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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백민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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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잔혹하게 다가왔던 <목화밭 엽기전> 이후 오랜만에 백민석의 소설을 읽었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단편은 모두 아홉 편이다. 이 아홉 편 속에서 그의 자전적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물론 그 지점을 정확하게 비교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 건조한 문장 속에 담긴 이야기는 회고적이거나 관찰적이다.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드러난 대목도 있지만 이전에 읽은 작품 때문인지 조금은 밋밋하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상당하다. 단편은 불친절하니까.

 

아홉 편 중 신작은 단 두 편 <혀끝의 남자>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뿐이다. 나머지 일곱 편은 다시 고쳐 쓴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다르다. 표제작인 <혀끝의 남자>는 인도 여행을 다루었는데 건조하고 어려웠다. 여행지에서 만난 남녀와 함께 한 순간을 중심으로 풀어내었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 긴 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그대로 나열한 느낌이다. 그런데 도입부와 마지막에 혀끝의 남자를 말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나의 혀끝인지, 아니면 신의 혀끝인지. 그리고 불타는 머리를 가진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은 상당히 흥미 있다. 이모티콘을 소설 속에 사용한 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표정을 ∵으로 나타냈다. 이 이모티콘은 무표정이다. 그가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표현방식이다. 그것에 어떻게 이모티콘으로 답해야 하는지 어려워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 단편집을 내게 된 것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모티콘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저급한 생각들이 뭔지 궁금하지만 작가들이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사실 다른 일곱 편은 이전에 읽은 적이 없어 어디가 변한 것인지 모른다. 70년대 서울 산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폭력의 기원>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다룬 <연옥 일기>나 지금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새롭게 써지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룬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나 산책길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장치들을 보여주는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나 채권추심업자인 듯한 남자의 어색한 취미가 재채기와 이어진 <재채기>나 예비군 훈련 장면을 반전으로 바꾼 <항구적이며 정당하고 포괄적인 평화>나 글쓰기 떠나기 직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은 <시속 팔백 킬로미터> 등이 바로 새롭게 고쳐 쓴 단편들이다.

 

이 글을 쓰기 전 긴 해설을 읽고 쓰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먼저 다른 서평을 읽었다. 그들의 글을 읽고 해설을 포기했다. 나의 느낌이 아닌 해설자의 것이 이 글을 대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리고 언제나 문제가 되었던 주례사 비평도 생각이 났다. 한국 소설에 경우 한동안 해설을 읽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가면서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느낌에 손을 맡긴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그는 왜 일곱 편을 다시 써야했을까? 이 작품들이 선택된 것은 왜일까? 어쨌든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반갑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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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임 사계절 1318 문고 88
마고 래너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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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단편집이다. 모두 열 편이 실려 있다. 이 열 편이 나를 혼란으로 이끌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비약으로 이어진다. 이 순간 당황한다. ‘뭐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는 대부분 낯설다. 익숙한 것도 해설을 보면 착각했다. 흔히 하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런데 힘들게 쌓았던 이미지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다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 상황이 반복된다. 시대나 상황에 대한 배경 설명이 없다 보니 더 그렇다.

 

열 편 중 비교적 쉽고 재밌게 읽은 것은 세 편이다. 표제작 <화이트 타임>, <말하고 키스하라>, <소원이 없는 소년>.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쉽고 흥미있게 읽은 단편은 <말하고 키스하라>다. 아주 재미난 설정을 가졌는데 그것은 가슴 속에 담긴 말을 하지 않으면 살이 찐다는 것이다. 한때 상당한 비만을 가졌던 그가 속내를 쏟아내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그런데 친한 친구처럼 지냈던 여자 아이를 다른 남자가 사귀어도 되는지 물으면서 문제가 생긴다. 뻔한 설정이지만 속내와 살을 연관시킨 것과 풋풋한 사랑이 밖으로 표현될 때 살짝 미소를 짓게 한다.

