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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살면서 갑자기 가장 무서운 존재로 바뀔 수 있는 관계가 둘 있다. 하나는 이웃 혹은 친구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가족이다. 대의보다 가족을 먼저 말한다. 그래서 모든 잘못의 핑계로 가족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 핑계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은 두 편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그래도 그렇지라는 쪽이고, 다른 쪽은 그랬구나 하면서 이해하려는 무리다. 이 두 진영은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잘못의 정도에 따라 무게의 추가 달라진다. 그럼 이 책 <사고>는 가족의 잘못을 다루는가? 물론 없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이웃 혹은 친구로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좀더 진품같은 짝퉁을 사려다가 두 여자가 죽는다.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건설업자이자 화자인 글렌 가버가 등장한다. 그는 금융위기 후 힘겹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예쁜 아내와 딸 하나와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자기가 짓고 있던 집 지하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경영에 어려움을 느낀다. 아내 실라가 경제적으로 그를 도울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이미 그의 일을 조금씩 돕고 있던 그녀다. 야간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것도 남편을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런 그녀가 술에 취한 채 교차로에서 자다가 사고를 당한다. 즉사다. 그녀의 차를 박은 차에서도 두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 수상하다. 하지만 혈액 검사에서 알코올 수치가 높게 나온다. 음주운전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 그는 이해되지 않는다. 실라가 음주운전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증거는 명백하다. 조금만 미스터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조작임을 알 수 있다. 아내의 음주운전으로 피해자가 있는데 이들은 딸이 다니는 학교에 다닌다. 엄마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친구들의 비난을 받는다. 학교를 다니기 싫다. 여기에 그와의 결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장모가 등장한다. 부유한 자산가인 그녀는 사위를 비난한다. 손녀를 귀여워하고 데리고 가려 한다. 당연히 둘을 부딪친다. 이런 와중에 딸 켈리는 친한 친구 에밀리 집에 파자마 파티를 갔다가 에밀리 엄마 앤의 수상한 통화 내역을 듣는다. 앤은 이전에 그의 집을 빌려 짝퉁 파티를 연 적이 있다.
소설은 가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이 심상치 않다. 실라의 친구 중 한 명인 벨린다는 어떤 압박을 받는다. 빠른 시간 안에 큰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녀의 본업은 부동산중개인이고 부업은 불법의약품 유통이다. 앤의 짝퉁 판매와 연결된다. 이것은 뒤로 가면 가버의 건축자재와도 연결된다. 정상규격품이 아닌 싼 짝퉁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 이것을 조사하는 조사원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앤 부부와 벨린다 등을 공포로 밀어 넣는 소머가 나온다. 여기에 회사 직원들과 협력업체 사람까지 엮이면서 친구와 이웃들이 변할 때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관계의 끝은 막장드라마를 능가한다. 이웃과 친구들의 가면이 하나씩 벗겨지고 사실이 밝혀질 때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족이란 허울이 얼마나 허약한지 드러난다.
이야기는 하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을 허무는 방식이 아니라 관계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진다. 가족관계, 이웃관계, 친구관계, 사업관계 등등. 이 모든 것이 하나씩 적나라하게 밖으로 표출될 때 섬뜩함이 느껴지고 반전이 펼쳐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 작가가 섬세하게 연출한 효과가 극대화된다. 물론 추리를 재밌게 할 충분한 설명이 없는 부분은 아쉽다. 반전처럼 느껴졌던 부분에 대한 설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버가 하나씩 경험하고 부딪치는 사건과 사고들은 좀처럼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친구나 가족 때문에 한 번 정도 고생한 사람이라면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없다면 이 이기적인 관계를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