행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1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바닷가를 낀 도시다. 외할머니가 어시장에서 생선을 파셨다. 할머니의 몸에서는 늘 생선 비린내가 났다. 어릴 때 그 냄새가 싫었다. 지금은 그곳을 가도 바다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매립지와 건물들에 가려져 있고, 다른 곳에서 본 풍경은 어릴 때 배가 가득한 그곳과 너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선창가를 뛰어다니며 놀던 곳은 이미 사라졌다. 그 친구들도 어딘가로 다 흩어졌다. 기억 속 단편만 살짝 남아 있는 바다, 외할머니, 생선들, 해산물들. 하지만 어머니의 눈과 손질에 그 생선들을 맛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동으로 남으로 서로 옮겨 다니면 그 지역에 맞는 바다맛이 있다. 사실 자라면서 생선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제대로 그 맛을 몰랐다.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편식도 심했다. 아마 생선 맛을 알게 된 것이 서울로 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좋아하는 생선들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고기를 맛보고 싶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을 모르니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바다맛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제 맛을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요즘에야 제철 음식에 관심이 있었지 예전에는 양식과 하우스 재배로 철과 다른 음식을 많이 먹었다. 아마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즐겁게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면 늘 제철 음식은 상에 올라왔다. 그냥 한 끼 밥과 반찬으로 먹으면서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중에서 지금도 겨울이 되면 집에서 대구를 사서 말린다. 시원한 대구탕과 말린 대구로 만든 된장찌개는 별미다. 대구 젓갈은 또 다른 맛으로 나를 유혹한다. 얼마 전 먹었던 그 맛은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입속을 감돌았다.

 

책 속에 나오는 음식 중 찾아 먹는 것은 많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철 음식이라고 찾아 먹지 않았고 그 맛을 몰랐기 때문이다. 김은 그렇게 귀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자주 구워먹었고, 국 속에 들어 있는 멸치는 그냥 맛을 내는 재료였다. 제사 때면 늘 탕국에 들어 있던 문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파래는 반찬일 뿐이었다. 전복이 귀하다고 했지만 그 맛을 알지 못했기에 혹은 비쌌기에 그냥 그런 식재료 중 하나였다. 미역국은 생일이면 지겹게 먹는 국이었다. 일상에 늘 접하던 음식들은 그냥 하나의 반찬이었다. 이 음식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만나기 전에는.

 

사실 제철 음식과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다. 과메기와 홍어와 매생이가 대표적이다. 과메기를 먹게 된 것은 술안주였고, 홍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극찬에 맛보았다. 그리고 좋아하게 되었다. 매생이는 굴집에서 먹게 되었다. 명태가 동태나 북어나 황태가 된 후 탕으로 국으로 끓여지면 그것만으로 한 끼 뚝딱 해치웠다. 낙지는 매운맛과 어우러지거나 연포탕으로 속을 녹여줬다. 어릴 때 먹던 칠게를 이제는 특별한 식당에서나 맛보지만 아그작 잘 씹어 먹는다. 간장과의 조화는 오히려 간장게장보다 좋다.

 

오징어. 십 수 년 전 동해에 놀러 갔을 때 회를 시키면 정말 거의 무한정 공짜로 줬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징어회를 돈 주고 먹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당시 오징어회가 원래 시킨 것보다 맛있어 다들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전어는 사실 비교적 최근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자랄 때 철되면 늘 먹었을 텐데 비교적 생선들이 귀한 서울에 오면서 서울 토박이와 방송 때문에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천일염이 얼마나 좋은지, 함초의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아마 최근에 알게 된 맛의 대부분은 방송을 본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맛있게 먹은 기억만 나열했지만 저자는 그 맛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준다. 각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는 이름과 특산물은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어떤 굴곡을 겪는지 보여준다. 갯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어촌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말한다. 공동체 삶이 그 마을의 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대형화된 어선에 몰락한 어촌의 신산한 풍경도 보여준다. 죽어가고 사라지는 갯벌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맛을 넘어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역사와 사계절 바다 먹거리들을 발로 다니면서 알려주는 저자의 노력은 나의 입맛을 새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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