 

<화이트 타임>은 놀라운 설정을 가졌다. 시간 여행자들이 정체된 공간을 화이트 타임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직업을 맛보기 위해 간 셔닐이 겪게 되는 사건과 상황은 표면적으로 밋밋한 것이지만 한 소녀의 삶을 뒤흔들기는 충분하다. 체험기가 너무 간결한 반면에 실제 이야기는 아주 풍성하다. 이 차이만큼 소녀는 성장한다. <소원이 없는 소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반전 같은 장면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참혹한 <봉헌식>,착각하게 만든 환경을 가진 <여왕의 관심>, 자신을 좀더 돌아보게 만드는 <커다란 분노>, 실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밤 백합>,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한여름의 임무>, 밋밋한 이야기가 반전으로 이어지는 <웰컴 블루>, 고대 이집트를 연상시키지만 미래를 생각나게 하는 <재산>. 이 모든 작품들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다. 불안, 의심, 참혹함, 욕망, 분노, 사랑, 믿음 등을 하나씩 혹은 둘 이상 엮어서 풀어낸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이야기도 있고, 배경을 찾다가 미로 속을 헤매면서 아무 것도 찾지 못한 단편도 있다.

 

분명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단순히 이야기만 따라만 가서는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다. 이야기의 서사가 강해 충분한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공간과 시간대를 보여주는데 그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과 다르다. SF소설의 설정인가 하면 판타지고, 판타지인가 하면 역사 단편소설 같다. 그래서 SF 판타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거대한 상상력이 힘을 발휘하는 단편도 있지만 작고 미세한 세계를 다루기도 한다. 이 차이는 사실 별로 없다. 단지 이 단편을 읽은 독자가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 곳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나의 경우는 살짝 맛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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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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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미스터리가 밋밋하지만 재미있다. 제목에 미학강의가 있기에 설마 했는데 주인공은 진짜로 현학적인 지식을 쏟아낸다.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이 일반 미스터리와 다르다.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별명인 검정고양이로만 불리는 24살 천재 교수다. 화자는 검정고양이의 조수 역할을 맡는 동시에 그와 묘한 로맨스를 만든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시 한 편 포함)이 실렸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화자의 전공이 에드가 앨런 포라는 것과 각 단편 앞에 포의 단편소설에 대한 요약 해설을 간단하게 실었다는 것이다. 이 단편이 미스터리와 연결되면서 풀어져 나오는 현학적인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어떤 순간,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강의일 수도 있다.

 

포의 다섯 단편과 한 편의 시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검은 고양이>,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도둑맞은 편지>, <황금충>, <까마귀> 등이다. 너무 유명한 단편들이다. 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때 읽은 후 벽에 대한 환상으로 공포감을 느꼈던 <검은 고양이>다. 한참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검정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의 명칭이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마 이 단편이 없었다면 끝까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 번씩은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뭐 우리의 검정고양이가 멋진 추리와 해석을 곁들여주니 상관없지만.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다보니 조금 밋밋한 부분이 있다. 물론 <검은 고양이>를 매개로 한 <벽과 모방>은 여전히 섬뜩함이 있다. 하지만 이 서늘한 감정은 화자의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면서 생긴 것이다. 단순히 추리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는데 현학적으로 풀어내는 상황들이 독특하다. 이것은 검정고양이가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고 신선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풀어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가득 든다. 뭐 이런 부분이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여섯 미스터리가 일상에서 발생한다. 죽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은 살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묵은 혹은 숨겨진 마음을 찾거나 어릴 때 충격으로 모방자의 삶을 살거나 착각으로 오해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의 감정을 지우거나 집착으로 인한 발전과 분열을 경험하거나 엇갈린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탐정 역을 하는 검정고양이는 완벽하다. 이 완벽함이 주는 재미가 상당한데 이에 도전하는 화자의 모습은 귀엽다. 이 때문에 이 둘의 로맨스가 은근하게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재미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 미스터리를 해설해주는 검정고양이의 현학적인 미학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에 적응하면 재밌고, 아니면 지루한 철학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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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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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선수가 스키를 타고 내려온다. 한두 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히다 카자미의 캐나다 합숙 당시 활강을 비디오로 찍은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은 카자미의 아빠 히로마사다. 이때 한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딸이 속한 회사 산하 스포츠 과학 연구소의 부소장 유즈키 요스케다. 그가 온 것은 카자미의 유전자에서 ‘F패턴 유전자’가 발견되어 아버지의 유전자도 함께 연구하고 싶다는 요청 때문이다. 히로마사는 이 요청을 거절한다. 그 이유는 딸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앞에 내놓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카자미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내의 자살로 인해 알게 되었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신문지 조각을 발견하고 신생아 납치 사건과 아내가 출산한 적이 없다는 기록을 본다.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야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미루었다. 그 사이 딸은 아버지처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톱스키어가 된다. 물론 이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기 딸로 키운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하면 이 사실이 단번에 들통난다. 숨길 수밖에 없다. 이때 그녀의 생부일 수도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가 타려고 한 셔틀버스가 큰 사고를 일으킨다. 이 이전에 소속사로 모든 경기의 출전 선수 명단에서 카자미를 제외하라는 협박 편지가 왔다. 그런데 이 버스에 그녀의 팬인 것처럼 접근한 생물학적 아버지 가미조가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그녀는 큰 상처를 입었다. 히로마사도 마찬가지다. 협박 편지가 드러나면서 이제 단순 사고에서 범죄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히로마사는 카자미의 과거를 말하고 자수할 생각을 한다. 동시에 경찰이 발견한 단서를 통해 유즈키는 하나씩 진실에 다가간다. 다가가면서 밝혀지는 사실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누가, 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카자미나 신고 등이 가진 유전자 문제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신고는 크로스컨트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 협력한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기타 연주다. 분명 그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경주에서 그 능력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열정이다. 목표다. 경쟁심을 느끼고 경주를 하지만 뒤쳐진다. 보통 열정과 목표가 있다면 더 노력해서 뛰어넘으려고 하겠지만 그에게는 없다. 타인에 의해 강제된 능력은 결코 빛을 발하지 못한다. 제목이 나온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포츠 과학과 유전자와 숨겨진 과거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고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된다. 작가 특유의 구성과 전개는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그만큼 빨리 읽힌다. 하지만 19년 동안 숨겨온 비밀도, 유전자 능력도 서로 유기적 결합으로 이야기의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이 강하지 못하고 범인들이 결코 보통 사람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도 실패했다. 어쩌면 내가 강한 내용에 중독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히로마사의 고뇌와 갈등이 깊이 있게 다루어져 있지 않다. 가벼운 읽을거리 그 이상은 아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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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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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 중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재미있다. 책에 대한 책이지만 모두 다섯 꼭지로 나눠 풀어낸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두 번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읽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설명하는 것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현재도 유효하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해설서나 요약본을 읽은 책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책들에 영향을 받아서 아는 척한 것도 상당하다.

 

다섯 이야기 중 앞의 세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이야기는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요즘 같이 직접적인 성묘사와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프랑스 혁명 전의 포르노소설이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다르다. 루소마저 포르노소설 <신 엘로이즈>를 썼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닐 것 같은데 책 속 그림을 보면 또 다르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보인다. 이것은 다시 성과 권력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성과 권력을 관계를 아주 잘 풀어내었다. 래리 플린트의 멋진 비유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앞에서도 말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에 대한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읽었지만 그 책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코페르니쿠스뿐만 아니라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대한 멋진 해설을 붙인 번역서가 오히려 프랑스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여기서 우리가 가진 몇 가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사례를 말한다. 그것은 뉴턴과 갈릴레오다.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닦은 뉴턴이 연금술사였다는 사실과 실제 갈릴레오가 한 일이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고전에 대한 해석이다.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란 제목인데 여기서 주로 다루는 두 저작물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공자의 <논어>와 <성경>이다. 이 세 편의 고전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죽은 후 쓰인 책들이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들이 글로 남은 것이다. 문헌학적으로 이 세 작품이 모두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예수가 직접 쓴 것도 아니고 그 말들도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고전이나 종교적 권위에 기대야 하는 집단에게 있어 이것은 신성불가침한 말씀이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이 책들의 해석보다 더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네 번째 이야기는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성과 양육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교육에 의한 것인가다. 이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읽는 내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내용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량도 가장 많다. 진화생물학, 우생학, 사회생물학, 유전공학,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아주 섬뜩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특히 우생학이 사회생물학과 유전공학으로 이어졌다는 대목은 깜짝 놀랄 사실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의 번역 서문을 그대로 다시 실은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상식을 깨트린다. 그리고 책의 학살이 과연 어떤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현대 도서관 깊은 곳에서 보존만 된 책 학살되고 있는 책들이 있다고 할 때 진정한 학살자는 누군지 알려준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나 고전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고정관념들은 어떤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에서 갈릴레오를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140쪽) 이런 통찰이 나오게 된 되는 책 곳곳에서 말하는 비판적 읽기와 하나의 사건이나 학설을 비교 대조해서 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일반적인 독자에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균형 잡힌 독서도 어렵지만 원문에 대한 다른 번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한두 번 거친다면 분명 그만큼 성장하고 나아갈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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